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70
제 369화
116장. 상봉 – 1화
“아무도 없어요?”
신태풍이 아닌 자레드의 얼굴을 하고, 불쑥 문을 열고 내뱉는 말치고는 황당하다는 생각을 했다.
웃으면 안 되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힘든 상황이다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어쨌든 문을 열고 들어선 집 안에는 온기가 가득했다.
워낙 추위를 많이 타는 여동생 때문에 아버지는 늘 난방에 신경을 쓰셨다.
퇴근을 하고 집에 왔을 때, 추워서 벌벌 떠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늘 적정 온도를 유지해 놓는 것은 아버지의 오래된 습관이었고, 지금도 그대로인 모양이다.
“아무도 안 계신 듯해요.”
“그러게. 날짜를 보니 토요일인데…… 근무하시는 날은 아닌 것 같고 외출이라도 하신 걸까.”
나와 헤이즈는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섰다.
6년의 시간 동안 나스 대륙의 삶이 몸에 밴 나였지만, 역시 집에 돌아오니 옛날 습관이 그대로 나왔다.
덕분에 헤이즈도 얼떨결에 구두를 벗고는 안으로 들어왔다.
맨발로 방바닥을 밟으며 다니는 것이 어색한지 헤이즈는 뒤꿈치를 들고 우스꽝스럽게 내 뒤를 쫓았다.
“집이 작은 것 같아요.”
“맞아. 원래 현대를 살고 있는 대부분의 서민들은 이 정도 크기의 집에 살지. 저택이랑 차이가 크지?”
“많이 답답하셨겠어요.”
“아냐. 살기 좋았어. 나스 대륙의 저택이 내게 과분할 정도로 컸던 거지.”
어렸을 때부터 큰 저택에서 생활을 해 온 헤이즈에게는 낯선 환경인 모양이었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청소를 하고, 업무를 보고하고, 음식을 준비하고…….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하려면 집이 커야 했으니까.
30평 남짓한 지금의 집은 아무리 봐도 헤이즈와 다른 하녀들이 지냈을 법한 작은 방에 불과했다.
“여기가 내 여동생 방이야. 녀석, 어질러 놓고 사는 건 여전하네. 아버지한테 등짝 좀 맞겠는데?”
“정말 그렇……. 앗! 호호호.”
무심결에 맞장구를 치려던 헤이즈는 당황한 듯 입을 틀어막았다.
나와 결혼한 자신에게 여동생 유희가 어떤 위치인지를 실감하고 입단속을 하려는 듯했다.
“야잇, 내가 그렇게 죽기 전까지 잔소리를 했는데도 엉망진창인 건 그대로구먼.”
나는 유희의 방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있는 속옷의 향연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샤아아아.
일단 클린 마법을 전개했다.
빨래를 개고 정리하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안에 있는 먼지나 묵은 옷가지를 청소하기 위해서였다.
“마법이 참 간편하긴 해.”
“맞아요. 폐하가 살았던 세계에는 마법이 전혀 없는 거죠?”
“응. 전혀. 상상 속의 능력처럼 여기지. RPG 게임에서나 할 법한?”
“RPG 게임이요?”
“아, 헤이즈에게는 생소한 개념이겠네. 나중에 자세하게 설명해 줄게.”
“네, 알겠어요.”
여동생 유희의 방에 이어서 아버지의 방까지 쭉 둘러봤다.
항상 정리정돈을 생활화하시고, 모든 물건의 줄을 맞춰 놓는 아버지의 성격답게.
유희의 방과는 정반대로 아주 깔끔하고 청결했다. 방 안에는 정말 먼지 한 톨도 없었다.
내가 굳이 클린 마법을 써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싶을 정도로 말이다.
“아버님의 방을 보니까 돌아가신 바렛 영주님 생각이 나요.”
“맞아. 나도 그 생각 했어. 지구의 아버지든, 나스 대륙의 아버지든…… 정말 깔끔하고 멋진 분들이시지. 공감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는 세계만 달랐지, 두 아버지 모두 내게는 비슷한 이미지를 지닌 분들이었다.
