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38)
열 명의 사내가 정신을 잃고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근처에 있던 다섯 사내 역시 같은 꼴이 되어 쓰러졌다.
사공예랑은 조용히 서서 깨달음의 잔향을 음미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사공예랑의 입에서 긴 숨이 흘러나왔다.
“후우우우우.”
사공예랑은 주변을 둘러보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시간 더 못 끌고 해버렸네.”
저들 때문에 증혼마공을 익혀 버렸다. 그것도 꺼림칙하지 않은 방향으로.
방금 저들이 쓰러진 이유는 증혼마공으로 혼백을 태워 버렸기 때문이다.
다만, 그걸 흡수하지는 않았다.
왠지 그래선 안 될 것 같아서였다.
그녀가 살짝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을 때, 누군가가 그곳에 들어섰다.
사공예랑은 반사적으로 그쪽을 바라봤다.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힘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들어온 사람을 확인한 사공예랑의 눈이 커졌다.
“어?”
“너였구나.”
들어온 사람은 의선이었다.
벽태산에게 가고 있을 때, 이곳에서 제법 흥미로운 영력의 폭풍이 일어난 것을 느끼고 찾아온 것이다.
사공예랑은 의선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의선은 그런 사공예랑에게 물었다.
“증혼마공을 익힌 것이냐?”
“예.”
감출 필요가 없기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의선은 쓰러진 자들을 둘러보고는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이들의 혼백을 태웠느냐?”
“예. 쉽더군요.”
의선의 표정이 더욱 굳었다.
“혼백을 태우면 강력한 영력이 되지. 그걸 받아들였느냐?”
“버렸는데요?”
“버려?”
“예. 왠지 먹으면 탈 날 것 같아서요.”
의선이 그제야 표정을 풀고 빙긋 웃었다.
“잘했다. 하면 이제 어쩔 것이냐? 난 벽 공자를 보러 갈 건데, 같이 가겠느냐?”
사공예랑도 벽태산을 만나 물어볼 것이 있었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의선이 아쉬운 표정으로 사공예랑을 바라봤다.
“아까운 인재가 이렇게 가는구나.”
이제 증혼마공을 익혔으니 자신이 더 이상은 뭘 어떻게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 사공예랑은 온전히 벽태산의 것이 되었다.
두 사람은 객잔을 떠나 천마성으로 향했다.
그러자, 어딘가에서 하오문도들이 나타나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워낙 많이 하던 일인지라 일은 금방 끝났다.
하오문도 중 한 명이 조장에게 물었다.
“아까 싸우는 거 보셨습니까?”
“봤지.”
“끝내주더군요.”
“그래. 무섭더구나.”
가장 무서웠던 광경은 담장 위에 있던 사내들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아래로 툭툭 떨어지던 모습이었다.
그들은 사공예랑의 손짓 한 번에 일제히 즉사했다.
그건 오래전에 돌던 천마의 소문과 굉장히 닮아 있었다.
“정리 다 했으면 가자. 이번에 움직인 놈들 덕분에 그놈들 뒤를 잡았으니 그쪽도 싹 정리해야지.”
하오문도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한동안 천마신교가 좀 시끄러워질 것이다.
무명의 세작들이 그냥 잡혀주거나 죽어줄 리 없으니까.
하지만 그 소란이 지나고 나면 천마신교는 정말로 예전과 달라지리라.
많은 하오문도들이 바쁘게, 그리고 빠르게 천마신교 곳곳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진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끝
의선은 신기한듯 주위를 둘러보며 걸었다.
바로 옆에서 나란히 걷던 사공예랑이 의외라는 듯 그런 의선을 바라봤다.
의선이 사공예랑의 시선을 모를 리 없다.
“왜? 내 모습이 이상해서 그러는 게냐?”
“아뇨. 좀 의외이고 낯설기도 하고 그래서요.”
의선이 빙긋 웃었다.
“여기는 천마신교 아니냐. 아무리 나라도 천마신교에 방문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기회가 왔으니 잘 봐둬야지.”
“천마신교라는 이름만 붙었을 뿐, 똑같습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에요.”
사공예랑이 담담히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다들 무공을 좋아하고 익히고 있으며, 그 중 뛰어난 자들이 무사로 뽑혀간다.
그렇기에 전체적인 무력 수준이 상당히 높다.
그걸 제외하고는 다 똑같다.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고 서로 어울려 살아간다.
