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39)
왠지 기뻐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녀는 다시 시선을 돌려 벽태산을 바라봤다. 의선에게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다. 자신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니까.
“나머지 후계자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사공예랑의 물음에 벽태산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냥 하던 대로 살 것이다.”
사공예랑의 눈이 커다래졌다.
“증혼마공을 익히게 그냥 두실 거란 말씀이십니까?”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그 아이들이 증혼마공을 익힐 수 있을 것 같으냐?”
사공예랑은 대답하지 못했다. 솔직한 판단은 절대 그럴 일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안 열었으면 십 년이 지나도 현천진은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 서늘한 시선으로 사공예랑을 보며 물었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사공예랑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저 시선을 받으니 추호도 거짓을 말할 수가 없었다.
“다들······ 몇 년 안에 죽을 것 같습니다.”
벽태산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이유는?”
“증혼마공을 제대로 익히지 못해서입니다. 주화입마 비슷한 것에 빠질 것 같습니다.”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님은 아니구나.”
감을 잡은 자들은 멈출 것이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미련이 남아 계속 시도할 것이다.
“넌 어찌할 생각이냐.”
증혼마공을 익혔다고 바로 천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제법 긴 절차를 따라야 한다.
하지만 결국은 천마가 될 것이고, 천마신교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들에 대한 처분 역시 사공예랑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사공예랑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그들의 선택에 맡기겠습니다. 하지만 혁련대호는 안 됩니다. 선을 넘었습니다.”
벽태산이 씨익 웃었다.
“그거야 당연하지. 환마 옆에 나란히 붙여둘 것이다.”
사공예랑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아마 그 어떤 벌보다 가혹할 것이다.
그 정도면 됐다.
벽태산이 사공예랑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오늘은 피곤할 테니 가서 쉬어라. 내일 일어나자마자 찾아와라.”
사공예랑이 정중히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자신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벽태산 덕분이었다.
살아남은 것도 벽태산 덕분이었고, 잘 지낼 수 있었던 것도 그렇다. 또한 이렇게 증혼마공을 익힌 것 역시 벽태산 덕분이었다.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벽태산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든가.”
아마 은혜를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사공예랑의 영력을 열어준 사람이 벽태산이니까.
사공예랑이 물러갔다.
그러자 잠시 후 화옥이 들어왔다.
그녀는 벽태산 앞으로 다가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보고했다.
“이번에 움직인 무명의 세작들과 연결된 자들을 전부 잡았습니다.”
“무명의 세작은 그걸로 끝인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잡힌 규모를 봤을 때, 남은 자들이 혹시 있다고 해도 몇 되지 않으리라 예상합니다.”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그냥 내버려 둬도 된다. 지속적으로 하오문도들이 천마신교 전체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불순한 움직임을 보일 때 잡을 수 있을 테니까.
“대충 할 일은 끝났구나.”
그러자 화옥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일단 혁련대호부터 잡을까요?”
“잡아다 환마 옆에 꿇려라.”
“예.”
화옥이 공손히 인사하고 물러갔다.
이제 다 끝났다. 사공예랑이 천마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가면 된다.
“누굴 같이 남겨야 하나······.”
사공예랑만 달랑 남길 생각은 없었다. 기반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그것도 여자가 천마 자리에 앉았는데 아랫사람들이 아무런 잡음 없이 잘 따를 리 없다.
더구나 사공예랑은 너무 어리다. 그러니 그녀를 적절히 도와줄 사람이 반드시 필요했다.
하오문도들이 다수 남으니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 천마신교를 이끌어가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다루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벽태산은 지그시 눈을 감고 다시 감각 확장 수련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누굴 남길지 고민했다.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갔다.
끝
“아니, 이게 누구야. 의선 어르신 아닙니까.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요즘 혼자서 아주 잘 나간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천추신의의 말에 의선이 헛기침을 했다.
“크흠, 크흠. 잘 나가긴 누가 잘 나간단 말인가. 그저 새로운 도의 길을 찾고자 여기저기 좀 돌아다닌 것뿐인데.”
천추신의가 음흉하게 히죽 웃었다.
“에이, 딴 데는 안 가시고 백화루만 가셨으면서. 백화루에 있는 모든 기녀를 다 한 번씩 겪어보겠다고 호언장담을 하셨다는 얘기는 지나가다가 들었습니다.”
의선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아니, 그건······.”
그냥 술김에 즐기다가 분위기 상 내지른 말이었다. 그때는 그런 말을 안 하면 좀 쪼잔한 사람이 되는 분위기였다.
그럴 때 있지 않은가. 좀 꺼림칙하기는 한데, 안 하면 곤란해지는 그런 것 말이다.
한데 대체 그걸 천추신의가 어찌 안단 말인가.
