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72
72화
밤 10시.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열혈 여형사]항간에서는 드라마 제목이 촌스럽다는 비난도 있었지만, 직관적이어서 좋다는 호평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한유리가 이 드라마의 원톱이라는 사실을 제목에서 알 수 있게 해주어 한유리의 팬들에게는 무척 반가운 제목이었다.
지난주, 1회, 2회가 방송되면서 꽤 많은 화제를 모았다. 스타작가 안현미와 탑 배우 한유리의 만남만으로도 충분히 화제가 되었는데 한유리의 갑작스러운 칩거 덕분에 드라마 방영일이 3개월간 뒤로 밀렸다가 첫 방송이 되었기에 기대감은 더욱 상승하고 있었다.
1회 시청률 8.4%
2회 시청률 9.1%
대부분의 사람은 3회 방영분부터 10%대를 넘길 거라고 예측했다. 공중파뿐 아니라 케이블 방송마저도 드라마를 쏟아내고 있는 이 시대에 시청률 10%면 꽤 선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유리와 안현미의 조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조금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한유리는 시청률 저하의 주범으로 공동 주연 자리를 꽤 찬 달리기가 느려 슬픈 배성우를 콕 찝었다. 반반한 얼굴에, 늘씬한 외모, 그럴듯한 설정이 시청자들에게 어필이 되었지만, 그의 발연기와 어색한 동작들은 기껏 모은 시선을 흩트리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번 회는 이번 주에 촬영된 액션 씬이 들어가 있었다. 1,2회가 주인공의 과거를 통해 감정선을 길게 끌고 왔다면 이번 주부터는 주인공이 직접 사건에 뛰어들며 빠르게 스토리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만족시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한유리는 사실 조금 불안했다. 요즘 세상에 TV로 드라마를 보는 젊은이들은 많지 않다. 대부분 휴대폰을 통해 방송을 보거나 다시 보기를 보는 이들도 많아졌다. 따라서 시청률은 드라마의 화제성을 100% 대변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요즘은 짤의 시대다. 짧은 동영상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그것이 드라마의 화제성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1,2회의 짤이 없었다. 방송국에서 만든 짤이야 몇 개 돌아다녔지만, 시청자들이 만든 짤이 없었다. 그나마도 방송국에서 만든 짤에 대한 반응도 시큰둥했다.
특히 지X 맞은 남주의 짤은 구독수가 2천도 되지 않았다. 이번 주마저도 그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 드라마는 점차 하향세를 타고 말 것이다. 한유리가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 덕팔이 대역을 맡은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목소리 한번… 기가 막히네.”
여형사와의 맞짱에서 여자의 가슴을 후려치고 그 틈을 타 손가락에 칼날을 끼운 채 허벅지를 찌른 조직의 보스.
여성들의 공분을 사야 하는 장면이었다. 야비하게 생겨 낙점을 받은 액션배우가 립싱크를 하는 장면도 어색하지 않았다.
“좋았어.”
이 장면은 남자 주인공이 조직을 배신하고 여 형사를 돕게 되는 분수령이 되는 장면! 임팩트가 강하면 강할수록, 공분을 많이 사면 살수록 드라마의 개연성을 높이는 매우 중요한 장면이었다.
한유리가 손에 들린 휴대폰을 들어 그 안을 확인하였다. 역시나 많은 이들이 시청자게시판에 분노의 댓글을 달고 있었다.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여자의 가슴을 후려치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다. 저 새끼 나쁜놈이다. 현실 주소를 까라. 등등 액션배우에 대한 증오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한유리가 씨익 웃으며 드라마를 시청하였다. 만족할 반응을 얻었으니 이제 편하게 드라마를 보면 되었다. 3회가 끝나고 크레딧이 오르며 다음 회 예고가 나왔다.
“어?”
유리가 덕팔의 목을 감싸며 돌려차기를 한 장면이 나올 줄 알았건만 경찰서에서 덕팔이 한유리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이 나왔다. 그리고 이어진 장면이 바로 그 문제의 장면이었다. 누가 봐도 한유리의 액션 장면의 기대치를 올리기 위한 예고가 아닌 덕팔의 등장을 암시하기 위한 예고였다.
“훗.. 가닥을 이렇게 잡으셨다? 우리 남주는 어떻게 하나?”
한유리가 옅은 웃음을 지으며 배를 쓰다듬었다.
