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26
제 326화
101장. 수많은 인연들 – 3화
“끌끌, 율리안의 춘화만큼 가슴을 뜨겁게 하는 녀석도 없어서 말이오.”
“잘 지내셨습니까, 로드?”
“전후 복구가 거의 끝났소. 우리 레드 고블린은 다시 번영을 누릴 것이오.”
“그간 몇 차례 감사 인사와 선물을 드리긴 했습니다만…… 직접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인사가 늦었습니다. 성마 대전을 위해 협조해 주셨던 모든 것에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 우리는 자레드 대왕을 믿었고, 그렇기에 같은 뜻으로 미래를 대비할 수 있었던 것이오. 우리는 영원한 친구니까.”
“감사합니다, 로드.”
“후후, 만남의 자리에 괜히 불청객이 된 느낌이군. 바람이나 좀 쐬다 오겠소. 이야기들 나누시오.”
이바니바가 눈치껏 자리를 피해 주었다.
이윽고 자레드와 율리안, 둘만이 남은 자리. 그제야 율리안이 말문을 열었다.
“폐하, 이곳까지 친히 왕림해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경이 보고 싶어서 왔소.”
“하하,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간 폐하께 아주 작은 심려도 끼치고 싶지 않아 조용히 일에만 매진해 왔습니다.”
“행정에 관련해서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잡음도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경의 말이 맞을 것이오.”
“부족한 신에게 소임을 맡겨 주셨고, 최선을 다해 일을 처리하고 있는 중입니다.”
[특수 성향 : 다중 업무 처리 SSS / 행정 전문가 SS / 경영의 묘수 SS / 전문 지도 S / 전시 행정 S / 선택과 집중 A]심안으로 율리안의 특수 성향을 보자, 그간 성장하거나 새로이 생긴 성향들이 제법 보였다.
이 역시 퀘스트를 통해 SSS로 끌어올릴 수 있게 된 상황.
물론 스탯의 변화도 변화지만, 자레드는 오랜만에 만난 율리안의 모습이 무척 반가웠다.
생각해 보면 율리안을 제국의 인사로 영입한 이후.
공적인 자리에서 여럿이서 함께 본 경우를 제외하면, 이렇게 단둘이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바꿔 생각하면, 그간 율리안에게 참으로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일처리를 잘해서, 사실 그에 대해서 아주 작은 근심 한 번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을 잘하기에, 그래서 존재하는지조차 종종 까먹을 정도로 단 한 번의 잡음도 없었기에!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율리안의 소중함을 잊고 살았다. 반성할 부분이었다.
“경이 내게 예전에 했던 말을 기억하오? 자작이던 시절, 크리비아 소영지를 중영지로 만들거나 백작의 작위를 얻지 못하면 내 곁을 떠나겠다고 했던 말.”
“신이 어찌 그 말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폐하께서는 그 말 이상을 제게 보여 주셨고, 그래서 지금도 이렇게 폐하의 곁에 있지요.”
“이 정도면 충분히 자격 증명은 한 것 같소?”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칩니다. 성마 대전을 승리로 이끄시고, 대륙 전체를 통일하지 않으셨습니까. 세상에서 신만큼 행복한 신하도 없을 것입니다.”
“하하하.”
“훗날 제가 눈을 감을 때, 누군가가 신에게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폐하의 눈에 들어 행정관의 자리에 오른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대와의 만남이 평범하진 않았었지.”
“사실 처음 폐하를 만났을 때의 신은 익히지 않은 날것과도 같은 상태였지요. 지금 생각하면 다시는 그래서는 안 될…… 망나니였습니다.”
“근무를 태만하게 해서 문제가 됐던 그때를 말하는 것이겠지?”
“예, 폐하. 세상이 저를 알아주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마을 주민들을 볼모로 삼아 능력 발휘를 해 보려고 때를 기다렸지요.”
뒤늦은 참회(懺悔).
자레드는 그런 율리안의 반성이 좋았다.
사실 자레드는 항상 열린 마음이었기에 인재의 투정이라 생각하며 당시의 일을 웃으면서 넘겼을 뿐이다.
아마 그가 피도 눈물도 없는 군주였다면, 율리안은 행정관의 자리가 아니라 단두대로 향했을 것이다.
