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26
“이봐, 조금 전에…….”
“들었다. 혈천이…… 호남에 말이지?”
“그걸 막아 낸 게 단가라고 하던데 정말 어마어마하군.”
승리의 축배를 들어야 했다.
사천을 기점으로 하남까지 무수히 많은 역행과 피를 흘리고 결국 정사 연합은 혈천의 최심부로 들어올 수 있었으며, 동시에 무혈입성하여 완벽한 승리를 손에 넣었다.
그러나 정파이든 사파이든 누구 하나 좋아하는 이가 없다.
수많은 동료들을 잃었으며 그 모든 과정을 겪으면서도 칼을 쥐고 이 자리에 선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피 값을 반드시 받아 내고야 말겠다는 의지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든 이들이 허탈함을 느꼈다.
적장의 목을 베고 그 목을 들어 올리며 승리를 자축해야 했으나, 혈천의 우두머리는 보이지 않았으며 심지어 호남 땅에서 고흔이 되어 사라졌다.
중원은 떠들썩했다.
정사 연합이 하남을 되찾은 것 때문이 아니다.
모든 이들의 눈을 속이고 사라진 혈천인들이 호남으로 몰려가 피를 뿌렸는데, 호남단가는 그 어떠한 이들의 도움조차 받지 않고 그들을 도륙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하남에서 그들과 격전을 준비하던 정사 연합의 입장에선 청천벽력(靑天霹靂)과도 같은 소리였으며, 덕분에 모든 사람의 관심은 정사 연합이 아닌 호남단가를 향했다.
엄지를 치켜세우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정사가 연합하였음에도 혈천에게 밀렸던 것을 생각해 본다면, 호남단가가 가지고 있는 힘은 그야말로 정사 연합을 능가한다 생각해도 될 정도였기 때문이다.
천하제일세가(天下第一世家).
모든 이들이 그들을 우러러 바라보며 그런 말을 했다.
팔대세가의 우두머리라 불렀던 남궁세가와는 다르게, 천하제일이라 불리는 세가가 나타난 것은 처음이다.
하여 많은 이들이 호남단가에 대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이런, 이런…….”
가면을 뒤집어쓴 채 한때나마 혈천이 있던 그 본 각에 주저앉아 있는 남궁천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정사 연합 전체가 뒤숭숭했다.
어찌 되었든 승리를 한 것에는 틀림이 없으나 모든 이들이 납득을 하지 못하는 승리였기에, 자존심 강한 이들이 또 뭐라 나설지 앞날이 깜깜했다.
“뭘 그리 생각하나, 이미 벌어진 일을. 우리가 어찌 알았겠어? 그놈들이 호남으로 달려갔을 줄 말이야.”
어느새 다가온 적무성이 가면을 고쳐 쓰며 말했다.
그 역시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모든 정보 단체들을 속여 버렸기에 아무도 알지 못했다. 중원 천지에 널려 있다고 하는 거지들조차 파악하지 못하였고, 하오문 역시 예상치 못했다.
“뭐, 어쨌든 이긴 것은 이긴 것 아니던가?”
“맞아, 맞아.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적무성이 휘휘 손을 휘저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혈천의 본 각 가장 꼭대기.
그 밖에서 보이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자네의 복수는 물 건너갔구먼…….”
“단 장주 놈이 알아서 해 놓았을 테니 신경은 쓰지 않는다만…….”
“허허허.”
남궁천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악양이 무사하다는 것은 결국 단우현이 나섰다는 말이다. 우두머리가 누구인지 아직 알 수는 없지만, 설령 누가 있었다 한들 결코 살아남지 못했을 거다.
또한 그곳에는 사도학마저 있다.
막강한 두 사람이 머무는 곳이니, 아무런 걱정이 들지 않았다.
“그럼, 슬슬 돌아가 볼까 하네만?”
남궁천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검을 쥐고 적무성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빛은 잔잔했다. 이곳에 한참 동안 머물러 있었는데, 아무래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감정을 털어 내고 있었던 모양이다.
적무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이놈 저놈들 말 나오기 전에 말이야. 벌써 몇 놈은 눈치챈 모양이니까…….”
“허허허.”
두 사람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장시간 함께 있었다.
사천에서부터 이곳 하남까지.
