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34)
“은월곡을······ 찾았소?”
화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찾았어요. 서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에요.”
화옥은 서안과 서안 인근이 다 그려진 지도를 펼쳤다.
지도를 본 고복양의 눈이 커다래졌다.
이 정도로 정교한 지도를 보유한다는 것도 능력의 척도가 된다.
지도는 결코 쉽게 얻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고, 쉽게 만들 수 있는 물건도 아니었다.
화옥은 지도의 한 부분을 짚었다.
“여기에 은월곡이 있어요.”
은월곡은 산세가 험한 곳에 자리를 잡아 오가기가 굉장히 불편했다.
또한 그렇기에 외부의 세력이 침투하기도 어려웠다.
어차피 굉장히 폐쇄적인 생활을 하고 있기에 그들로서는 거의 불편할 일도 없을 것이다.
생필품이나 식량을 조달하는 사람들은 좀 힘들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당시의 상황을 좀 알아봤는데, 정황 상, 납치는 아닌 것 같습니다. 또한 아름다운 여인들과 접촉한 것을 목격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제법 흘렀는지라 상황을 정확하게 알아내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고복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자신도 목격자는 확인했었다. 그래서 은월곡이라고 의심했던 것이고.
사실 그녀가 사라지기 전에 둘이서 은월곡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얘기를 하던 그녀의 태도가 좀 이상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사라져 버리니 은월곡을 더욱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좀 더 면밀히 조사한 끝에 당시 목격되었던 여인들의 복식과 장식을 대략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은월곡의 제자들이 쓰는 문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복양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런 것까지 알아냈다니, 대단하오.”
사실 고복양도 당시 알아볼 만큼 알아봤다. 하지만 지금처럼 뭔가 명확히 알아낸 것이 없었다.
은월곡이긴 하지만 납치는 아니다. 그렇다면 뭘까? 그냥 순순히 따라간 거라면 왜 자신에게 말을 하지 않았을까?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알릴 방법이야 많았다.
글귀를 남겨도 되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해도 된다.
한데 그녀는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일단 은월곡에 찾아가 봐야 할 듯해요. 더 자세한 건 직접 만나서 얘기해 보는 걸로 하죠.”
고복양이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정말 고맙소. 솔직히 나 혼자서 했다면 은월곡을 찾는 것도 제대로 못 했을 거요.”
화옥이 빙긋 웃었다.
“저는 공자님께서 시키신 대로 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감사는 우리 공자님께 드리시면 됩니다.”
“내, 벽 공자께도 꼭 감사인사를 드리도록 하겠소.”
고복양은 몇 번이나 인사를 했다.
화옥은 그를 뒤로하고 그의 방에서 나왔다.
이제 오늘 할 일은 끝났다.
남은 건 수련뿐이었다.
화옥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일이 많아서 수련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그녀는 촌각의 시간도 아끼고 아껴서 수련에 썼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 짧은 시간에 이 정도로 높은 경지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화옥이 강해진 건 월영마공이 뛰어난 것과 그녀가 월영마공과 굉장히 궁합이 좋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지만, 이렇게 시간을 아껴가며 수련에 매진하는 것이 가장 컸다.
꼭 오랫동안 수련한다고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짧은 시간 수련하더라도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수련에 임하느냐, 그리고 얼마나 집중하느냐가 훨씬 중요했다.
그렇게 연무장으로 가고 있는데, 하오문도 한 명이 은밀하고 빠르게 다가왔다.
책임자급 문도였다.
하위 문도들과 화옥 사이에서 명령을 전달하고, 모아놓은 정보를 상납하거나 뭔가 변화가 생기면 보고하는 역할이었다.
“최근 서안의 동향을 정리해왔습니다.”
“서안의 동향? 그건 얼마 전에 받지 않았나요?”
“요 며칠 새 변화가 생겼습니다.”
화옥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보고서를 받아 확인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못 보던 미녀들이 나타났다고요?”
“예.”
“은월곡이라고 의심하는 건가요?”
“정황상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평범하게 활동하면서 다른 여인들에게 조금씩 접근하고 있습니다.”
화옥의 눈이 번득였다.
하오문도는 그걸 보며 설명을 덧붙였다.
“미인들만 노리고 있습니다.”
사실 은월곡에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모여 산다고 알려져 있지만, 꼭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여인들로만 이루어져 있고, 은월곡에서 익히는 무공이 미모에 약간 도움이 되는 정도였다.
하지만 외부에 활동을 하는 사람 중 미인이 많아 그렇게 알려진 것이다.
은월곡의 활동은 생필품과 식량을 구해가는 것과 제자를 찾는 것, 두 가지였다.
그 외에 은원을 갚기 위한 활동도 있지만, 그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
지금 저들이 하는 일을 보면 얼핏 제자를 찾는 활동으로 보인다.
