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94)
허공에 붕 뜬 동우엽 아래로 배가 지나갔다.
그리고 배에서 누군가 훌쩍 뛰어올라 동우엽을 낚아채 다시 배로 돌아갔다.
* * *
동우엽은 벽태산 앞에 무릎 꿇은 채 고개를 조아렸다.
상대는 자신이 뭘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무릎을 꿇을 수 있었다.
벽태산은 동우엽을 가만히 쳐다봤다.
“제법인데?”
벽태산의 말에 동우엽이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제법이라고? 아까 그 꼴을 당했는데? 지금 누굴 놀리는 건가?’
솔직히 아까의 일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동우엽은 한 번의 도격으로 이 배와 같은 크기의 쇳덩이도 쪼갤 자신이 있었다.
그의 도격은 그 정도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한데 이 배에는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게다가 그 한 방의 충격으로 정신까지 잃었다.
그나마 내상을 입지 않은 걸로 체면치레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굴욕감이 줄어드는 건 아니었다.
지금 벽태산의 배는 수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떠 있었다.
수채 쪽은 난리가 났다.
두 차례에 걸쳐 돌진해 크게 휘젓고 나왔기 때문에 멀쩡한 부분이 없었다.
수채에 정박해 있던 배들도 전부 부서졌다.
아마 다시 복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벽태산은 동우엽에게서 시선을 떼고 화옥을 쳐다봤다.
“수채는 알아서 정리해라.”
화옥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미 하오문도들이 배를 타고 이쪽으로 오고 있는 중이었다.
언제 도착할지는 아직 가늠할 수 없지만, 오늘 중으로 하오문과 비천단이 함께 여기로 올 것이다.
화옥은 출발하기도 전에 하오문에 지시를 내렸다.
벽태산의 배가 출발하면 곧바로 따라오라고 말이다.
하지만 워낙 속도 차이가 나니 올 때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벽태산은 다시 동우엽을 쳐다봤다.
동우엽은 억지로 웃으며 엎드린 채 벽태산을 올려다봤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전 아는 게 거의 없습니다.”
동우엽은 벽태산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전 그저 애들 좀 상납하고 떡고물이나 받아먹는 놈에 불과합니다.”
벽태산은 그런 동우엽을 보며 씨익 웃었다.
동우엽도 벽태산의 미소를 보며 히죽 웃었다. 뭔가 자신의 말이 조금이라도 통하긴 했나보다 하는 마음에서 나온 웃음이었다.
벽태산은 동우엽의 머리를 꽉 쥐었다.
동우엽의 머리가 제법 커서 손으로 쥐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에도 벽태산은 그걸 꽉 움켜쥐었다.
“끄아아악!”
머리가 부서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벽태산이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동우엽을 들어 올렸다.
“으아아악! 으악! 으아악!”
동우엽은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두려움의 비중이 더 컸다. 이러다가 머리가 수박처럼 퍽 부서질 것만 같았다.
벽태산은 그렇게 동우엽을 든 채 선실로 들어갔다.
“끄으아아아아악!”
방금 하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처절한 비명이 선실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 비명에 갑판에 나와 있던 모든 사람들이 몸을 한 차례 흠칫 떨었다.
혼백을 울리는 듯한 처절한 비명이었다.
비명이 어찌나 큰지 아마 수채에서도 그걸 들은 모양이었다.
수적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선실에서 쏟아져 나오는 비명은 끊이지가 않았다.
“제 경험상······ 최소 한 시진 정도는 걸릴 것 같은데, 그 사이에 수채나 정리하는 게 어떨까요?”
화옥이 일행을 둘러보며 물었다.
다들 좋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서서 저 비명을 듣고 있느니, 차라리 수적들을 박살 내는 편이 나았다.
“배를 움직이겠습니다.”
천경완이 나서서 배 뒤쪽에 장력을 뿜어냈다.
배가 수채를 향해 미끄러지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벽태산은 동우엽의 혼백에서 뽑아낸 정보를 화옥에게 넘겼다.
워낙 정리되지 않았기에 그걸 정리하는 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니었지만, 한두 번 겪어본 일이 아니기에 화옥은 익숙하게 그것을 기록했다.
이번 일이 끝나고 잘 정리해서 기존의 정보를 보강하는 데 쓰면 될 듯했다.
벽태산이 혼백을 뽑아 태우는 동안 나머지 일행이 수채를 잘 정리했기에 나중에 도착한 하오문도와 비천단원은 할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저 재물을 정리하고,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잔당을 처리하는 것이 다였다.
하오문도들이 수채를 정리하는 걸 배 위에서 지켜보던 벽태산이 일행에게 말했다.
“슬슬 가자. 두 번째는 진짜 남창에 있다고 했지?”