결코 가까운 거리라 할 수 없으며 그 기간 역시 상당히 길다. 이 두 사람이 남궁천과 적무성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챈 자들이 있었다.
남궁세가와 황보세가가 최대한 그 소문을 막아 내려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지 못했다.
“이대로 남아 다시 무림맹주 해도 될 것 같은데, 네놈은?”
“허허, 자네는 어떠한가?”
“글쎄…….”
적무성은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오황이라는 이름을 얻고 사파의 왕으로서 살아왔던 시간.
물론 그러한 나날들이 나쁘다 할 수는 없지만, 호남단가에 있을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외로움이 있었다.
또한, 언제나 턱밑의 칼날을 조심해야 했다.
그런 삶.
이제는 지칠 때도 되었다.
적무성이 머리를 벅벅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그냥 똥지게나 질란다.”
“허허허.”
남궁천이 너털너털 웃음을 터트렸다.
* * *
남궁소혜, 마장강, 권무진은 모든 주목을 받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을 좋게 보지 않는 무리도 있을 테지만, 정사 연합은 물론이고 낭인들마저 이제는 그들을 향해 경외심을 보내고 있는 실정이었다.
특히, 남궁소혜의 명성은 실로 대단했다.
사천 싸움에서부터 보여 준 그녀의 능력은 갓 후기지수를 벗어난 여인이라 보기 힘들 정도였으며, 한때나마 동선상에 있었던 당문혜와 소림의 무호조차 더 이상 그녀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란 말이 오갈 정도다.
“정말로 검황의 재림이 아닌가 싶은데……?”
“암! 그 정도였지! 검황, 아니 검후의 탄생이라고!”
“아니, 지금은 그 정도 실력은 아니지.”
“검황도 저 나이 때 저러지 못했으니 십 년이 지나면 틀림없을 거다.”
사람들이 소곤거리며 남궁소혜를 바라봤다.
가벼운 경장 차림으로 남궁천을 기다리고 있는 그녀를 향한 시선은 도무지 사그라들 줄 몰랐다.
권무진과 마장강 역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기는 하지만, 남궁세가라는 이름과 여인이라는 점, 심지어 백대고수의 반열에 올릴 수 있는 실력 때문에 남궁소혜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렇게 호남단가의 인물들에게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하아…….”
남궁소혜가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을 찾아 들어갔다. 지금까지 쏟아지던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느닷없이 사라지자, 그제야 긴장이 풀린 것인지 주저앉았다.
“큭큭.”
“힘든가 보구나.”
“웃지 마세요. 정말 심각하다니까요.”
남궁소혜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다는 것이고, 영향력을 주고 있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곤혹스러운 상황도 있었다.
“백열둘까지 셌는데, 더 있나?”
“몰라요!”
“열은 더 보았다.”
“이 사람들이 진짜!”
남궁소혜가 앙칼진 표정으로 두 사내를 노려봤다.
이 정도로 많은 시선을 받으면 응당 일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상대가 가히 절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외모를 지니고 있고, 그 배경마저 대단하니 그녀를 얻으려 하는 구혼자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안팎으로 남궁세가의 문을 두들기고 있었으며, 거절당한 자들이 남궁소혜를 찾아와 직접 혼담을 꺼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은 당연하다는 듯이 하북팽가였다.
그것을 시작으로 봇물 터지듯이 몰려드니, 남궁소혜의 입장에선 여간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
“무슨 도화살이 낀 것도 아니고…….”
“도화살 낀 것 맞는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충분히 그런 소리 들을 법하지.”
사악-!
권무진의 코앞으로 칼날이 스쳤다. 순간적인 감각으로 반보 물러서지 않았더라면 피를 볼 뻔했다.
권무진이 기겁을 하며 손을 들어 올렸다.
남궁소혜의 앙칼진 시선이 보였다.
“자, 장난이라고, 장난!”
“적당히 해요. 정말 심각하니까!”
“하…… 하하.”
권무진은 식은땀을 흘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한때는 자신이 우위를 점했는데, 이제는 차이가 상당하여 부딪친다 한들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남궁 소저!”
그때, 누군가 남궁소혜를 부르며 달려왔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쳐다도 보지 않은 남궁소혜가 고운 아미를 찌푸리며 손을 들어 올렸다.
“필요 없어요. 혼인 따위 하지 않을 생각이니까요.”
