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mpion from Sapa RAW novel - chapter 138
육박전을 벌일 수 없는 상황이니 어떻게든 마법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문제는 마법을 시도할 때마다 테온 크로우가 배열을 깨 버린다는 것이었다.
‘저 하찮은 놈이 대체 어떻게 마법 시전을 방해하는 거지?’
테온이 괴상한 고함을 지를 때마다 거의 완성했던 마나 배열이 속절없이 흩어졌다. 마치 수면 위에 그림을 그렸는데, 누군가 난입해서 물장구를 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 오덴세섬으로 돌아간 게 아니었어? 설마 서부에서 설치는 것도 모자라 화산 지대까지 기어들어 와서 내 본체를 노릴 줄이야!’
이쯤 되니 오비데우스도 테온을 너무 얕봤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테온은 용살기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무력뿐만 아니라 허를 찌르는 지략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그 터무니없는 계획을 실행으로 옮기는 결단력까지 갖춘 사내였다.
‘심지어 잔챙이들까지 데리고 왔군. 아도나이의 추종자들인가?’
용암 밖에서 느껴지는 신성력에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오비데우스.
그는 도망치는 와중에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용의 의지가 둥지 바깥을 지키는 드레이크 두 마리를 안으로 불러들였다.
‘이 멍청한 땅도마뱀들은 침입자가 여기까지 들어올 동안 밖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미개한 인간들이 어떻게 드레이크의 감각을 속이고 둥지까지 들어왔는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오비데우스는 드레이크들에게 즉시 성직자들을 공격할 것을 명했다.
테온의 용마주 때문에 혼란에 빠졌던 드레이크들은 오비데우스의 강렬한 의지에 반응했다.
‘지상의 인간들은 드레이크 두 마리면 충분할 테고, 문제는 테온 크로우인데…….’
지금 이 순간에도 테온 크로우는 맹렬하게 그를 추격하고 있었다.
인간의 나약한 몸으로 용암까지 따라 들어와 칼을 휘두르다니, 독종도 이런 독종이 없었다.
‘저놈은 마법 방해에 도가 텄다. 평범한 마법으로는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없어.’
오비데우스는 잠깐 고민했다.
그에게는 테온의 마법 방해를 무시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있었지만, 그건 섣불리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용언(龍言)마법을 써야 하나? 이 오비데우스가? 고작 저런 미개한 놈을 물리치기 위해서?’
대륙 공용어가 아닌 용들의 언어. 그것이 바로 용언이다.
용언은 용의 특권이자, 용들이 한때나마 가지고 있었던 신격의 증거다.
용언으로는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 또한, 용언으로 내뱉은 주문은 반드시 실현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완성되는 마법, 그것이 바로 용언마법이었다.
과거, 북부의 겔라구스 왕성에서 테온에게 팔이 잘렸던 키르케네스가 창룡후를 뚫고 공간이동으로 도망칠 수 있었던 것도 용언마법 덕분이었다.
하지만 용들에게는 이렇게 막강한 효력을 가진 용언마법을 남발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으니…….
‘선조들과 아도나이가 맺은 맹약에 따라 용언은 약속과 증명의 언어로 남았다. 용언을 더 이상 마법의 촉매로 사용하면 안 돼.’
지상에서 용언마법을 사용하면 고대의 맹약에 따라 대가를 치러야 한다.
오비데우스가 용언마법을 시전하는 순간, 아도나이는 그에게 인과율에 따른 대가를 강요할 것이고, 오비데우스는 아도나이가 제시한 여러 가지 대가 중 그나마 최선의 선택지를 골라 감당해야 한다.
‘꼴같잖은 아도나이가 우쭐대는 꼴을 봐야겠군. 하지만 당장 죽는 것보다는 낫지.’
오비데우스는 결단을 내렸다. 그는 용언마법으로 치유 마법이 아닌 공격 마법을 택했다.
‘상처를 치유하는 건 테온 크로우를 죽이고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다. 우선 저놈에게 한 방 먹여 줘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아.’
오비데우스가 선택한 마법은 ‘업화의 손아귀’였다. 지옥의 불꽃으로 만든 손을 소환해 상대를 짓이겨 버리는 마법이다.
테온 크로우는 최고 속도로 쫓아오는 중이니, 갑자기 날아든 마법에 그대로 적중당할 터다.
이윽고 오비데우스의 용언마법이 펼쳐졌다. 주문도, 마나 배열도 필요 없었다. 용언으로 시전한 마법은 마법의 모든 제약을 건너뛰고 즉시 완성됐다.
쿠르르르르-!
하지만 이게 웬걸? 테온 크로우는 마치 미래를 내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공중으로 솟구쳐 용암을 벗어나 버렸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오비데우스가 대가를 각오하고 펼친 회심의 용언마법은 하필 직전에 추격을 포기해 버린 테온의 선택 탓에 허무하게 빗나가 버렸다.