늘 원리원칙을 따지면서 엄격하게 행동하셨지만, 사랑하는 가족에게만큼은 따뜻한…… 그런 성격.
그래서 나스 대륙에서 처음 눈을 떴을 때, 내가 생각보다 크게 당황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분위기나 살아온 배경이 전생과 느낌이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두 방을 둘러보고.
“…….”
6년 전까지 사용했었던 내 방으로 가려 하니,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뭐랄까.
시간이 딱 멈춰 버린 느낌이었다.
자레드로서의 나는 여전히 살아서 숨 쉬고 있지만, 신태풍은 6년 전에 그대로 멈춰 있는 것 같아서였다.
손을 꼭 잡는 헤이즈의 체온이 느껴져 내게 큰 힘이 됐다.
오래전부터 정말 돌아오고 싶었던 집이었는데, 이렇게 돌아오니 이런 감정의 요동을 느낄 줄이야.
전생의 기억에 대해 이미 초탈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다.
단지 나스 대륙에서의 삶, 내게 주어진 목표에만 집중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미뤄 두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듯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스윽.
예전의 내 습관처럼 반쯤 닫혀 있던 방에 들어섰다.
그러자 창가를 가리고 있는 암막 커튼이 한눈에 들어왔다.
햇빛을 싫어했던 나로서는 어지간해서는 걷는 일이 없었던 커튼이었다.
딸깍.
이내 형광등의 불을 켜자.
“아!”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는 컴퓨터 책상 위에 놓여진 내 영정 사진 때문이었다.
이제야 확실히 실감이 났다.
신태풍으로서의 나는 분명 죽었다는 사실을.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줄곧 실낱같은 허황된 희망으로 붙잡고 싶었던 사실과의 마주침이었다.
“…….”
헤이즈는 침묵을 지켰다.
나를 애써 위로하려고 하지도, 무신경하게 내버려 두지도 않았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서서, 공손하게 두 손을 모은 채 내 영정 사진에 고개를 숙였다.
그녀도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애초에 남편이 말하는 전생이라는 것도 사실 믿기 힘들었을 테니까.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전생의 ‘흔적’까지 마주하게 되니, 생각이 복잡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
나는 영정 사진 앞에 놓여 있는 물병 속의 꽃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꽃은 오래된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오늘 아침에 꽂아 두고 간 것이 분명한 싱싱한 생화였다.
내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산소에 갈 때 자주 샀던 꽃인데, 그 꽃을 유독 좋아했던 걸 아버지가 아셨던 모양이다.
게다가 그 옆에는.
유희가 정성 들여 짠 것으로 모이는 털목도리가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다.
전생에 내가 우스갯소리로 ‘매번 너는 오빠 생일 선물을 축하한다는 말로만 끝내냐!’라고 푸념을 하면서, ‘손재주로 뭐라도 좀 만들어 봐라!’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 만들었던 모양이다.
“참……. 안 울려고 했는데.”
아버지와 여동생이 남긴 감정의 흔적들을 보며 나는 꾹 참았던 눈물을 결국 쏟아 내고야 말았다.
6년이 지난 지금도 두 사람은 날 잊지 않고 매일매일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처음보다는 조금 무뎌졌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마음이 남아 있단 것을 느꼈다.
“하…….”
“폐하.”
그때, 등 뒤에서 조심스럽게 나를 안아 주는 헤이즈의 체온이 느껴지자 감정이 더욱 치밀어 올랐다.
내려놓고 싶었다.
그동안 자레드 폰 유칼레스라는 이름에 가려져 있었던 ‘신태풍’의 삶에 대한 미련을.
그리고 울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단 한 번도 보여 준 적 없는 약한 모습이지만, 오늘만큼은 내 감정에 충실하고 싶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무작정 슬퍼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눈물 속에 전생에 대한 미련까지 떠나보내는 시간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신태풍으로서 남은 마음을 모두 털어 내어 저 멀리 하늘로 보내 주었다.