“무슨 소리입니까? 소승은 파계할 생각이 없습니다.”
들려오는 말에 깜짝 놀란 남궁소혜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멀뚱멀뚱 서 있는 무호가 있었다.
한껏 얼굴이 붉어진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
“하하, 괜찮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승도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무호가 웃음을 지었다.
남궁소혜에게 구애하는 수많은 남자들을 무호 또한 보았으니, 오히려 안쓰러운 시선으로 그녀를 다독였다.
“고생이 많습니다.”
“괘…… 괜찮아요.”
“그보다 군자검께서 찾고 계십니다. 어서 가시지요.”
“아, 네.”
남궁소혜가 고개를 끄덕이며 무호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녀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자 여기저기에서 온갖 시선들이 몰려들었는데, 무호가 그들을 향해 매서운 눈빛을 보내자 저도 모르게 기가 죽었다.
아무리 소림이 몰락하였다 해도 그 위세가 죽은 것은 아니다.
심지어 무호라면 남궁소혜와 버금갔던 고수 중 한 명.
차후 소림을 부흥시킬 인재라는 말이 오가는 이 중 한 명이었으니, 그 시선만으로도 많은 이들의 기를 죽일 정도였다.
“감사해요…….”
“하하하, 괜찮습니다. 아니…… 고맙다 생각하시면 이 소승의 부탁 한 가지만 들어주시면 됩니다.”
“부탁이요?”
“예, 조금 이따 말씀을 드릴 터이니 일단 가시지요.”
부탁이라는 말에 세 사람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천하의 무호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것이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곧 남궁천의 모습이 보이자, 그러한 생각을 접어 두게 되었다.
“찾으셨습니까?”
“허허, 그래. 이제 돌아갈 생각이란다. 채비들 하거라.”
돌아간다는 말에 가장 신이 난 것은 다름 아닌 남궁소혜였다.
번뜩 고개를 들어 올린 그녀가 한껏 들뜬 표정으로 자신의 거처를 향했다. 그러고는 채 일각조차 지나지 않았는데 헐레벌떡 짐을 싸 돌아왔다.
본디 가진 짐이 별로 없었던 사내들이 조금 뒤 도착을 하자, 많은 이들이 곧 단가의 사람들이 떠난다는 것을 눈치챘다.
말을 걸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이들이 곳곳에 보였다.
그러나 남궁천과 적무성은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등을 돌렸다.
그 순간.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무호의 목소리가 남궁천의 발목을 붙잡았다. 한 걸음 내디디려던 걸음을 되돌리고 고개를 돌렸다.
“그래, 무슨 일인가?”
자애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무호의 시선을 직시하고 있는 남궁천은 마치 그의 입에서 어떠한 말이 나올지 짐작이라도 한 것 같았다.
그렇기에 가장 첫 말이 어떠한 것일까 하는 궁금증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그 모든 것을 깨달았는가?
무호가 힐끗 남궁소혜를 한 차례 바라보더니, 남궁천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소승도 함께 가면 아니 되겠습니까?”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지켜보고 있는 모든 이들이 놀라 눈을 부릅떴다. 소림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무호가 무릎을 꿇고, 호남단가로 데려가 달라 말하고 있는 이 상황을 좀처럼 믿을 수가 없는 것 같았다.
이것은 남궁소혜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탁이라는 것이 이러한 것이었던가?
그녀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남궁천을 바라봤다.
그러나 남궁천의 답은 하나다.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는 적무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데려가 주면 아니되겠습니까?”
그때,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느닷없이 사람들이 우르르 갈라지고 초췌한 모습의 승 한 명이 보였다.
선진.
한때 권성이라 불렸던 자.
지금은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으나 언제나 보여 주던 부처의 눈빛은 여전히 살아 남궁천을 직시했다.
“소림의 아이를…… 말인가?”
“예, 지금의 소림이 품고 있기에는 아이의 그릇이 너무 아깝습니다. 그저 소림이 다시금 옛 힘을 되찾을 때까지만이라도 좋습니다. 이 아이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실 수 없으시겠습니까?”
파계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무호를 버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소림을 위하여.
지금 당장 재건하는 것에만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소림을 위하여, 무호를 조금 더 큰 세상으로 내보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선진의 의도를 눈치챘는가?
남궁천이 지그시 눈을 감으며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