하늘이 테온을 돕는 듯, 기막힌 우연이었다.
그 순간 인세의 시간이 멈추고, 오비데우스의 머릿속에 벼락같은 음성이 울렸다.
아도나이의 호통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오비데우스는 자기가 감당해야 할 수많은 대가를 깨달았다.
‘쳇, 역시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것뿐이네.’
과거 키르케네스는 용언마법의 대가로 ‘거체 상태에서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라는 제약을 골랐고, 결국 그 제약 때문에 테온 크로우에 의해 죽음을 맞았다.
키르케네스는 태고의 거체가 가진 압도적인 힘과 거체의 권능인 냉기 숨결을 믿었다.
거체 상태에서는 마법이 없어도 무적일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화경에 도달한 테온을 육체 능력만으로 상대하는 건 최악의 선택이었다.
‘뭘 고르지? 뭘 골라야 그나마 손해를 덜 볼 수 있지?’
고작 한 번의 용언 공간이동을 사용한 대가로 키르케네스가 가진 모든 일반 마법을 통째로 봉인할 만큼, 고대 맹약은 무거운 죗값을 요구했다.
오비데우스는 심사숙고 끝에, 개중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대가를 하나 골랐다.
오비데우스가 어금니를 악물고 이죽거리는 것과 동시에, 아도나이의 음성이 사라지고 인세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오비데우스는 테온과 멀어진 틈에 일반 마법으로 모든 상처를 회복한 뒤, 테온의 뒤를 쫓아 용암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쨌거나 상처는 치유했으니, 네놈이 내 손에 죽는 건 변함이 없다, 테온 크로우!”
허공에 떠오른 오비데우스가 눈을 부라리며 외쳤다. 분노를 넘어 광기가 흐르는 눈이었다.
사파에서 온 용사
위기의 오비데우스
한편, 용암 밖에서 드레이크 두 마리와 맞서게 된 성직자들은 큰 위기에 봉착한 상태였다. 지저용왕이라 불리는 드레이크의 전투력이 과연 대단했기 때문이다.
“물러서요! 깔리면 즉사입니다!”
“드레이크 두 마리와 싸우기에는 화산 내부가 너무 좁아요! 거리를 벌릴 수가 없습니다!”
화산 내부는 꽤 넓었지만, 중앙에 거대한 용암 호수가 자리하고 있어 실제로 사람이 발을 디딜 공간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지상 최대의 몬스터라고 불리는 드레이크가 두 마리나 날뛰고 있으니, 성직자들은 매번 가까스로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빛을 위하여!”
“경배하라!”
테오도르를 위시한 성기사들은 오히려 드레이크의 다리 사이로 뛰어들었다. 어차피 도망칠 곳이 없는 마당이니, 아예 몸뚱이 아래로 파고들어 뱃가죽을 찢어 놓을 요량이었다.
턱!
“이런?!”
드레이크의 복부를 힘차게 올려 벤 테오도르가 경악했다. 그가 자랑하는 거대 광휘의 검이 드레이크의 뱃가죽을 뚫지 못하고 가로막혔다.
“이 점액은 뭐야!”
드레이크의 피부는 비늘이나 가죽 대신 진득한 점액이 두껍게 감싸고 있었다. 끈끈하고 묵직한 점액은 사제들의 신성력이 내뿜는 열기를 차단했고, 광휘의 검으로도 쉽게 통과할 수 없었다.
쾅! 콰쾅!
드레이크가 꼬리를 휘두를 때마다 돌이 깨지고 용암이 사방으로 튀었다.
성직자들은 반격은커녕 피하기에 급급했고, 점점 구석으로 몰려 압사당할 위기에 처했다.
후우웅-!
그 순간, 치열하게 싸우던 성직자들이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사제들의 심장에서 신성력이 마구 솟아오르고, 성기사들의 검에선 이전과 차원이 다른 광휘가 맹렬히 타올랐다.
마치 천사가 지상에 강림한 듯, 신성력과 광휘가 무한대로 충전되는 기분이었다.
“오오오, 이 폭발할 듯한 신성력은 도대체……?!”
“아도나이의 은총입니다! 신의 사랑이 이번에도 우리를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용에 맞서는 성직자들에게 아도나이의 은혜가 닿은 것이 분명해요!”
죽음 직전에 찾아온 기적 같은 상황에 성직자들은 신의 사랑을 떠올렸다.
그들은 끝없이 용솟음치는 신성력과 광휘를 바탕으로 드레이크를 몰아붙였다.