하지만 평소 은월곡이 하던 것과는 많은 부분이 달랐다.
“그들이 이렇게까지 대대적으로 제자를 모집한 적이 있었나요?”
“제가 알기로는 처음입니다. 하지만 까마득한 과거의 기록까지 확인한 것은 아니라서 명확히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까마득한 과거까지는 필요 없어요. 수십 년 정도면 충분해요.”
“수십 년 내에는 없었습니다. 이건 확실합니다.”
은월곡이 제자를 모으는 일은 대부분 서안에서 이뤄진다. 자주 하는 것도 아니고 서안의 인구도 많으니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러니 서안에서의 활동 기록만 확인하면 된다. 하오문도는 그 기록을 미리 확인하고 온 것이다.
“미인만 모집하는 경우도 처음이죠?”
“네. 은월곡이 제자를 모집하는 기준은 외모가 아니라 재능입니다.”
“평범한 상황은 아니군요.”
“예. 일단 애들을 붙여뒀습니다.”
화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수준으로 유지해서 감시하세요. 어차피 조만간 은월곡에 방문할 계획이니까.”
“예. 알겠습니다.”
“사소한 거라도 일이 생기면 바로 보고하시고요.”
“예. 그리 하겠습니다.”
하오문도는 공손히 인사하고 조용히 물러갔다.
화옥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방금 들은 얘기를 보고하기 위해 벽태산에게로 향했다.
아무래도 무공 수련을 하려면 좀 더 늦은 시간이 되어야 할 듯했다.
* * *
“야, 우리 이래도 되냐?”
“뭐가 말이오?”
“아무리 그래도 오늘 첫 날인데 이렇게 바로 기루에 출동해도 되느냐고.”
“형님, 쫄리쇼?”
“야! 쫄리긴 누가! 시발, 나 일침괴야!”
“그럼 그냥 갑시다. 화청루가 코앞이요. 아까 내가 오면서 화청루 앞에 있던 애들 슬쩍 봤는데, 아주 기가 막히오.”
“그래? 그럼 얼른 가자. 뭐 하냐, 뛰지 않고.”
“아이고, 체통 좀 지키쇼. 체통.”
두 사람은 그렇게 티격태격 하며 화청루에 도착했다.
한데 기루의 분위기가 좀 묘했다.
“이거······ 장사 하는 거 맞나?”
기루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 있었다. 기녀의 모습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손님이 둘이나 안으로 들어왔는데, 맞이하는 사람도 없었다.
“뭐지? 기대했던 거랑 너무 다른데?”
두 사람이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기녀 한 명이 다가왔다.
한데 그 기녀를 본 천추신의와 일침괴의 눈빛이 살짝 가라앉았다.
‘무공을 익혔네?’
기녀는 두 사람에게 다가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오늘부로 화청루는 문을 닫기로 했습니다. 죄송하지만, 두 분 손님께서는 돌아가 주셨으면 합니다.”
천추신의가 피식 웃었다.
“그렇게는 못 하겠는데?”
“예?”
“내가 얼마나 기대한 줄 알아? 오늘 하루만 더 영업 해.”
기녀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억지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녀가 뭐라고 말을 하려는데 천추신의가 그 말을 끊었다.
“일할 애들 없다는 말 할 거면 하지 마라. 있는 거 확인하고 들어왔으니까.”
기녀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언제 그랬냐는 듯 요염하게 변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진작 그럴 것이지.”
천추신의와 일침괴는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두 사람의 뒷모습을 기녀가 살기어린 눈으로 노려봤다.
끝
천추신의와 일침괴는 화청루에서 가장 크고 좋은 방에 들어섰다.
기녀가 안내하려던 곳은 원래 다른 방이었는데, 천추신의가 막무가내로 우기면서 가장 크고 화려한 방으로 찾아 들어갔다.
순간 기녀에게서 살기가 치솟았다가 사라지는 걸 분명히 감지했다.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방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자, 그곳으로 안내한 기녀가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금방 준비를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기녀가 그렇게 말하고 사라지자, 천추신의가 일침괴를 보며 물었다.
“형님도 느꼈소?”
“그래. 여기 아주 수상하다.”
“그래서 내가 아까 밖으로 신호를 보냈소. 아마 하오문에서 공자님께 연락할 거요.”
“잘했다. 역시 이런 건 네가 낫다니까.”
“그나저나 오늘 아주 역사적이 날이었는데, 이렇게 돼서 어쩌오? 즐기는 건 물 건너간 것 같은데?”
“하여간 밝히기는. 넌 오늘 같은 날에도 그 생각이 나냐?”
“형님보다는 낫지. 솔직히 오늘 여기 오자고 한 것도 형님 아니오.”
“뭐? 다시 차근차근 따져볼까?”
천추신의가 막 입을 열려는 순간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술과 요리가 준비되었습니다. 안으로 들여도 되겠습니까?”
