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ing Captain RAW novel - chapter (214)
214화 해충 박멸-3
“참으로 이상하단 말이오.”
수백 년을 인류의 적을 상대하는 데 쏟아왔고 그 중 최근 수십 년을 로치를 연구하는 데 바친 인물, 슈타이너가 머리를 한 바퀴 돌리며 의문을 표했다.
“지금까지 내가 연구한 바로는 로치는 절대로 도중에 멈출 생명체가 아니외다.”
“지능이 상승해서 뭔가 다른 걸 노리기 위해 저런 짓을 하는 게 아닐까요?”
에나의 추측에 슈타이너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 로치가 왜 인류를 괴롭혀 왔겠소이까? 더 많은 영토, 더 많은 먹이, 더 많은 번식을 위해서요.”
그런데 정작 승기를 잡아놓고 갑자기 배부른 사자 흉내라니. 이제 와서 공존이랍시고 신사적으로 나오는 것도 아닐 테고.
“……그래서, 진 테일러 사령관. 어떻게 생각하시오?”
“저요?”
AI 무적함대가 전선을 지원하는 걸 화면으로 지켜보던 진이 고개를 들었다.
“황제 폐하께 얘기를 들었소이다. 그대가 사신으로 갔다 온 뒤에 갑자기 로치가 협정을 깼다고 말이오. 로치가 저러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 무얼 하고 왔는지 묻고 싶소.”
진은 황제에게 입 가벼우신 분이라는 도장을 쾅 찍어준 뒤 어깨를 으쓱했다.
“저는 그냥 순수하게 선물만 주고 왔습니다만.”
“거기까진 들었소. 선물이 뭐였소이까?”
“제 전투식량이요. 예전에 로치가 좋아한다 하지 않았습니까.”
“왜 그걸 주자 생각한 것이오?”
“침범을 하긴 했으니까 뭔가 호의적으로 보이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요. 호의를 보이면 우리가 전쟁을 준비할 기간을 늘릴 수 있지 않을까 했죠.”
“호의라…… 자연에서는 호의에 바탕한 거래라는 게 그리 쉽게 성립되는 게 아니라오. 단순한 공생관계라 할지라도 진화과정에서 아주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거쳐 생겨난 것이란 걸 감안해야 하외다.”
슈타이너는 양해를 구하고는 단말기를 조작하여 이것저것을 살펴보았다. 여러 통계들이 홀로그램 화면을 휘리릭 지나갔다.
그는 현재 로치가 점령하여 전투가 벌어지는 행성을 찍은 화면도 몇 번 집적거리며 한참을 여러 곳과 교신해 자료를 모았다.
“원인을 좀 알 것 같소.”
슈타이너가 그래프를 몇 개 확인하더니 큰 화면으로 띄웠다.
“사령관께 미안하지만, 나는 원인을 그 전투식량이라 보고 있소이다. 로치가 쳐들어온 것도, 로치가 전진을 멈춘 것도.”
“예?”
“이걸 보시오. 이 그래프는 전쟁 중에 그대가 지원해 준 전투식량을 어디서 얼마나 미끼로 써먹었는지의 통계고-”
그는 푸른 그래프 뒤에 겹쳐진 붉은 그래프를 가리켰다.
“-이건 현재 로치가 얼마나 몰렸는지를 표시하는 통계외다.”
그 두 그래프는 완벽하게 비례했다.
예전에 전식을 미끼로 많이 써본 행성일수록 로치가 많이 몰렸다.
“그러니까, 고작 전투식량 더 먹어보겠답시고 쳐들어온 거라고요?”
“그렇게 추측하고 있소이다.”
한때 로치와 반씩 나눠먹은 행성에서는 전투식량을 공세 때마다 미끼로 써댔었다. 로치가 그걸 학습하곤 전선을 이전처럼 똑같이 만든 것이란 추론.
로치를 이해하느라 동물행동학을 배워서 대충 떠오르더구려, 하고 슈타이너가 기계팔들을 휘적거렸다.
