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70)
< 음악천재를 위하여 – 270화 >
찰칵─!
카메라셔터 소리는 사람을 왠지 모르게 긴장되게 만든다. 물론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지난 삶 국회의원을 준비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진을 찍었던가.
물욕과 권력으로 얼룩졌던 삶이었다. 정계입문을 위해 남들 앞에서 가식적인 미소를 짓는 일도 많았다. 전통시장을 찾아 육천 원짜리 국밥 한 그릇을 먹으며 시장 상인들을 위로할 때면 항상 사진 기사들이 뒤따랐다.
“기호 1번 강현, 고인 물 위에 새로운 청정수를─!”
미리 준비해두었던 이가 구호를 외치자 전통 시장 안은 금세 내 이름을 부르짖는 연호로 가득찼다. 나를 몰랐던 사람들 또한 이따금 고개를 슬쩍 내밀며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럴 때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한 평생 고된 일을 하고 살았던 시장 상인들의 손을 있는 감싸 안 듯 마주잡았다. 시장을 떠나 자동차에 오를 때면 곧장 보좌관이 물티슈를 건넨다.
염병.
당시의 삼선 의원이었던 장인이 그러했듯 나는 가면을 쓰는 일에는 익숙했다. 하지만 쓰다만 물티슈가 차창 밖으로 버려지듯 내 인생 또한 그렇게 버려졌다.
장인과 아내의 얼굴에는 미안한 기색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나를 버리는 것은 병든 애완동물을 유기하는 것과 다름없을 터였다.
그래서였을까.
-어려운 이웃과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는 청년들을 위해 강유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제 작은 소망이 있다면 제가 국민 여러분들께 받은 사랑만큼이나 제 작은 발걸음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신이 다시 한 번 주신 기회를 업신여기지 않았다. 물욕과 권력을 쫓았던 삶은 버린지 오래였다. 불구덩시 속에 내 한 몸을 던지는 선교자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후회 없는 삶을 살겠노라 다짐했다.
성공을 쫓았던 지난 삶의 얼룩진 그림자는 지워버린 채 내가 가진 재능으로 다른 이들을 도와주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자연스레 성공과 행복이 뒤따랐다. 마치 이것이 운명이라는 것처럼.
“여보, 나 임신 했어─!”
그때의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사랑하는 여인의 뱃속에서 태동하던 작은 생명의 움직임을 말이다.
유하는 떨리는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에게 고마웠다. 내 삶을 변하게 해준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들은 작은 사진 한 장을 신줏단지처럼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초음파 사진 속에 보이는 아이의 얼굴에 코는 누구를 닮았다며 입술이 너무 앙증맞다며 연로하신 할아버지들이 마치 어린 아이처럼 행복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부모님은 어른이 된 나를 감싸 안아주시며 어렸을 적 내가 입었던 배냇저고리를 선물해주었다. 어떻게 이걸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하지만 아이를 가져보니 알 수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마음이 어땠는지를.
-현재 역사로 정동진행 기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아이를 가진 유하는 다행이게도 별다른 입덧은 없어 활동하기는 조금 수월해했다. 그녀는 그간 나와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평범한 연인이라면 한 번쯤 해볼 만한 기차여행이었다. 경적소리와 함께 정동진행 기차가 역사로 들어오고 있었다. 다가오는 기차의 머리맡을 보며 유하는 내 손을 있는 힘껏 잡았다.
그녀의 심장소리와 뱃속에 자리한 아이의 태동이 손끝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행복한 미소를 짓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생각했다. 종착지를 향해 달리는 기차만큼이나 얼마나 많은 인생의 역사를 거치고 거쳐 나는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일까.
***
“임자, 나 왔소.”
할아버지와 함께 선산을 찾았다. 내리쬐는 풍광 아래 깨끗한 비석은 물론이고 잡초 한 점 자라나지 않은 산소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따뜻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여름날의 햇살을 받아 자라난 노란 원추리꽃과 양지꽃은 언제나 그랬듯이 할아버지를 반겨주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주름진 손길로 무덤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임자가 좋아하는 호박전 해오느라 좀 늦었네, 많이 기다렸지?”
