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35)
“그래? 그럼 빼면 되지.”
기녀 중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두, 두 분은 대체 누구십니까?”
천추신의가 씨익 웃었다.
“의원님이시다. 너희 오늘 아주 복 터진 줄이나 알아.”
* * *
방금 천추신의와 일침괴의 방에서 나온 세 명의 기녀들은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냥 아까 그 자리에서 처죽이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아직 준비가 다 안 됐어. 여기 있는 것들만 데려갈 건 아니잖아.”
“노인네 시체 둘 정도야 며칠 감추는 건 일도 아니죠.”
“어떤 노인네인줄 알고?”
“예? 그게 무슨······.”
“저 노인네들 무림인이야.”
“예? 전혀 몰랐어요. 정말이에요?”
“그래. 나도 긴가민가했었는데, 단주님이 말씀해주시더라. 조심하라고.”
기녀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한바탕 난리가 날 뻔했네요.”
“난리만 나면 다행이지. 그 이후의 일이 어떻게 될지 생각해봤어?”
기녀가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우, 진짜 조심해야겠네. 하필이면 저런 개차반 같은 늙은이들이 와서······ 짜증나게.”
여기서 일이 잘못되면 자신이 옴팡 뒤집어써야 한다.
그냥 몸만 좀 굴리고 마는 거라면 눈 몇 번 질끈 감고 참겠는데, 그 이후가 문제다.
아마 그냥 평범하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굉장히 비참하고 잔혹하게 죽을 수도 있고.
지금 자신은 그런 꼴을 당할 여자들을 찾는 것이다.
이곳 화청루에 손을 뻗은 건, 아름다운 여자들을 빠르고 많이 구하기 가장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냥 여기서 일하는 기녀들을 싹 데려가면 끝나니까.
“거기 들어간 애들 입단속은 확실히 했지?”
“그럼요. 일일이 다 확인했어요. 그 독이 발작하면 어떤 꼴이 되는지 아주 확실히 보여줬거든요.”
“그것만으로 안심하고 있는 건 아니지?”
“당연히 감시도 하고 있어요. 거기 남은 애들 중에서 한 명을 포섭했거든요. 내 밑으로 빼준다고 했어요. 당연히 거기 남은 애들은 누군지 모르지만 배신자가 있다는 걸 알죠. 괜찮은 방법이죠?”
“빼준다고? 그걸 왜 네 마음대로 결정해?”
“말로는 뭘 못하겠어요? 그냥 말만 했다고요, 말만.”
그렇게 말하며 해맑게 웃는 기녀를 앞장서서 걷던 여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 그러다가 언젠가 호되게 당한다.”
“나도 눈치라는 게 있다고요. 그런 짓을 할 사람이랑 하면 안 될 사람, 다 구분하거든요?”
앞장서서 걷던 여인은 또 한 차례 고개를 젓고는 걸음을 서둘렀다.
일단 상황을 단주에게 보고해야 한다.
* * *
여덟 명의 기녀들은 앞에 있는 작은 그릇에 담긴 새까만 독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들은 고작 침 하나로 그녀들의 몸에 있던 독을 모조리 뽑아낸 두 의원을 감사와 존경의 감정이 듬뿍 담긴 눈으로 바라봤다.
그 중 한 명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거 저예요.”
천추신의와 일침괴는 이게 무슨 말인가 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하지만 나머지 기녀들은 알아들은 듯 쓴웃음을 지었다.
“괜찮아. 우리도 이해하니까. 나라도 같은 말을 들었으면 그렇게 했을 거야. 너도 차라리 잘 했어.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죽었을걸?”
“그래도······ 흑.”
처음 말을 꺼낸 여인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었다.
천추신의와 일침괴는 분위기가 가라앉자 얼른 나섰다.
“자자, 이제 우리 즐겁게 놀아도 되지 않겠느냐? 원래 할 일을 하자꾸나.”
기녀들이 난감한 표정으로 두 의원을 바라봤다.
“다른 애들은 어찌할까요?”
그녀들은 동료 기녀들의 안전을 걱정했다.
“딴 애들도 독에 당했냐?”
“네.”
천추신의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들에게 쓴 독은 일단 발동하면 거의 죽는다고 보면 된다. 내장이 괴사하기 때문에 살아난다고 해도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의 상태가 된다.
그러니 나중에 소란스러워지면, 화청루를 장악한 놈들이 독하게 손을 쓸 수도 있었다.
그럼 다 죽는 거다.
“여기 방비는 좀 어떠냐?”
“밖으로 나가지만 않으면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아요.”
“아니, 그거 말고 감시하는 놈들이 많으냔 말이다.”
기녀들이 저마다 자신이 본 것을 얘기했다. 천추신의는 가만히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추신의가 그래도 정보를 다루던 사람이기에 단편적인 얘기만으로 전체를 대략적으로 유추해낼 수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적의 전력은 열세 명 정도였다.
