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41)
영맥에서 흘러나오는 막대한 영력이 옥으로 된 판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받아들인 영력이 기묘하게 변해 청년의 몸으로 들어갔다.
혈마는 피가 가득 담긴 통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그 안에 자신의 힘을 아낌없이 불어 넣었다.
이 모든 피는 결국 청년에게 갈 것이다.
그래서 청년의 몸에 막대한 힘이 담길 것이다. 지금 혈마가 가진 것보다 더 거대한 힘을 말이다.
당연히 지금 혈마의 몸에는 힘이 남아나지 않게 된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때부터 저 청년이 바로 혈마 자신이 될 테니까.
혈마는 성공을 확신했다.
모든 조건을 완벽 이상으로 맞췄다. 실패할 가능성은 아예 없었다.
다만 시간이 좀 필요할 뿐이었다.
청년의 몸을 완벽하게 만들고 그 다음 몸을 바꾼 다음, 새 몸에 적응하려면 하루 이틀로는 어림도 없다.
적어도 몇 달은 걸릴 것이다.
그리고 그 몇 달 후면, 천하의 판도가 달라질 것이다.
자신은 천마를 능가하는 힘을 가질 테니까.
혈마의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맺혔다.
* * *
의선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지금······ 뭐라고 했나? 가, 가라고?”
의선 앞에는 벽태산이 있었다. 그리고 벽태산 뒤에는 기루가 있었다.
기루에 들어가려던 의선을 벽태산이 막아선 것이다.
그것만이면 그냥 그런가보다 할 텐데, 그 위에 이어진 말이 문제였다.
지금 당장 영맥을 찾으러 가라니.
“대, 대체 갑자기 왜 이러나. 우리 예랑이 천마 되는 것만 보고 간다고 하지 않았나.”
“그게 불가능해졌다.”
의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그게 무슨 말인가. 불가능해졌다니.”
“현천진을 발동하려면 영력이 필요하다. 대충 내 영력의 열 배쯤 되는 양이다.”
의선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벽태산이 얼마나 막대한 영력을 가졌는지 알기 때문이다.
처음 벽태산을 만났을 때는 의선이 가진 영력의 양이 벽태산을 압도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벽태산이 무슨 수를 쓴 건지 의선은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보다 거의 열 배 가까이 영력이 늘어났다.
솔직히 불가능한 일인데, 상대가 벽태산이다보니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한데 그것도 모자라 열 배의 영력이 필요하다니. 이걸 대체 어찌 해야 한단 말인가.
“그, 그게 가능한가?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될 거 같은데······ 차라리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어떤가? 사람들을 좀 설득하면 다른 방식으로 천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벽태산은 의선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귀찮다.”
의선이 입을 떡 벌렸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유란 말인가.
그러고 있을 때, 벽태산이 품에서 수정구슬 다섯 개를 꺼냈다.
의선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수정구슬을 받았다.
크기는 어른 주먹 세 개 정도를 합한 정도였고, 자세히 보니 구슬 내부에 복잡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식으로 가공했는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현천진에서 뽑은 구슬이다. 거기 영력을 담을 수 있다.”
의선이 경악한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설마······ 설마 여기에 내 영력을 담으라는 건가?”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다섯 개 갖고 있으니 공평하지.”
의선은 속으로 거기에 공평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지 말라고 소리쳤다. 물론 입 밖으로는 한 마디도 내지 않았다.
“매일 적당한 양을 넣어라. 그리고 서둘러 영맥을 찾아라.”
의선은 시험 삼아 수정구슬에 영력을 불어 넣어봤다. 영력이 안으로 쑥쑥 들어갔다.
그제야 수정구슬이 어느 정도 영력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어마어마했다.
의선은 질린 눈으로 벽태산과 수정구슬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걸 다섯 개나 채우라고?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나?”
아무리 애써도 이거 하나를 다 채우려면 꼬박 한 달은 걸릴 것 같았다.
벽태산이 의선을 가만히 쳐다봤다.
의선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자네를 만난 내 업보지. 알겠네. 하면 되지 않나.”
벽태산은 품에서 지도를 꺼내 쫙 펼쳤다.
“넌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를 맡아라. 나머지는 내가 확인하지.”
물론 매일 수정구슬에 영력을 불어넣는 것 역시 할 생각이었다.
의선은 여전히 회의적인 표정이었다.
“이런다고 일이 금방 마무리 될 것 같지 않은데, 좀 천천히 하는 게 어떤가?”
벽태산이 씨익 웃었다.
“무명을 찾으면 다 해결 돼. 거기 영력 많다.”
그동안 틈틈이 영력을 불어넣는 것은 혹시 몰라서 하는 일이다. 게다가 매일 영력을 그런 식으로 써주면 수련에도 약간이나마 도움이 되고.
아무튼 벽태산의 확신 어린 말에 의선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렇게 하지.”
의선은 천천히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가는 내내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 의선은 그 때마다 심장이라도 떼 놓고 가는 사람처럼 애절한 눈빛으로 기루를 바라봤다.
