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24
“어째서…… 어째서 밀지 못하는 것이냐!?”
먼 거리에서 이 모든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던 만후량은 마치 못 볼 것이라도 본 사람처럼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그저 일방적인 살육이 시작되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호남단가라는 거대한 힘이 빠진 상황에서 저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비명과 절규 속에서 죽어 가는 것이 전부여야 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만금상단의 재력과 혈천의 남은 전력을 쏟아부은 상황.
그런데도 단박에 밀지 못하고 오히려 점차 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저항이 거셉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만조강이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힐끗거렸다. 핏대를 세우고 악양을 노려보고 있는 만후량의 표정에는 분노와 복수심만이 가득했다.
이는 만조강이 알고 있는 부친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의 부친은 언제나 고결하였으며, 복수심과 피보다는 이익을 생각하며 걸음을 내디뎠다.
때론 이익을 위해 제 가족들의 목숨조차 내버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냉정한 분이신데, 어찌하여 지금은 다른 것을 보지 못할까?
‘끝이로군.’
만조강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웃었다.
몰락이라는 두 단어가 그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한때 중원을 호령하던 만금상단 역시 마찬가지다. 아비의 잘못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잃어야 하는가?
만조강이 슥 옆을 돌아봤다.
만후량의 곁에는 몇몇 이들이 기립해 있다. 혹여 있을지 모를 사태를 대비한 호위들이다. 한순간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나 차마 그것을 실행할 용기는 없었는지, 조용히 마음을 다스리며 상황을 지켜봤다.
그래도 아직까진 이쪽이 유리했다.
그들을 막아선 이들의 수는 턱없이 부족했고, 혈천은 아직 막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
호남단가의 인물들만 나서지 않는다면, 끝내 만후량의 뜻대로 흘러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도박이지…….’
상인은 도박을 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이기든, 지든 한 가지 결과밖에 없는 도박은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에 손을 댄 것은 만후량이었으며, 만조강은 이미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수긍한 듯 조용히 눈을 감았다.
설령 이곳에서 만후량이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 한들, 혈천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하남을 잃고, 호남단가를 피해 다녀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릴 테니 전화위복의 기회란 존재치 않으리라.
서걱!
그때,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번뜩이는 것과 동시에 한 사람이 쓰러졌다.
많은 이들이 단박에 깨달았다.
이 자리에 누군가가 있다.
누군가가 이곳에 왔다.
만후량을 보호하기 위해 사방 천지에 깔린 혈천의 고수들을 제압하고 이곳까지 왔다는 것만 보아도 끝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시선들이 돌아간다.
거대한 기세를 품고 다가오는 기척을 느낀 것인지 이들의 표정에는 긴장이 어렸다.
“재미있는 짓들을 하는구나.”
그때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또다시 누군가의 몸이 갈라졌다. 반항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이들이 시체가 되어 널브러지고 피를 뿌리고 그렇게 생을 끝냈다.
“누구냐?”
저마다 칼을 뽑으며 겨눈다.
시선은 서쪽, 그곳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의 눈이 격렬하게 떨려 왔다. 기이할 정도로 스산한 기운이 온몸을 자극했다.
전신은 물론이며 손발마저 부들부들 떨려 왔다.
휑하니 부는 바람 사이로 귀곡성과도 같은 절규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저벅저벅.
걸어오는 이의 모습이 보였다.
가볍게 한 발 한 발, 그렇게 다가오는 순간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모든 이들이 경직된 채 움직이지 못했다.
몸 어디 한 군데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았다. 그가 손에 쥔 검 또한 사람을 베었다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말끔했다.
만후량은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순간 저도 모르게 이를 갈며 소리쳤다.
“단우현-!”
“나를 아나?”
단우현의 시선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만후량을 기이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이런 짓을 벌일 정도이고 얼굴을 보는 순간 살기를 품을 정도라면, 응당 기억할 법도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런 자와 만난 적이 없었다.
단우현의 칼날이 다시금 휘둘러졌다.
촤촤악!
은밀히 기회를 엿보며 다가서려던 세 명의 사내들이 삽시간에 고깃덩어리가 되어 나뒹굴었다. 피가 흥건하게 바닥을 적신 뒤에야, 모든 이들이 동료의 죽음을 확인했다.
“크윽……! 네놈만큼은…… 네놈만큼은 용서치 못한다.”
“웃기는 놈이로군.”
단우현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기억조차 없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원한을 품었다는 것은 그리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단순히 내뿜는 살기만 보아도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음은 분명해 보였다.
애초에 살려 줄 생각조차 없었지만 말이다.
“재미있는 일을 벌였구나. 먼저 오지 않았더라면 어찌 되었을지…….”
“전부 죽여 주마. 네놈이 알고 있던 이들, 네놈이 사랑했던 자들! 갈가리 찢어 네놈 앞에서…… 컥!”
순간 누구도 그것을 보지 못했다.
눈앞에 있던 만후량이 사라졌다.
소리를 지르던 이는 존재치 않았고 곧 ‘쾅!’ 하는 격렬한 울림만이 들렸다.
만조강이 후드득 떨어지는 파편들을 맞으며 침을 삼켰다. 고개를 돌리고 싶으나 차마 돌아가지 않는다.
촤륵!
무언가가 그의 어깨로 떨어지며 축축하게 몸을 적셨다.
진득한 혈향이 그의 코를 자극하고 뒤집어쓴 무언가가 뜨끈뜨끈한 열기를 발했다.
식은땀이 흐르고 입안은 텁텁할 정도로 메말랐다.
가까스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벽에 틀어박힌 만후량의 모습이 보였다. 그 입에는 만후량이 가지고 다니던 검이 박혀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괴기한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
이미 숨통이 끊어진 것인지 아니면 미약하게나마 살아 있는 것인지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었다.