운명이란 원래 그것을 움켜쥔 자가 누구냐에 따라 극과 극으로 갈리는 법.
자레드는 율리안을 신하로 두게 된 것을 일생일대 최고의 선택이라고 늘 자부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 제국은 전후 복구된 기반을 바탕으로 좀 더 유기적인 협력이 가능한,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야 하오.”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신 역시 이를 위해서 행정 체계에 대한 개편안을 곧 폐하께 올리려던 참이었습니다. 고민이 많았으나, 어느 정도 연구와 사전 검증이 끝났습니다.”
“오……. 정말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군.”
“신이 다섯 개의 안을 준비했으니 최종 검증을 끝내고 폐하께 보고를 드리는 날, 냉정하고 꼼꼼하게 검토해 주십시오.”
“이를 말이오. 언제든 쌍수 들고 환영하며 기다리도록 하지.”
“폐하, 부족한 제게 이토록 분에 넘치는 자리를 마련해 주시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나는 인정이나 사사로운 감정으로 그대를 이 자리에 임명한 것이 아니라오. 늘 책임감을 갖고, 국가를 위해 그대의 소임을 다해 주길 바라오.”
“예, 폐하!”
“이리 와 보시오. 낯간지럽긴 하지만, 가장 뜨거운 진심을 전하는 데에는 포옹이 좋더군.”
자레드가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담아 율리안을 꼭 끌어안아 주었다.
연인 간의 애정 어린 포옹이 아니라, 황제와 신하 사이의 신뢰와 우정이 담긴 깊은 포옹이었다.
오랜만에 직접 마주한 신하들의 모습은 하나하나가 새로웠고, 예전을 떠올리게 했다.
크리비아 제국이라는 거대한 세계를 함께 지탱하고 있는, 참으로 소중한 인연들이었다.
* * *
이어진 나와 오브렌, 아빌라와의 만남 역시 유쾌했다.
그래도 그들은 지난 1년의 공백을 제외하고는 수시로 만남이 있었기에 어색하진 않았다.
가장 걱정했던 오브렌의 건강 상태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매일 티격태격하며 각자가 맡은 분야의 일과 연계 협업에 집중하고 있는 두 사람.
하지만 그 누구보다 끈끈한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은 이미 전력으로 미래를 대비하고 있었다.
오브렌은 전략 식량 위주로, 아빌라는 전략 물자 위주로.
전시 혹은 준전시 상태를 대비한 작업을 내가 지시하기도 전에 이미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게다가 얼마 전 아빌라가 어렵게 구한 ‘영약’을 오브렌에게 먹였다고 했다.
얼추 들어 보니 작은 만드라고라 뿌리 정도를 얻은 것 같은데, 그것을 오브렌이 먹은 모양이었다.
마법이나 오러를 다룰 줄 아는 존재에게는 만드라고라가 엄청난 마력 상승의 근거가 되지만.
오브렌처럼 비전투 요원에게는 생기와 건강의 근원이 된다.
덕분에 오브렌은 전례 없는 회춘을 한 것처럼 탱탱한 피부는 물론이고, 혈기가 잔뜩 오른 상태였다.
열심히 밭을 갈고 있는 그의 팔뚝을 따라 보이는 잔근육들이 무척 섹시(?)하게 느껴질 정도!
어쨌든 아버지가 크리비아 영지의 영주였던 시절부터 우리 가문을 보필해 온 두 사람은.
내가 어떤 지시나 부탁을 할 필요도 없이 알아서 먼 미래를 내다보고 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달리 지시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며, 일분일초의 노력도 아끼지 않고 있는 그들에게 진심을 담아 큰절을 올렸다.
내가 너무 파격을 보인 탓인지, 절을 올리는 내 모습에 둘은 화들짝 놀라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급하게 머리를 숙이던 아빌라와 오브렌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흙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덕분에 둘 다 사이좋게 이마 한가운데에 상처가 났다는 것이 유쾌한 덤이라면 덤.
“신 오브렌, 평생을 폐하를 위해 일할 것입니다. 대제국을 향한 폐하의 발걸음에 신이 밑거름이 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신 아빌라, 제 목숨이 곧 폐하의 것입니다.”
두 사람은 간결하게 정돈된,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결의에 찬 열의를 내게 보였다.