“그나저나 이 남자는 왜 안 오는 거야? 밥은 주고 나돌아다녀야 할 거 아냐? 하여간 남자들이란.. 쯧!”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아저씨 전용 대사가 한유리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
덕팔의 집. 새벽 4시 30분.
한유리의 매니저 배정환이 심각한 얼굴로 덕팔과 마주 앉아 있었다.
“서명하시죠.”
“저는 저를 돌봐주시는 변호사님이 계시는데요?”
“언제까지 변호사가 떠주는 밥만 드실 생각입니까?”
“계약서를 쓰는데 변호사의 조력이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한유리가 웃으며 계약서를 배정환의 손에 들려주었다.
“여기서 10분 거리에 김향숙법률사무소라고 있어. 계약서는 거기에 내밀면 되고 오늘은 출근하자고.”
“유리야, 하지만 오늘 덕팔씨하고 계약을 하자고 할 것 같은데?”
“그것도 마음대로 안 될 거야. 그러니까.. 그쪽하고 한꺼번에 처리해.”
유리가 모자를 눌러쓴 채 롱패딩으로 늘어진 추리닝을 감추며 현관문을 나섰다.
샵에 들려 단장을 한 유리와 덕팔이 세트장으로 출근을 하였다. 덕팔의 양손에 커다란 보따리가 들려 있자 현장 감독들이 흐뭇한 표정이 되었다.
“아침 안 드셨으면 닭죽 어떠신가요?”
덕팔이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며 현장 스텝들을 불러 모았다. 그저 몇 숟가락 되지 않는 닭죽이었지만 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워낙 많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두 번 먹을 생각은 하지도 못했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간식이었다.
“이거 끝내주는데? 근데 닭은 어딨나?”
“닭은 다른 분들이 드셨죠.”
“이런! 어느 분께서 그런 호강을 누리신 거야?”
“하지만 실망은 하지 마세요. 모든 건 이 국물에 녹아있답니다. 하하”
“그런 거야? 하하. 역시, 우리 덕팔이가 짱이야.”
감독이 웃으며 닭죽 그릇을 다시 내밀었다가 조감독에게 밀려났다.
“써글…”
감독이 껄껄거리며 현장을 꼼꼼히 살피다가 덕팔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덕팔이”
“네 감독님.”
“그 국자 다른 사람한테 주고 이거 읽어봐.”
덕팔이 국자를 조명팀 스텝에게 내주고 감독이 내미는 종이를 받아보았다. 4회차 쪽대본이었다.
“4회면 오늘 방송 아닌가요?”
“추가 촬영이야. 어제 자네가 나오는 장면을 예고로 던졌거든. 근데 자네 4회에서 두 씬 밖에 안 나오잖아. 이 정도면 사기가 된다고.”
“아, 그랬군요.”
“뭐야, 드라마 안 봤어?”
“예, 그게 일이 있어서 지방에 다녀왔습니다.”
“허어.. 별수 없지. 어쨌든 서너 씬은 더 들어가야 할 것 같으니까 읽어보고 바로 촬영하자고..”
읽어보면 바로 촬영이 되나? 그것은 수십 년 경력을 가진 배우들도 어려운 일이었다. 배우들은 촬영 전에 자신이 맡은 케릭을 분석하고 모방한 후, 자신의 것으로 현실화시키는 작업을 거친다.
정체성도 확실하지 않는 케릭터를 던져주고 대사를 치라고 하는 것은 아무리 경력이 많은 배우라도 힘든 일이었다.
덕팔이 대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지 조감독으로부터 4회차 대본을 받아 정독하였다. 상황은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이 오주원이라는 남자가 어떤 인물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틀 전, 덕팔은 그냥 자신이 인사를 하듯 인사를 한 것에 불과할 뿐 연기를 한 것이 아니었기에 대사가 많아지고 상황이 설정된 지금에 있어서는 이 대사를 어떻게 쳐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촬영장 한구석에서 쪼그리고 앉아 대본을 읽고 있는 덕팔을 슬며시 바라본 감독이 조감독을 불렀다.
“쟤, 뭐하냐?”
“대본 읽고 있잖아요.”
“보면 알고?”
“글쎄요. 고개를 계속 갸웃거리는 것이 뭔가 감을 잡은 것 같기도 하고…”
“무슨 감?”
