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94)
벽태산은 오랜만에 재능 넘치는 원석을 봐서 기분이 좋았다. 이걸 어떻게 갈아야 할지 이런 저런 구상 중이었다.
사공예랑이 들었으면 기겁할 만한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벽태산이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도 아니고.
오직 이걸 갈아서 어떤 보석을 만들 것인지에만 초점을 맞췄다.
그러니 얼마나 무궁무진한 방법이 있겠는가.
그 중에서 몇 개를 고르는 것도 일이었다.
화옥은 그런 벽태산에게 조심스럽게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전에 말씀하셨던, 십대고수에 대한 정보입니다. 이름, 별호, 현재 위치, 그리고 간략하게 주변 관계를 정리했습니다.”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받아 슥 훑어봤다.
정확히 여덟 명에 관한 정보가 적혀 있었고, 그 중 두 명은 무림맹과 흑련 소속 무인이었다.
“그들을 어찌 하실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벽태산이 씨익 웃었다.
“너희가 상대해야지.”
화옥은 놀란 눈으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벽태산의 눈빛에는 패배 따위를 결코 용납지 않겠다는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십대고수를······ 과연 이길 수 있을까?’
화옥은 한껏 긴장해서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은 담담히 중얼거렸다.
“검귀는······ 너무 재미없을 테니 빼고. 천경완이 좋겠군.”
화옥은 그렇게 벽태산이 향후 십대고수와 싸워야 할 명단을 읊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
아마 당분간 다들 미친 듯이 수련에 매진하리라.
끝
천경완은 최근 무력감에 빠져 있었다.
언젠가부터 수련만 하고 있는 상황에 지쳐갔다.
유서연과 함께하지 않았다면 아마 벌써 수련을 그만뒀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수련은 꾸준히 했다.
대충 하는 것도 아니기에 실력은 계속 늘었다.
유서연이 천경완과 함께 수련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두 사람의 수련은 서로를 죽일 듯 싸우는 거였는데, 유서연과 대련을 할 때 빈틈을 보였다간 정말 큰일 난다.
매일 피 튀기는 실전을 경험하는데 실력이 늘지 않으면 이상한 일 아닌가.
게다가 유서연은 여전히 이를 악물고 독하게 수련하고 있었다.
실력이 늘어난 유서연에게서 살아남으려면 천경완도 같이 강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 천경완의 수련도 만만치 않은 강도를 자랑했지만.
오늘도 피 튀기는 싸움을 세 차례에 걸쳐 진행하고 밥을 먹으러 왔다.
매일 똑같은 일이 반복되니 더더욱 정신적인 피로가 많이 쌓였다.
천경완은 자신이 대체 왜 이러는지 매일 잠들기 전마다 고민했다.
강해지고 싶은 열망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한데 갑자기 왜 이렇게 되었을까.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무언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천경완은 잡념을 털어내려고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리고 다시 검을 휘둘렀다.
최근 천경완은 유서연과의 대련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 단순한 찌르기와 베기를 무한히 반복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잡념을 없애기 위해 시작한 수련이었다.
한데 그렇게 하는 시간이 충분히 길어지자, 새로운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오늘도 유서연과의 대련이 끝나자마자 찌르고 베는 단순한 기초수련을 쉬지 않고 이어가는 중이었다.
그렇게 수련으로 잡념을 억누르고 있는 천경완의 곁으로 누군가 다가갔다.
천경완은 천천히 수련을 멈췄다. 누가 다가온 건지는 그 사람이 연무장에 가까워진 순간 알 수 있었다.
유서연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매일 서로 죽일 듯이 검을 마주하는 유서연의 기척은 아무리 희미해도 알 수 있었다.
천경완이 천천히 돌아서서 유서연을 바라봤다.
최근 천경완의 고민을 당연히 유서연도 알고 있었다. 둘은 이제 고민이 있으면 서로 나누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 문제로 상당히 자주 논의를 하곤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유서연은 이러다가 천경완이 심마에 빠질까봐 걱정하고 있었다.
실력이 정체되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심지어 실력은 오히려 늘고 있었다.
그래서 더 걱정이었다.
천경완은 유서연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빙긋 웃었다.
“뭐가 그렇게 심각해?”
“그럼 안 심각하게 됐어요? 낮에 이렇게 힘을 다 써버리는데.”
천경완이 입을 다물고 슬그머니 눈치를 살폈다.
“아니, 또 무슨 말을 그렇게······.”
“그래서, 그거 더 하실 건가요?”
천경완은 어색하게 웃었다. 여기서 더 하겠다고 하면 왠지 큰일 날 것 같았다.
“그런데 웬일이야?”
평소 유서연은 천경완이 홀로 수련할 때 다가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이렇게 찾아왔다는 건 무언가 일이 있다는 뜻이었다.
“공자님께서 부르셨어요.”
그 말에 천경완의 눈에서 일순 광채가 일어났다.
“그래? 공자님께서? 지금?”
