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mpion from Sapa RAW novel - chapter 13
아우레오의 앳된 얼굴이 오늘따라 피곤해 보였다.
사파에서 온 용사
사파거두는 용사가 되어야 한다
식사를 끝내고, 아우레오는 내 질문에 답해 주었다.
“마법사란 놈들은 육체를 초월한 힘을 사용한다고?”
“맞아요. 그들은 신의 섭리를 거스르는 족속이죠. 마법사는 교묘한 편법으로 ‘마나’의 질서를 비틀어요. 그런 다음 자기 입맛대로 재배열해 사악한 마법을 구현합니다.”
“마나? 그건 또 뭐야?”
“아, 마나는 이 세상을 이루는 근간입니다. 유일신 아도나이께서는 마나를 빚어 세계를 만드셨거든요. 생명력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쉬워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온 세상에 가득한 신의 축복이지요.”
‘마나란 건 대자연의 기(氣)를 말하는 게로군.’
설명을 듣고 나니, 내가 찾아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마법사란 족속은 마나를 이용해 불이나 냉기를 내뿜고, 무서운 환각을 보여 주는 등 신의 섭리를 벗어난 조화를 부린다고 했다.
‘대자연의 기를 모아서 한빙공(寒氷功)이나 열양공(熱陽功), 또는 환술을 펼친다……? 확실해. 마법사란 놈들은 기공(氣功)을 쓴다.’
들어 보니 사용하는 내공의 양도 어마어마할 것 같았다.
강호에도 극양이나 극음의 기를 다루는 고수는 많지만, 대놓고 불을 뿜거나 연못을 통째로 얼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 정도의 위력이면 내공으로만 따졌을 때 무림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수준일 것이다.
“검술에도 마나를 응용할 수 있을 텐데, 마나를 다루는 기사는 없나? 무기에 마나를 불어 넣어서 절삭력을 높이거나, 칼날이 부러지지 않게 하거나.”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아이들이 읽는 동화에 종종 마검사가 나오지만, 현실에서는 들어 본 적도 없어요.”
“그래? 빛나는 칼을 휘두르는 놈은 없다는 거지?”
이것 또한 특이한 점이었다.
기공을 쓰면서 무기술에는 내공을 사용하지 않는다니? 무공이 왜 그런 식으로 발전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참, 칼이 빛나고 절삭력과 강도를 끌어올리는 건 성기사도 가능해요. 하지만 테온이 찾고 있는 힘과는 다를 겁니다.”
“어째서?”
“성기사가 쓰는 ‘광휘의 검’은 마나가 아니거든요. 신앙의 힘이지요. 정확히 말하면 천사의 힘을 아주 일부만 잠깐 빌려서 사용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칼에서 빛이 나오고 위력이 올라간다는 거잖아?”
그렇다면 성기사도 내공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
양쪽 다 만나 봐야겠지만, 좀 더 끌리는 건 마법사였다. 다루는 내공의 양이 훨씬 많을 것 같으니까.
“그런데 아우레오, 넌 마법사란 놈들을 왜 그렇게 싫어해? 너만 그런 게 아니라 토마스나 에릭도 마법사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얼굴이 굳네?”
“그야 당연하지요. 마법사란 더없이 부정한 존재입니다. 그들은 아도나이께서 정립한 마나의 질서를 자기 목적을 위해 비틀고 꼬는 족속이라고요!”
“그게 뭐가 문제야? 마나는 비틀고 꼬아도 자연스럽게 흩어지지 않나? 들어 보니 그럴 것 같은데.”
마나란 게 대자연의 기라면 분명 그럴 것이다. 내 예상이 맞는지 아우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마나는 인위적으로 조작해도 원래의 형태로 돌아가려는 성질이 있지요. 문제는 마나를 재배열할 때 ‘부산물’이 생긴다는 거예요.”
“부산물?”
“네, 압생트 마을에 쳐들어왔던 고블린 떼를 기억하시죠?”
“아, 그건 잊을 수가 없지.”