“그래. 네 말이 옳다. 하지만 내가 보는 건 그런 게 아니라 분위기와 문화다. 지역마다 또 어떤 사람들이 모였느냐에 따라 다 다르거든.”
그걸 보는 재미가 상당히 쏠쏠하다. 또한 다른 지역과 비슷한 점, 색다른 점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비교해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수백 년 동안 천하를 활보하던 의선의 소소한 취미 중 하나였다.
그런 의선에게 이곳 천마신교는 아주 좋은 장소였다.
평소에 와 보기 어려운 곳에 왔으니 그걸 전부 눈에 담아둬야 하지 않겠는가.
의선은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걸었다.
서두르지 않았다. 그래야 더 많은 것을 눈에 담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던 의선의 걸음이 딱 멈췄다.
사공예랑은 의아한 눈으로 의선을 바라봤다.
“어르신?”
의선의 시선은 한 곳에 꽂힌 채 고정되어 있었다. 사공예랑이 그 시선을 따라가니 기루가 보였다.
“천마신교에······ 기루가 있다니!”
사공예랑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기루만 있는 게 아니라 주루나 다루도 있어요. 아까 제가 있던 곳은 객잔이고요.”
심지어 전장과 표국까지 있었다. 물론 둘 다 천마성에서 직접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 전장과 표국은 천하 곳곳에 지부까지 있었다.
천마신교 소유라는 건 비밀이었지만,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천마신교 소유라는 걸 알면서 시비를 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설사 천마신교가 현천진에 갇혀 세상과 단절되었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그 정도로 천마신교에 대한 세간의 두려움은 굉장했다.
“궁금하구나.”
의선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걸어가면서도 좀처럼 기루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사공예랑은 신기한 눈으로 그런 의선을 바라봤다.
현천장에 있을 때도 의선이 천추신의 일당들과 기루에 다닌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얘기로 듣는 것과 이렇게 실제로 기루를 대하는 의선의 모습을 보는 건 전혀 달랐다.
의선 같은 사람이 기루에 집착하는 걸 보니,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두 사람은 기루가 있는 곳을 지나쳐 천마성으로 향했다.
* * *
벽태산은 자신의 방에서 지그시 눈을 감은 채, 감각을 확장하는 수련 중이었다.
이는 이 근방의 영맥을 찾기 위함이었는데, 하다 보니 제법 도움이 되어서 좀 더 집중하고 있었다.
벽태산의 감각은 천마신교를 넘어서 주변으로 계속 확장 중이었다.
이 수련에서 중요한 건 감각을 확장한다고 해서 감각이 흐려지면 안 된다는 점이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감각을 더 넓게 확장하는 것이 수련의 요체였다.
그러니 확장이 빠르게 이뤄질 수 없었다.
어느 순간에는 벽에 부딪힐 것이고.
그 벽을 깨는 것이 지금 하는 수련의 첫 번째 목표였다.
물론 아직 벽도 만나지 못했기에 갈 길이 좀 멀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한창 감각 확장 수련을 하고 있을 때, 익숙한 감각 몇 가지가 느껴졌다.
하나는 의선이었다.
영맥 찾으라고 시켰더니 그 일에 대해 할 말이 있어서 오는 모양이었다.
안 한다고 우기지는 않을 것이다. 의선도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
다른 하나는 사공예랑이었다.
한데 사공예랑 근처에 심상치 않은 놈들이 함께 있었다.
아마 기습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이 일을 주도한 건 당연히 혁련대호이리라. 딱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었다.
사공예랑 쪽은 걱정하지 않았다. 저 정도 놈들이 어떻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녹록한 아이는 아니니까.
다만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기에 눈을 떼지는 않았다.
만에 하나라도 사공예랑이 위험해지면 살짝 도와줘야 하니까.
싸움은 흥미로웠다. 그리고 마지막에 저들이 쓴 무기는 좀 놀랍기도 했고.
그 순간, 사공예랑이 증혼마공을 익혀버렸다.
재미있게도 벽태산이 딱 원하는 방향에 맞춰서 증혼마공을 익혔다.
그리고 혼백을 태웠지만 흡수하지 않았다.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재능도 뛰어나고 감도 좋다. 거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벽태산은 의선과 사공예랑이 만나서 함께 천마성 쪽으로 오는 걸 확인하고는 관심을 끊었다.
