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62
종장(終章) (1)
정도 무림인들은 송삼현과 독고룡이 일으킨 천재지변(自然災害)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하늘을 뒤덮은 강기.
비같이 쏟아지는 검격과 태풍같이 하늘로 솟구치는 강기.
그것들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소용돌이가 되어 천지를 흔들었다.
신비로웠다.
먹구름과 온갖 사특한 기운이 껴 그토록 어두웠던 하늘이 일순간 밝아졌다.
송삼현의 검격과 독고룡이 내뿜은 기운이 충돌하면서 생긴 거센 돌풍이 정도 무림인들을 덮쳤다.
쿠구구구구구구궁.
“끄윽.”
서 있는 것도 버거운 거센 바람.
그렇게 돌풍이 지나가고 나서야 그들의 눈에 보였다.
송삼현이 독고룡을 벤 광경이.
“…..”
하늘에서 벌어진 광경을 본 구창룡은 말을 잇지 못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늘에서 내려온 악귀인 천마.
중원을 공포에 몰아넣은 그가 목이 베여 죽었다는 것이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몸이 떨렸다.
기쁨에 떨리는 거였다.
“백의검룡이 악귀를 벤 것인가? 정녕?”
와아아아아아아!
일제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독고룡의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고 허공에서 의식을 잃고 떨어지는 송삼현을 보자 구창룡은 곧바로 신형을 날렸다.
모든 내공을 발에 집중한 뒤, 단숨에 거리를 좁히며 땅으로 곤두박질치기 직전인 송삼현을 품에 안아 땅에 안착했다.
“일어나보거라! 삼현아! 삼현아!”
구창룡이 다급히 말하고 있을 때, 송우태를 비롯해 모든 이들이 신형을 날리며 다가왔다. 그리고 바닥에 눕혀진 송삼현의 몸이 한 눈에 들어왔다.
“……”
가까이서 보니, 멀리서 보지 못했던 것까지 상세히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입을 틀어막은 채,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침묵 속에서 먼저 운을 뗀 것은 송삼현의 아버지인 송우태였다.
“어찌···. 이렇게 될 동안···.”
너무나도 처참했다.
오른팔이 잘리고 진즉에 죽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의 중상이었다. 이런 몸으로 그런 무학을 발휘하며 싸웠다는 것에 울컥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송우태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고 사월향은 눈물을 흘리며 송삼현의 상태를 살폈다.
“대협···.”
입고 있는 옷은 너덜너덜해졌고 온몸을 난도질당한 것 같이 벌어진 상처.
피 칠갑한 몰골.
점차 숨소리가 약해지자 사월향은 떨리는 손으로 맥을 짚으려고 했다.
그때.
탁.
사월향의 손을 누군가가 잡아챘다.
“조, 조모님···.”
“뒤로 물러나거라, 그리 떨리는 손으로 무슨 맥을 보겠다는 것이냐.”
눈물을 훔치며 옆으로 비키는 사월향의 어깨를 토닥인 뒤에 다가가 맥을 짚었다.
“….”
약해졌다.
죽어가는 사람의 맥이었다.
천하봉선은 맥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확인했다.
이제 막 시작된 거라면 살릴 수 있었다.
허나.
죽어가는 사맥은 막 시작된 게 아니라 이미 전신의 절반을 휘감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이미 싸울 때부터 조짐이 있었다는 것인데 송삼현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죽음을 각오했던 것입니까.’
그 뜻은 즉, 죽음을 각오하고 독고룡과 결전을 벌였다는 걸 의미했다.
“어떻소! 살릴 수 있는 거요?”
구창룡의 다급한 말에 모두가 천하봉선의 입에 집중했다. 하지만 말이 바로 나오지 않고 표정이 어두워지자 가슴이 철렁하고 무너져내렸다.
“…. 사맥(死脈)입니다. 막 들어선 거라면 어찌해보겠으나 사맥이 뛴 지 오랜 시간이 지나 벌써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그렇다는 건?”
“죽을 것을 각오하고 마지막까지 악귀와 싸운 것이지요.”
죽기 직전인 사람도 의술로 살릴 수 있다는 신의(神醫)인 천하봉선의 입에서 나온 말은 ‘살리지 못합니다.’였다.
오른팔이 잘린 채, 축 늘어진 송삼현을 본 송우태는 망연자실했다.
덥석.
송우태는 떨리는 손을 뻗어 송삼현의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더는 온기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천하 삼 대 장원에서 어느덧 천하제일의 장원으로 우뚝 선 금호장의 장주지만, 아들의 죽음 앞에서 떨릴 수밖에 없었다.
“…. 어서 일어나보거라, 삼현아. 너에게 못 해준 것만 산더미처럼 많은데 이리 보낼 순 없다···. 제발···. 네가 이렇게 가면 난 어찌 산단 말이더냐. 눈을 떠보거라, 평생 이 아비를 욕해도 좋으니, 제발···.”
뚝.
눈물이 떨어졌다.
