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161
천지개벽(天地開闢) (4)
두 사람이 서 있는 봉우리만이 남은 채, 웅장했던 운설산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송삼현은 신물을 희생하며 가까스로 공격을 막아내긴 했지만, 여풍으로 인해 옷이 찢기며 너덜너덜해졌다.
‘두 번 맞았다간 죽겠군.’
광오한 기운을 머금은 초식.
아직도 손이 떨렸다.
다행인 점은 독고룡도 내공 소모가 극심해 그 초식을 계속 쓸 수 없다는 거였다.
“후우.”
송삼현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호흡을 내뱉었다.
그 주위로 내공이 흘러나오며 푸른 연기가 되어 몸을 휘감았다.
휘이이이이잉.
눈보라가 거세게 불며 독고룡이 있는 곳까지 시야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기척이 온 신경을 통해 느껴졌다.
‘온다.’
독고룡의 신형이 사라지며 송삼현이 서 있는 봉우리를 천마회격으로 베어버렸다.
봉우리가 반으로 갈라지며 쓰러졌고 송삼현은 허공으로 도약하며 피한 뒤,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천무 6식 검뢰.’
다섯 갈래의 검강이 독고룡의 사각에서 들어갔고 독고룡은 몸을 비틀며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그 중, 네 갈래의 검강을 피했으나 하나의 검강이 비틀리며 독고룡의 등에 꽂혔다.
하지만 큰 피해를 주진 못했다. 독고룡은 오히려 등을 밀어주는 검뢰의 힘을 역이용해서 송삼현에게 도약했고 손을 쭉 뻗었다.
‘천마흑룡장.’
왼쪽에서 가운데로 들어오는 경로.
검뢰의 힘을 역이용해서 보다 빠르게 목으로 향했고 송삼현은 그것을 보고 반응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검막으로 막았으나 거대한 힘에 송삼현은 그대로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검을 땅에 꽂고 멈춰 섰고 다른 인기척이 느껴졌다.
앞이 아닌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뒤를 돌아봤는데 여러 사람이 있었다. 눈보라 속에서 보인 얼굴은 아는 얼굴들이었다.
“….. 여기까지 왜 오셨습니까?”
곽수환을 비롯해 남궁효우, 사월향 일행이었다.
그들은 운설산이 사라지는 것을 보곤 말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굳어버렸고 갑자기 날아온 송삼현의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대, 대협!”
온몸에 난 상처 때문에 피를 계속해서 흘리고 있었고 도저히 멀쩡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신물은 어찌 됐습니까!”
송삼현의 몸을 보호해주는 신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독고룡의 손에 파괴됐습니다. 그보다 이곳에서 벗어나십시오! 곧 올 겁니다!”
“어찌 신물이···.”
“매형! 어서요! 휘말렸다간 다 죽습니다!”
그 말을 마치기도 전에 거대한 기운을 뿜어내는 용 한 마리가 날아오는 게 느껴졌다.
다른 이들도 느꼈는지 화들짝 놀랐고 송삼현은 검에 강기를 두르며 외쳤다.
“간격 밖으로 피하십시오!”
만신창이가 된 송삼현을 보고 사월향이 다가가려고 했지만, 손을 뻗어 말렸다. 그리고 남궁효우와 남궁유유가 사월향의 양쪽에 서서 보호했고 곧이어 독고룡이 허공에서 날아오자 송삼현이 어기충소로 도약하며 검을 뻗었다.
‘천무 7식 승풍파랑.’
‘천마광염참.’
콰아아아아아앙!
충돌하면서 불어오는 거친 바람이 주변 모든 것을 날려버렸다.
두 사람의 싸움에 사람들은 서 있기도 버거워했다.
사라진 운설산을 보고 놀란 것도 잠시, 상상을 뛰어넘는 싸움을 두 눈으로 보고 더욱 놀랐다.
*
곽수환의 지시로 일행은 신형을 날려 이리 밖까지 물러나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 이 살기 속에서도 백의검룡 대협은 아무렇지 않게 싸우시는구나.”