할아버지는 이른 새벽부터 손수 만든 호박전을 정성스럽게 접시에 담아 할머니가 바라보시는 상석 위에 올려두었다. 호박전 옆에는 할머니가 생전 좋아하셨다던 흰 우유도 함께였다.
할아버지는 잠시 동안 말없이 할머니의 무덤을 바라보셨다. 주름진 눈가에는 지난날을 회상하는 듯 추억에 젖은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다.
“임자, 내 이름의 가운데 글자와 자네 이름의 마지막 글자를 따서 만든 동주(垌州)는 우리 강서방이 아주 잘 보살펴주고 있다네. 요즘 동주 화학이 어찌나 유명해졌는지 하늘에 있는 자네도 잘 보고 있겠지. 허나 젊었을 적 임자에게 못해준 것이 많이 이 늙은이의 마음이 그리 편치 않구려. 이 크나큰 행복을 나만 누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일세.”
할아버지가 동주를 그토록 아끼는 까닭은 간단했다. 할아버지에게 있어서 동주는 할머니가 남기신 몇 안 되는 유품 중 하나였으리라.
선산에 자리한 소나무 사이로 솔바람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쫄쫄쫄 흐르는 계곡물 소리와 새소리는 그 어느 악기보다도 청아하게 할머니의 편안한 잠자리를 조성해 주고 있었다.
“임자도 현이를 하늘에서 보고 있겠지? 우리 손주 녀석이 어찌나 잘 컸는지 이제는 장가를 가겠다고 하더군.”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대화를 하듯 정겨운 목소리로 무덤가를 매만졌다.
“현아, 이번에 강유 재단을 설립한다고?”
“예, 할아버지.”
“네 성과 유하의 이름을 딴 것이구나. 임자, 이보게. 우리 손주 녀석이 우리와 똑 닮지 않았나. 임자가 살아있었다면 기특하다고 엉덩이를 두드려줬을 텐데 말이야.”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강현은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것만 같았다. 항상 거인 같던 할아버지의 등이 지금만큼은 한 여인의 남편으로서 그간 얼마나 많은 책임감과 무게를 등에 짊어지고 있었는지 여실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현아, 할애비 소원은 우리 손주가 행복하게 사는 거란다. 임자도 나와 생각이 같지?”
강현이 눈물을 흘리자 할아버지가 놀라며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항상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조숙했던 손주였다. 매번 어른 같았던 녀석이 어린 아이처럼 눈물을 흘리자 할아버지가 따뜻한 손길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강현은 지난 삶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의 물결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할아버지가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 손주 참 잘 컸지?”
그 순간 푸른색의 나비가 화답이라도 하듯 날아와 무덤가를 맴돌았다.
*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세기의 결혼식이 열립니다. 주인공은 바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마에스트로인 강현 씨와 제일그룹 손장원 회장의 손녀인 손유하 씨입니다.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국내 정재계 인사들은 물론이고 국외에 클래식계의 거장들이 대한민국으로 속속들이 입국하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의 이름난 거장들의 입국에 대한민국 외교부도 바빠졌습니다.
더군다나 해외의 초거대 기업이라 알려진 바바라 그룹의 탄넨바움 회장을 비롯한 수많은 거물들까지도 전세기를 타고 대한민국으로 날아오고 있다는 속보입니다.]
앵커의 목소리에는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인천공항에는 수많은 기자들과 함께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경호 인력이 배치되어 있었다.