전원 여인이었고, 감시를 철저히 하진 않는다.
일 층에 대부분 모여 있었고, 이 층에 기녀들을 한데 모아 놨다.
어차피 독에 중독되었으니 도망가지 못할 거라 여긴 것이다. 실제로도 그랬고.
“생각보다 방비가 철저하진 않구나. 그럼 간단하지.”
천추신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여전히 앉아 있는 일침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형님, 뭐하쇼, 안 일어나고?”
“뭐? 나?”
“그럼 형님은 안 갈 거요? 아리따운 애들이 독에 당해서 울고 있다는데?”
일침괴가 벌떡 일어났다.
“당연히 가야지.”
“나만 따라오쇼. 허튼짓 하지 말고. 혹시 누군가와 마주치면 그냥 나한테 맡기고.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천추신의는 그 다음 기녀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술이나 마시고 있어. 돌아와서 질펀하게 놀아보자.”
“예. 부디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씨익 웃고는 문을 조용히 열었다.
그리고 복도로 성큼 나갔다.
아무도 없었다. 두 사람은 빠르게 걸어 이 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에 무공을 익힌 여인 한 명이 서 있었다.
그녀가 천추신의와 일침괴를 발견하고 무슨 일인지 물으려는 찰나, 일침괴가 몸을 날렸다.
어찌나 빠른지 여인이 놀라 눈을 부릅뜬 순간 혈도를 꾹 누르고 있었다.
천추신의도 얼른 다가가 여인을 잡아 옆에 있는 방문을 열고 안에다 휙 넣었다.
한 사람이라 다행이었다. 아마 하나 더 있었으면 이렇게 조용히 처리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이 층으로 내려간 두 사람은 기녀들에게 들었던 방으로 갔다.
안의 기척을 살펴보니 무공을 익힌 사람이 둘이나 있었다.
천추신의와 일침괴는 서로 마주보고는 눈짓을 했다. 각자 누굴 맡을 건지 정한 것이다.
두 사람은 조용히 문을 열고 빠르게 안으로 짓쳐 들어갔다.
투둑!
정확히 한 명씩 무공을 익힌 여인들의 혈도를 제압했다.
두 여인은 제대로 반응조차 못했다.
문이 열리는 것도 못 보고 딴짓을 하고 있었으니까.
두 의원은 다시 문을 닫고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기녀들을 보며 조용히 하라는 듯 손가락 하나를 들어 입에 갖다 댔다.
두 사람은 기녀들이 입을 꾹 다물고 불안한 시선을 보내자 씨익 웃었다.
“독 뽑으러 왔다.”
두 의원이 품에서 침을 하나씩 꺼냈다.
* * *
벽태산은 화청루 앞에 서 있었다.
잠시 화청루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화옥이 따라갔다.
화옥은 하오문도의 보고를 받고 바로 벽태산에게 알렸다.
두 의원이 화청루라는 기루에 갔는데, 그 기루의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하오문도에게 신호를 줬다고 한다.
한데 그 기루에 마침 하오문에서 최근 조사하는 여인들이 있다고 해서 서둘러 벽태산에게 알린 것이다.
벽태산은 굉장히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마치 재미있는 일을 기대하고 왔는데, 그게 사라져 기분이 나빠진 듯한 표정이었다.
화옥은 벽태산 뒤를 따라가면서 계속 눈치를 살폈다.
솔직히 이 정도는 자신의 선에서 처리할 수 있었다. 벽태산의 표정을 보니 그냥 알아서 처리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벽태산은 계단을 따라 위로 쭉쭉 올라갔다. 그렇게 삼 층까지 올라간 벽태산은 복도로 들어섰다.
어딘가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벽태산은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가서 방문을 확 열었다.
방에는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술에 잔뜩 취한 채 기녀들과 놀고 있었다.
“어? 공자님! 으헤헤. 공자님 오셨네? 여기 다 끝났는데. 으헤헤헤!”
일침괴가 말을 받았다.
“저기 위에! 은월곡인지 뭔지에서 온 애들 싹 잡아서 가둬놨습니다. 으하하하!”
벽태산은 그런 두 사람을 가만히 쳐다봤다.
왠지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듯해서 기녀들이 먼저 조용히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천추신의와 일침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뭣들하느냐! 우리 공자님한테 술 한 잔 드리지 않고! 아주 귀한 분이시다. 으헤헤헤!”
“아무렴! 우리 공자님이야말로 진정한 천하제일인이시지.”
벽태산은 천추신의와 일침괴의 주정을 보다가 휙 돌아서서 방을 나섰다.
화옥이 난감한 표정으로 벽태산을 따라 나간 뒤, 조용히 문을 닫았다.
닫힌 문을 뚫고 두 의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공자님! 그냥 가시면 어쩝니까? 얘들이 술 따라준다잖아요!”