자리에 모인 모두가 입을 쩍 벌렸다.
“분명 지능 올랐다고 하지 않았나?”
“그만큼 전식이 로치 입맛에 정말 딱 맞았단 거 아닐까? 정신이 나갈 정도로 맛있어서 그만 머리가 훼까닥 돌아버린 거지.”
“말도 안 돼. 그런 게 어딨어?”
팀원들이 떠드는 바람에 회의실은 잠시 소란스러워졌다.
슈타이너가 마른세수를 연거푸 하는 진을 보고 말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론일 뿐이오.”
하지만 통계는 정직하게도 슈타이너의 추론이 맞을 가능성이 높다 주장하고 있었다.
“다만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긴 하오. 위압에 의한 휴전 협정을 수용할 정도로 지능이 있는 로치가, 왜 고작해야 전투식량 하나에 그렇게 반응했냐는 것이오. 더구나 사령관이란 대적이 떡하니 있단 것도 아는데 말이오.”
그는 곤충 종족의 뇌내 알고리즘은 역시 인간이 이해하기 힘들다며 토로했다.
그 이유를 진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하이브 마인드가 된 영향일지도 모르지.’
승천하지 못한 자들의 개입이 뭔가 로치의 행동원리에 변화를 주었고, 거기에 전투식량이 큰 파문을 만들었다는 것.
네브라가 슬쩍 끼어들었다.
“함장. 그럼 그거 주면 적당히 물러가지 않을까?”
“조 단위 벌레들 위장을 어느 세월에 다 채우게?”
“아니 그게 아니라, 함장이 준 전투식량 한 봉지 그거 가지고 이 난리 친 거면 배고파서 그런 게 아니라 단순히 더 맛보고 싶어서 온 거란 얘기로 들리는데? 그리고 하이브 마인드인가 뭔가 있다며. 그러니까 하나한테만 줘도 다들 좋아라 하지 않을까?”
“하이브 마인드?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아 박사님. 그건요……”
에나가 슈타이너에게 진에게서 들은 얘기를 해주었다.
“의식의 합일이라……. 그런 추론을 어떻게 해내게 된 건지는 몰라도, 그 말대로라면 작금의 상황이 더 잘 이해되는구려. 비록 비과학적이지만 로치의 급격한 변화도 있으니 마냥 불가능하지는 않을 법한 말이기도 하오.”
“그래서 말인데요 박사님. 저희가 예전에 만든 그 변이 유전자에 기반한 세포자살 유도 유전자 있잖아요.”
“그걸 사용하려는 생각이오? 헌데, 그건 실질적으로 실패라 판명나지 않았소?”
“그때는 그랬죠. 하지만…… 로치가 모든 유전자를 공유한다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말이 달라지오.”
슈타이너는 말도 안 된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로치 생체함선들이 여러 전선에 걸쳐서 동시에 동일한 형질을 발현한다는 보고는 그도 알고 있는 바였다.
“이럴 때는 말로 떠드는 것보단 응당 직접 시험해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오.”
***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우주.
날선 듯 하지만 묘하게 일정 선을 넘지 않는 로치 떼를 향해 인류의 함대가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로치는 어디까지나 인류 영토 깊숙하게 들어가지를 않을 뿐이지 현재 형성된 전선을 방어하는 데는 진심이라 그리 녹록치 않았다.
진화할 대로 진화한 로치 함대는 흉악한 이빨과 발톱을 번들거리며 인류의 인류 함대의 공격을 번번이 무산시키며 반격을 가했다.
“지원군은 언제 온다 하냐!”
“여유가 없답니다!”
“빌어먹을!”
오늘의 공세도 또 한낱 우주 먼지가 되는가 하는 절망도 잠시. 저 멀리서부터 온 교신에 함대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무슨 일입니까?”