유서연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벽태산이 찾는다는 말에 가장 먼저 든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벽태산은 아랫사람들을 정말 무지막지하게 굴린다. 그걸 견디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걸 가지고 누구도 불만을 표하지 않는 건, 결과가 너무 확실하기 때문이었다.
벽태산과 한 번이라도 함께 한 사람은 다 안다. 그 한 번이 자신에게 얼마나 대단한 기연이었는지.
그러니 불만을 가질 리 없지 않은가.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불만은 없다. 아니,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훨씬 크다.
벽태산을 만나지 않았다면 자신이 과연 지금 어느 정도 수준일까? 그리고 어디서 뭘 하고 있었을까?
아마 지금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삶을 살고 있으리라.
유서연의 시선이 천경완에게 닿았다.
그리고 저런 사람을 만나지도 못했으리라.
아무튼 천경완의 반응은 확실히 의외였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자신보다 천경완이 훨씬 더 벽태산을 두려워했다.
한데 지금은 어떤가. 두려움 따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지 않은가. 심지어 기대감으로 일렁이는 눈빛을 보고 있으니 그야 말로 빨려들 지경이었다.
유서연은 자신도 모르게 천경완에게 다가갔다.
천경완이 흠칫 놀라 뒤로 주춤 물러나는 광경이 보였다. 눈에 담긴 미약한 두려움을 읽은 유서연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지금······ 뭐 하는 거죠?”
“어? 내가 뭘 했는데?”
“그러니까 그걸 묻는 거예요.”
천경완이 허둥지둥하며 말했다.
“아, 공자님께서 지금 찾는다고 안 했어?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 공자님, 어디 계시지? 집무실에 계신가?”
천경완은 그렇게 생각나는 말을 막 내뱉으면서 얼른 걸음을 옮겼다.
유서연이 그 뒤를 조용히 따라가며 말했다.
“이따가 한 번 보겠어요.”
천경완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왠지 요즘은 벽태산보다 유서연이 더 무서운 것 같았다.
* * *
연무장에 벽태산이 호출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거 모인 사람들을 보니까 좀 불길한데? 안 그렇소, 형님?”
“그래? 난 잘 모르겠는데?”
일침괴가 주위를 둘러보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천추신의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한 번 둘러보쇼. 우리 빼고는 다들 힘으로 먹고 사는 부류 아니오.”
“으응?”
일침괴는 천추신의의 말에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봤다.
천경완과 유서연이 가장 먼저 보였다. 그리고 육태구와 장각우가 보였다.
확실히 저 넷은 힘으로 먹고 사는 부류라 할 수 있었다.
“그럼 뭐, 저놈들이 뭔가 힘쓰는 일을 하고, 그러다가 혹시 다치면 너랑 내가 고쳐주고, 뭐 그런 건가?”
“형님도 나랑 다니다보니 슬슬 머리가 좀 돌아가는 것 같은데?”
“뭐? 원래 머리는 내가 더 좋거든?”
“에이, 형님. 자신을 속이는 게 제일 나쁜 거요. 머릿속으로는 이미 인정하고 있는데 굳이 그렇게 말로 부정하면 오히려 기분이 나빠지지 않소? 패배감도 들고.”
일침괴가 주먹을 꽉 쥐고 부르르 떨었다.
“어어? 그러다 한 대 치시겠소? 설마 형님도 힘쓰면서 살고 싶어서 그러는 거요?”
일침괴가 막 폭발하려는 찰나, 연무장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다.
연하린과 화옥이었다. 그리고 그녀들 뒤로 벽태산의 시비 중 한 명인 철란이 보였다.
“응? 쟤들도 오는 거였어? 이거 뭐지? 전혀 감이 안 잡히는데?”
“그러게. 그나저나 공자님은 안 오시나?”
“공자님 오시기 전에 가서 좀 물어봅시다. 쟤는 알 거 같은데?”
천추신의가 눈짓으로 화옥을 가리키며 말하자, 일침괴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두 사람은 얼른 화옥에게 다가갔다.
화옥이 인사를 하려 하자, 천추신의가 얼른 손을 내저어 막았다.
“매일 보는데 인사는 무슨. 됐고, 이거 무슨 일인지나 말해라. 대체 공자님이 우릴 왜 부른 거냐?”
화옥이 살짝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번에 낙양에서 십대고수 두 명을 만났습니다.”
“응? 십대고수? 하긴, 묵검산장이 배신했다던가? 거기에 십대고수가 둘 있지?”
“공자님께서 그 둘을 쓰러뜨리셨는데······ 마음에 안 드셨던 모양입니다.”
“응? 마음에 안 들어? 자, 잠깐. 나 진정 좀 하자. 그 말 들으니까 왜 이리 심장이 뛰냐.”
벽태산이 마음에 안 든다는 말을 할 때마다 뭔가 힘든 일이 벌어진 기억이 있는지라 심장이 갑자기 두근두근 뛰었다.
“아무튼 그래서 십대고수들이 어디 있는지 알아보라 하셨습니다.”
천추신의의 표정이 확 굳었다.
