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mpion from Sapa RAW novel - chapter 41
코앞을 스쳐 간 도끼는 바닥을 강타했다. 살기도 없이 다가온 기습이었다. 단단한 돌바닥에 도끼날이 절반이나 파고들 만큼 강력한 일격이었다.
부앙-!
매서운 파공음에 황급히 앞으로 굴렀다. 이번에는 내가 서 있던 난간 위로 검과 철퇴가 매끄럽게 원을 그렸다.
‘이놈들도 강시인가? 기척이 부자연스럽고 관절이 상식 밖으로 움직이니 공격 궤적을 예측하기 힘들어.’
눈앞에 전신 판금 갑옷을 입은 사내 세 명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서 있었다.
사파에서 온 용사
강시술사의 정체
나도 무림에서 칼밥 먹은 지 수십 년이 넘은 몸. 당연히 사각지대에서 오는 상대의 공격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한데 인간이 아닌 강시와 싸우게 되자 자꾸만 후방을 노리는 적의 공격을 놓치고 있었다.
“날 태우고 밖으로 달려!”
갑옷 전사들이 시간을 버는 틈에 놀 주술사는 강시의 등에 올라탔다. 다른 강시와 달리 네발로 달리는 기괴한 강시였다. 한눈에 보아도 달리기에 특화된 도주용 강시였다.
“칫!”
이대로 가면 놓친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단전에서 내공을 뭉텅이로 끌어왔다.
청명한 기운이 전신을 휘돌며 새로운 활력을 가득 불어 넣었다. 육신의 한계를 초월한 힘이 근육에서 뿜어져 나왔다.
“비켜!”
콰앙!
내공을 아낌없이 담아 펼쳐 낸 무공은 맹룡권(猛龍拳). 힘껏 휘두른 주먹에 앞을 가로막은 갑옷 하나가 산산이 부서지며 날아갔다. 강철 갑옷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육신도 없이 갑옷만 움직이는 건가? 이곳의 술법은 봐도 봐도 놀랍군.’
이건 몬스터도 아니고 강시도 아니었다. 쇳덩어리에 불과하니 점혈이나 급소를 노릴 수도 없고, 내가중수법도 소용이 없다.
딱히 상대의 약점이 보이지 않자 이번에도 그냥 다 때려 부수기로 마음먹었다. 찌그러뜨려 고철로 만들어 버리면 앞길을 막지 못하리라.
쾅! 쾅!
연달아 주먹이 휘둘러지고 움직이는 갑옷들은 의외로 무력하게 파괴되었다.
널브러진 갑옷 파편을 건너뛰고 도망치는 놀 주술사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잡았다, 이놈!”
“이, 이거 놓지 못해!”
“어쭈? 말도 하네?”
목덜미를 잡힌 채 악을 쓰는 놀 주술사를 보며 나는 손아귀에 힘을 집중했다.
조금만 더 힘을 쓰면 이놈의 가느다란 목뼈는 닭 모가지처럼 부러질 것이었다.
“흐흐, 네가 모아 둔 내공은 내가 좋은 곳에 쓰도록 하마.”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흡성대법을 시전하려던 순간이었다.
끼익……!
등 뒤에서 들린 쇳소리에 황급히 바닥을 굴렀다. 기습을 피한 뒤 고개를 들자, 산산조각 났던 갑옷들이 멀쩡히 무기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호호, 백날 부숴 봐라! 내가 만든 ‘갑옷 골렘’은 불멸의 힘을 가졌으니까!”
“골렘?”
풀려난 놀 주술사는 움직이는 갑옷의 호위를 받으며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다시 네발 달린 강시의 등에 올라타는 걸 보니, 저 골렘인지 뭔지 하는 갑옷으로 시간을 벌고 본인은 도망치려는 태세였다.
‘이건 시간 싸움이다.’
나는 즉시 골렘들에게 달려들었다. 몇 수가 더 오가고, 골렘을 몇 번이나 부쉈지만, 다시 일어섰다.
‘이대로는 끝이 없다.’
