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25
“어찌 되었나?”
“생각보다 사망자 수는 적습니다. 스물이 조금 넘습니다만…….”
홍원창은 한숨을 내쉬었다.
말이 생각보다 적은 것이지, 죽은 이들 대부분이 무공조차 모르는 일반인들이다. 또한 마을 곳곳이 파괴된 탓에 그것을 수복하는 데에만 상당한 돈이 들어갈 것 같았다.
만금상단의 전 재산을 압수한다면 보충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 하니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돈은 아니다.
그때, 단우현이 품에서 무언가를 던졌다.
툭 떨어지는 묵직한 그것은 틀림없이 전낭 주머니다.
“이, 이것은……?”
“일단 보태어 써라. 이번 사태의 원인이 우리에게 있으니 그 보상이라 생각해라.”
“아, 아닙니다! 어찌 그런 말씀을…….”
“틀린 말은 아니지 않으냐?”
단우현의 말에 홍원창은 식은땀을 흘렸다.
애초에 호남단가가 없었더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이들의 목적은 호남단가였으며 악양을 파괴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복수심과도 같은 것이었으니까.
하니 단우현의 말이 딱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차마 홍원창은 전낭 주머니를 집어 들 수 없었다. 금귀라 불릴 정도로 돈을 좋아하는 단우현이 선뜻 내준 것이다.
그것이 못내 두려웠다.
혹여 전낭 주머니 안에는 은자나 철전만 가득하고, 실질적으로 자신의 재산을 털어 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걱정하지 마라. 백만 냥은 될 터이니…….”
“백, 백만?!”
홍원창이 휘둥그레 눈을 떴다.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확인해 보니 무수히 많은 전표과 금자들이 가득했다. 세어 본다면 백만 냥에 필적, 혹은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돈을 선뜻 내어놓다니?
단우현 딴에도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 악양의 현령으로서 감사하기도 하며 괜한 부담감을 지게 한 것 같아 미안하기까지 했다.
“그…… 그럼 감사히 쓰겠습니다.”
“그래.”
홍원창은 서둘러 고개를 숙이고는 물러섰다.
이만한 돈이 있다면 갈 곳을 잃은 백성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주린 배를 채워 주는 것 역시 가능했다. 지금 당장 눈앞에 해야 할 일들이 태산이니 서둘러 악양으로 돌아가야 했다.
“정말로 준 거냐?”
홍원창이 나감과 동시에 사도학과 무천풍이 단우현의 방으로 들어왔다. 서둘러 나가는 홍원창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으며, 안에서 어떠한 이야기가 오갔는지도 이미 알고 있다.
하여 사도학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천하의 단우현이 돈을 내주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가짜로 주는 것도 있느냐?”
“네가 이런 일로 책임감을 느끼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그렇지.”
“하하.”
단우현은 짧게 웃었다.
스물 정도의 희생이 났으며 중상자는 그 이상이다.
사실상 중상자 중에서도 사망자가 나올 것이니 앞으로 희생자는 더욱 커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다스릴 수 있는 존재들이 없다.
호남단가는 그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했다.
많은 이들이 알지만 입에 담지 않는다.
이번 습격이 호남단가를 노리기 위한 것임을 말이다.
원망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거다.
그렇다고 이 악양에서 떠날 수는 없으니, 최소한 그들에게 베풀어야 했다.
“그건 그렇고 엄청나게 놀랐네. 혈천이라는 놈들이 뭐 하는 것들인지 모르겠지만, 무고한 양민들까지 죽이다니 말이야.”
“그도 그렇지만 내가 더 놀란 건 악양을 노렸다는 거다. 정사 연합과의 싸움을 코앞에 두고 말이지.”
무천풍의 말에 사도학이 받아치며 어이없이 웃었다.
사실 그 외에도 놀랄 것은 너무나도 많았다.
혈천의 수장이 만후량이었다니?