벽태산은 의선이 천마신교에서 나갈 때까지 그 자리에서 지켜봤다.
의선이 사라지자, 벽태산도 움직였다.
이미 뒷일은 화옥에게 맡겨뒀다.
아마 돌아올 때쯤이면 천마신교에 관한 일도 대충 마무리가 되었을 것이다.
벽태산의 몸이 그대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곳은 천마신교 밖이었다.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먼 거리를 건너뛸 수 있었다.
그렇게 벽태산이 천마신교를 떠났다.
끝
의선은 맹렬히 달렸다.
서둘러 할 일을 마무리하고 무명 놈들을 없앤 다음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즐기고 싶었다.
그리고 묘한 호승심도 한몫 했다.
벽태산과 지역을 나눠서 영맥을 찾기로 했는데, 다른 건 몰라도 영맥을 찾는 것은 자신이 더 우위에 있다.
벽태산은 영맥을 찾는 일 따위 해봤을 리 없다.
하지만 자신은 어떠한가. 수백 년의 세월에 걸쳐 수련할 만한 영맥을 찾아다녔다.
영맥을 찾는 일 정도는 눈 감고도 할 수 있었다.
다만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렇게 열심히 달리는 걸로 해결할 수 있다.
의선은 달리면서 수정구슬 하나를 손에 들고 있었다.
이건 정말 신기한 구슬이었다.
어떻게 영력을 이렇게 많이 담을 수 있단 말인가.
예전에 벽태산이 옥을 이용해서 비슷한 일을 하는 걸 봤다. 하지만 그건 이것과는 좀 개념 자체가 다른 듯했다.
아무튼 영력을 많이 담는 데에는 수정이 최고라는 걸 확실히 알았다.
물론 수정구슬에 이렇게 정교한 문양을 새기는 건 다른 문제였지만.
심지어 문양은 수정구슬 외부에 새긴 것도 아니고 내부에 새겼다. 그것도 한눈에 구조가 다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복잡하게 말이다.
아무튼 의선은 이걸 들고 다니면서 끊임없이 영력을 퍼부었다.
그냥 대충 영력을 퍼붓기만 해선 안 된다. 여기에 정교한 영력 변형이 가미되어야 한다.
증혼마공과 비슷하게 말이다.
그렇게 변형하지 않으면 영력이 아예 들어가지 않는다.
이건 사실 처음 이 수정구슬을 받았을 때 이미 확인해봤다.
처음에 영력을 넣었을 때, 대충 했더니 구슬이 반발했다.
한 번에 하지 못했다는 걸 벽태산에게 들키기 싫어서 얼른 다시 했지만, 아마 벽태산은 눈치챘으리라.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의선은 벽태산과 싸워 이길 수는 없지만, 그래도 묘한 경쟁심을 갖고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변형한 영력을 수정구슬에 넣는데, 이게 묘하게 영력 수련에 도움이 되었다.
영력을 지속적으로 소모하고 끊임없이 채우는 것은 결과적으로 영력 증가에 도움이 된다.
또한 영력의 성질을 끊임없이 변형시키는 것도 영력 조절에 도움이 된다.
물론 같은 일을 단순 반복하는 것이기에 나중에는 효과가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 달 정도는 제법 도움이 될 거라 예상했다.
그리고 의선은 이번 일을 한 달 이상 끌고 갈 생각이 없었다. 더 빨리 끝내버릴 작정이었다.
돌아다니면서 도시나 현에 들를 때마다 기루의 유혹이 덮쳐왔지만, 의선은 꾹 눌러 참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하다가 벽태산보다 늦으면 진짜 못난 꼴을 보일 것 같았다.
“내가 더 빨리 끝내야 해.”
의선은 그것이면 자존심을 어느 정도 세울 수 있다고 믿었다.
문득 천마신교의 기루가 떠올랐다.
몇 번 가지 않았지만 정말 최고였다.
의선은 버럭 소리쳤다.
“그걸 꼭 그렇게 막았어야 했느냐!”
어차피 하루 이틀에 끝날 일도 아닌데, 그날 하루만 기다려 줬으면 얼마나 좋은가 말이다.
“후우, 후우. 참자, 참아야지. 참아야 하느니라. 후욱, 후욱.”
의선은 심호흡을 통해 마음을 다스렸다. 기루 생각이 몇 번이나 났지만 사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통제할 수 있었다.
의선은 빠르게 이번 일을 마무리하는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 * *
벽태산이 천마신교를 떠난 지 이틀이 지났다.
사실 벽태산과 의선이 떠난다고 했을 때, 화옥은 상당히 걱정을 했다.
천마신교는 위험한 세력이다. 소속된 자들도 전부 위험하고, 그들이 모여 만든 작은 조직들도 위험하다.
한 마디로 언제 터질지 모를 상황이었다.
적어도 화옥이 판단하는 천마신교는 그랬다.
화옥은 그런 활화산 같은 천마신교를 억누르고 있는 것이 벽태산의 힘이라고 여겼다.