이제 아버지와 여동생에게 나의 존재를 해명할 일이 남았지만.
더 이상 내가 신태풍의 삶에 미련을 두고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금 흘리는 내 굵은 눈물의 의미였다.
얼마 후.
여전히 아버지와 여동생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헤이즈와 함께 방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중에서 헤이즈가 유독 관심을 가진 것은 컴퓨터 책상 한옆을 가득 메운 피규어와 그림이었다.
전부 게임 와 관련된 상품으로, 내가 정말 열심히 모았던 애장품들이기도 했다.
“폐하, 이 그림들 말이에요.”
“응.”
“아무리 봐도 나스 대륙 사람들과 똑같이 생긴 것 같지 않으세요? 특히 이 그림은 베르하드 님?”
헤이즈가 가리킨 자리에는 베르하드와 똑같이 생긴 마법사가 그려져 있었다.
똑같은 ‘듯’한 것도 아니고 똑같다고 내가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정말 베르하드를 그린 그림이기 때문이다.
내가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베르하드의 그림을 고화질로 인쇄해 둔 것이었다.
베르하드는 에서 마법사 플레이어라면 만나지 않을 수 없는 핵심 NPC였다.
에서 항상 동경하고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했었던 NPC이기도 하였기에.
나는 나스 대륙에 환생한 이후, 베르하드를 만났을 때 무척 기뻐하고 행복해했다.
게임 속의 인물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리는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네.”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폐하. 솔직히 말하자면 어떤 말을 들어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아요.”
해맑게 웃어 보이는 헤이즈의 모습에서는 나름의 해탈(?)한 것 같은 감정이 묻어났다.
애초부터 ‘신태풍’의 영혼이 전생(轉生)한 ‘자레드 폰 유칼레스’도 정상이라고 볼 수 없었으니까.
말로 설명하기 힘든 것들을 나에 대한 믿음으로 이해하고 극복한 헤이즈였다.
그러니 어떤 말을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는 그녀의 말은 확실히 틀린 데가 없었다.
“내가 신태풍으로 살았을 때 말이야. RPG 게임을 즐겨 했었어.”
“체스 같은 건가요?”
“그것도 게임이긴 하지. 하지만 이건 가상의 세계로 들어가서 그중의 한 사람으로 생활하는 거야.”
“예를 들면…… 제가 또 다른 세계의 사람이 되어서 기사나 마법사가 되는 그런 거 말인가요?”
“맞아! 진짜로 환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그런 세계의 사람처럼 살아 보는 거지.”
“아……. 뭔가 어렵지만 알 것도 같아요.”
“한 번에 이해가 되면 그게 더 이상한 거야.”
나는 문득 나중에 시간이 되면, 헤이즈에게 를 체험할 기회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신기할 것이다.
물론 그 세계 안에 ‘헤이즈’라는 하녀가 구현되어 있지는 않다.
내가 환생한 자레드 폰 유칼레스라는 인물도 에서는 본 기억이 없었으니까.
세계관 절반을 채운 확실한 데이터와 상상력, 그리고 자유도에 맡겨진 나머지 절반의 ‘빈’ 데이터.
텅 빈, 하지만 상상이 채워진!
그 안에 아마도 척박한 북부 영지인 크리비아 영지에 살고 있는 망나니 자레드의 삶이 있었겠지.
이제부터는 헤이즈에게 이 게임의 세계가 오롯이 현실이 되었다는 얘기를 꺼내야 한다.
처음에 나도 믿을 수 없었을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물론 눈앞에 있는 헤이즈가 가짜라거나 꿈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는 나스 대륙의 세계는 실재(實在)하고, 다만 그 세계가 우연히 라는 게임에 구현되었다고 믿는 쪽이니까.
“그래서……. 음?”
한데 바로 그때.
삑. 삑삑. 삑.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 집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올 사람이 누구겠는가.
꿀꺽-.
6년 만의 상봉.
그리웠던 내 가족과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곧 마주하기 직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