난데없이 고블린 이야기를 꺼내는 아우레오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고블린이 바로 마법의 부산물입니다. 고블린뿐만 아니라 ‘트롤’이나 ‘오우거’ 등등 모든 몬스터는 마법의 부산물이에요.”
“그게 무슨 소리야?”
“마나는 곧 생명력이고, 마법이란 결국 생명의 질서를 비트는 일이지요. 마법사가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세상 어딘가에 몬스터가 생겨나요. 몬스터는 뒤틀린 생명체이니까요.”
“……스읍.”
여기까지 듣자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았다.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지금 아우레오의 주장은 논리 비약이 심했다.
기공이란 것이 대자연의 기를 끌어다가 원하는 형태로 가공해 방출하는 건 맞지만, 그 때문에 요괴가 태어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거 확인된 사실이야?”
“물론이지요. 성경에 똑똑히 기록되어 있어요.”
“아니, 책에 적힌 내용 말고 실제로 봤냐고?”
“실제로 보지는 못했어요. 전 어릴 때부터 수도원에서 지냈으니까요. 하지만 성경에서 읽었으니 확실해요.”
“말을 말자.”
마법 때문에 몬스터가 나타난다는 건 교회의 일방적인 주장 같았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성경을 진리로 여기니, 그 말에 굳이 반박하지는 않았다.
‘마법사가 이곳에서 악당 취급을 받는다면, 내겐 오히려 잘된 일이다.’
지은 죄가 없어도 내공을 빼앗기 위해 죽여야 할 놈들인데, 공공의 적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
‘사악한 마법사를 처단하는 협객 역할을 자처해야겠군. 그런 걸 여기서는 뭐라고 하더라?’
용사.
아우레오가 말하기로, 신의 뜻에 따라 사특한 존재와 싸우는 이는 용사의 칭호를 받는다고 했다.
사파거두는 이세계에서 용사가 될 필요가 있었다.
‘마법사를 몇 놈만 빨아먹으면 왕년의 내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마법사를 닥치는 대로 찾아내 모조리 흡수한다면?’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세상의 모든 마법사가 먹잇감처럼 느껴졌다.
마법사는 기공 외에 별다른 재주가 없다고 했으니, 먼저 공격해 근접전을 벌이면 어렵지 않게 제압해 내공을 흡수할 수 있을 터다.
“아우레오, 마법사를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내 기억을 찾기 위해서는 놈들을 만나 봐야 할 것 같은데. 겸사겸사 복수도 하고.”
“으음, 복수라…….”
아우레오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마음을 정했는지 입을 열었다.
“테온, 당신의 복수는 정당합니다. 마법사는 하나같이 숨어 살기 때문에 어디에 있는지 당장은 알 수 없어요. 하지만 북부에 도착하면 교회를 통해 알아봐 드리지요.”
“북부까지는 한참 멀었잖아? 당장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나?”
“그들은 음침한 족속이라서요. 마법사를 처단하는 건 숭고한 일이지만, 찾아내는 게 쉽지 않을 겁니다.”
“넌 찾아내기만 해. 족치는 건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으니까.”
“테온, 마법사를 얕보지 말아요. 당신이 뛰어난 전사라는 건 알지만, 훈련받은 성기사도 마법사와 일대일 승부는 장담하지 못해요.”
“호오, 그 말은 성기사가 나보다 강하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그야 물론이지요.”
아우레오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고 토마스와 에릭도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내심 이 세계의 무학을 얕잡아 보고 있던 나는 그 반응을 보고 오히려 놀랐다.
‘내 무공을 몇 번이나 봤으면서도 저렇게 생각하다니, 이곳도 허당만 있는 건 아닌가 보군.’
내공이 없다지만, 외공과 초식은 제법 쓸 만한 놈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성기사는 내공도 어느 정도 사용하는 것 같으니, 쉽게 볼 상대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충분한 정보를 얻고 나서 자리에 누웠다.
내가 벌렁 드러누워 눈을 감아 버리자 일행도 군말 없이 모닥불 근처에 누웠다.
‘마법사……. 성기사…….’