“그러게. 무한 기루를 전부 박살 내셨으면, 이제 여기 서안도 접수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으하하하!”
벽태산이 그 말을 들으며 툭 말을 던졌다.
“취하니까 둘이 똑같구나.”
벽태산과 화옥은 삼 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혈도가 제압당한 채 쓰러져 있는 열세 명의 여인이 있었다.
그리고 복면을 쓴 두 사람이 여인들의 몸을 주무르고 있었다.
두 복면인이 갑자기 나타난 벽태산을 보고는 그대로 몸이 굳었다.
끝
복면을 쓴 두 사람은 점혈 당해 쓰러진 여인을 각자 한 명씩 맡아서 몸을 주무르고 있었는데, 벽태산과 눈이 마주치고는 그 상태 그대로 딱 멈춰 버렸다.
“그러니까 내가 일단 옮기라고 했잖아! 나중에 얼마든지 해준다고!”
점혈을 당한 채 쓰러져 있던 여인 한 명이 그렇게 소리쳤다.
그걸 본 화옥이 눈살을 찌푸렸다.
사로잡은 자들의 아혈을 제압하는 건 기본이었다. 한데 그조차 하지 않았다니.
하지만 이내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아혈이 막힌 듯 아무 소리도 못 내고 있지 않은가.
‘스스로 아혈을 풀었다고? 그런데 다른 혈도는 못 풀고?’
뭔가 이상했다.
“입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다. 혼란스러워하지 마라.”
화옥이 깜짝 놀라 방금 소리친 여인을 바라봤다.
여인은 다급히 복면인들에게 말했다.
“일단 나만이라도 데리고 나가! 어서!”
화옥의 눈이 커다래졌다. 정말로 입을 움직이지 않고 말을 하고 있었다.
성대가 아닌 다른 기관을 이용하는 모양이었다.
복면인들은 도망치지 않고 이쪽의 수준을 가늠하려는 듯 눈을 빛내며 벽태산과 화옥을 살펴봤다.
“여자 쪽은 좀 부담스럽지만, 그게 다야. 남자는 아무것도 아닌데?”
“남자를 인질로 잡자.”
복면인 둘이 주고받는 말을 들은 화옥은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벽태산의 눈치를 힐끗 살폈다.
안 그래도 오늘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데 저런 말까지 들었으니 얼마나 더 기분이 나빠질지 걱정이었다.
한데 의외로 벽태산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은월곡에는 여자들만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맞습니다.”
“그럼 저것들은 뭐지?”
벽태산이 턱짓으로 가리킨 복면인들을 보며, 화옥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은월곡과 손을 잡은 자들로 보입니다. 다만······ 목적이 굉장히 불순한 것 같습니다.”
복면인들이 화옥과 벽태산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두 사람은 어느새 거무튀튀한 검을 쥐고 있었다.
“더럽게 예쁜 년이로구나. 이 정도로 괜찮은 사냥감은 처음인 것 같은데?”
화옥은 차가운 눈으로 복면인들을 노려봤다.
어쨌든 저들의 운명은 이제 정해졌다. 도망쳤어도 마찬가지다. 벽태산 앞에서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 정리하고 내려와라. 죽이지는 말고.”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 휙 돌아섰다.
그냥 아래층으로 내려가려 하자, 복면인 중 하나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어딜 도망치려고!”
하지만 그는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어느새 앞을 막아선 화옥 때문이었다.
쩌엉!
화옥의 새하얀 손이 그의 검을 후려쳤다.
“크으윽!”
복면인은 손아귀를 파고드는 충격을 해소하며 뒤로 쭉 물러났다.
두 복면인의 눈에 긴장이 맴돌았다.
‘추측했던 것보다 훨씬 고수다.’
이대로라면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 어쩌면 도망쳐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복면인의 시선이 아래에 누워 있는 여인들을 살짝 훑고 올라왔다.
만일 도망쳐야 한다면 그냥 가선 안 된다. 저들이라도 싹 죽여야 한다.
두 복면인이 정신없이 신호를 주고받았다.
한 명이 화옥에게 덤비면 나머지가 누운 여인들을 죽이기로 했다.
“지금!”
복면인 중 하나가 외쳤고, 두 사람이 동시에 움직였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콰득!
여인들을 향해 검을 날리려던 복면인의 뺨에 새하얀 손이 작렬했다.
쿠당탕탕!
바닥을 꼴사납게 구른 복면인 한 명이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입에서 피거품이 뭉클뭉클 일어났다.
화옥은 몸을 돌려 방금 자신이 있던 자리에 검을 내지르고 있는 복면인을 쳐다봤다.
복면인이 검으로 허공을 휘저은 순간, 화옥이 바닥을 가볍게 박찼다.
어느새 그녀는 복면인 뒤에 서 있었다.
꽈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