나긋나긋한 기녀의 목소리에 천추신의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들어와!”
일부러 말투를 거칠게 했다. 처음부터 막 나갔으니 이러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였다.
그게 잘 먹혔는지 문이 열리고 술과 요리를 든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와 서둘러 상을 차렸다.
천추신의와 일침괴는 그들을 유심히 살폈다.
눈에 두려움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표정도 어딘가 자연스럽지 않았다.
술과 요리가 차려지자, 네 명의 기녀가 들어왔다.
한데 들어온 기녀들이 전부 무공을 익힌 여인들이었다.
수준도 낮지 않았다. 감춘다고 감추었는데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기파가 피부를 짜릿하게 자극했다.
천추신의나 일침괴의 수준이 낮았다면 그런 걸 아예 느끼지도 못했겠지만, 지금 들어온 여인들의 실력으로는 그 정도로 기운을 갈무리할 수 없었다.
“야야, 어딜 은근슬쩍 앉으려고 해?”
천추신의의 제지에 기녀들이 들어오다가 멈춰서 굳은 표정을 지었다.
“기분이 상하신 듯한데, 제가 이유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기녀 중 하나가 정중하면서도 약간의 요염함을 담아 물었다.
이런 일을 많이 겪어본 듯 굉장히 능숙해 보였다.
“얘들 말고 딴 애들로 데려와. 아까 내가 본 애들이 하나도 없잖아!”
천추신의의 말에 기녀가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오늘은 날도 날이니만큼 원하시는 아이들을 전부 부를 수가 없습니다.”
천추신의가 코웃음을 쳤다.
“웃기고 있네. 이제 더 영업 안 한다며? 그럼 다들 놀고 있을 텐데, 부를 수 없긴 뭐가 없어? 싹 데려와. 그 중에 열 명만 고를 테니까.”
기녀가 차분히 말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한데 그렇게 하면 비용이 상당합니다. 한두 명이면 모를까 열 명이나 부르신다면 서안에 있는 웬만한 가문에서 나오신 분들도 감당이 어렵습니다.”
“알았으니까 일단 데려와. 서안의 웬만한 집안이랑 나랑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모욕이니까.”
기녀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다시 싹 물러가자, 일침괴가 감탄하며 천추신의를 바라봤다.
“야, 너 정말 제법인데? 꼭 이런 일을 많이 해본 것처럼 아주 그냥 입만 열면 말이 술술술 나온다?”
“내가 공자님 밑에 들어와서 쥐 죽은 듯이 살고 있으니 다들 모르는 거지, 한때는 천추신의 하면 이쪽 바닥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소.”
“경력에 비해 밤일이 시원찮아서 그렇지 너 진짜 대단해. 자부심을 가져도 되겠어.”
“하, 이 형님이 검증 안 된다고 말 함부로 하시네. 그러면 수상한 놈들이고 뭐고 오늘 한 판 붙던가.”
일침괴가 얼마든지 그러자고 대답하려는데, 때마침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들어가겠습니다.”
“얼른 들어와라.”
천추신의의 대답에 문이 열리고 기녀들이 열 명이나 우르르 들어왔다.
그 중에서 여덟 명은 평범했고, 두 명은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천추신의는 즉시 그 중 한 명을 지목했다.
“너, 나가라.”
“예?”
기녀가 놀란 눈으로 천추신의를 바라보자, 이번엔 일침괴가 나머지 한 명을 지목했다.
“너도 나가라.”
“예?”
“우린 원래 각자 취향이 아닌 사람 한 명씩 날리고 시작하거든. 아, 뭐해? 얼른 안 나가고. 나머지는 빨리 앉아라. 뱃속 주충이 얼른 술 달라신다. 으허허허.”
지목 받은 기녀들이 이를 갈며 천추신의와 일침괴를 노려봤다.
그녀들은 자신을 데려온 기녀를 바라보며 눈짓을 했다. 이대로 물러가야 하느냐는 의미였다.
눈짓을 받은 기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두 분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세 명의 기녀가 인사를 하고 나갔다.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씨익 웃으며 분위기를 흥겹게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 각쯤 놀던 천추신의가 옆에 앉은 기녀에게 슬쩍 물었다.
“여기, 무슨 일 있지? 아까 걔들 여기 기녀 아니지?”
그 말을 들은 기녀가 흠칫 놀랐다. 그녀의 표정은 불안하게 흔들렸다.
“괜찮아. 너희 도와주러 온 거니까. 이따가 혹시 소란스러워지면 여기서 원래 일하던 애들 전부 이리로 데려와. 알았지?”
기녀들은 불안한 눈으로 천추신의와 일침괴를 번갈아 바라봤다.
다들 가타부타 말을 하지 못하는 걸 보고서는 천추신의가 옆에 앉은 기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진맥을 했다.
“독이네?”
일침괴가 피식 웃으며 침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