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75
175화
“참으로 아름답구나. 절세가인이 따로 없어.”
인공의 입에서 감탄사가 새 나왔다. 무림검도관으로 입장하는 하녀들은 레드벨벳 위를 걷는 은막의 주인공들 같았다. 다시 말해 한눈에 봐도 춤, 노래, 시(詩) 등에 특출난 재주를 가진 예인(藝人)들로 선발된 절세미인들이었다.
‘방주 대인의 배려가 엿보이는군.’
하녀들을 지켜보는 용하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어쩌면 소희 낭자를 향한 그리움일 수도.
하녀들은 저마다 각자의 재능을 살려 자기를 소개하고 자기 자리를 찾아 앉았다.
[ 무림검도관 현판식은 개방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이다 ]마치 어느 백서의 한 구절 같은 이 말은, 조금 전 하녀 중 하나가 인사하면서 한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용하가 인공과 장설에게 했던 말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
“이보게, 그 말은 누구한테 들었는가?”
“방주 대인께서 그러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개방의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라고.”
“그렇다면 오늘 이 자리라는 게, 무림검도관 현판식을 말하는 게 확실한 것이냐?”
인공이 하녀에게 조금은 다그치듯 물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용하에게도 물었다.
“관장님이 방주 대인께 말씀하셨습니까?”
“제 주제에 방주 대인에게 그런 말을 감히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이자들은 그 말을 방주 대인에게 들었다고 하잖습니까. 그럼 방주 대인은 그 말을 어디에서 누구한테 들었을까요?”
인공은 다시 하녀에게 물었다.
“확실히 방주 대인께서 하신 말씀이 맞느냐?”
“분명 방주 대인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대인들을 잘 모시라고요.”
그때였다. 보다 못한 용하가 인공의 입을 막았다.
“인공 사범! 무엇이 그리 궁금한 게 많은 것이오? 이 자리는 그동안의 노고를 달래기 위한 자리 아니오. 그런데 왜 이리 힘겨운 자리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오.”
사범이라 칭하는 걸 보면 자기의 권한을 사용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했다.
게다가 그 목소리가 어찌나 단호했던지, 인공은 그저 주억거릴 따름이었다.
그리고 풀이 죽어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일로 심기를 건드린 것 같습니다. 이런 일 없도록 할 터이니, 모든 걸 잊고 분위기를 이어가셨으면 합니다.”
“남아 일언 중천금이라 하였소. 그 말은 반드시 지키도록 하시오. 술에 취해 정신을 잃는 한이 있어도 말이오.”
“네, 대인. 명심하겠습니다.”
인공은 간결히 예를 갖추고 하녀에게도 미안함을 표했다.
“그건 그렇고 방주 대인에게 고맙다고 전해주시오.”
장설이 하녀들을 향해 말했다. 얼핏 그냥 하는 말 같았지만 이렇게 연회를 열어주는 방주의 극진한 정성이 온몸으로 전해져서 한 말이었다.
사실 시녀들의 극찬에 세 사람은 적잖이 뿌듯했다. 무엇보다 방주 대인의 뜻이라는 게 더욱 그러했다.
“형님들! 오늘따라 유난히 술맛이 달짝지근합니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반전되었다.
“그러게, 말이오. 나는 어여쁜 하녀들이 따라 주는 술이라 그런가 했더니, 방주 대인의 뜻이 담긴 술이라 달짝지근했나 봅니다.”
“방주 대인의 은혜에 보답하는 뜻에서 무림검도관을 참교육의 장소로 잘 육성해 봅시다.”
장설이 술잔을 들어 올리며 우렁차게 외쳤다.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지는 건배사였다.
무림검도관 현판식에 즈음한 술자리는 그렇게 무르익어 갔다.
용하도, 인공도, 장설도 누구 하나 토 다는 사람 없이 하나로 뜻을 모았다.
그리고 그날의 향연은 오랜 추억으로 기억되었다.
* * *
창의진흥원을 떠난 용하는 무림검도관 관장으로의 책무에 여념이 없었다.
“관장님! 창의진흥원은 어찌하시렵니까?”
“무림검도관 사범께서 어찌하여 창의진흥원 일에 신경을 쓰시는 것이오?”
적잖이 언짢은 기색이었다.
인공은 찔끔한 기색으로 답했다.
“아닙니다. 신경을 쓴 게 아니라, 제가 혹시 해야 할 일이 없나 해서 여쭤본 것뿐입니다.”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 것이니, 형님은 형님 일을 하십시오.”
조금은 냉정했지만, 용하의 말은 그리 틀리지 않았다. 인공과 장설은 무림검도관 사범으로 각자 자기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오랜만에 아우 이름 한번 불러봐도 되겠습니까?”
“갑자기 왜 그러고 싶어지셨습니까?”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인가. 조금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인공이 최대한 예를 갖춰 양해를 구했다.
“관장님, 혹시 제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지금 뭐 하자는 것이오?”
“제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좀처럼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포천 주금산의 인공사 주지이신 인공 스님이 아니십니까?”
용하의 말에 인공은 왈칵 울음이 차올랐다. 이리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인공은 형형한 눈으로 용하를 바라보았고, 그의 눈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고맙습니다. 저 또한 관장님 이름을 한 번만 부르겠습니다.”
“형님도 참, 다른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형님 마음대로 하십시오.”
“장설 형님 계시는데!”
