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40)
“뭐가?”
“예랑이가 반한 사내 말일세. 예랑이처럼 예쁘고 재능 있는 아이가 반한 사내인데, 당연히 궁금하겠지.”
벽태산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됐다. 필요 없으니 가서 승도흥이나 도와라. 천마 빨리 만들고 싶으면.”
의선은 말하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지만, 벽태산은 전혀 들을 생각이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후우. 알았네. 하여간 사람이 메말랐어.”
의선은 휙 돌아서서 일부러 소리를 내며 걸었다.
벽태산은 살짝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의선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나이가 몇인데 저런단 말인가.
“하여간 나이 먹고 똑바로 된 사람은 지금까지 나 말고는 본 적이 없는 것 같군.”
* * *
의선은 벽태산을 만나고 나와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허락을 받고 나니 마음이 너무나 가벼워졌다.
사실 하룻밤만 자고 바로 떠나려고 했다.
천마신교의 기루는 어떤지 겪어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한데 그럴 수가 없었다.
천마신교의 기루는 특별했다.
기녀들이 전부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살상이 가능한 무공을 비롯해서, 무공을 이용한 방중술, 주안공 같은 것들을 어찌나 열심히 수련했는지 의선에게 다양한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게다가 천마신교의 거친 사내들을 다뤄야 하기에 애교나 사람 다루는 기술이 대단했다.
그러니 어떻게 하루로 만족한단 말인가.
마침 사공예랑의 일정이 미뤄지면서 자연스럽게 더 머물 수 있는 핑계가 생겼다.
“그래도 예랑이 일이 더 중요하지.”
그러니까 이렇게 승도흥에게 협조하러 가는 것 아니겠는가.
의선의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마음이 급했다. 승도흥을 얼른 도와주고 오늘도 그 특별한 기루에 가야 하니까.
* * *
현천진이 완성되었다.
승도흥은 완벽하게 현천진을 복구했다. 아니, 완벽을 넘어섰다.
현천진을 거기서 더 개량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 사공예랑이 천마가 되는 의식을 시작할 수 없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 문제 때문에 지금 이곳 현천진의 중심에 벽태산이 와 있었다.
승도흥은 열심히 벽태산에게 설명했다.
“그러니까 현천진을 힘으로 부수면서 현천진에 보관되어 있던 영력들이 전부 날아가 버린 겁니다.”
현천진에 보관되어 있던 영력은 다름 아닌 역대 천마들이 가지고 있던 영력이었다.
천마 한 명이 죽을 무렵에 품고 있는 영력의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 영력들이 고스란히 현천진에 담긴 것이다.
그러니 그 거대한 진법을 십 년이 넘게 유지할 수 있는 것이고.
본래는 자연스럽게 천마가 등장해 현천진을 이어받으면서 영력이 상당부분 보존된다.
한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현천진을 이루고 있던 영력은 전부 소멸해 버렸다.
그러니 새로 채워야 한다.
만일 그러지 않고 이걸 사공예랑이 작동시키면, 사공예랑이 모든 영력을 현천진에 빼앗기고 말라 죽을 것이다.
벽태산은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을 확인했다.
“이걸 처음 만들었을 때는 어떻게 했는지 아느냐?”
“제가 알아보니 초대 천마가 희생 하셨습니다.”
벽태산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걸 보고 화들짝 놀란 승도흥이 맹렬히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공자님께 희생해 달라고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그저 해결책을 함께 궁리해보고자······.”
“비켜봐라.”
벽태산이 한 발 앞으로 나서자 승도흥이 후다닥 옆으로 비켜섰다.
승도흥 뒤에는 허리쯤 오는 기둥이 하나 박혀 있었다.
수정으로 만들어진 기둥이었는데, 보통 수정 기둥은 아니었다. 기둥 내부에 영력이 흐르고 있었다.
천마가 되려면 이 수정 기둥을 잡고 증혼마공을 일으키면 된다.
벽태산은 수정기둥에 손을 올렸다.
그걸 본 승도흥이 기겁했다.
“고, 공자님! 그러시면······!”
벽태산이 증혼마공을 일으키면 현천진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벽태산의 영력을 현천진이 남김없이 빨아먹을 것이고.
하지만 승도흥이 말릴 틈도 없이 벽태산이 영력을 일으켰다.
벽태산은 수정 기둥을 통해 영력을 넣어 현천진을 샅샅이 살펴봤다.
영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대충 가늠이라도 해보려는 것이었다.
승도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분명히 벽태산이 손을 올리고 증혼마공을 일으켰는데, 현천진이 전혀 반응을 하지 않았다.
“내, 내가 뭔가 실수라도 했나?”
이럴 리가 없었다.
승도흥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벽태산이 기둥에서 손을 뗐다.
벽태산은 눈살을 찌푸리며 승도흥을 쳐다봤다.
“더럽게 많이 필요하구나. 이걸 초대 천마가 다 채웠다고?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놈이야?”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정은 당분간 연기해야겠다. 영력 구해와야지.”