눈물을 흘리는 송우태를 보고 누구도 말을 하지 못했다.
감히 누가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을 이해하겠나.
그리고 인연이 있던 후기지수들도 다가왔다.
남궁효우, 팽도형, 모용두, 그리고 당수향을 비롯해 여협들도 송삼현의 몰골을 보곤 말을 잇지 못했다.
“……”
“흑.”
“어찌···. 이런 일이.”
“흑···. 흑···.”
송삼현이 운설산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제가 죽더라도 이곳에서 승리한다면 독고룡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겁니다.’
‘이 일이 무사히 끝난다면 매형, 당 소저, 제갈 소저, 팽 형님, 팽 소저, 모용 형님, 그리고 다른 후기지수분들도.’
씩.
‘또 이렇게 차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이 생전에 나눈 마지막 대화라는 것이 너무 슬펐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강호를 구한 영웅의 마지막이 이리도 허망하다는 걸 믿고 싶지 않았다.
“처남.”
남궁효우는 눈물 범벅이 되었음에도 송삼현의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리 가면 내가 부인의 얼굴을 어찌 보나.”
송삼현을 가장 아끼는 송연화의 얼굴이 떠오르자 송우태는 다시 한번 울컥했다.
금호장에 있을 때도 송삼현의 어머니만큼이나 송삼현을 알뜰하게 챙긴 심성이 고운 아이가 아닌가.
“부인은 매일 같이 처남 걱정에 잠을 설치는데 처남이 이리 가면 부인이 받을 충격이 얼마나 크겠어.”
덥석.
“그러니 훌훌 털어내고 일어나게, 이곳에 있는 모두를 구하고 강호를 구한 영웅이···. 이리 찬 바닥에서 누워만 있으면 되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온기가 전혀 없고 맥도 뛰지 않는 것 같았다.
우는 그들 사이로 사월향은 울먹이며 차가워지는 송삼현의 손을 잡았다.
온기는 없었다.
죽은 사람 같았다.
“대협···. 일어나보세요. 이제 다 끝났습니다. 그토록 참혹했던 전쟁이 드디어 끝났단 말이에요.”
“…..”
“저랑 약조하셨잖아요. 다치지 않고 돌아오겠다고···. 한데···. 한데 이게 무슨 모습이십니까···. 네? 일어나셔서 대협이 구한 세상을 보셔야지요. 이리 죽기엔 너무 이른 나이지 않습니까! 흑···. 흑···.”
절절한 목소리에 모두가 감정을 이입하며 눈물을 흘렸다.
꿈틀.
그때였다.
멀리서 검은 무언가가 기어 오고 있었다. 다들 당황해 그것을 경계했다.
혹시 죽고 나서야 진짜 악귀가 된 독고룡이 아닐까 하고 경계하는 것도 잠시, 그것들의 정체를 확인한 제갈귀호가 말했다.
“부서진 신물?”
“… 이것들이 신물이란 말이냐?”
“예. 신물이 아닌 이상, 이렇게 의지를 갖고 움직이는 물건은 없지요.”
그건 귀혼편과 귀혼갑의 조각들이었다.
독고룡의 손에 산산이 부서졌으나 신물의 파편들은 살아있는 것처럼 기어 왔다. 그리고 몇몇 파편은 잔해 속에 있는 송삼현의 떨어진 팔을 주워서 절단 부위에 가져다 댔다.
스르르르르륵.
신물은 절단 부위와 팔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부서지며 온전하지 않았으나 신물이 보여주는 행동에 누구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서서히 절단 부위가 붙기 시작했고 귀혼갑의 파편은 송삼현의 몸 일부분을 휘감았다.
지켜보는 이들은 살면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광경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신물이?
진짜 저렇게 한다고?
몰라 나도 처음 보는 건데 어떻게 알겠어.
몇 번의 꿀렁임.
그러나 산산조각이 난 신물로 완벽히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때였다.
툭.
기다란 침을 꺼낸 천하봉선은 송삼현의 몸에 흐르는 혈을 확인한 후, 단번에 시침을 했다.
‘신물의 기운이 몸에 스며들어 부서지기 직전인 단전을 재건해주고 있다.’
그렇게 몇 번의 시침을 더 하자 내상을 다스리던 신물은 오른쪽 팔을 이으려는 신물에게 가 합쳐졌다.
천하봉선의 신묘한 침술과 신물의 회복 능력이 합쳐지자 깜깜했던 어둠 속에서 바늘구멍과도 같은 길이 생겨났다.
‘사맥이 풀리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면!’
아무리 좁은 길이라도 수많은 죽음을 목도하고 살려왔던 천하봉선의 눈을 피하지 못했다.
시침 후, 진맥을 하던 손을 내려놓고 사월향에게 손을 뻗었다.
“월향아! 심향단(沁香丹)! 어서!”
“길이 보이셨습니까?”
“미세하지만 길이 생겼다! 백의검룡은 산다! 내가 반드시 살게 할 것이다!”