“진 테일러가 잠시 여기를 맡아준다고 한다. 얼른 부대 뒤로 빼서 후퇴 준비해. 후방에 연락해서 우리 대체할 부대도 꾸리라 하고!”
소방수의 도움의 손길이 뻗쳐온 것이다.
사령관에게 연락이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저 멀리서 워프를 타고 팀 엔터프라이즈의 상징, 엔터프라이즈 호를 필두로 무적함대가 도착했다.
“왔다. 전 함대 후퇴하라!”
전선을 지키고 있던 함대는 재정비를 위해 얼른 후퇴해 저 멀리 사라져 갔다.
새로이 나타난 함선의 독특한 외형에 로치들은 얼른 선수를 돌려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바로 갈게요!]앤젤라가 다른 로치보다 아주 미세하게 빨리 후퇴를 시작한 개체를 잡아냈다.
사냥을 위해 물고기 떼를 헤집는 청새치처럼, 화살촉 같은 외형의 구축함이 빠르게 발진했다. 그 날카로운 작살의 끝은 이 전역의 로치 함대를 이끌고 있는 지휘 개체를 향해 있었다.
지휘관을 보호하기 위해 작은 놈들이 엔터프라이즈 호에 무더기로 달라붙었다.
마치 말벌에 달려드는 꿀벌 떼처럼, 무적함대에 죽는 것보다 훨씬 많은 개체를 붙여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그 사이 무적함선이 아닌 함선을 공격해 인류에게 후퇴를 강요하는 전술이었다.
그러나 여타 무적함선과는 달리, 엔터프라이즈 호는 전장이 훨씬 긴 중형급 함선.
새까맣게 달라붙어 질량이 무거워졌어도 속도가 쉬이 느려지지 않았다.
함선의 레일건 포구가 번쩍였다. 섬광과 함께 전면에 있던 생체 함선 수십 마리가 일직선으로 터져나갔으나, 아쉽게도 그 끝은 지휘개체에게 닿지 못했다.
그렇게 초광속 항해 준비를 마친 개체가 도망가려는데, 엔터프라이즈 호에서 무언가가 살포되었다.
그 무언가를 본 로치들이 일제히 멈칫거렸다.
우주공간에 우수수 뿌려진 갈색 봉투들.
로치가 침공을 결심한 이유가 거기 있었다.
생체함선들이 체구에 비해 매우 조그마한 전식들 하나 먹어보겠다고 우르르 달려들려 서로 부대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상위 개체의 명령보다도 저걸 포식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방금 전까지 도망치려던 지휘관 개체조차도 ‘나도, 나도 먹을 거야!’하면서 달려들고 있었다.
“효과가 죽여주네.”
진은 휘파람을 불면서 반쯤 로치가 떨어져나간 엔터프라이즈 호를 움직였다.
중력 올가미가 선수에서 발사되어 생체함대 뒤편에서 뒤늦게 전식에 달려들려는 지휘관 개체를 붙잡았다.
“올가미 끊어지기 전에 얼른 집어넣어! 빨리빨리빨리!”
지휘관이 포획되자 그제야 생체함선들이 구출하겠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함선의 격납고가 입을 벌려 지휘 개체를 집어삼키는 게 더 빨랐다.
투다다다다!!
콰콰쾅!
격납고에 설치된 포탑들이 생체함선이 내동댕이쳐지자마자 제압을 위해 사격을 가했다.
연약한 곳을 파고는 탄에 체액이 튀었다. 굵은 광선에 거대한 탑 같은 다리가 잘려나가고 갑피에 고랑이 패였다. 갑피에 도탄된 탄환과 포탄 파편이 사방을 날아다녔다.
내부에는 로치가 없었다.
유사시 도주를 위해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려는 것이었다.
지휘 개체의 신체가 반쯤 박살나 움직임이 잦아들자, 벽의 문이 열리고 팀원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으 징그러.”
“전에 보니까 파충류처럼 생겨먹은 놈도 있더만 차라리 그렇게 변하지. 이건 벌레 그대로야 왜.”