두 단어가 머릿속을 맴돈다. 이제야 제대로 된 방향을 잡은 느낌이다.
“아우레오, 자냐?”
“아직요.”
“너희 교회는 신도가 몇 명이나 있어?”
“글쎄요? 테온은 온 세상 사람이 몇 명인지 세어 보셨나요?”
“…….”
아우레오의 대답에 과장이 섞였다고 가정해도 대단한 권세를 누리고 있을 것이다.
가만히 들어 보니, 성기사도 교회에서 상당히 귀한 몸인 듯하다. 그렇다면 그들을 납치해 내공을 빼앗는 건 위험 부담이 크다.
‘역시 목표로 삼아야 할 건 마법사다. 다만 그들은 뚜렷한 조직도 없고, 제각기 숨어 지난다니 찾아내는 게 문제군.’
아우레오의 도움이 없다면 마법사를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자식을 북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아우레오는 내게 고마운 감정을 갖고 있다. 도리를 아는 자이니, 북부에 도착하면 마법사의 소재 파악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할 터. 그럼 찾아내는 건 시간문제다.’
그날을 기약하며 설렘을 안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마법사와 만남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 * *
일행은 미개척지를 이동하며 보름이 넘게 노숙하고 있었다.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속마음은 다들 신선한 음식과 푹신한 침상이 그리웠다.
“저 앞에 민가가 보입니다, 사제님.”
“이런 외진 곳에 민가라니, 아도나이의 보살핌이로군요.”
아담한 집 여러 채가 모인 민가였다. 낮은 담장 너머로 보이는 동글동글한 지붕이 귀여웠고, 안에서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계십니까!”
낮은 담장 앞에 선 토마스가 목청을 돋워 외쳤다. 압생트 마을과 달리 이 작은 마을에는 목책도, 경비하는 사람도 없었다.
끼익.
“어머, 여행자이신가요?”
대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 사람은 젊은 아가씨였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를 올려다보았다. 통통하고 귀여운 인상이다.
아우레오가 한 발 나서며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순례 중인 사제 아우레오입니다. 중부에서 출발해 북부로 가는 중인데, 혹시 마을에서 쉬어…….”
쿵.
말을 하던 아우레오가 멋쩍게 입맛을 다셨다. 여인이 소개를 듣다 말고 대문을 닫아 버린 것이다.
잠시 후 대문이 다시 열리고, 이번에는 여러 사람이 함께 나왔다.
“허허, 사제님께서 이런 외진 곳까지 방문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맨 앞에 나선 사람은 새하얀 백발의 노인이었다. 노인 곁에는 아까 그 여인을 포함해 젊은 여자가 여럿 있었다.
“반갑습니다. 마을의 촌장이신가요?”
“아이구, 사제님. 말씀을 편하게 해 주세요. 저희같이 천한 것들에게…….”
“그런 말씀 마세요. 저는 순례자이니 항상 낮은 자세로…….”
“아이고,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 같은 천것이 어떻게 사제님께 높임말을 듣겠습니까. 절대 그러지 마십시오. 정말 저는 괜찮습니다.”
촌장은 송구함에 몸 둘 바를 모르며 말했다. 어찌나 유난을 떠는지 아우레오가 되레 민망할 정도였다.
이대로는 인사치레에 끝이 없겠다 싶어, 아우레오가 먼저 본론을 꺼냈다.
“촌장님, 저와 동료들은 오랜 노숙으로 지쳐 있습니다. 잠시 마을에 머물며 여독을 풀 수 있을까요?”
“물론 마을을 내드려야지요. 사제님의 방문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아우레오의 제안에 촌장이 반색했다. 그는 신앙심에 고양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유미야, 네 집이 가장 넓으니 손님에게 내드려라. 나머지는 식사를 준비하고. 오늘은 모두 모여서 푸짐하게 먹자꾸나.”
촌장의 안내를 따라 들어서니 어딘가 이질적인 마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을에는 텃밭도, 닭장도 없었다. 그리고 촌장을 제외하면 남자가 한 명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