도저히 맨정신으로 버틸 수 없는 살기.
조금만 더 있었어도 그대로 정신을 잃을 아득한 살기였다. 그런데 그 살기 속에서도 송삼현이 아무렇지 않게 싸우는 것을 보곤 다들 할 말을 잃었다.
콰아아아아앙!
두 사람이 부딪칠 때마다 지축이 울리며 일대가 초토화가 됐다.
하늘이 내린 악귀인 독고룡, 그가 얼마나 잔혹하고 두려운 존재인지 멀리서 지켜봐서 아는 이들이었기에 더더욱 송삼현의 대단함이 느껴졌다.
검신 유천.
무림맹주 구창룡.
이 두 사람이 협공해도 이기지 못한 독고룡을 상대로 비등하게 싸우는 모습.
그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숨을 고르며 쉬고 있자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도와주러 왔건만 도와줄 틈도 없겠군.”
갑자기 들려오는 음성에 곽수환은 고개를 돌렸고 일행은 혹시 적들인 줄 알고 무기를 꺼내 들어 경계했다. 하지만 이내 누구인지 확인을 하곤 화들짝 놀랐다.
“맹주님!”
구창룡이었다.
분명히 크게 다쳐서 긴 시간을 쉬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이곳에 나타나서 적잖이 놀랐다.
무기를 뽑은 일행들은 다시 무기를 넣었고 곽수환이 구창룡에게 포권지례를 올리며 말했다.
“어째서 이곳까지 오신 겁니까! 총 군사도 아시는 일입니까?”
“아는 일이지.”
“…..”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내 고집을 이해해줬네.”
“그렇군요.”
“그나저나···. 백의검룡도 생사경에 올랐단 말인가.”
독고룡이 생사경에 올랐다는 건 들었으니 대등하게 싸우는 송삼현 또한 생사경에 올랐다는 건 당연한 생각이었다.
먼 거리였지만, 무학을 익힌 이들에겐 어렴풋이 송삼현과 독고룡이 싸우는 것이 보였다.
카가가가가각.
머리가 산발이 되어 미치광이처럼 보이는 독고룡을 상대로 송삼현은 몰아붙였다.
땅은 울렸고.
산은 사라졌으며.
얼어붙은 강은 산산이 부서졌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났다.
“맹주님.”
“왜 그러시오?”
“혹, 융제 쪽의 소식은 들으신 것이 없으십니까?”
곽수환의 말에 구창룡은 품에서 서신을 하나 꺼내서 보여줬다.
하루 전, 제갈귀호가 보낸 전서구였다.
[승(勝)]
이겼다는 소식이었다.
“…. 이겼군요.”
“독고룡이라는 구심점이 없으니 마교도 수적인 우세가 있어도 활용을 하지 못한 거요.”
암운뇌마 심우명은 구심점이 사라졌음에도 끝까지 발악하면서 정파를 상대했지만, 끝내 패배하고 말았다.
독고룡이 없어도 여러 진법과 전술을 효과적으로 운용해 수적 우위로 몰아붙였으나 제갈귀호가 판 함정에 빠져 크게 패배한 거였다.
그 과정에서 송삼현의 수하인 마훈과 천월궁귀는 가장 큰 활약을 하며 일등 공신이 됐다.
“지금 융제에 있던 군사도 병력을 데리고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연락이 왔소.”
“다행이군요. 허나.”
“…..”
“누가 와도 도움을 주진 못할 것 같습니다.”
“동의하오.”
누구도 도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세 시진이 흐르며 밤이 되자 제갈귀호가 이끈 군세가 현장에 도착했다.
눈보라 속에서도 꼿꼿이 서 있는 깃발, 그것을 본 남궁효우가 외쳤다.
“맹의 깃발이다!”
남궁효우가 말한 곳에는 살아남은 구파 일방의 장문인을 비롯해 금호장의 무인들까지 있었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제갈귀호가 포권지례를 하며 인사를 했고 구창룡이 말했다.