굳이 관심두지 않아도 조만간 이리로 올 것이다.
벽태산은 다시 감각의 확장에 집중했다.
야금야금 범위가 넓어졌다. 영력에 대한 지배력이 더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창 수련하고 있을 때, 의선과 사공예랑이 도착했다.
“수련 중인가보구나. 좀 기다려야겠다.”
의선이 사공예랑을 보며 말했다. 중요한 순간일 수도 있으니 방해해선 안 된다.
사공예랑 역시 아까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에 크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벽태산이 피식 웃으며 눈을 떴다.
하룻강아지가 호랑이 생각해주는 격 아닌가.
“됐다. 그런 건 이미 초월한 지 오래니까.”
벽태산은 먼저 사공예랑을 쳐다봤다.
“증혼마공을 익혔구나.”
“예.”
“넌 다른 천마와 다르다.”
벽태산의 말에 사공예랑이 충분히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 것 같습니다.”
“아무거나 막 주워 먹으면 안 된다.”
“그것도 알 것 같습니다.”
“당분간 날 따라다녀라. 적절한 방법을 알려줄 테니.”
“예.”
사공예랑은 기쁜 표정으로 대답했다.
벽태산이 자신을 신경 써주는 상황이 왠지 즐거웠다.
사공예랑과의 대화를 끝낸 벽태산은 의선을 쳐다봤다.
굳이 왜 왔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크흠. 뭐, 보낸 서찰 보고서 왔네.”
“내가 이리로 오라고 서찰을 보냈던가?”
의선은 또 헛기침을 했다.
“크흠, 크흠. 그러니까 그게 아니고, 협상을 하러 왔네.”
“협상? 당연히 해야 할 일에 무슨 협상을 한다는 거지?”
“내가 요즘 새로운 도를 개척하느라 아주 바쁘다네. 그러니 이번에 무명을 싹 정리하고 나면 십 년 정도 쉬고 싶은데······ 가능하겠나?”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십 년이면 질릴 것 같나?”
의선은 뜨끔했지만 최대한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그동안 너무 열심히 달렸으니 십 년 정도 쉬어야 새로운 도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일세.”
벽태산이 의선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불쑥 말했다.
“천추랑 너무 자주 놀지 마라.”
의선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그 친구랑은 만날 시간도 없는데 놀긴 뭘 놀겠는가. 난 요즘 혼자 노는 게 훨씬 즐겁네. 더 친해진 느낌도 들고······.”
말을 하다가 의선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뭐, 그렇다는 얘기일세.”
“지금도 쉬는 거 아닌가?”
벽태산의 말에 의선이 다시 시선을 원래대로 돌리며 정색했다.
“아니지. 영맥을 찾으려면 얼마나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하는지 아나? 그게 얼마나 고생스러운지······.”
“천하 곳곳을 다녀야 한다는 건 알지.”
“그러니까······.”
의선이 또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설파하려는 순간 벽태산이 말을 끊었다.
“영맥만 찾고 다닐 생각인가? 매일 노숙하면서? 이젠 안 그래도 될 텐데?”
의선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이제는 굳이 노숙을 할 필요가 없었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오랫동안 달릴 수 있다. 몇 차례 성장한 영력은 의선을 새로운 경지에 올려놓았다.
그러니 중간에 도시나 현, 작은 마을이라도 있으면 그곳을 거점 삼아 주변을 싹 탐색하고 다시 돌아와 잠을 잘 수 있다.
심지어 좀 노력하면 세 끼 밥도 그곳에서 먹을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과 굳이 생활이 달라질 것도 없지 않은가.
낮에 의술 활동을 하지 않고 탐사 활동을 한다는 것 말고는 말이다.
“어······ 그건 그렇지?”
벽태산은 더 첨언하지 않았다.
의선은 혼자 생각에 잠겨 몇 번이나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벽태산을 바라보며 감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덕분에 내가 크게 개안을 했네. 그래도 이왕 여기 왔으니 하루나 이틀만 있다가 가겠네. 그 정도는 괜찮겠지?”
“뭐, 그러든가.”
의선은 벽태산의 시선이 마치 자신의 속을 꿰뚫고 있는 것 같아서 또 슬그머니 눈을 돌려야 했다.
“내, 맡은 일은 아주 확실히 해놓겠네.”
의선은 그렇게 말하고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
사공예랑은 묘한 눈으로 의선의 뒷모습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