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7
화소미는 질끈 눈을 감았다.
몸이 연못으로 떨어져 내리는 감각을 느끼며 곧 차가운 물들이 온몸을 덮칠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물 한 방울 묻지 않았다.
슬그머니 눈을 뜨자, 어느새 그녀를 붙잡은 단우현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 빠.”
“넘어질 뻔했구나. 조심했어야지.”
귀한 보석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화소미를 일으켰다. 그제야 안도감이 들었는지 화소미가 단우현의 품에 포옥 하고 안겼다.
얼굴을 파묻은 화소미가 힐끗 시선을 뒤로 돌렸다.
커다란 사내아이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보였다.
“네 이놈! 이게 무슨 짓이냐! 어느 안전이라고 소리를 쳐!”
“아…… 아버지!”
반면 홍원창은 한껏 붉어진 얼굴로 큰 소리를 질렀다. 아들을 혼내는 아비의 모습이다. 자칫 화소미가 화를 입기라도 했다면 결코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홍원창의 얼굴은 식은땀이 가득했다.
혹시 화소미가 다쳤거나 우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든 것이다. 단우현의 성격을 생각하면 아들이 큰 화를 입을 수도 있었다.
“그…… 그게…….”
반대로 사내아이, 홍진랑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태어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비에게 호통은 물론이고 매질 한 번 당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도대체 이자들이 누구이기에 이토록 화를 낸단 말인가.
홍진랑은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곰 같은 덩치를 지닌 사내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일곱 살.
아비의 호통에 겁을 먹고 마음이 약해질 나이였다.
“괜찮아요! 소미는 괜찮아요!”
그때, 화소미가 중얼거렸다.
단우현의 품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오더니, 똑바로 홍원창을 바라보며 크게 말했다.
잠시 놀라기는 했지만 다친 곳도 없었고, 물에 빠지지도 않았다.
“정말 괜찮으냐?”
“괜찮아요. 잠깐 놀랐어요. 그런데 홍 아저씨가 말한 친구가 이 아이에요?”
“하하, 그래, 맞다. 뭐하느냐! 어서 인사를 하지 않고.”
홍진랑은 더욱 당황했다.
찔끔 눈물이 나오려는 것은 둘째치고 저 아이를 대할 때와 자신을 대할 때, 홍원창의 행동이 너무나도 차이가 났다.
자신은 아들이고 저 아이는 난생처음 보는 아이인데 왜 이런 차별을 둔단 말인가.
화가 났다.
어린 마음에 독기가 서렸다.
“이놈아! 어딜 가는 것이야!”
“아버지, 미워요!”
“이, 이놈이!”
홍진랑은 등을 돌려 달려갔다. 곰 같은 덩치로 처량하게 내달리는 모습이 참 안 어울렸다.
홍원창이 그것을 한참 바라보다 한숨을 쉬었다.
“죄송합니다, 자식 놈이 아직 모자라서…….”
“근골이 좋은 아이다.”
“예?”
고개 숙여 사죄를 하는 홍원창과는 다르게 단우현은 제법 흥미를 느꼈다. 어린 나이임에도 상당한 근력을 가지고 있었다.
기초적인 무공을 익힌 듯했지만, 원래 무공을 익히기에 좋은 근골을 타고났다.
“제대로 무공을 익히면 대성하겠군.”
“저…… 정말이십니까?”
단우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키워 보거라. 득이 되면 되었지 실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대협께서 그리 말씀을 하신다면 그런 것이겠지요.”
단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두커니 서 있는 화소미의 손을 붙잡고 등을 돌렸다. 대문으로 나가지는 않았다. 많은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을 터이니 아무도 모르는 쪽문으로 밖을 나섰다.
뒤에서는 연신 고개를 숙이는 홍원창의 기척이 느껴졌지만, 간단하게 손을 흔드는 것을 제외하면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다친 곳은 없느냐?”
“괜찮아요. 하나도 다친 데는 없었는걸요.”