난리가 난 것은 대한민국 정부 또한 마찬가지였다. 세기의 결혼식이라는 명칭이 어울리게 외신에서도 보도를 나온 것은 물론이고 세계 각국의 거물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여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막 영원한 마에스트로 구스타프와 여제 카라스가 함께 입국했습니다. 그 뒤를 따라 런던 심포니의 수석 지휘자 스펜서와 베를린 필을 진두지휘하는 베를린의 사자 유리도 함께입니다.정말 진귀한 광경입니다. 클래식계에서는 보기 좀처럼 힘들다는 바이올리니스트 거장들의 얼굴도 심심찮게 보입니다. 이웃나라 일본의 거장 히로세를 비롯해 각국의 거장들이 미소를 지으며 대한민국 땅을 밟았습니다.]
이토록 많은 클래식게의 거장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대부분이 일 년 동안의 스케줄이 빼곡하게 예정된 사람들이 아닌가.
과거 카네기홀에서 비르투오소의 연주나 마에스트로의 지휘가 있을 때면 모이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분명 미래에도 오늘 이 날이 두고두고 회자 될 것이다. 클래식계의 역사를 아로새길 장면을 보며 앵커는 부연했다.
[강현 씨와 손유하 씨의 결혼을 두고 영국의 영원한 왕세자 새뮤얼 가드너 또한 방한하겠다고 알렸습니다. 수많은 연인이 결혼식을 올리지만 오늘만큼 세계가 들썩이는 날은 처음일 것입니다.제일그룹 측에서는 국민들을 위한 기부와 자선행사를 향후 오년간 계속해서 열기로 알렸습니다. 국민들 또한 강현 씨와 손유하 씨의 결혼을 두고 마치 국가적인 축제인 것처럼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강현은 이미 대한민국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것에 일등공신을 한 인물이었다. 하물며 강현과 손유하의 어렸을 적부터 이어진 러브스토리가 공개되자 숱한 사람들이 환호했다.
더군다나 두 사람의 숨겨진 기부내역이 공개됨에 따라 두 사람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 강현이 여태껏 국위선양 했던 덕분일까. 두 사람을 향한 국민들의 행복과 축하의 인사는 과장을 더하자면 2002 월드컵 못지 않았다.
[지금 막 바바라 그룹의 바바라 탄넨바움 회장이 입국했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미국 백악과느이 대통령마저도 만나기 힘든 인물이라고 알려진 바바라 탄넨바움 회장이 경호인력을 최소화한 채 대한민국을 찾았습니다. 그의 일정은 강현 씨와 손유하 씨의 결혼식이 전부라고 알려져 있습니다.]앵커는 정신이 없는 모양새였다. 인천공항을 실시간으로 비쳐지는 화면을 보며 호명되는 유명 인사들은 세계적으로도 보기 힘든 거물들의 향연이었다.
타임지에서나 볼법한 인물들이 대한민국을 앞다투어 찾은 것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강현과 손유하의 결혼을 축하한다는 멘트를 기자들에게 직접 할 정도로 두 사람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마지막으로 영국의 영원한 왕세자 새뮤얼 가드너까지 등장하자 앵커가 혼이 빠진 모습으로 멘트를 읊었다.
*
스피오 스피오 맴맴─!
한 여름날의 찬란한 햇빛과 함께,
“오늘 사회를 맡게 된 신랑 강현 군의 친구 김대우 입니다. 먼저 강현 군과 손유하 양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먼 길을 찾아와주신 하객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세계 각국에서 유명하신 분들이 많이 찾아와주셔서 사회자인 저 또한 떨리는 감정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객석이 환하게 빛난다는 뜻이겠지요. 하객 여러분들께서는 신랑 신부의 입장에 맞춰 뜨거운 박수와 열렬한 환호를 보내주시면 감사하곘습니다.”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사회자로는 친구 김대우가 자리를 빛내주었다. 다소 떨릴 만도 하건만 말과는 다르게 곰을 닮은 녀석은 덩치만큼이나 안정적인 사회를 선보였다.
축하연주로는 피아니스트 백정훈이 연주를 해주었는데 나를 바라보며 어찌나 감격한 미소를 지어보이던지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피를 나눈 형제라고 착각을 할 것이다.