그저 말 몇 마디를 들었을 뿐인데, 가슴 뭉클해지는 무언가가 그들의 말에 담겨 있었다.
현생에서 눈을 뜬 이후.
두 사람의 스탯을 보며 높이 쳐줘 봤자 D, C급의 가신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옛 기억이 떠올랐다.
참으로 어리석은 기억이었다.
내 스스로 그들의 한계를 재단해 버렸지만, 그들은 그런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멋진 모습을 내게 보여 주었다.
유쾌한 편견의 박살.
이제 나는 더 이상 심안으로 보이는 모든 것으로 내 가신과 동료들을 판단하지 않는다.
심안은 결코 찾아낼 수 없을 투지나 잠재력이 데이터를 초월하는 그 이상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이제 아키를 만나고, 그다음에는…….’
아키는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지만, 그래도 격려차 한번 만날 생각이다.
사실 핵심은 그다음이었다.
퀘스트에서도 명단 가장 마지막에 나와 있는 존재.
바로 화염의 정령왕 이그니스와 바람의 정령왕 비에나였다.
특히 이그니스 같은 경우는 나 사이에 애매하게 연결된 고리가 하나 있는데.
바로 내가 화염 정령왕의 가호를 반절만 받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 이그니스에게서 가호를 받았을 때, 절반은 누군가가 이미 와서 받아 갔었다고 했다.
그 뒤로 나는 화염 능력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존재를 꼼꼼히 찾아보고 수소문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미루어 짐작컨대, 이카젤라가 반절의 가호를 챙겼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전투에서 딱히 화염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여전히 오리무중.
어쨌든 ‘해결되지 않은 문제’ 퀘스트의 말미를 장식하고 있는 존재가 정령왕인 것을 보면.
아마도 거기서 무슨 일이든 벌어지긴 할 것 같았다.
물론 비에나가 이그니스의 곁에 있으니, 무엇을 생각하든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겠지만.
세상 그 누구보다 천사 같은 정령왕 비에나는 언제나 내 편이었으니까.
* * *
얼마 후.
“알렉스.”
“예?”
“됐다니까. 내가 쉬는 동안에도 너는 하루 종일 짐을 옮겼잖아. 너 정말 그러다가 쓰러진다니까?”
“괜찮습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단주님보다는 체력과 근력 모두 훨씬 좋아서 말입니다.”
“고집 한번 대단하네, 정말.”
“제가 누구 보좌관인데요. 보고 배운 게 근성과 고집인데, 당연히 청출어람을 해야지요.”
“그런 건 배우지 마.”
“저는 단주님의 모든 것을 배울 겁니다. 심지어 코 파는 것도 배워야 한다면 배울 거고요.”
“야, 그런 더러운 소리 하지 말랬지.”
“어쨌든 황제 폐하 다음으로 제가 섬기는 신은 이 상단에 있으니, 그런 줄만 아십시오.”
‘큭큭. 잘 어울리네, 둘.’
아키와 아키의 직속 보좌관인 알렉스가 일하고 있는 아르케네스 상단의 본청 건물.
진즉에 도착을 했지만, 나는 인비저빌리티 마법으로 모습을 숨기고는 두 사람을 살피고 있었다.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꼼꼼히 할 일을 챙기고, 유쾌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니 참 보기 좋아 보였다.
여전히 아키는 남장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목소리야 원래부터 중성적이었고, 선 굵은 남장에 수염까지 더하니 확실히 더 남자다워 보였다.
다만 궁금한 것은.
알렉스는 과연 아키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내게도 처음에 자신의 남장을 숨겼던 것을 생각하면 모를 것 같기도 한데…….
자는 시간 빼고 거의 24시간을 그녀의 곁에서 밀착 수행을 하는 알렉스가 진짜 모를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화염의 정령왕 이그니스를 만나러 가기에 앞서, 아키를 만날 시간이었다.
나스 대륙 동부 최대의 군상이 될 운명을 바꾸어 나의 영원하고도 충직한 신하로 만든 아키.
내가 아키를 얻은 이후, 나는 한 번도 돈 걱정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녀석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킹 메이커!
나는 감히 이 수식어를 붙여 줄 수 있을 만큼, 그녀에게 깊은 신뢰와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