“하하, 다행이구나. 그런데 그놈 참 곰처럼 생겼더구나. 겁을 먹을 만도 하지.”
“헤헤, 정말 무서웠어요.”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다. 낮이기에 소리를 지르지 않았던 것이지, 밤이었다면 틀림없이 곰이 나타났다 생각하며 큰 소리를 쳤을지도 모른다.
“그 아이가 홍 아저씨의 아들이에요?”
“그런 것 같더구나. 친구가 될 수 있겠느냐?”
“으음-.”
화소미는 골똘히 생각했다.
사실 생각하고 자시고는 없다. 예전 같았으면 분명히 고개를 저었을 테니까. 하지만 조금 전 울먹이며 달려가던 모습을 떠올리니 저도 모르게 쿡쿡 웃음이 나왔다.
환한 미소를 흘리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아이 같아요! 소미는 분명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하하, 그렇다면 학당에 다녀 보는 건 어떠냐?”
“학…… 당?”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친구를 얻을 수 있다. 공부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로구나.”
“학당…….”
화소미도 학당이 무엇인지 안다.
하지만 이야기만 들었지 다녀 본 적은 없었다. 자그마한 화전민 마을에는 학당이 존재하지 않았고, 악양에 있는 학당은 관료들의 자제나, 돈 많은 집안의 자식들이나 다니는 곳이라 들었으니까.
화소미 같은 아이들에게는 꿈과도 같은 장소였다.
“소미도 학당에 다닐 수 있어요?”
“물론이지. 네가 하고 싶다면 말이다.”
“하고 싶어요! 소미는 꼭 학당에 다니고 싶어요!”
“그래, 그리하자꾸나.”
* * *
장원으로 되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약 한 시진 뒤였다.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장삼태는 마당을 정리하고 있었으며 남궁소혜는 그늘 아래에 축 늘어진 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화소미가 놀라 휘둥그레 눈을 떴다.
허겁지겁 남궁소혜를 향해 다가갔다.
“언니!”
“아…… 그래 왔구나.”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기척을 느끼고 있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갖 일을 하는 데다, 늦은 밤에는 악양으로 넘어가 정보 수집을 했다.
그리고 잠을 자기 직전 수련까지 했으니, 고된 생활에 몸이 탈이 나 버린 것 같았다. 흐리멍덩한 시선으로 화소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다, 이내 단우현을 바라보며 고개를 까딱 했다.
“오셨어요.”
“팔자 좋구나.”
“하아, 그래요. 참 팔자 좋게 누워 있죠.”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린 사람처럼 남궁소혜는 멍했다. 단우현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꼬투리를 잡았던 처음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마치 인생을 포기해 버린 것 같다.
“그런데, 무슨 장원이 사람도 별로 없는데 이렇게 넓담. 지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정말 궁금하네요.”
“아무 생각도 안 했다.”
“응? 당신이 지었어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에 남궁소혜는 다시금 멍한 표정을 지었다. 단우현의 말꼬리를 붙잡을 겨를도 없이 흘려 넘겨 버린 것이다.
단우현은 툇마루에 주저앉았다.
그가 앉자 화소미가 쪼르르 달려와 무릎 위에 걸터앉았다. 그 행동이 어찌나 귀여운지 남궁소혜가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손으로 자신의 무릎을 톡톡 쳤다.
‘이리 와 앉아.’
마치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화소미가 잠시 단우현의 눈치를 보더니 벌떡 일어나 쪼르르 달려갔다. 이내 헤헤 웃음을 지으며 남궁소혜의 품으로 파고 들었다.
남궁소혜가 환한 웃음과 함께 꼭 끌어안았다.
“아유, 이 귀여운 것! 너 때문에 언니가 산다 정말.”
“헤헤헤.”
“…….”
단우현은 그 상황을 가만히 지켜봤다.