이것도 일종의 기관이라면 동력을 담당하는 부위가 정해져 있을 터.
나는 손을 거두고 차분히 상대의 기를 읽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놀 주술사는 도망치고 있었지만, 이놈들을 등 뒤에 달고 놀 주술사와 싸울 수는 없었다.
‘무기……. 동력원은 갑옷이 아니라 무기야!’
세 골렘이 각각 검과 도끼, 철퇴를 휘둘렀다.
나의 손이 교묘하게 움직이며 상대의 손목을 타고 들어가 손가락을 풀어 버렸다. 물 흐르듯 펼쳐진 금나수였다.
쿵! 쿠쿵!
무기를 빼앗자 움직이는 골렘들은 평범한 갑옷이 되어 바닥에 널브러졌다.
“이럴 수가……!”
골렘를 처치하고 놀 주술사의 뒷덜미를 잡았다. 놈의 입에서 경악에 찬 신음이 흘러나왔다.
“네, 네놈은 누구냐! 날 어쩌려는 거야!”
“어쩌기는? 아까 말해 줬잖아?”
놀 주술사의 목소리에 공포가 어렸다. 놈은 삶에 미련을 느끼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암혈’의 재건이 코앞에 있는데……!”
“너무 억울하게 생각하지는 마. 놀 무리를 조종해 사제를 습격했을 때 네 운명은 정해졌다.”
“……?”
저항을 포기한 놀 주술사를 보며 내공을 일으켰다. 흡성대법의 시간이었다. 이놈의 마력을 빼앗으면 내공이 한층 강해질 터였다.
“잠깐, 잠깐만! 내가 뭘 어쨌다고?”
“인제 와서 발뺌이냐? 뭐, 상관없어. 죄가 없어도 넌 내 손에 죽는다. 내공을 가진 것 자체가 죽어야 할 이유야.”
“나는 사제는커녕 평범한 여행자도 습격한 적이 없다. 평생 쫓겨 다니다가 중간 지대에 도착하고 나서야 겨우 연구실을 꾸린 거야!”
“…….”
살기 위해 거짓말을 내뱉는 것일 수도 있지만, 최소한 내가 느끼기에 지금 이 놀 주술사는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한낱 미물이 거짓말까지 해? 놀 주술사가 똑똑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거 진짜 사람 같네. 허, 참.”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나, 나보고 지금 놀 주술사라고?”
놀 주술사는 버럭 화를 내며 머리를 덮은 넝마를 벗었다.
뒷덜미를 잡혀 데롱데롱 매달려 있는 신세지만, 어떻게든 고개를 돌려 얼굴을 보여 주려 했다.
“내가 어딜 봐서 놀이냐! 젠장, 하다 하다 그딴 천박한 괴물로 오해받다니……!”
놀 주술사, 아니 정체 모를 강시술사의 옆얼굴은 분명 놀이 아니었다.
창백한 피부에 오똑한 코, 야윈 턱선과 피처럼 붉은 머리칼이 인상적이었다.
“너 뭐야?”
내 입에서도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나왔다. 강시술사의 얼굴을 보기 전부터 내심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놀 주술사가 사람 말을 하는 것도 그렇고, 사용하는 마법이나 경호 병력도 들은 것과 너무 달랐다.
놀 주술사가 숨어 있는 장소에 다른 놀은 한 마리도 없고, 난데없이 강시나 움직이는 갑옷 따위가 지키고 있는 것이 영 어울리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어. 내가 찾던 놀 주술사가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고, 얼굴까지 보고 나니 확신할 수 있었다.
“네년은 뭐냐? 왜 이런 광야에 밀실을 숨겨 두고, 섭리를 거스르는 강시를 만들고 있지?”
“그럼 언데드를 도시에서 간판 걸고 연구할까?”
“…….”
당연한 소리였다. 머쓱해진 나는 머릿속으로 천천히 상황을 복기했다. 만약 이 여자가 놀 무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면?