상인으로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익히 알고 있기는 하였지만, 이 많은 고수를 이끌 만한 자질은 없는 자였다.
힘을 가진 자라면 응당 만후량의 목을 꺾어 놓았을 텐데도, 그러지 않고 따랐다는 것 역시 의아한 상황이었다.
“잘 해결되었으면 된 거다.”
“결국,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네 탓이잖아?”
“하하, 그런가?”
사도학의 지적에 단우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만약 도착하는 것이 조금만 더 늦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홍원창은 물론이고 악양 전체가 몰살당했을 것이다. 그 시체들을 보고 지금의 단우현은 참을 수 있었을까?
어쩌면 혈천을 쫓아 다시금 중원으로 나갔을 것이다.
또다시 한바탕 비바람이 몰아쳤을 터.
그리 생각을 해 본다면 다행인 것 같기도 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느낌이 드는 탓에 괜스레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이미 벌어진 일이고 수습 또한 하지 않았냐? 악양 사람들 중 우리한테 고마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래…….”
“그럴 거다. 다만 그 늙은이들이 문제지.”
사도학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두 사람을 떠올렸다.
무림을 지키고자 사천에서 하남까지 달려간 이들. 혈천과의 싸움으로 인하여 남궁천과 적무성은 자신들의 과거를 떨쳐 내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혈천의 남은 잔당들과 그 우두머리가 악양에서 죽어 나갔으니, 괜히 하남행을 택했다고 생각을 할 것이다.
“흐흐흐, 생각해 보니 웃기네. 완전 개고생만 한 거 아냐?”
사도학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이 소식을 들은 남궁천의 표정이 어떨지 벌써 눈에 선했다.
아마 한동안 말조차 잇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재미있나?”
“그럼, 이만한 볼거리는 또 없을 테지만, 차마 보지 못하는 게 아쉽군.”
단우현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바람을 쐬고 싶은 기분이다. 무천풍과 사도학이 중얼거리며 떠들고 있었으나, 그러한 이야기들은 단우현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천천히 걸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바람은 불어오지 않는다.
마치 어딘가에 멈춰 움직이지 않는다는 듯이.
그것을 깨달으며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단소미와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평소라면 마당이나 밖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릴 법도 하지만, 이제 그것은 꿈처럼 사라진 것 같았다.
아마도 악양에 있을 테지.
많은 사람이 다쳤으니 단소미는 그것을 보고만 있을 아이가 아니었다.
자그마한 손으로라도 도움을 주려 할 터.
생각을 하니 저도 모르게 미소가 흘렀다.
“좋은 건가요? 아니면 기분이 좋지 아니 한 것인가요?”
뜬금없이 목소리가 들렸다.
동정호를 바라보고 있던 단우현은 그 목소리에 놀라지도 않은 채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냥 그렇구나.”
“…….”
느닷없이 나타난 여인은 슬쩍 옆으로 다가와 동정호를 바라봤다. 한때나마 무신이라는 거대한 존재를 가두어 낸 호수.
천 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 봉인을 지켜 낸 동정호.
또한 천 년 뒤, 그 무신의 봉인을 깨트린 동정호.
이 거대한 호수에 어떠한 힘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손을 뻗어 물을 만져 보았지만, 그저 평범한 호숫물에 불과했다.
여인은 자그마한 미소를 지으며 단우현을 바라봤다.
“그런데 만후량이라는 자의 시체를 조금 조사해 봤어요.”
“용케도 건드렸구나. 제법 심한 몰골이었을 텐데 말이다.”
“그 정도야 뭐…….”
많은 시체를 본 것은 단우현만이 아니다.
그녀 또한 셀 수 없이 긴 세월을 살며 많은 것을 보았다. 고작해야 인간의 시체 따위에 흔들릴 정신력이 아니다.
“그런데 천무제의 기운이…….”
“…….”
단우현은 아무렇지 않게 동정호만을 바라봤다.
천무제라는 이름을 들었음에도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 주저앉았다.