눈은 이미 새하얗게 돌아갔으며 입에서는 거친 신음만이 흘렀다.
“커커컥…….”
“…….”
만조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에 빠져들었다.
다시금 반대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천천히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고 있는 단우현의 모습이 보였다.
만조강은 숨을 삼켰다.
만후량을 지켜야 했던 호위들은 어디로 갔지?
어느새 보이지 않는다.
아니, 어디 있는지 그것은 알고 있다.
바닥에 흥건하게 고여 있는 핏물.
그것만 보더라도 모든 이들이 순식간에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한 사람.
만조강 자신뿐이었다.
우두커니 서 있는 만조강은 다가오는 저승사자를 그저 멍하니 지켜볼 뿐이었다.
* * *
“헉…… 헉…… 헉!”
홍원창은 피를 흘리면서도 검을 쥐었다.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던 수많은 포졸이 쓰러졌고, 신음을 흘리며 죽어 가고 있었다.
그 역시 당장 쓰러진다 하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중상을 입었음에도 절대 물러서지 않으려 칼을 쥐었다.
‘내가 쓰러지면 더 많은 이들이 죽는다.’
홍원창은 현청을 등지고 있다.
그가 쓰러지면 현청은 무방비가 되어 버린다. 그곳에는 홍원창의 아내가 있으며 또한 그를 섬기는 하인과 시녀들도 있다.
심지어 많은 백성까지 대피시킨 곳이니, 다른 이들이 올 때까지 최대한 버텨야 했다.
그것이 지금 홍원창이 할 수 있는 전부다.
펼칠 수 있는 검술도, 버틸 수 있는 체력과 공력도 없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아직도 많은 혈천인들이 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어쩌면 처음보다 더 많아진 것 같았다.
단숨에 홍원창을 베고 현청으로 진격할 수 있음에도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그저 죽어 가는 홍원창과 포졸들을 가지고 노는 것이 재미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이를 악물고 버텼다.
가지고 놀아도 된다.
희롱당하고, 처참하게 뭉개지고, 개미처럼 짓밟힌다 해도 이들을 막아설 수만 있다면, 홍원창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혀…… 현령…….”
“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텨라.”
포졸들이 힘이 빠진 표정으로 홍원창을 응시했다.
남아 있는 수라 해 봐야 고작해야 열이 넘지 않는다. 반대로 사방을 둘러싼 채 지그시 지켜보고 있는 혈천 무리들은 그 배는 되는 것 같았다.
히죽히죽 웃음을 짓는 모습이 보였다.
영락없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자들의 모습이다.
포졸들은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겁을 집어먹었다. 두 발을 딛고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홍원창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다.
“거기까지다, 이놈들-!”
그때, 누군가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먼 거리에서 들렸던 그 소리는 순식간에 가까워지더니, 이윽고 돌풍처럼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혈천 무리들이 깜짝 놀라 그 사내를 바라봤다.
귀에 들려왔던 소리가 아직도 끊이지 않았는데, 모습을 드러낸 것을 보니 평범한 경공술을 익힌 것이 아니다. 심지어 그가 나타나는 모습조차 보지 못했다.
혈천 무리가 삽시간에 흩어지며 경계했다.
서로 눈짓을 주고 상황을 주시했다.
포졸이나 홍원창과는 명백히 다른, 고수가 나타났음을 깨달은 것이다.
“자…… 자네…….”
놀란 것은 비단 혈천 무리만이 아니었다.
홍원창과 포졸들마저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평소 촐싹거리며 말썽만을 일으키고 다니는 자.
하지만 실력만큼은 출중한 호남단가의 식솔.
“으하하! 이 장삼태 님이 왔으니 아무런 걱정하지 마시오!”
쩌렁쩌렁 크게 웃음을 터트린 장삼태가 자신 있게 가슴을 두들겼다. 그는 눈앞에 있는 혈천 무리를 바라보면서도 조금도 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듯했다.
그의 자신감은 호남단가의 자부심을 내비치는 것 같았다.
그때, 홍원창이 휙휙 고개를 돌렸다.
포졸들 역시 마찬가지로 주변을 둘러봤다.
그들은 마치 장삼태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하여 어느 누구도 시선이 장삼태를 향해 있지 않았다.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자, 장삼태가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온 게 기쁘지 않수?”
“……다른 분들은?”
“다른 곳에 있을 테지. 난 모르오.”
“……그런가?”
홍원창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검을 쥐었다.
그것은 포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창대를 쥐고 있는 그들의 손아귀에 힘이 더욱 들어갔다. 장삼태라는 호남단가의 인물이 있는데 어이하여 그런가?
“아니, 구하러 와 줬는데 분위기가 왜 이래?”
사사삭-!
그 순간, 혈천 무리이 장삼태와 홍원창을 향해 덤벼들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생각이 사라진 듯 그들의 움직임은 상당히 신속하였고, 홍원창과 포졸들을 가지고 놀 때보다 더욱 큰 살기가 요동쳤다.
장삼태 또한 인상을 찌푸리며 주먹을 쥐었다.
수가 많다 하여 강한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이길 자신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한 발 내딛는 순간.
촤락!
검이 다가왔다.
기습적인 한 수는 장삼태조차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급하게 고개를 젖히지 않았더라면 목이 꿰뚫렸을지도 모른다.
“으아아아악! 시벌, 피! 죽을 뻔했잖아, 새끼야!”
헐레벌떡 물러선 장삼태가 악을 썼다.
상대의 검날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빨라, 괜스레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홍원창과 포졸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도움을 주러 온 것인지…… 방해를 하러 온 것인지…….”
하지만 호남단가의 사람들이 도착했다는 것을 안 것만으로도 홍원창은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