‘우연히 놀 개체 수가 늘어난 시기에 이곳에 자리를 잡은 건가? 뭐, 상관없어. 죄가 있든 없든 어차피 내공을 빼앗아야 하니까.’
이 마녀는 어차피 가야르도 백작에게 죽을 목숨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 내공이라도 내가 먼저 거두어야 했다.
“나는 암혈(Dark blood)의 후예이자 꼭두각시술의 전승자 이자벨라 발렌티누스다! 내게 이런 수모를 주고 무사할 성싶으냐!?”
내가 고민하는 기색을 내비치자 마녀가 오히려 당당하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네 이놈! 보아하니 네놈은 적혈(Red blood)의 직계도 아닌 것 같은데, 하수인 주제에 이토록 무례할 수 있느냐! 지금이라도 사죄하고 고개를 조아린다면 특별히 용서를……. 악!”
기세가 등등해진 마녀가 목소리를 높이다 말고 바닥을 뒹굴었다. 듣다 못한 내가 그녀를 바닥에 메다꽂아 버린 것이다.
“어쨌거나 네가 마법을 쓰는 건 맞잖아?”
“그, 그건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도 넌 사형이다.”
나는 마녀의 목을 쥐고 다시 일으킨 뒤 외양을 찬찬히 살폈다. 마녀가 입은 헐렁한 천 옷 너머로 굴곡진 엉덩이와 비쩍 마른 허리선이 보였다.
지난번 마녀도 그렇고, 이곳 마법사들은 저렇게 펑퍼짐한 옷을 주로 입는 듯했다.
“그나저나 적혈은 뭐고 암혈은 뭐야? 아까부터 피 타령이네.”
“뭐, 뭐라고?”
내가 아우레오에게 대륙 전반의 역사나 문화를 배웠다지만, 그래 봤자 수박 겉핥기 수준이었다.
마녀가 으스대며 밝힌 신분은 내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알아듣질 못하니 소용이 없는 것이다.
“말하는 걸 들어 보니, 넌 적혈이란 놈들을 피해 다니는 것 같은데, 그놈들도 마법사인가?”
이야기를 조합해 보면, 이놈은 ‘암혈’이라는 조직에 속해 있고, ‘적혈’은 이들보다 더 강한 조직 같았다.
만약 암혈과 적혈이 마법사 집단이라면, 내게는 희소식이었다.
‘다수의 마법사를 한 번에 찾을 기회다.’
“대답해라. 말하는 내용에 따라 널 살려 줄 수도 있다.”
“너, 너는 적혈에서 보낸 암살자가 아니었구나. 아니, 심지어 인간……인 것 같은데? 맞나?”
“그럼 내가 인간이지 개구리겠어?”
“모, 목을 놓아주면 대답해 줄게. 넌 우리 일족에 대한 지식이 아예 없는 듯한데, 너 지금 실수하는 거야.”
“개수작 부리지 말고 이 상태로 얘기해.”
“윽!”
목덜미를 쥔 손에 힘을 주자 대번에 신음이 나왔다.
이 마녀도 숲속의 마녀와 마찬가지로 육체적 능력은 형편없었다. 이미 목줄이 내 손안에 있는 이상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죽여 버릴 수 있었다.
‘마법사 집단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면 그야말로 대박이다.’
나는 큰 기대를 품고 마녀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나는 인간이 아니야.”
“뭐?”
“이런 젠장, 이런 것까지 설명해야 돼? 난 고귀한 피의 일족이다. ‘뱀파이어’란 말이야!”
“그게 뭔데, 이년아.”
마녀, 이자벨라 발렌티누스는 한숨을 길게 내쉬고 설명을 시작했다.
그녀는 인간과 다른 종족이며, 피를 통해 힘을 얻고, 가문 단위로 뭉쳐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고 했다.
“이거 완전히 박쥐네? 늑대 인간 다음은 박쥐 인간이야?”
이자벨라의 말에 따르면, 뱀파이어 세계에는 두 개의 큰 파벌이 있었다.
하나는 강력한 피의 권능을 타고나는 적혈, 또 하나는 육체의 권능을 타고나는 암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