여기는 천마신교고, 그 일은 불과 얼마 전 무한에서 있었던 일인데.
“아무튼 이제 백화루만 파는 건 그만 두신 겁니까? 하긴, 그러니까 여기 오셨겠지.”
의선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왜 요즘은 이렇게 시선 피할 일이 많은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말이다.
“어떻게, 오늘도 혼자 노시렵니까?”
천추신의가 은근한 목소리로 묻자, 의선은 맹렬한 고민을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제는 혼자가 편했다.
그리고 그동안 기녀들에게 써먹었던 것들은 대부분 천추신의와 일침괴에게 배운 것들이기도 하다.
이들 앞에서 그동안 기녀들에게 써먹은 짓을 하기가 왠지 부끄럽고 꺼림칙했다.
하지만 여기서 혼자 놀겠다고 빠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그럴 수야 있나. 이왕 이렇게 만났으니 같이 놀아야지.”
“캬, 역시 의선 어르신은 의리가 있을 줄 알았다니까. 예전 어떤 배은망덕한 놈은 그냥 고개를 휙 돌리고 제 갈길 가지 않겠습니까?”
하마터면 배은망덕한 놈이 될 뻔했다. 의선은 천추신의에게 물었다.
“여긴 자주 와봤나?”
천추신의가 낄낄 웃었다.
“매일 와서 살았습니다. 우리가 할 일이 별로 없더라고요. 사실 천마신교는 의원이 가장 필요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의원이 필요 없다고?”
“다들 기본적인 치료는 하니까요. 워낙 험하게 살고 있으니 그 정도도 못하면 죽습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니 확실히 천마신교는 천마신교다 싶었다.
“그럼 여기 기녀들도······.”
천추신의가 다 안다는 듯 씨익 웃었다.
“에이, 여기 기녀는 좀 다르지요. 얘들이 어디 다칠 일이 있겠습니까? 그냥 이 일을 하다 보니 몸에 쌓이는 게 있을 뿐이지. 그리고 얘들 예뻐지는 거 좋아합니다.”
의선의 눈에서 순간 광채가 일어났다. 영력까지 담긴 광채에 천추신의가 흠칫 놀라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거 좋은 정보로군. 한데 안 들어가나? 이제 슬슬 놀 시간이 된 것 같은데.”
천추신의가 크게 웃으며 기루 쪽으로 양 팔을 쭉 내리뻗었다.
“자, 가시지요. 어르신께서 먼저 들어가셔야 우리가 따라갈 거 아닙니까.”
“그렇게 되나? 크흠, 크흠.”
의선이 당당하게 앞장섰고, 그 뒤를 천추신의, 일침괴, 소청명이 따라갔다.
한데 소청명은 함께 들어가지 못했다.
천추신의가 손을 들어 소청명이 못 들어오게 막았기 때문이다.
소청명은 의선을 만난 순간 이렇게 될 줄 알았기에 충격이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실망을 감출 수는 없었다.
“네가 생각해도 같이 들어가는 건 좀 아닌 것 같지?”
소청명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 있다가 가신단다. 그러니 이틀만 참아라. 그리고 쉬는 김에 의술 좀 공부하고. 요즘 너무 놀기만 하는 거 아니야? 그러다가 공자님께 불려간다.”
소청명이 그 말에 흠칫 놀라 천추신의를 바라봤다.
“혹시······ 뭔가 들으신 말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감이지 감. 지금 뒤통수 한구석이 아주 싸해. 이럴 때면 꼭 공자님이 부르시곤 했거든? 그러니 미리미리 대비해라.”
소청명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천추신의를 바라봤다.
과연 저 말을 믿어야 할지, 아니면 무시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저분한테 감이라는 게 있긴 했었나?’
언제나 걸릴 건 다 걸리고 입을 열심히 털어서 위기를 빠져나오곤 했던 것 같은데 말이다.
물론 그 입 때문에 굳이 안 해도 될 고생을 하기도 하지만.
아무튼 소청명은 기루에 갈 수 없으니 이 기회에 의술 공부를 더 하기로 결심했다.
어쨌든 명색이 의선의 제자인데, 어중이떠중이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소청명이 축 처진 어깨로 돌아서서 터벅터벅 걸어갔다.
천추신의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혀를 쯧쯧 찼다.
“하여튼 저런 놈들 챙기는 건 또 나밖에 없지.”
천추신의가 기루 안쪽에 신호를 줬다. 그러자 단장을 마치고 외출할 준비를 한 기녀가 한 명 쪼르르 나왔다.
기녀는 터벅터벅 걸어가는 소청명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분 따라가면 되는 건가요?”
“그래. 하오문도들이 술이랑 요리는 가져다줄 테니까, 넌 몸만 가면 된다.”