팀원들은 겹눈 하나하나에 검은 갑옷을 입은 자신들의 상이 수없이 맺힌 걸 보고 진저리쳤다.
“끄극, 너. 네 다리.”
“오 말한다.”
니베아가 꼼짝도 못하는 생체함선을 툭툭 건드리며 신기해했다. 나노머신 코팅 갑옷을 입게 된 후부터 점점 간이 커지고 있는 대표격이 바로 그였다.
진은 정말로 의식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했다.
‘맞네.’
열어본 정보창의 독심 항목에는 브레인스토밍이 진행되는 로치 머릿속보다도 빠르게 수많은 글자들이 빈칸 하나 없이 빼곡하게 주르르륵 갱신되고 있었다.
글씨가 너무 많고 움직이는 속도가 잔상이 보일 정도라 도저히 생각을 읽거나 할 수가 없었다.
“대부족장. 얘기 좀 하지.”
진이 확인 차 물었다. 옆에서 에나가 앰플을 준비하는 자잘한 쇳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우리다. 우리는 여섯 다리다. 대부족장이며 족장이다. 우리는 하나다.”
딴소리를 하면서도 대부족장인 걸 부정하진 않는 걸 보면 대부족장에게도 말이 닿고 있긴 한 모양.
“왜 평화협정을 어기고 쳐들어왔지? 내 선물이 맘에 들지 않았나?”
“선물! 선물! 그것 때문이다!”
아. 정말로 전식 때문이었나.
진은 이마를 짚었다. 단단한 헬멧의 감촉이 갑옷 너머로 느껴졌다.
“더 다오! 더! 더! 먹고 싶다! 캬아악!”
[신체 말단을 빠르게 재생하고 있었네요.]생체함선 지휘관 개체는 꿈틀거리다가 잘려나간 다리와 더듬이 등이 재생되고 있단 걸 들켜서 주변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이야, 진짜 정상이 아닌데?”
“진짜로 그거 먹고 머리가 돌았나? 뭐 이상한 거 넣은 건 아니겠지?”
“흥미롭네요오.”
잡담을 하면서도 무기를 겨눈 채 경계를 늦추지 않는 팀원들의 얘기를 들으며 진은 말을 이어 나갔다.
“고작 그거 가지고 쳐들어왔다고? 차라리 내가 너희 영토로 간 것처럼 사신을 보내서 달라고 하면 될 것을.”
“그게 그 먹이를 다량 확보할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함장님.”
어느새 에나가 옆에 다가와 있었다. 큼직한 금속 주사기를 손에 든 채로. 의체 수리에 쓰이는 거라 사람 팔뚝만한 흉악한 물건이었다.
“……조금만 더 얘기하고.”
진은 에나에게 대기하라 했다.
원래는 지상군에서 아무 개체나 잡아서 실험을 해보려 했으나, 우려할 점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로치의 유전자 공유가 의식적으로 이뤄지는 거라면, 하위 개체에게는 해도 소용없지 않나요?
로치는 상위 개체가 여럿을 통솔하는 형식이다. 하위 개체가 가진 치명적인 요소를 종족 전체가 공유할 것 같진 않았다.
-되도록 한 번에 끝내는 걸 추천하오. 로치가 괴사 유전자를 감지하고 대응책을 만들어낼 수도 있소이다. 물론 다른 방식으로 또 괴사 유전자를 만들 순 있지만, 로치도 두 번째는 더 쉽게 대처할 수 있지 않겠소?
때문에 변수를 줄이기 위하여 이렇게 지휘관 개체를 굳이 포획한 것이다.
‘대화가 되는 걸 보면 이성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면……’
하지만 진은 이보다 좀 더 확실한 방법을 원했다.
“내가 전식을 대량으로 공급해 주지. 그러니 다시 한 번 만나서 얘기하는 게 어때?”
대부족장에게 앰플을 직접 꽂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