“이쪽 대본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자식이…”
감독이 조감독에게 눈을 흘겨 주곤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니가 그 대본을 보고 제대로 대사를 칠 수 있으면 넌 연기 천재다. 암, 천재고 말고.”
본래 감독은 덕팔이 대사를 다 외우면 작가에게 들은 케릭터의 정체성을 설명하고 연기 지도를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덕팔이 저렇게 쪼그리고 앉아 대본만 읽고 있으니 그냥 두고 보는 것이었다. 어차피 아직 촬영 준비가 다 되지 않았으므로..
**
“왜 저를 따돌리는 겁니까?”
“그런 거 아니에요.”
“팀장님!”
“오 경위, 두 번 말하지 않을 테니 잘 들어요. 이 팀의 팀장은 나고 당신은 내 팀원이에요. 더 이상 그 불손한 태도는 용납하지 않을 테니 알아서 처신하세요.”
돌아서려는 한유리의 손목을 덕팔이 잡아낚아 채었다.
“그럼 친구로서 말할게. 날 밀어내지 마.”
“… 그때 그랬어야 했어.”
한유리가 덕팔의 손을 뿌리치고 사무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덕팔이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아련한 얼굴이 되었다.
“오케이, 컷!”
감독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오케이를 외쳤다.
“잘하네요.”
“저놈 천잰데? 어떻게 알았지?”
“대사에 힌트가 있긴 했지만, 너무 정확하게 찝어 내서 소오름!”
조감독이 웃으며 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감독이 덕팔과 한유리를 불렀다.
“다음씬 바로 갈 수 있지?”
“네”
한유리가 시원하게 대답을 하였다. 그러나 덕팔이 머뭇거렸다.
“왜?”
“이해가 잘 안 됩니다. 몇 가지 단서가 있어서 끼워 맞추고는 있지만, 오주원이라는 인물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이 필요합니다.”
“후후.. 그걸 이제야 물어보네? NG를 냈으면 혼쭐을 낼려고 했는데 그럴 수도 없고 말이야.”
감독이 한유리를 보내고 덕팔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촬영에서 덕팔의 대사와 행동은 좀 더 직관적이 되었다. 그의 성격, 그의 의지가 그의 행동과 말로 잘 표현되고 있었다.
“저놈 원래 성격이 저런가?”
감독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오케이 싸인을 냈다. NG 없이 네 씬이 금방 촬영되었다. 감정 씬이 하나 있어 여러 테이크로 나눠 찍었지만, 초짜인 덕팔이 흔들림이 없자 감독도 안심하고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 촬영분, 작가님께 보내드리고 컨펌 받아.”
“왜요?”
“그래야 5회 수정본을 쓰실 수 있으시겠단다. 시간 없어 얼른 뛰어.”
조감독이 불이 나게 뛰어 사무실로 가버리고 잠시의 휴식 시간이 생겼다. 세트가 바뀌면서 촬영 장비가 다음 세트로 이동하는 시간이었다.
“우리 남주께서도 저 정도만 해주시면 주 4일 근무도 가능하겠는데 말이야.”
감독이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어, 박 감독 나야. B팀은 어때?”
[아, 감독님. 죽겠어요. 뭐 저런 새끼가 다 있습니까?]“왜?”
[애가 두 번 뛰더니 널브러졌어요. 조폭 깡패라는 새끼가 액션 씬을 소화 못 하면 어떻게 합니까? 체력이 안 되면 처음부터 이 역할을 안 해야죠. 우리 애들이 소풍 왔다고 좋아 죽어요. 2분 촬영하고 1시간씩 쉬니, 오늘 퇴근 다해습니다.]“그럼 그렇지. 그래도 고생 좀 해. 선 감독한테 미안하다고 말 좀 전해주고.”
[형님, 저한테는 안 미안해요?]“액션배우 꿈나무를 발굴해 줬잖아.”
[나랑 연기를 해야 꿈나무죠. 분위기가 점점 주연으로 가는 거 같던데!]“아냐, 그런 거. 그러니까 걔 달래가면서 열심히 찍어. 끊는다.”
아무래도 무술감독에게 소주라도 한잔 사줘야 할 것 같았다. 그놈이 왜 뻗었는지 뻔히 알고 있었다. 어제 쉬는 날이라고 새벽까지 술을 진창 처먹고 술도 안 깬 상태에서 사우나에서 기어 나왔겠지. 그러니 무슨 힘이 나서 뜀박질을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