벽태산은 그 말을 남기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승도흥은 그런 벽태산에게 차마 현천진을 작동시키기 위한 영력은 그렇게까지 많이 필요치 않다는 걸 말할 수 없었다.
초대 천마는 여기를 가득 채운 것이 아니라 일 푼 정도를 채웠을 뿐이다.
나머지는 그 이후 천마들의 영력을 통해 차곡차곡 모인 것이고.
“그나저나 대체 어디서 어떻게 영력을 구해 오신다는 거지?”
그리고 대체 어떻게 현천진을 작동시키지 않고 내부를 확인했는지도 궁금했다.
승도흥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차피 벽태산이 평소 하던 대로 그냥 했을 뿐 아닌가.
“공자님이잖아.”
승도흥은 그렇게 납득해 버렸다.
끝
높은 봉우리로 둘러싸인 곳, 무명의 본거지는 고요했다.
최근 밖으로 이어지던 모든 것을 단절한 상태인지라 사기가 말도 안 되게 떨어졌다.
그래서 대부분 말도 잘 안 하고 묵묵히 할 일만 했다.
수련하는 사람이 많았다.
아무리 이런 상황이 되었다고 해도 무기력하게 늘어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되는 순간 죽을 테니까.
세상과의 단절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지 모르기에 다들 불안한 심정이었다.
아무리 이곳이 천혜의 환경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버틸 수 있는 기간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무명의 주인은 평소에 본거지를 둘러싼 봉우리 중 가장 높은 곳에서 지냈다.
그 봉우리에는 다른 어떤 노인들도 들어오지 못한다. 오직 무명의 주인 혼자 쓰는 봉우리였다.
이유는 이 봉우리 역시 영맥이었기 때문이다.
이 봉우리의 영맥은 무명의 주인이 독점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도 알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무명의 주인은 강하기도 하지만 잔혹하며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자였으니까.
무명의 주인은 봉우리 깊은 곳까지 뚫린 동굴의 끝에 누워 있었다.
이곳이 바로 봉우리에 형성된 영맥의 중심이었다.
모든 영력이 이곳에 모였다가 흩어진다.
무명의 주인은 그곳에 누워 영력을 차분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잊었다. 대신 전대 무명의 주인으로부터 물려받은 별호가 있었다.
혈마.
역대 무명의 주인은 모두 혈마라는 별호를 받는다.
천하에서 진정한 혈마는 오직 무명의 주인뿐이었다.
예전 혈마라 칭하는 자들이 몇 번 나타나긴 했지만, 그들은 혈마라는 이름조차 아까울 정도로 수준 낮은 놈들이었다.
물론 진짜 혈마 입장에서나 그렇고 실제로는 무림에 큰 혈겁을 일으킨 잔악무도한 강자들이었지만.
혈마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여기서 수련을 한 지도 제법 오래 되었다.
역대 혈마들에게는 반드시 이뤄내야 할 목표가 있었다.
그것은 무명이라는 조직의 목표이기도 했다.
무명의 목표는 오직 하나, 천마신교를 지우고, 무명이 천마신교가 되는 것이었다.
조직의 이름을 무명이라 지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 조직에 정해진 이름은 오직 하나 천마신교뿐이었다.
그 이름을 얻기 전에 붙일 이름 따위 없었다. 그래서 무명이었다.
무명을 세운 초대 혈마는 천마신교 출신이었다.
그것도 천마가 되기 위해 후계자 경쟁을 하던 자였다.
경쟁에 실패했고, 증혼마공을 익히는 것도 결국 실패했다.
하지만 아예 실패한 건 아니었다. 어설프게나마 영력을 깨우는 데 성공했으니까.
그는 천마신교에서 도망쳐 나왔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아마 숙청되었을 것이다.
역대 천마들이 후계자들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 다들 비슷했으니까.
밖으로 나온 혈마는 천하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혈벽을 발견했다.
혈벽은 금벽이나 옥벽, 검벽과 마찬가지로 역대 천마 중 누군가가 밖으로 나와 자신의 성취를 자랑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혈마는 혈벽으로부터 새로운 마공을 익혔다. 그것은 거짓말처럼 혈마에게 딱 맞았다.
마치 혈마를 위해 만든 무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혈마는 그것을 충분히 수련한 후, 조금씩 개량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혈령마공이었다.
그것은 증혼마공과 닮았지만 증혼마공이 아니었다.
혈령마공을 익힌 혈마는 강한 욕망에 휩싸였다.
자신이 결국 해내지 못한 것, 천마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천마신교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가진 욕망은 닿을 수 없는 신기루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무명을 만들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하면 후대에서라도 이룰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혈령마공에는 큰 가능성이 있었다.
적어도 혈마가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초대 혈마가 한 것은 무명의 역사를 시작한 것이 가장 컸다.
제대로 된 무명의 체계는 그 이후 삼 대에 걸친 혈마가 대를 이어서 완성해 나갔다.
