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97
단우현에게 있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날이다.
죽은 이들의 사체와 그 진득한 피 냄새를 맡으면서도 일말의 동정심조차 생기지 않는 것은, 사람을 베면서도 수많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눈앞에 무수히 많은 이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고 또한 사라졌다.
죽은 이들도, 그렇지 않은 자들도.
소중한 자들도, 그렇지 않은 자들도.
함께 웃었던 자, 함께 슬픔을 겪었던 자들.
지금까지 보고 느꼈던 모든 일 하나하나를 되짚고 생각하며 자신을 반성하고 또한 다잡는다.
천무제 역시 떠올렸다.
언제 처음 만났더라?
무슨 이유로 만났더라?
너무나도 오래된 일인지라 이제는 그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였고 그 목적 역시 알 수가 없었다.
단우현은 고개를 치켜들었다.
서걱!
또 한 사람을 베어 내고 그 피가 온몸에 튀겼다.
어느새 피로 흠뻑 젖은 단우현의 모습은 실로 야수와도 같았으며 다른 의미로는 사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누구에게도 비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베어 나갈 뿐.
다가오는 자, 앞을 막는 자.
자신을 향해 살심을 품는 자.
마치 그러한 상황 자체가 그가 가지고 있는 목적이었던 것처럼 혹은 이러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한 걸음 한 걸음 그를 향해 다가가고 있는 단우현은 더욱 살심이 요동치고 힘이 실렸다.
털썩털썩!
수없이 많은 이들이 쓰러지고 피를 흘렸다.
산 사람은 없는 것인지 신음 소리 한 번 들려오지 않았다.
천하의 단우현이 완벽하게 상대를 죽이고자 하는 일검을 휘둘렀으니, 살아남은 이들이 있다면 그것이 더욱 신기한 일일 것이다.
어느새 막아서는 이들은 없었다.
걷는 걸음을 막아서지 않으니 그것 또한 기분이 이상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몇 놈 정도 더 나와 앞을 막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습지도 않은 생각을 하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눈가에 묻어 있는 피를 닦아 내고 한곳에 우뚝 섰다.
눈앞에 누군가 보였다.
서서히 뚜렷해지는 이의 형태를 확인하고는 단우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저놈 혼자 있는 것인가?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려 보았다.
혹여 자신이 보지 못하는 곳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지만, 주위에는 어느 누구의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그 순간.
“하…… 오랜만일세?”
다소 비웃임이 섞여 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명백히 상대를 향한 조롱.
그리고 왜 이곳에 나타났냐는 호통 같았다.
그의 눈빛에는 단우현에 대한 두려움이 보이지 않았는데, 그것은 눈앞에 있는 사내, 즉 류태서가 가지고 있는 자존심 때문인 것 같았다.
단우현이 두 걸음 앞으로 나섰다.
어느새 상대와의 거리는 오 장.
마음만 먹는다면 서로 죽이기 위한 일검을 휘두르기에 좋은 거리였다.
“왜 네놈 혼자이더냐?”
단우현이 게슴츠레 눈을 떴다.
천무제를 따르는 이들은 많다. 그런 놈들과 함께 있을 것이란 예상을 깨고 홀로 나와 서 있으니 그것에 의아함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혹여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며 상대의 의중을 짚어 보려 했다.
하지만 류태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간단한 이야기일세. 모두 죽었다네. 호남단가에서 세 놈이 갔고, 주산군도에서 한 놈이 갔지. 그리고 이곳에서도 하나가……. 결국 남은 것은 나 혼자라네.”
호남단가라는 말에 단우현의 눈빛이 바뀌었다.
보다 날카롭게 쏘아보고 기세가 터졌다.
터져 오른 기세만으로도 땅이 갈라지고 바람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온 사방을 압박하는 힘은 도가 지나칠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
“하……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한 놈이 죽기는 했어도 다들 무사할 것 같으니 말이야.”
“……죽어?”
“그래, 덩치 큰 놈이 죽었더군.”
“…….”
단우현은 입을 다물었다.
덩치 큰 자라면 마장강을 이야기함이다. 평소 말은 없으나 그 우직함으로 항상 곁을 지켰던 자다.
장삼태만큼은 아니지만 호남단가에 반드시 필요한 인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녀석이었는데, 그의 비보를 접하니 저도 모르게 마음이 들썩였다.
하지만 곧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를 썼다.
복수를 해 주고 싶은 마음은 같으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결코 아니 된다. 해서 침착함을 유지한 채 비웃음을 머금고 입을 열었다.
“타락했다고 들었는데…… 이제는 나약한 자들에게만 손을 쓰나 보군.”
“하하, 어쩌다 보니 말일세…… 그리고 죽인 이는 내가 아니네. 그곳에 있던 수하들이었지.”
“…….”
사악-
단우현이 사라졌다.
눈앞에서 느닷없이 그 존재가 사라져 버리니 류태서는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하지만 침착한 것은 단우현만이 아니다.
류태서 역시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자.
그렇기에 천무제의 오른팔인 것이다.
캉!
칼을 뻗어 막아 냈다.
어느새 지척에 다가온 단우현의 칼날을 받아 내며 서로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먼저 수를 쓰다니? 예전의 자네가 아닌데?”
“말이 많구나.”
“하하, 늙으니 말이 많아질 수밖에.”
“입 냄새가 난다는 소리다. 다물어라.”
“하하하.”
카카캉!
세 번의 칼날이 번뜩이며 휘둘러졌다.
두 사람이 자리를 교차하며 부딪치고 물러서고 거리를 좁혔다.
칼은 너무나도 빨라 어떤 방식으로 흘러가는지조차 알 수가 없을 정도였으며, 그들의 움직임은 설령 이 자리에 오황이 있다 한들 결코 보지 못할 것이다.