기녀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소청명을 따라갔다.
천추신의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는 기루로 들어갔다.
이렇게 의술 공부를 하겠다는 소청명의 결심은 찰나의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끝났다.
* * *
사공예랑을 천마의 자리에 올리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일단 증혼마공을 익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 증명은 현천진을 통해서 한다.
문제는 현천진이 망가졌다는 사실이었다.
벽태산이 강제로 부숴 버렸으니 진이 멀쩡할 리 없었다.
그래서 사공예랑을 천마로 만드는 일은 시작과 동시에 중지되었다.
현천진을 먼저 복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은 승도흥이 맡았다.
승도흥은 자신이 현천진을 복구해야 한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이건 진법가라면 누구든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자신이 감히 현천진을 복구할 수 있을지 걱정이 들었다.
다른 진법도 아니고 현천진이다. 모든 진법가들이 뽑는 고금제일진이 바로 현천진이었다.
사실 승도흥은 천마신교에 도착한 날부터 현천진에 달라붙어서 그것을 분석하고 있었다.
진법이 망가졌기에 오히려 분석하기는 더 수월했다.
진법을 자체적으로 보호하는 부분이 망가져서 속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분석하는 와중에 벽태산의 지시가 떨어진 것이다. 현천진을 완벽하게 복구하라고.
분석을 할 때는 그저 새로운 지식을 채우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지적 충만감을 만끽하기만 하면 됐다.
한데 임무가 떨어지고 나니 그렇게 마음 편히 즐길 수가 없었다.
과연 이걸 자신이 복구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의심이 들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벽태산이 시켰는데 해내야지.
이걸 못하면 사공예랑이 천마 자리에 앉지 못한다는데 어떻게 포기하겠는가. 무슨 수를 써서든 해낼 것이다.
“그나저나 천마라니, 대단하네.”
승도흥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공예랑과는 무한에서 천마신교로 오는 동안 제법 자주 얘기를 나눴다.
승도흥이 보기에 사공예랑은 그냥 평범한 여자였다.
한데 그런 여자가 천마라니. 잘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해내고야 만다.”
승도흥은 집중해서 현천진을 분석했다.
현천진은 예상했던 대로 영력을 쓰는 진법이었다. 한데 그냥 영력이라고 하기에는 그 힘이 너무 강했다.
이 정도 힘을 내려면 이곳의 영맥에서 뽑아내는 영력만으로는 결코 유지할 수 없었다.
심지어 분석하다보니 이곳의 영맥에서 솟아나는 영력을 많이 갖다 쓰는 것도 아니었다.
이 정도면 그저 이 진법을 유지할 정도의 힘밖에 되지 않는다.
승도흥은 분석하고 또 분석했다.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그렇게 꼬박 사흘 밤낮을 집중한 끝에 현천진의 근본 원리를 알아냈다.
현천진은 애초에 천마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진법이었다.
어쨌든 파악이 끝났으니 이제 진법 자체를 고치는 건 시간 문제였다.
* * *
“아직도 안 갔나?”
벽태산이 의선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의선이 흠칫 놀라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리고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아니······ 그래도 예랑이 천마 되는 건 보고 가야 할 것 같아서 기다렸지. 설마 이렇게 시간이 걸릴 줄 내가 알았나.”
“언제부터 그리 친했다고.”
“기간이 중요한가? 얼마나 깊은 교감을 나눴느냐가 중요하지.”
그 말에 벽태산이 의선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그 눈빛에 담긴 뜻을 눈치챈 의선이 펄쩍 뛰었다.
“날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 예랑이랑은 아무 일도 없었어! 그냥 기특해서 무공 좀 봐준 것뿐이라고! 대체 날 뭐로 보는 건가!”
벽태산은 피식 웃고 의심을 지웠다.
예전이라면 이런 생각 자체를 안 했을 것이다. 의선이 그럴 리 있겠는가.
하지만 요즘은 좀 다르다. 기루를 집처럼 쓰고 있지 않은가.
그 돈을 내는 것이 현천장이다.
그러니 지금 의선은 벽태산의 돈으로 기루에서 놀고 있는 셈이었다.
의선이 벽태산에게 약해질 수밖에 없는 자그마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리고 예랑이는 내가 흑심을 품는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아이가 아닐세. 이미 마음에 둔 사람이 있네.”
“별 얘기를 다 했군.”
“원래 의원이 오랫동안 진료를 하다보면 별 얘기를 다 하는 법일세.”
벽태산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의선과 사공예랑이 제법 친해진 모양이었다.
천마와 의선이 친해지다니. 사실 정말 어울리지 않는 조합 아닌가.
“한데 안 궁금한가?”
의선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