떠보는 듯한 말투였다. 하지만 용하는 끝까지 의연했다.
“장설 형님이 남도 아니고, 괜찮습니다.”
“곧 무림검도관의 주인이 될 텐데, 마음의 준비는 돼 있는 것이냐?”
“글쎄요,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자네가 무림검도관의 주인이 아니면 누가 주인이라는 것이냐?”
장설 또한 적잖이 의아한 기색으로 물었다.
“인공 형님도 알다시피, 저는 어떤 것의 주인이 된다는 건 체질에 맞지 않아서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군. 그러니까 내 말은 김 관장 보고 무림검도관을 소유하라는 게 아니고, 주인 의식을 갖고 잘 한번 끌고 가보라는 소리야.”
“그 말씀도 알겠는데요. 다들 잘 아시잖아요. 이 김용하라는 치기 어린 작자는 변두리 검도 체육관 하나도 감당하지 못한 거. 저는 그저 지금의 무림검도관이 개방 아니, 무림을 지키는 등대가 돼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용하의 입에서 새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무림검도관을 강조했다.
그때 인공이 슬쩍 다가오더니, 용하의 귀에다 대고 은밀하게 속삭였다.
“제발 입 좀 다물어.”
용하 또한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왜요?”
“지금 네 녀석이 하는 소리 하나하나가 저 형님 귀에 어떻게 들릴지 생각해봤어?”
인공의 말에 용하는 얼핏 갸웃한 기색으로 장설을 흘깃 훔쳐보았다.
“글쎄요! 어떻게 들리는데요?”
“기, 승, 전, 무림검도관!”
그 순간 용하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에?”
그리고는 인공의 말을 흉내라도 내듯 그대로 따라 했다.
“기, 승, 전, 무림검도관?”
“그래, 인석아.”
“그렇다면 개방의 아니, 무림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은 그게 무엇이 됐든, 무림검도관에서 결론을 맺는 것으로 들린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지.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저 노인네 귀에는 무림검도관이 곧 무림맹인 게야. 내 말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어?”
용하는 대충 인공의 속내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는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리고는.
“그런데 어쩌죠? 전 무림맹이니 뭐니 하는 건 흥미가 없는데.”
“엥! 흥미가 없다니? 그러면 여기까지 와서, 이대로 물러서겠다는 것이냐?”
“형님도 참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제가 이대로 물러설 위인입니까?”
“그게 아니면 뭐, 이대로 포기하는 것이냐?”
인공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포기라니요, 그럴 수는 없죠.”
“그럼 대체 무엇이냐?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말씀드린 그대로라, 그래서 어찌할 생각인 게냐? 정확히 밝히거라.”
“정확히 밝히라니,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앞으로 말이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는 말이다.”
“다음 계획은 표국(鏢局)입니다.”
“무어라, 표국? 표국이 뭔지는 알고 하는 소리인 게냐?”
“그런 거 상관없습니다. 14세기와 21세기를 오가며 물류도 운송하고, 무림의 약자들 경호도 하고, 아, 그리고 말 나온 김에 그것도 해보려고요.”
“또 뭘? 왜 자꾸 일을 벌여. 이제 나 좀 편하게 살면 안 되겠니?”
“14세기와 21세기를 오가는 왕복 시공간 이동체를 운영해볼까 합니다.”
“몸은 하나인데, 뭘 그리도 하고자 하는 게 많은 것이냐?”
“그걸 다 저 혼자 하나요? 저를 돕는 무림의 백성들이 하죠. 14세기는 무림의 백성들이, 21세기는 형님의 인터넷 카페 회원들이 말입니다.”
“자신만만한 걸 보니 철저히 준비한 게로구나.”
그제야 인공은 흡족한 표정으로 한걸음 양보하며 적극적으로 돕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말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미래의 첨단 의술이 필요한 사람도 있을 거 아닙니까? 그 사람들을 위해 미래의 첨단 의학의 혜택을 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것입니다.”
“의학은 또 왜?”
“형님! 말 나온 김에 하나만 부탁드릴게요.”
“뭔데, 말해봐. 들어보고 결정할게.”
“들어보고 결정하다니, 정말 이렇게 나오실 겁니까?”
“아, 인석아! 나도 내가 할 수 있는지부터 확인해 봐야 할 거 아냐.”
“형님 실력이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겁니다.”
인공은 형형한 눈으로 용하를 바라보았다. 적잖이 기대감에 찬 눈으로 말이다.
“형님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회원들을 통해서, 제일 잘나가는 원스톱 의료시스템을 갖춘 병원 좀 알아봐 주세요.”
“병원은 왜? 그리고 원스톱 의료시스템은 또 무슨 소리야?”
“형님! 그걸 자꾸 따지려 들면 어떡합니까. 제가 전문가는 아니잖아요. 제가 찾는 건 그냥 병원 이리저리 옮겨 다니지 않고 한 병원에서 몸 구석구석 다 치료할 수 있는 병원입니다. 참, 그리고 성형 잘하는 병원도 좀 알아봐 주세요. 이왕이면 연예인들 성형 전문으로 알려진 병원 말입니다.”
“거, 혹시 아홉 시 뉴스에 오르내리는 병원 말하는 것이냐?”
“네, 형님.”
웬일인지 용하의 표정에 새로운 희망이 넘쳐났다.
(이생망 김 관장, 무림에서 꽃 피우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