느긋하게 동정호를 볼 심산인지 제법 태평한 느낌이다.
“질기군.”
“혈마의 스승이기도 하니 당신에겐 이만한 악연이 없을 테죠.”
애초에 무신을 봉인하려 했던 천무제다. 그 봉인 술식을 만들어 낸 것도 천무제다.
마치 무신을 처음부터 노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러한 행동을 보였기에 이 두 사람은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아닌가 싶었다.
“나는 기억한다.”
“무엇을요?”
단우현이 조심스레 동정호를 가리켰다.
그 밑바닥, 차갑디차가운 얼음 속에 갇혀 있을 그 당시. 수없이 많은 세월이 흐르고 또다시 흐르며 그 모든 감각조차 앗아 갔을 때.
“천무제의 모습을 말이다.”
“본 적이 있으니까요.”
“아니, 나를 찾아왔다.”
“당신을요?”
“그래, 저 밑 가장 깊숙한 곳에 틀어박혔을 때.”
거대한 얼음 속에 갇혀 버린 단우현은 그럼에도 정신만큼은 살아 있었다.
처음은 백 일쯤 되었을 때였다.
천무제가 찾아와 단우현을 확인하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천 일이 지나고 만 일이 지나고, 마치 왜 죽지 않느냐는 듯한 시선으로 단우현을 바라보고 있던 그 눈빛이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났다.
“그게…… 무슨…….”
“놈이 뭘 원하는지 모른다. 그저 우두커니 선 채 나를 바라보았으니까.”
단우현은 아직도 그 눈빛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생각을 한 것인지, 아니면 똑바로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천무제가 보인 시선은 흥미 혹은 장난감을 바라보는 느낌.
또는 무언가를 갈구하는 시선이었다.
“당신에게 뭔가를 원한다든가?”
“…….”
여인이 힐끗 단우현을 바라봤다.
아무런 말을 하지는 않지만 무언가 짐작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닌 그 천무제. 한때는 팔선의 수장이었으며, 아직까지도 전대와 후대를 통틀어 가장 강하다고 불리는 자.
그런 이의 머릿속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추측은 그저 추측에 불과할 뿐.
“혹시…… 천일조화공?”
여인이 천무제의 생각을 지레짐작하며 단우현을 바라봤다. 담담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던 단우현의 시선이 돌연 급변했다.
오싹-!
그 어느 때보다 살기가 깃든 시선.
단순히 내뱉은 말이지만 그제야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천일조화공은 단우현의 모든 것이다. 그의 삶이며 온전히 무신 단우현을 지탱해 주는 요소였다.
천일조화공을 원한다는 것은 곧 단우현을 원한다는 말.
그러한 것을 바라지 않는 단우현의 입장에서는 몹시 불쾌한 일인 것은 당연했다.
여인이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레 손을 뻗어 단우현의 어깨를 만지려 했다. 조금이라도 이 살기를 억눌러 보이려 했다.
그때.
“장주님-! 이 삼태 돌아왔……?”
먼 거리에서 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바람을 타고 나타난 것처럼 돌풍을 일으킨 그는, 함께 앉아 있는 단우현과 여인을 바라보며 눈을 껌뻑였다.
한 차례 껌뻑이는 순간, 단우현의 곁에 있는 여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뭐냐?”
“지금……?”
단우현이 상념을 깬 장삼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썼다. 하지만 그는 단우현의 표정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물었다.
“어…… 엄청 아름다운 소저가 있지 않았습니까요?!”
단우현이 힐끗 옆을 돌아봤다.
장삼태의 위치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어느새 여우로 화한 그녀가 잔뜩 몸을 움츠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지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구나.”
“아니, 진짜입니다! 남궁소혜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을 만큼 아리따운 처자가 있었다니까요?!”
“꿈을 꿨나 보구나.”
“진짜라니까, 이 인간아!?”
“…….”
단우현이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것을 본 장삼태가 재빠르게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