그러고 보니 최근 이틀 사이, 화소미는 단우현보다 남궁소혜를 찾을 때가 많다. 둘이 함께 있는 시간도 상당하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인가?’
물끄러미 두 사람을 바라봤다.
남궁소혜가 화소미를 간지럽히자 꺄르르 웃으며 화소미 또한 남궁소혜를 간지럽혔다. 단우현과 함께 있을 때 화소미의 모습과는 약간 다르다.
저것은 마치 사이 좋은 모녀가 놀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단우현이 벅벅 머리를 긁적였다.
“원래 아이는 엄마의 품이 그리운 법입니다요.”
“…….”
어느새 다가온 장삼태가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단우현의 시선이 장삼태에게 꽂혔다. 고작해야 쳐다본 것에 지나지 않지만, 숨이 넘어갈 듯한 긴장감에 장삼태가 부르르 몸을 떨며 등을 돌렸다.
‘시벌, 뭔 말을 못해. 틀린 말 했어? 앙?’
장삼태가 투덜거리며 마당을 쓸었다.
“삼태야.”
“예?”
장삼태는 표정을 들썩이며 다시금 단우현에게 다가왔다. 사람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겁을 줄 때는 언제고 이제 와 부른단 말인가.
“학당이라는 곳이 어떤 곳이더냐?”
“……글을 가르쳐 주는 곳이지요.”
장삼태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사람을 바보로 아나?’
어린아이들에게 물어봐도 알 것 같은 그것을 왜 자신에게 물어보는지 영문을 알지 못하는 장삼태가 단우현과 시선이 마주치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며 땅을 바라봤다.
표정은 헤실헤실 웃으며 속내를 감췄다.
“글자를? 너도 학당에 다닌 적이 있느냐?”
“없습죠.”
“그런데 어찌 글자를 아느냐?”
“그야…….”
어린 시절에는 장삼태 또한 학당에 다니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워낙 비쌌고 그럴 만한 여력조차 되지 않아 포기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머리가 성장을 하니, 자연스럽게 주변에 있는 글자들을 읽을 수 있었다.
길을 걷다 보면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쉽게 머릿속에 들어와 버린 것이다.
그것은 단우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때, 보다 못한 남궁소혜가 입을 열었다.
“학당은 단순히 글자만 가르쳐 주는 곳이 아니에요.”
“호오, 넌 학당을 다닌 적이 있느냐?”
“저를 뭐로 보고…… 당연하죠.”
크흠! 하며 남궁소혜가 헛기침을 뱉었다.
이래서 남자들은 안 되는 거다. 아이의 의식주만 해결하면 뭐하는가? 필요한 것들을 딱딱 알지 못하고 깊게 생각하려 하지 않는 게 문제였다.
“먼저 천자문을 가르쳐 줘요.”
“그다음엔?”
“고…… 공자님과 맹자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죠.”
단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자와 맹자, 그 또한 들은 기억이 있었다.
분명, 난세에 어울리지 않는 소리를 지껄이는 두 놈을 말하는 것일 터였다.
아주 오래전에 소림의 땡중 하나가 그에 대해 중얼거리는 것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그때, 화소미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남궁소혜를 올려다봤다. 학당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으니, 무엇을 배우는지 무척 궁금한 모양이다.
“그리고요? 또, 또!”
“그리고 본격적으로 사서삼경을…….”
“그 어려운 책 말인가?”
“예.”
“또요! 또 뭐가 있어요?”
남궁소혜는 주륵 식은땀을 흘렸다.
학당에서 가르쳐 주는 것들이야 조금만 생각해 보면 나온다. 이렇게까지 달라붙어 기대에 찬 시선을 보내면 상당히 부담스럽다.
“결국 글자들이군.”
“글자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요.”
“정말 글자만 배워요?”
세 사람이 실망한 표정으로 남궁소혜를 바라봤다.
하지만 어떡하란 말인가?
따지고 보면 정말로 글자밖에 배우는 것이 없는데…….
그녀가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