“마교는?”
“장악했습니다. 삼 백명의 희생자를 낳긴 했지만, 중원에서 마교를 몰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사흘이라는 시간.
그 시간 동안 밤낮의 구분 없이 싸우며 정파는 드디어 마교와 기나긴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피해가 아예 없진 않았다.
삼 할이라는 희생자를 낳으며 뼈아픈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
“암운뇌마는?”
“…. 놓쳤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마교 잔당들과 모습을 감췄습니다.”
“몸을 숨기고 독고룡을 기다리는 거로군.”
“예, 독고룡이 살아서 돌아간다면 다시 전쟁을 일으키겠지요.”
“난감하군.”
“추격대를 보냈으니, 곧 꼬리를 밟을 수 있을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갈귀호는 암운뇌마 심우명과 지략싸움에서 승리하며 정파의 승리를 안겼다.
한 번은 당하고, 또 한 번은 밀어붙이며 사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정작 가장 잡아야 했던 암운뇌마 심우명을 놓쳐버리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 그렇다면 이제는.”
구창룡이 바라보는 곳을 제갈귀호도 같이 바라봤다.
“백의검룡에게 모든 것이 달렸군.”
“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눈보라가 서서히 그쳐갔고 정도 무림인들의 시야가 넓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송삼현의 모습이 보였다.
멀쩡한 곳이 없었다.
흘린 피로 송삼현의 상징과도 같았던 하얀 백의가 적의로 변했고.
숨을 토해내며 검을 뻗는 표정에 울컥했다.
정신을 잃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송삼현은 끝까지 집중력을 놓치지 않은 채, 거친 호흡을 토해내며 독고룡에게 달려들었다.
허억.
허억.
나흘 밤낮을 지새우며 싸운 두 사람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고 싸움의 끝이 다가왔다.
*
눈보라가 그쳐가며 송삼현과 독고룡은 서로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서로의 상태가 어떤지 이제야 제대로 보였고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허억.
한 호흡에 한 번 휘두르는 검.
천무신검을 비롯해 수많은 무학의 정수가 담긴 검은 독고룡의 숨통을 서서히 조여갔다.
휙.
심장을 노리며 날아오던 독고룡의 장법을 몸을 눕히며 피했고 그대로 검을 뻗었다.
촤아아아아악!
검끝은 독고룡의 오른쪽 허벅지를 스쳐 지나갔고 독고룡의 날카로운 장법은 송삼현의 왼쪽 뺨을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서로의 숨통을 조여갔으나 아직 서로에게 치명상을 입히진 못했다.
검을 든 손이 서서히 떨렸다.
내공도 거의 다 소모를 한 상태였고 독고룡도 마찬가지인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어떻게 하면 닿을 수 있을까.
싸우면서도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고 독고룡은 거리를 벌린 뒤에 마지막 초식을 준비했다.
신물을 깨트렸던 그 초식이었다.
세 가지의 절초가 모여 만들어진 마지막 절초.
쿠구구구구구궁.
주변을 집어삼키는 압도적인 기운 앞에서 송삼현은 심호흡하며 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후우.
후우.
후우.
저 압도적인 기운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사경에 오르며 천 개의 무학을 깨우쳤지만, 앞에 있는 악귀를 상대할 방도는 떠오르지 않았다.
이대로 끝나는 걸까.
이대로 끝나도 되는 걸까.
하염없이 생각했고 또 했다.
그러자 머릿속에선 저번 삶에서 유천에게 검을 배울 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천무신검의 천자가 어떤 천자더냐?’
‘千이지요.’
천 개의 무학이 깃든 무학이라며 천무신공의 천은 일천 천 자를 썼다.
‘거기에 검 하나만 이렇게 두면?’
유천이 땅에 아무렇게나 쓴 千에 검을 하나 가져다 댔다.
그러자 보이는 글자는 일천 천이 아닌.
‘어···. 天자가 됩니다!’
