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assin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66
한때 행성 테베의 여신이었던 세레지아는, 결국 지구의 신이 되었다.
“솔직히 워낙 잘 정리되어 있어 따로 만질 게 없네요. 뭔가 능력 차이에 자괴감이 느껴지는데요…….”
그리고 그런 만큼, 나는 행성 테베의 관리자로서 그 사후 관리에 많은 노력을 투자해야 했다.
“여긴 당최 돼 있는 게 없네.”
“유능했던 조율자들도 당신이 다 묻어버렸고, 그다음에는 통째로 점령되기까지 했으니까요. 이제 제 고생을 좀 아시겠어요?”
“안 그래도 짜증 나니까 두들겨 맞기 전에 가만있지?”
허나 그렇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어찌 됐든 이 테베 역시 내가 오랜 시간 몸을 담아 온 두 번째 고향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리고 그 백 년이 넘는 세월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모르스를 상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충분히 은혜를 입었다고도 할 수 있다.
“서하 씨가 기다리던데, 이쪽에는 언제쯤 오시려고요?”
“나중에 봐서. 시간차 때문에 오래 자리 비우기가 좀 그래.”
세레지아와 협력하여 완벽한 차원 이동 통로를 만들어두었기 때문에, 이제는 언제든 원할 때 양쪽을 오갈 수도 있었다.
그렇게 지구와 테베가 복구되어 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람하자니, 그 역시 꽤나 생소한 감각이었다.
“…어쩐지 평화롭네.”
“그러게 말이에요.”
몬스터와 던전은 사라졌고, 이제는 헌터들 역시 힘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허나 세레지아는 의외로 그런 헌터들의 힘을 회수하지 않았다.
신경이 쓰여 한번 이유를 물어보니,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그게 아니라 이미 해봤는데 안 되던데요.”
“…….”
정식으로 신도윤의 권한을 넘겨받아 진정한 신격으로서 거듭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갈 길이 먼 모양이었다.
“뭐, 딱히 상관없겠지.”
헌터들의 처우가 곤란해지겠지만, 그거야 지구의 높은 분들이 알아서 해결해 나갈 문제다.
적어도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복구가 다 끝나면 어쩌실 계획이세요?”
“글쎄, 너처럼 조율자나 만들어두고 다시 그쪽으로 갈까 하는데.”
마침 시종역인 라마도 있으니, 그녀에게 뒷일을 부탁해둔다면 충분할 것이다.
“어차피 문제가 생길 때 다시 넘어오면 되니까.”
“그것도 그렇네요.”
그렇게 무던히 시간은 흘러갔고, 결국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던전 사태의 사후 처리도 끝이 났다.
그리고 나는, 다시금 세상과 단절한 채 완벽한 집순이가 되어 있었다.
“…아니, 왜. 솔직히 쉴 때도 됐잖아.”
간만에 통로를 넘어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라마를 향해, 나는 변명 아닌 변명을 내뱉었다.
발단은 너무나도 많은 업무 처리였다.
가뜩이나 힘겨운 결전을 마친 데다 그런 중노동이 이어지니, 모든 것을 끝마친 순간 내게는 일종의 번아웃이 찾아와버렸다.
그 뒤는 단순했다. 한번 맛본 나태의 달콤함을 인간은 잊지 못하는 법이었으니까.
이젠 인간이 아니라 신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같은 이치였다.
“다른 의미로 인간이 아니게 되어버리신 것 같습니다만…….”
에어컨을 최대로 가동한 채 이불을 꽁꽁 싸매고 방송을 튼 나를 보며, 라마는 가끔씩 드러나는 한심함의 시선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티익.
“왕께서 다시금 집을 북극으로 만들어 버리셨습니다.”
“…너 지금 이거 하극상이야.”
“예. 전화 바꾸겠습니다.”
그렇게 손에 쥐어진 전화를 귀로 옮기며 나는 방어 태세를 취하듯 이불 속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이내 서하의 잔소리가 날아들었다.
“…아, 알겠어, 이제 끌게.”
그렇게 울적한 마음으로 시계를 바라보니, 어느덧 시간은 저녁 일곱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익숙한 손짓으로 치킨을 주문하며, 이내 떠오른 생각에 피식 미소 지었다.
‘뭐, 별다를 건 없네.’
힘을 되찾고, 신격을 얻어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결국 나는 똑같았다.
집에서 농땡이나 피우며 게임을 하는 것이 가장 행복했고, 굳이 복잡한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안 삐지셨습니까?”
“누굴 애로 보나.”
그것이 참으로 참으로 인간답다는 생각이 들어, 딱히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이불을 벗어 던진 채로 일어나, 거실에 있던 에어컨의 전원을 끄고 말했다.
“아, 근데 치킨은 1인분만 시켰으니까.”
“…….”
그렇게, 또 하루가 흘러갔다.
지구는 평화로웠고, 던전이 열리거나 몬스터가 쳐들어오는 일은 이제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여전히 태평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드가르드에 영광을!】
“궁을 왜 거기다 써? 제정신이야?”
언젠가는 하고 싶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다시금 위기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허나 그것은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다.
“아 그래서 어쩌라고? 자신 있으면 1대1 해보든가. 백 판 해도 내가 다 이길걸.”
그저 지금은, 이런 나날이 왠지 모르게 더없이 좋았다.
【패배하였습니다.】
“…침묵의 저주.”
곧장 침대 위로 뛰어든 나는, 열이 오른 머리를 식히며 연신 불평의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잊고 있던 사실이 생각나, 나지막이 이제는 없는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려냈다.
“아, 등불 안 날렸다.”
하지만 괜찮을 것이다. 그것을 인식할 방법이 있다면, 분명 지금의 이 평화로운 광경도 전해졌을 테니까.
그런 실없는 생각을 속에 품으며, 나는 밀려오는 포근함과 따스함에 눈을 감았다.
꿈에 누군가가 나왔던 것도 같지만 사실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
이후 맞이한 아침은, 역시 여느 때와 같이 변함없는 광경이었다.
그렇게 오늘도 다시금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싸 찐따 네크로맨서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