벽태산이 가진 권위와 무력, 그리고 세상 모든 것을 발아래 두는 존재감 말이다.
그렇기에 벽태산이 사라지면, 그들을 억누르고 있던 족쇄가 풀려 통제가 어려운 상황이 될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틀렸다.
벽태산의 존재감은 그가 여기에 있으나 없으나 똑같이 작용했다.
천마신교의 모든 사람들은 천마성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벽태산의 존재감을 마음에 새겼다.
일단 통제가 된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 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어차피 벽태산이 있을 때도 대부분의 일을 화옥이 알아서 했다.
일을 처리한 다음 벽태산에게 보고하는 형식이었는데, 지금은 보고 과정이 빠졌다.
그래서 더 효율적이고 빠르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지금 화옥이 신경 쓰는 부분은 천마신교와 현천장의 연결이었다.
또한 향후 천마신교의 이용 방안이었다.
천마신교를 통해 서역과 교역을 할 수도 있을 듯했다.
이미 서역과 교역하는 상단들이 있다. 또한 대부분의 상단들이 이용하는 길이 있다.
화옥은 천마신교를 이용해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했다.
여기서 서역까지 가는 길은 험난하기 이를 데 없다. 게다가 멀기까지 하다.
그런 험난한 길을 오가는 데에는 천마신교의 거친 무사들이 더 잘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천마신교가 서역과 교역을 하면, 천마신교와 난주를 연결하고, 다시 난주와 서안, 그리고 궁극적으로 무한의 현천장까지 연결하는 체계를 만들고자 했다.
이미 난주에는 사해방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서안에는 은월곡이 있다.
은월곡은 지금 하오문과 사해방의 도움으로 서안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파가 되었다.
거기에서 바로 무한까지 이으면 천마신교에서 현천장까지 이어지는 장대한 길이 완성된다.
아마 굉장한 돈이 길을 따라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고스란히 현천장의 영향력이 될 테고.
그렇게 화옥이 미래를 위한 발판을 착실히 다지고 있을 때, 승도흥이 그녀를 찾아왔다.
한창 바쁠 때인지라 승도흥을 만나면서도 동시에 일을 해야만 했다.
일을 하면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화옥은 이와 비슷한 일이 자주 있는지라 아주 능숙하게 그것을 해냈다.
“무슨 일인가요? 절 찾아오실 일이 있을 것 같지 않은데.”
사실이 그랬다.
승도흥은 진법에 관한 일을 한다. 그러니 그에게 화옥이 필요할 만한 일은 예산을 타내는 정도였다.
하지만 관련된 예산을 지급하는 건 굳이 화옥에게 말할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천마신교에 있다. 승도흥이 지금 할 일은 현천진에 관한 것 말고는 없다.
그리고 그 일은 이미 끝났고.
이제는 벽태산과 의선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그러니 평소대로 기루에 가서 놀거나 홀로 진법 연구를 하면 된다.
그래서 화옥도 승도흥이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얼른 알아차릴 수 없었다.
“저기······ 큰일 났습니다.”
화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인가요? 혹시 적이 쳐들어오기라도 했나요? 아직 오대세가나 다른 문파들이 움직인다는 보고는 없었는데.”
“그게······ 공자님에 관한 일입니다.”
공자님이라는 말에 화옥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녀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말씀해 보세요.”
“제가 공자님께 미처 말씀드리지 못한 게 있습니다. 아마 공자님과 의선 어르신이 천마신교에서 나가신 것도 그 때문인 것 같은데······.”
거기까지 들은 화옥이 빙긋 웃었다. 한껏 날카롭게 세웠던 분위기도 확 풀어져 버렸다.
“그걸 공자님께서 모르실 거라 생각하셨나요?”
“예?”
“현천진에 들어갈 영력 말씀하시는 거죠? 사실은 훨씬 적은 양으로도 현천진을 돌릴 수 있다는 것, 공자님도 알고 계세요.”
승도흥은 멍하니 화옥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저것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데, 실제로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니.
“알고······ 계시다고요?”
화옥이 고개를 끄덕이자 승도흥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면 대체 왜 나가셨습니까? 공자님과 의선 어르신, 영맥을 찾으러 가신 거 아닙니까? 그걸 통해 무명을 찾겠다고.”
“맞아요.”
승도흥이 멍하니 화옥을 바라봤다.
화옥은 살짝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의선 어르신이 기루에서 살다시피 하시는 게 보기 싫으셨던 모양입니다.”
“예?”
승도흥은 예상외의 대답에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그 감정은 황당으로 바뀌었다.
꼴 보기 싫어서 보내버렸다니.
“겸사겸사 하신 거예요. 무명을 빨리 찾아서 처리하고자 하신 거죠. 그들은······ 결코 현천장과 양립할 수 없는 자들이니까요.”
그 말에는 승도흥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무명만 처리하고 나면 더 이상 현천장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은 없다.
그 뒤로는 평온한 삶이 이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