카카카캉!
연이어 들려오는 부딪침은 격렬했다.
상대에게 허점을 내주고 반대로 틈을 파고들기도 하였으며, 압박하고 물러서고 풀어 주고 조여 주며 격렬하다 못해 보기 드문 싸움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천무제의 오른팔 류태서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단우현의 검을 이렇게까지 받아 본 이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류태서의 실력 역시 못지않을 정도로 강하다는 뜻.
촤악촤악!
어느새 두 사람이 뒤로 물러섰다.
단우현은 자신의 어깨가 베여 나갔음을 깨달았다.
촤악!
“큭!”
그러나 반대로 단우현의 일검은 류태서의 가슴을 갈랐다. 깊은 상처라고는 할 수 없지만, 완벽히 상대를 압도했음이다.
류태서가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균형을 잃는다면 그만큼 큰일이 없다.
자그마한 약점이라도 드러나는 순간 죽는 것이 고수와 고수의 싸움이기에, 류태서는 최대한 단우현에게 틈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을 하고 있엇다.
하지만 단우현과 류태서에게는 메울 수 없는 차이가 있다.
촤촤악!
균형을 잡으려는 순간 뻗어 들어오는 가벼운 검기가 류태서의 우측을 노렸다. 재빠르게 몸을 날리며 피하는 것과 동시에 공격을 하려 했다.
하지만.
퍼억!
어느새 다가온 단우현의 무릎이 류태서의 안면을 찍었다.
우다탕!
날아가 땅을 쓸었다.
천하의 류태서의 몰골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나뒹굴었다.
그래, 이러한 차이다.
누구보다 높은 경지에 올라와 있는 류태서는, 아주 오랫동안 이런 격한 싸움을 하지 않았다.
감각을 잃은 것이다.
가벼운 한 수나 기세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경지에 올라와 있으니, 그가 격한 싸움을 할 필요가 없었던 셈이다.
그와 반대로 단우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단숨에 상대를 죽이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숱한 이들이 덤벼들었고, 결과적으로 류태서처럼 우두커니 선 채 사람을 제압하고 죽이는 싸움을 하지 않았다.
그런 격 차이가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다.
“허약하군.”
“크윽.”
“애처롭기까지 해.”
자리에서 억지로 일어서려는 류태서는 보며 단우현은 비웃었다. 강함에서는 둘째 가라면 서럽다 해도 과언이 아닌 자가 바로 류태서다.
그런 이가 제대로 손조차 쓰지 못하고 바닥을 기고 있으니, 이만큼 재미있는 꼴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류태서는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미 턱을 가격당하여 힘이 빠져나간 탓이다.
주저앉아 있는 류태서를 향해 다가선 단우현이 우두커니 선 채 아래를 내려다 보며 이죽거렸다.
“심지어 안쓰럽기까지 하고.”
“크윽…… 이놈……!”
“천무제는 어디에 있느냐?”
“어림없다!”
부웅!
류태서는 온갖 힘을 다하여 검을 휘둘렀다.
이번 한 수만큼은 반드시 단우현의 팔다리 하나 정도는 가지고 가겠다는 생각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힘이 검 끝에서 터지니, 누구라 한들 맞는 순간 온몸이 갈가리 찢겨 나갈 것이다.
탁!
그런데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단우현은 아무렇지 않게 발로 그의 칼날을 밟았다.
한순간, 검에 맺혀 있던 힘들이 모조리 빠져나갔다.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처럼 태연하게 서 있는 그 모습은 실로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이러한 짓은 설령 천무제라 하여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류태서는 온 힘을 다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토해 낸 한 수다.
그런데 그것을 고작해야 발로 밟아 막아 내다니?
꿈인가? 현실인가?
꿈이라면 좀처럼 깨지 않는 악몽이라 할 수 있으며, 현실이라면 절대로 겪고 싶지 않은 상황 중 하나라 할 수 있었다.
“어…… 어떻게……? 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것인데…….”
단우현은 슥 턱을 쓰다듬었다.
놀라워하는 것도 당연했다.
천하의 류태서다.
아무리 무신이라 한들 인간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는데, 고작해야 한 발로 류태서의 모든 전력을 흐트러 버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단우현은 그것을 해내었다.
그렇기에 류태서의 정신은 더욱 어지러웠다.
“이건 고맙다 해야 하는가? 덕분에 만년빙정을 조금 흡수했거든…….”
“무…… 무슨 미친……!”
서걱!
단우현은 망설이지 않았다.
경악성을 터트리는 이를 바라보며 일검을 내질렀다.
잘린 목이 허공으로 붕 날아갔다.
몸에서는 무수히 많은 피가 솟구쳐 올랐으며, 그것은 크게 휘청이다 이내 ‘쿵!’ 하며 넘어갔다.
여전히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짓고 있는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진 것 역시 그 순간이다.
단우현은 류태서의 마지막을 지켜봤다.
또르르 굴러온 머리통의 시선은 단우현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경악 어린 눈빛과 표정, 그는 죽어서도 이 현실을 믿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 곁을 스쳐 지나간다.
몸에 묻은 피를 닦아 내고 숨을 골랐다.
그는 천하의 류태서를 죽였다 하여 고조감 따위가 들지는 않았다. 승리의 기쁨이니 하는 것들조차 머릿속에 없는 것인지, 그저 지그시 앞만을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
처음부터 목적은 하나.
그의 목을 치기 전까지 어떤 성취감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본인이 직접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있던 단우현이 한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러고는 정면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휘날리는 바람결에 몸을 맡긴 채, 우두커니 서 있는 새하얀 백발의 신선 한 명이 부드럽게 웃음을 지으며 서 있었다.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