“예. 맞습니다.”
장사에서 동쪽으로 쭉 가면 남창이 있고, 그 남창에서 동북쪽으로 더 가야 포양호가 나온다.
“남창에는 정리할 목표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큰 도시이니 당연했다. 또한 남창은 오대세가 중 하나인 황보세가가 있는 곳 아닌가.
무명이 그런 곳을 가만히 내버려 뒀을 리 없다.
“잘됐군. 일이 빨리 끝나겠구나.”
다들 공감하는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이제 슬슬 이쪽의 일을 마무리 하고 무한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집에 간다고 해서 더 편할 건 없지만, 그래도 집에 있어야 마음이 편한 법이다.
벽태산은 가볍게 기운을 내뿜어 배를 촘촘히 감쌌다.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바로 가속했다.
물을 가르고 가는 건지 얼음 위에서 미끄러지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허공에 떠서 날아가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게 나아갔다.
수채로 달려들 때처럼 빠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웬만한 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벽태산의 배는 그렇게 남창이 있는 쪽으로 쭉쭉 나아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 몇 척의 배가 보였다.
그걸 본 화옥이 눈을 빛냈다.
“저 배들, 저대로 가면 아까 그 수채에 도착할 것 같네요.”
화옥의 말에 다들 배를 확인했다. 그리고 거리와 방향을 가늠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데 저 깃발 황보세가 것 아닌가?”
“맞습니다. 황보세가네요.”
“그럼 황보세가가 수채 토벌하러 가는 중인 건가?”
“아무래도 그런 거 같지?”
“그럼 우리 애들이랑 만나는 거 아냐? 그래도 되나?”
“뭐, 안 될 건 없지만······ 그래도 안 만나는 게 좋지 않나?”
“어? 이쪽으로 방향 틀었는데?”
일행들의 얘기에 벽태산이 고개를 돌려 그쪽을 쳐다봤다.
총 다섯 척의 배가 서서히 방향을 틀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벽태산은 살짝 속도를 줄였다.
그리고 배가 적당히 가까워졌을 때, 속도를 조금씩 올렸다.
황보세가의 배들도 속도를 높였다.
벽태산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배가 더 빨라졌다.
“어? 저쪽에서 좀 당황한 모양인데?”
천추신의가 신이 나서 말했다.
선미에 붙어서 내공까지 써가며 황보세가의 배를 확인하고 있었다.
“누군가 선미에 바짝 붙었습니다. 소리라도 칠 모양인데요?”
천추신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벽태산이 배의 속도를 확 높였다.
순식간에 황보세가의 배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까지 멀어졌다.
벽태산은 그 속도를 유지하며 포양호에서 남창으로 이어지는 뱃길로 들어섰다.
그렇게 남창에 도착해 선착장에 배를 댄 벽태산 일행은 곧장 남창 안쪽으로 들어갔다.
물론 배는 처분했다.
그리고 한참 후, 황보세가의 배들이 그곳에 도착했다.
끝
황보엽은 인상을 쓰며 배에서 내렸다.
사실 오늘 이렇게 나선 것은 확실한 정보 하나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황보세가와 관계된 상선을 지속적으로 건드리던 수적 놈들의 근거지에 대한 제보를 받았다.
그래서 그곳을 털러 가는 중이었다.
한데 가던 도중 묘하게 신경을 건드리던 배를 발견했다.
어차피 수채가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당시의 감을 믿어 보기로 한 황보엽은 곧장 그 배를 쫓아가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그 배가 다른 방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황보엽은 자신의 감이 맞았다는 생각에 더 적극적으로 배를 쫓았다.
하지만 아무리 속도를 내도 그 배와의 거리는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갈수록 아주 조금씩 멀어졌다.
결국 황보엽은 참지 못하고 나섰다. 소리를 질러 일단 멈추게 할 생각이었다.
황보세가라는 이름을 내세우면 뭔가 반응이라도 있을 거라 여겼다.
한데 막 그러려는 순간 어떻게 알았는지 갑자기 속도가 빨라졌다.
쭉쭉 나아가는데, 도저히 같은 배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결국 닭 쫓던 개가 되어 어느새 사라져 버린 배의 흔적만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놓친 건 놓친 거고, 그들이 할 일은 끝나지 않았기에 수채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리고 수채에 도착한 뒤에는 더 망연자실했다.
수채가 이미 털린 것이다.
누군가 먼저 수채에 와서 아주 박살을 내 버렸다. 근처에 떠다니는 잔해가 아니라면 이곳에 거대한 수채가 있었다는 사실을 누구도 알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오늘 겪은 일은 떠올린 황보엽은 발로 바닥을 콱 찍었다.
“젠장!”
농락당한 기분이었다. 아니, 기분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했다.