“이거······ 내 생각에는 여기 있는 사람들이랑 십대고수랑 한 번 붙어야 할 거 같은데? 설마 정말 그거냐?”
“정확합니다.”
천추신의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훌륭한 일을 하시는구나. 다들 걱정 마라. 팔다리가 잘려도 내가 아주 감쪽같이 붙여줄 테니까. 그저 목숨만 붙어서 오면 된다. 이것들 아주 그냥 복 받은 줄 알아. 흐흐흐.”
천추신의와 일침괴는 자신들의 역할이 이들의 부상을 치료하는 의원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캬, 십대고수라니. 대단들 하구나.”
천추신의는 그렇게 말하며 연무장에 모인 사람들을 다시 한 번 둘러봤다.
“가만있자······ 하나, 둘, 셋······ 일곱?”
연무장에 모인 사람의 수는 천경완, 유서연, 장각우, 육태구, 연하린, 철란, 화옥. 이렇게 일곱 명뿐이었다.
십대고수 중 둘은 죽었으니, 남은 건 여덟인데, 왜 일곱 명밖에 없을까?
“아, 한 명은 공자님께서 직접 손봐주시려나?”
그 말에 화옥이 말했다.
“그럴 리가요.”
천추신의가 흔들리는 눈동자로 화옥을 보며 말했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거 아니지? 아니라고 대답해라.”
“제가 아니라고 대답한들, 현실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천추신의가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리고 정확히 그 순간 벽태산이 연무장에 불쑥 들어왔다.
“다들 모였군. 그럼 이제 출발해라. 누가 누굴 맡을지는 화옥에게 말해뒀다.”
벽태산이 좌중을 슥 둘러보더니 천천히 말했다.
“패배는 단 한 명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 말이 어찌나 무겁고 무서웠는지 다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은 그 말만 남기고 휙 돌아서서 연무장을 나가 버렸다.
다들 그제야 막혔던 숨을 토해냈다.
너무 긴장한 채로 기세에 짓눌리는 바람에 숨도 못 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숨을 멈췄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도 못했고.
천추신의가 애절한 눈으로 화옥을 바라봤다.
화옥은 그 시선을 슬그머니 피하며 말했다.
“두 분께서는 천독검 원구악을 상대하시면 됩니다.”
“천독검?”
천추신의의 표정이 묘해졌다.
“천독검이라······ 천독검.”
일침괴가 불쑥 나섰다.
“그놈을 우리 둘이서 상대하면 된다는 거지? 한데 그래도 되나?”
“예. 됩니다. 천독검은 한때 의원 출신 무인들에게 언제든 몇 명이든 뭉쳐서 덤벼도 좋다고 공언한 적이 있습니다.”
“맞아. 그랬었지.”
일침괴와 천추신의가 서로를 바라보고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한 번 해볼 만하지 않은가.
예전이라면 엄두도 못 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얘기가 좀 다르다.
천추신의도 일침괴도 어마어마하게 강해졌다.
둘이 힘을 합하면 천독검 정도는 쓰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
그놈이 무서운 이유는 독공을 쓴다는 건데, 솔직히 그 독공, 자신들에게는 아예 통하지도 않는다.
천독검 원구악은 의원들을 무시하고 핍박하는 걸로 유명하다.
“그놈이 의선 어르신한테 한 번 걸렸어야 하는데.”
아마 그랬다면 뼈도 못 추렸으리라.
그렇게 중얼거리던 천추신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지, 이번에 그렇게 해주면 되지.”
천추신의가 일침괴를 바라보자, 일침괴도 똑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그냥 작신작신 밟아주자.”
“좋소. 오랜만에 수련하고 싶은 욕구가 무럭무럭 생기는데? 안 그렇소, 형님?”
“난 이미 수련하러 가고 있다. 넌 뭐하는 거냐?”
“나도 가면서 말하는 거요.”
두 의원이 정신을 쏙 빼놓고 사라지자, 연무장에 침묵이 촥 내려앉았다.
화옥은 다시 각자가 상대해야 할 사람을 알려주었다.
그녀가 철란에게 상대를 알려주었을 때, 다들 의아하면서도 우려 섞인 표정을 지었다.
철란은 벽태산의 시비 중 한 명이었다.
화옥처럼 애초에 무공을 익혔던 사람도 아니었고, 벽태산의 시비가 되면서 무공에 입문했다.
입문도 늦었는데, 무공을 익힌 기간도 길지 않은데, 그런 사람에게 십대고수와 싸우라고 하니 걱정이 안 될 수 없었다.
그게 과연 가능할까?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철란은 담담했다.
그녀는 벽태산의 시비들 중에서도 사실 좀 특별했다. 무공에 대한 재능이 상당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벽태산이 그녀를 가르치면서 재능에 감탄했다.
무공에 대해서는 다시없을 재능이라고 했다.
십대고수와 싸울 사람을 선정한 것은 벽태산이었다. 벽태산이 그녀를 명단에 넣었다는 건, 철란에게 십대고수를 상대할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그걸 알기에 다들 우려하면서도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연무장에 있는 사람들 중, 사실 가장 크게 동요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