그 와중에 현재 무명의 본거지가 있는 곳, 그러니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한 영맥을 발견했다.
주저하지 않고 이곳에 본거지를 만들었다.
근처 봉우리에 본거지만큼은 아니지만 웬만한 영맥은 압도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영맥이 있다는 것은 본거지를 완성한 이후에 발견했다.
그곳을 혈마의 거처로 삼았다.
지금 혈마가 있는 곳은 이후에 제대로 영맥을 이용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굴을 뚫어서 만든 장소였다.
아무튼 그것이 무명의 역사였다. 그 이후 옥벽이나 검벽을 찾아낸 것은 혈령마공의 개량에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였다.
혈령마공에도 심각한 문제점이 있었으니까.
역대 혈마들은 무명을 세운 초대 혈마의 뜻에 충실히 따랐다.
그 목표를 두고 열심히 달렸다.
하지만 당대 혈마는 조금 생각이 달랐다.
굳이 왜 천마신교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그냥 천마신교의 힘을 넘어서서 모조리 박살을 내버리면 된다.
천마신교를 없애 버리고, 무명을 자신이 마음에 드는 이름으로 바꿔버리면 된다.
무명의 시작이었던 초대 혈마가 아닌, 새로운 조직의 시작이 바로 자신이 되는 것이다.
혈마는 천천히 동굴을 나섰다.
이제부터 역대 그 어떤 혈마도 못했던 것을 할 차례였다.
이걸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를 거쳤는지 모른다.
그는 산에서 내려가 혁련가로 향했다.
혈마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혁련가주가 부리나케 달려가 그를 맞이했다.
혈마는 혁련가주가 인사도 하기 전에 말했다.
“가서 준비한 것을 가져오너라.”
혁련가주가 살짝 망설였다. 하지만 상대는 혈마, 무명의 주인이다. 그를 거역할 수는 없었다.
혁련가주의 지시에 혁련가 무사들이 분주히 움직이더니 새까만 관 하나를 가져왔다.
혈마는 자신의 앞에 놓인 관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탄탄한 체격의 청년이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시체는 아니었다. 가사 상태에 빠져 있긴 하지만 분명히 살아 있었다.
혈마는 청년의 몸을 꼼꼼히 확인했다. 그리고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혁련가야. 준비를 아주 잘 했구나. 고생 많았다.”
혈마의 말에 혁련가주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솔직히 미친 듯이 아깝긴 했다. 이 청년은 혁련가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재료였다.
이 재료를 이용해 반강시를 만든다면 한계를 초월할 수 있을 것이다.
수백의 반강시를 합한 것보다 더 강한 반강시를 만들 수 있는 재료가 혈마의 손에 넘어갔으니 어찌 아깝지 않겠는가.
“아까운 모양이구나.”
혁련가주가 화들짝 놀라 얼른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럴 리 있겠습니까. 애초에 욕심도 없었습니다. 어르신께서 지시하신 일을 이행한 것에 불과한데, 제가 무슨 염치로 욕심을 내겠습니까.”
이걸 만들 때 혈마의 지식과 힘이 상당히 들어갔다. 그게 아니었다면 절대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혈마가 피식 웃었다.
“이 모든 일은 나중에 보답을 받을 것이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숨어 살 것 같으냐.”
그 말에 혁련가주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요동쳤다.
무명을 세상 밖으로 꺼내겠다는 뜻 아닌가. 한데 과연 그래도 될까?
“앞으로 우리는 예전과는 좀 많이 달라질 것이다.”
혈마는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서서 혁련가를 나섰다. 혈마의 뒤로 새까만 관이 허공에 둥둥 떠서 따라갔다.
혈마는 그 이후 심가와 악가에도 들러 무언가를 하나씩 받아갔다.
심가에서 받은 것은 옥으로 만든 거대한 판이었다.
두께가 몇 뼘이나 될 정도로 두꺼웠는데, 전체에 입체적인 문양이 조각되어 있었다.
악가에서 받은 것은 거대한 통을 가득 채운 피였다.
그냥 피가 아니라 특수한 약을 먹이고 특수한 과정을 거친 자들의 몸에서 뽑아낸 피였다.
그렇게 뽑아낸 피의 양은 혈마가 혼자 들어가 목욕을 몇 번이나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았다.
당연히 금방 준비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세 가문이 각각의 재료를 준비한 기간은 거의 십 년에 육박했다.
그 모든 재료를 받은 혈마는 다시 산으로 돌아갔다.
이제부터 중요한 일을 시작할 것이다.
동굴로 돌아온 혈마는 옥으로 만든 판을 중심에 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관에 있던 청년을 눕혔다.
“아주 잘 만들었군.”
청년의 몸은 기대 이상이었다.
철저하게 관리해 육체를 만들고 단전을 만든 몸이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영맥에 둬서 영력에 민감한 감각을 강제로 새겨 넣었다.
이제부터 이 몸을 더욱 제대로, 아주 특별하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