“그 배만 쫓아가지 않았어도.”
황보엽은 나직이 중얼거리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게 하자고 한 것은 자신이었다. 이런 일을 계속 상기시켜서 좋을 게 없었다.
황보엽은 배에서 내리는 가문의 무사들을 힐끗 쳐다봤다.
다들 무표정했지만, 황보엽이 보기에는 불만을 감춘 것만 같았다.
‘이래서야 입지가 줄어들게 생겼어.’
현재 황보세가는 후계자 경쟁이 막 시작되었다.
초반에 좋은 입지를 다져 쭉 치고 나갈 계획이었다.
이번 수채 토벌만 성공했어도 분명히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황보엽을 제외한 나머지 형제들은 아직 뭘 어떻게 할지 계획조차 없었으니까.
만일 이번 일을 성공했다면, 그들을 조급하게 만들어 실수를 유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정말 아까웠다.
황보엽은 그런 생각을 하며 선착장에 있는 배들을 아무생각 없이 슥 둘러봤다.
한데 그러다가 어느 한 배에 시선이 닿자, 눈이 커다래졌다.
“저 배야!”
황보엽의 외침에 황보세가 무사들이 그에게 다가갔다.
“공자님, 무슨 일이십니까.”
황보엽은 손가락을 들어 배를 가리켰다.
“아까 우리를 보도 도망친 배가 바로 저거라고!”
무사들은 그제야 배를 확인했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것 같긴 한데, 솔직히 확신할 수는 없었다.
“확실해. 내 눈썰미를 못 믿겠다는 건가? 얼른 가서 배 주인이 누구인지, 아까 어떤 놈들이 저 배를 탔는지 알아봐. 어서!”
황보세가 무사들이 배를 향해 우르르 달려갔다.
그리고 누군가 배를 대여했고, 오늘 반납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누가 배를 빌렸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일행이 대부분 여인이었다는 정보를 얻어냈다.
무사들의 보고를 받은 황보엽이 눈을 번득였다.
“열 명이 넘는 여자를 데리고 다니는 기생오라비 같은 놈이라 이거지?”
이곳은 남창이다. 그리고 남창에서 황보세가가 찾고자 하는 사람을 못 찾을 일은 없다.
* * *
“남창에 있는 무명의 거점은 총 두 곳입니다.”
물론 그건 벽태산과 화옥이 파악한 곳만 그렇다는 뜻이다. 어쩌면 더 많은 거점이 있을 수도 있다.
아니, 분명히 더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번에 벽태산이 한 번 휘젓고 나면 더욱 몸을 움츠릴 것이다.
“그리고 남창에 자리 잡은 무명의 고수는 모두 여섯 명입니다.”
“여섯 명이나 있었나? 많기도 하군.”
“아무래도 황보세가가 있는 곳이니 신경을 쓴 모양입니다.”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무명이라는 놈들, 생각보다 규모가 크고 가진 힘이 대단하다.
어쩌면 무림맹이나 흑련보다 더 강력할지도 모른다.
‘아니, 더 강해. 어쩌면 그 둘을 합한 것보다도 더.’
아직 드러난 것만으로는 그렇게까지 판단할 근거가 없지만, 벽태산의 감은 왠지 그랬다.
“순서를 어떻게 정할까요?”
화옥의 물음에 벽태산이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일일이 찾아다니려니 귀찮구나. 한꺼번에 모을 방법은 없느냐.”
여섯이나 되는 고수와 두 군데 거점을 한꺼번에 상대한다는 발상은 벽태산이 아니라면 감히 하기 어렵다.
사실 무명의 거점 한 군데만 해도 얼마나 대단한 것들이 있을지 아직 제대로 가늠하지조차 못한 상황이다.
화옥이 얼른 대답하지 못하자, 벽태산이 또 물었다.
“머리 쓰는 놈들은 잘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느냐?”
화옥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했다.
“예. 수시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대단합니다. 그동안 저희가 겪었던 어려움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결하고 금월상단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화옥은 보고를 받을 때마다 매번 놀랐다.
현재 장사에는 결정적인 무력이 금월상단과 무명에 비해 부족했다.
검귀가 남아 있긴 하지만, 검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만일 검귀가 벽태산 같은 사람이었다면 얘기가 달라졌겠지만, 그렇지는 않으니까.
화옥은 조심스럽게 의견 하나를 냈다.
“공자님, 황보세가에 무명에 대한 정보를 흘리는 건 어떻습니까.”
벽태산이 그 말을 듣고는 걸음을 멈추고 턱을 쓰다듬었다.
“흐음.”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았다.
아예 이참에 무명에 대해 아는 정보를 대부분 오대세가나 무림맹, 흑련에 흘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호무련 쪽은 이미 그렇게 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