일생일대 최고의 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날이다. 과연 결혼식 날 떨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턱시도를 입은 내가 등장하자 열렬한 환호가 쏟아졌다.
감격에 찬 표정은 수많은 거장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마치 장성한 아들을 장가보내는 것처럼 그들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가득했다.
함께 샤펠에서 나날을 보냈던 안나와 친구들도 나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이 자리까지 찾아왔다. 그들에게 너무나도 고마웠다.
물론 그 중 가장 고마운 사람을 꼽으라면 부모님일 것이다.
‘어머니, 아버지.’
양가 혼주 석에 앉은 부모님들의 얼굴에는 그간의 감정을 숨길 수 없는 눈물이 삐져나오고 있었다. 할아버지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평소 회사에서 엄하고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선보였던 회장님들이었지만 지금만큼은 손주 손녀의 앞날을 축하해주며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고 계셨다.
남동생 하늘이는 행복이라는 태명처럼 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울지 않고 오늘을 축복하듯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그럼, 오늘 결혼식 최고의 여신이자 앞으로 신랑 강현 군의 인생에 있어서 든든한 동반자이자 평생의 사랑이 될 신부 입장하겠습니다─!”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유하가 장인어른의 손길과 함께 내게 걸어왔다. 뜨거운 환호와 함성이 뒤따랐지만 지금 내 눈에는 유하 밖에 보이지 않았다.
눈부신 후광에 그녀의 등 뒤에 날개가 달린 것은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였다. 장인어른은 내게 무언의 눈빛을 보내며 유하의 손을 건네주었다.
앞으로 우리 딸을 잘 부탁하네.
걱정 마십시오, 장인어른.
벅차오르는 감정은 그 어떤 콘서트홀의 무대와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였다. 유하와 손을 마주잡고 시선을 교환하며 입을 맞추기까지 더 이상 그녀는 얼음여왕이 아니었다. 나만의 여왕이 되어 함께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다.
“그럼 우리 세기의 키스도 보았으니 이제는 체력검증도 해야겠죠? 자 부인을 사랑하는 만큼 여왕님 안기를 해보겠습니다!”
사회자 김대우의 짓궂은 멘트에 하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을 흘리시던 부모님들과 할아버지들 또한 김대우의 사회가 꽤나 마음에 들었나보다.
“이번에는 우리 신랑 신부가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얼마나 감사한지도 알아봐야겠죠? 자 신랑 신부는 양가 부모님과 할아버지들을 있는 힘껏 안아주세요!”
할아버지들과 부모님들을 있는 힘껏 안아주었다. 결혼식은 행복한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세계 각국에서 참여한 거장들과 유명 인사들 또한 결혼식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박수 세례를 아끼지 않았다.
“자, 사진 찍겠습니다. 모두 나와 주세요!”
웬만한 결혼식장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하객들이 결혼식을 찾아주었다. 하지만 그에 걸맞게 사진촬영 현장 또한 광활하다시피 넓었다.
이미 수많은 하객들이 신랑인 나와 신부인 유하 중심으로 모였다. 세기의 결혼식이라는 명성답게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웬만한 국가의 수장들 못지않았다. 그간 내 인생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얼굴들이었다.
자, 신랑. 신부를 사랑하는 만큼 힘차게 표현해주세요!”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유하가 설레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망설일 필요가 있을까. 나는 그녀를 감싸 안으며 입을 맞추었다. 따뜻한 감촉과 함께 환호가 쏟아지고 있었다.
부모님과 할아버지의 행복한 웃음소리, 유하의 심장소리가 그 어떠한 선율보다도 아름답게 내 온몸을 관통하듯 전율했다. 신랑 신부의 키스와 함께 사진작가가 흡족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찰칵─!
찬란한 햇살 아래 그녀의 시선을 받으며 난 생각했다. 앞으로 내 인생 단 한 명의 청중은 바로 손유하, 그녀라는 것을.
>음악천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