이전과 달리 사제들의 신성력은 드레이크의 점액을 빠르게 불태웠고, 성기사들의 광휘는 드레이크의 피부를 죽죽 갈랐다.
스각-!
성직자들은 오래 걸리지 않아 지저용왕 두 마리의 목을 베는 데 성공했다.
그때가 테온이 용암 밖으로 튀어나온 시점이었고, 상처를 회복한 오비데우스도 곧이어 모습을 드러냈다.
“테온, 신이 우리의 싸움을 돕고 계십니다!”
“뭐, 뭐야, 그 엄청난 빛은?”
“하하! 용과 맞서기 위해 불타는 화산 지대까지 온 우리의 신앙에 아도나이께서 응답하신 거지요!”
성직자들의 빛은 테온도 깜짝 놀랄 만한 위력이었다.
하지만 그 빛은 성직자들의 믿음과 달리 신앙에 대한 응답 따위가 아니었다.
오비데우스가 용언마법을 사용한 대가로 잠시 아도나이의 영향력이 늘어난 것이지만, 그 사실은 오직 오비데우스만 알고 있었다.
* * *
나는 용암 밖으로 뛰쳐나오며 성직자들의 울상을 예상했다.
일격에 용의 목을 베겠다는 계획이 실패한 데다, 밖에서 어슬렁거리던 드레이크 두 마리까지 화살 맞은 멧돼지처럼 날뛰기 시작했으니, 성직자들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게 웬걸? 막상 용암 밖으로 나와 보니 성직자들은 말도 안 되는 신성력과 광휘로 무장한 채 드레이크를 토막 내고 있었다.
진득한 점액으로 둘러싸인 드레이크의 가죽이 광휘의 검에 죽죽 갈라졌고, 눈부신 신성력은 지저용왕의 속살까지 골고루 구워 버렸다.
“테온, 신이 우리의 싸움을 돕고 계십니다!”
“너희들 뭐냐? 왜 이렇게 강해졌어?”
“신의 은총이 샘솟고 있습니다! 아도나이의 힘이 저의 몸속에서 끓어오르고 있어요!”
흥분한 아우레오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외쳤다.
곧이어 오비데우스가 용암을 뚫고 등장했지만, 성직자들은 겁먹지 않고 전투태세를 갖췄다.
이미 드레이크 두 마리는 이승을 하직한 상태였다.
“이 벌레 같은 놈들이!”
잠깐 이성을 찾은 것 같던 오비데우스는 그 광경을 보고 또 꼭지가 돌았다. 부릅뜬 두 눈에서 불똥이 튀고, 목소리에는 끓어오르는 분노가 진득하게 담겨 있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용인의 손에서 백염이 휘몰아쳤다. 응축된 열 덩어리가 포탄처럼 쏘아졌다.
뻐엉!
하지만 그의 공격은 성기사들의 방패에 가로막혔다. 평소라면 감히 받아 낼 수 없는 위력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견딜 수 있었다.
아도나이의 광휘가 검을 넘어 방패까지 찬란하게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 건방진……!”
오비데우스는 부들부들 떨더니 다시 마력을 집중했다. 화산 내부의 용암이 오비데우스를 중심으로 뭉치더니, 이내 거대한 용의 형상을 이루었다.
“태고적 용의 형상이잖아? 거체에 관심 없는 척하더니, 네놈도 키르케네스와 똑같구나!”
나는 그를 도발하며 검기를 연달아 날렸다. 날카로운 검기는 반원을 그리며 날아가 용암 덩어리를 싹둑싹둑 잘랐다.
“크흐흐, 멍청한 놈. 거체로의 회귀는 모든 용이 가진 필생의 염원이다. 하지만 키르케네스처럼 사체에 기어들어 갈 필요는 없지. 나는 나에게 어울리는 형체를 직접 만들었다. 용답게, 마법으로 말이야!”
용암 거체로 변한 오비데우스가 앙천광소를 터뜨리며 몸을 일으켰다.
안력을 돋우어 보니, 용암 거체의 심장부에 웅크리고 있는 오비데우스가 보였다.
‘제기랄, 저길 공격하는 게 아니면 의미가 없겠는데?’
용암 거체의 다른 곳을 공격해 봤자 오비데우스의 본체는 손상이 없었다. 용암 거체는 말 그대로 용의 형상으로 뭉친 용암일 뿐, 진짜 용이 아니었다.
“이놈!”
오비데우스가 용암 꼬리를 휘두르고, 얻어맞은 돌바닥이 쩍쩍 갈라졌다.
내 공격이 먹히지 않는 것과 달리, 오비데우스의 공격은 하나하나가 치명적이었다.
몸체 자체가 용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힘이 실리지 않은 공격도 간과할 수 없다. 허초 하나하나까지 완벽하게 피하거나, 호신강기로 막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