하늘 천 자가 됐다.
‘그래 내가 만든 천무신공은 일 천개의 무학을 토대로 만든 무학이다. 그리고 거기에 검 하나를 가져다가 대면···. 이 무학은 능히 하늘을 벨 수 있는 무학이 되는 거지.’
‘… 그게 가능합니까? 사람이 만든 무학이 하늘을 벤다니.’
‘하하하하하! 나도 모른다! 하지만 내 모든 희망을 담아 만든 것이 천무신공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무슨 말인 줄 몰랐다.
하지만 생사경에 든 지금, 천무신검의 묘리가 왜 그렇게 된 것인지 이해가 됐다.
천 개의 무학 위에 세워진 검.
그렇게.
머릿속에 있는 모든 무학이 한 가지로 합쳐졌다.
스르르르르륵.
검을 눕히자 주위를 휘감은 푸른 연기, 그 연기는 주변으로 퍼졌고 곧 모든 것을 아우르기 시작했다.
독고룡이 내뿜은 검은 기운을 몰아내며 주위를 장악했고 송삼현은 검을 하늘로 치켜세웠다.
쿠구구구구구궁.
모든 내공을 방출했다.
몸에 남은 한 줌의 내공마저 모조리 검을 통해 밖으로 끄집어냈다.
이 한 가지에 모든 걸 결정짓기 위해서.
뚝.
눈보라가 그치자.
뚝.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천우(天雨).’
하늘 비.
비처럼 내리는 검.
천무신검의 절초인 검해가 검의 파도라면 모든 무학을 합친 천우의 초식은 하늘 그 자체에서 내리는 검이었다.
하늘을 뒤덮은 수많은 검강.
그 검들이 일제히 비처럼 땅으로 떨어졌다.
독고룡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자신의 모든 내공을 한 점에 모아 폭발시켰다.
하늘에서 내리는 수많은 검우들이 독고룡의 기운과 충돌했다.
콰과과과과과과과광!
충돌한 기운은 주변을 삼키는 거대한 태풍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고 독고룡의 몸에는 무수히 많은 검흔이 새겨졌다.
피 칠갑을 한 독고룡은 피를 토하며 신형을 날렸다.
“내가 너를 천하제일로 인정하마!”
태풍을 뚫고 들어온 독고룡의 초식, 천마회격이 길게 늘어나며 검을 든 오른팔에 꽂혔다. 그리고.
촤아아아아악!
독고룡은 송삼현의 팔을 떨어트렸고 송삼현은 그럼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검을 든 팔이 땅에 떨어졌으나 마음은 오히려 고요해졌다.
스윽.
손에 검이 없음에도 송삼현은 마치 검을 휘두르듯 왼손을 휘둘렀다.
‘심검(心劍).’
이기어검보다도 높은 경지, 검의 극치에 이른 자들만이 다룰 수 있는 검으로 눈으로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검이었다.
독고룡은 미처 피하지 못했다. 그리곤 심검이 닿기 직전, 기운을 느낀 독고룡은 피 칠갑이 된 몰골로 미소를 지었다.
“고작 팔 하나에 내 목숨이라···. 값이 맞지 않는군.”
“내 팔은 노잣돈으로 줄 테니, 가져가시오.”
촤아아아아아악!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검이 무방비가 된 독고룡의 목을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그었다.
주르르르륵.
실선이 그어진 목에서 피가 흘렀고 곧이어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저번 삶에선 송삼현이 독고룡의 팔을 베고 목을 내줬으나 이번에는 독고룡이 송삼현의 팔을 베고 목을 내줬다.
정반대의 결과.
드디어 이 기나긴 싸움에 종지부가 찍혔다.
싸움이 끝나자 하늘을 가득 메웠던 먹구름이 심검의 영향으로 검으로 가른 듯이 걷혔고 그 사이로 햇빛이 쏟아져 송삼현을 비췄다.
‘사부님, 제가 해냈습니다.’
그렇게.
스르르륵.
송삼현의 눈이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