심향단은 천하봉선이 천하의 약재를 조합해서 만든 신단이었다. 먹으면 죽기 직전인 사람도 팔팔해진다는 명약으로 부르는 게 값이라 그 수도 많지 않았다.
천 가지의 약재를 품은 붉은 색의 단.
그것을 본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살릴 수 있는 겁니까?”
구창룡의 물음에 천하봉선은 송삼현의 상태를 살피며 말했다.
“지금은 뭐라 확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우선 치료를 시작한 후에 알려드리겠습니다.”
“…….”
구창룡은 말이 나올 뻔한 걸 억지로 참아냈다.
천하봉선이 집중하고 있으니 지금 말을 거는 게 폐라고 생각한 거였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천하봉선의 신들린 의술과 그 옆을 완벽하게 보좌하는 사월향에게 시선을 빼앗겨 숨소리를 줄인 채, 계속 서 있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다.
백의검룡 송삼현이 깨어나기를.
“이 주위로 천막을 친다.”
화르르르륵.
제갈귀호는 조용히 사람들을 시켜 송삼현이 있는 곳에 천막을 세우고 주위에 모닥불을 피웠다.
추운 냉기를 몰아내고 온기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한 시진.
두 시진.
시간이 길어졌고 천하봉선과 사월향의 얼굴에선 땀이 비 오듯 떨어졌다.
그러나 손은 쉬지 않았다.
간절했다.
송삼현을 어떻게든 살리겠다는 그녀들의 간절함에 신물도 응해줬고 송삼현의 창백했던 혈색이 살짝 돌아왔다.
허나 아주 미세한 차이라 천하봉선과 사월향만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조모님.’
‘그래, 백의검룡은 산다.’
한 식경의 시간이 지나자 거의 들리지 않던 숨소리도 이제 어느 정도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들릴 정도였다.
소리를 들은 송우태를 비롯해 모두의 표정이 밝아졌다.
“사, 삼현아!”
송우태가 다가오는 것을 사월향이 막았다.
“아직이요. 사맥이 풀리며 맥이 돌아오긴 했지만, 아직 내상과 외상이 심합니다.”
“…..”
“조모님의 집중을 흩트려선 안 됩니다. 지금 하시는 일이 치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부탁드립니다.”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워낙 내상과 외상이 극심해 간신히 치료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려놓은 게 전부였다.
이제는 심향단을 몸속으로 스며들게 하고 막히고 얽힌 기맥을 풀어 내공을 순환시켜야 했다.
스르르르르르륵.
사월향이 송삼현의 몸을 일으켰고 천하봉선의 손이 송삼현의 등에 닿았다.
내공을 주입해 안에서 심향단을 녹여 그 기운을 퍼트렸다.
천 가지의 향을 품은 신단답게 주위로 여러 향이 퍼졌다.
그렇게 얽힌 기맥을 뚫으려고 했으나 생각보다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토록 망가지다니···. 대체 무슨 싸움을 했기에.’
맥을 안정시키긴 했으나 좋지 않았다. 남아있는 내공도 소모되어 정신을 잃은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천하봉선의 눈앞으로 손 하나가 나타났다.
“내공을 흘리는 것은 내게 맡겨주시오.”
구창룡이었다.
“신단을 녹이는 거라 제 내공이 적합합니다.”
“….. 그러면 뒤에서 도와도 되겠소?”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이오.”
“그러면 부탁드리겠습니다.”
구창룡은 천하봉선의 뒤로 가서 등에 손을 댔다.
“매, 맹주!”
제갈귀호는 기겁했다.
한 사람이 내공을 다른 사람의 몸으로 주입하는 것도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일인데 두 사람이 같이 한 사람의 몸으로 주입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내공이 조금이라도 틀어졌다간 세 사람이 동시에 주화입마에 빠져 폐인이 될 위험도가 너무 높았다.
이 사실은 무학을 익힌 이들이라면 기본적으로 아는 내용이라 다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렇게 다시 반 시진이 지나갔다.
두 사람의 내공이 한데 어우러져 송삼현의 안에 있는 신단을 완전히 다 녹였고 그로 인해 흐름이 막히며 얽힌 기맥도 뚫어냈다.
마지막 한 방울의 내공까지 쥐어짠 천하봉선은 혼절했고 구창룡은 간신히 의식의 끈을 부여잡았다.
“조, 조모님!”
“맹주님!”
“난 괜찮으니, 천하봉선을 살피시오.”
사월향이 천하봉선을 살폈고 다행히 주화입마가 아닌 혼절한 것뿐이라 쉬기만 하면 됐다.
천하봉선을 눕힌 뒤, 몇 군데 시침을 한 사월향은 흐르는 땀을 닦으며 송삼현을 바라봤다.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이제는 송삼현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면 됐는데 일 각이 지나자.
“쿨럭.”
의식이 없던 송삼현이 검은 피를 토해냈다.
그리고선 감겼던 눈이 스르르륵 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