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59
“결국 누가 공격을 했는지, 누가 그것을 가져갔는지 알지 못했다는 말이로군.”
호남으로 들어선 남궁천은 군자도로 들어와 무신 비동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사방에 새겨져 있는 검흔들을 하나하나 살피고 있는 그의 눈빛은 다소 덤덤하고 말투 또한 무뚝뚝했다.
삼천의 유해가 사라졌고, 가져간 이들은 누구인지 모른다.
정마의 추격대가 흔적을 찾아 뒤를 쫓고 있기는 하지만, 어느 선에서 그것마저 사라진 탓에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었다.
“소…… 송구합니다, 맹주.”
무림맹 호남 지부장은 깊게 고개를 숙였다.
조금 더 자신이 현명하였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에 자괴감이 몰아쳤다.
결국 정파든 마교든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남 좋은 일만 시킨 꼴이었으니까.
그때, 무림맹 총사 제갈운이 중얼거렸다.
“사파는 아닙니다. 그들의 움직임은 처음부터 주시하고 있었으니까요. 하면 남은 것은 드러나지 않은 세력들 중 하나이든가, 혹은 세외라는 것인데…….”
그러한 말에 남궁천이 벽면에 새겨진 검흔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웃었다.
“혹은 마교일지도 모르지.”
“예?”
“……!?”
주위에 있던 모든 이들이 깜짝 놀랐다.
무림맹 지부장은 물론이고 제갈운마저.
심지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남궁소혜마저 번뜩 들어 올렸다. 그만큼 남궁천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으니까.
마교? 마교라?
어느 누구도 그러한 생각을 하지 못했다.
“가정이오, 가정.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내 누누이 말하지 않았소.”
“……그 생각을 차마 못했습니다. 그쪽도 함께 조사를 해 보겠습니다.”
제갈운이 감명을 받은 시선으로 고개를 숙였다.
남궁천.
팔대세가 으뜸이라 불리는 남궁세가의 일원.
검황이라 불리는 그 실력은 이미 중원 으뜸 중 한 명이며, 비상한 머리와 앞을 보는 혜안은 어느 누구도 따를 자가 없다고 전해진다.
이런 이가 맹주이기에 다행이다.
그렇기에 더욱 따를 수 있다.
‘얼마 남지는 않았지만…….’
제갈운은 깊게 한숨을 토했다.
새로운 무림맹주의 선출까지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
검황이라는 칭호 하나만으로 무림맹을 통솔하고 어떤 이들조차 허튼짓을 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이 바로 그인데, 그가 맹주직을 내려와 새로운 이가 뽑힌다면 무림맹은 상당히 어지러워질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그런데 맹주님, 이 검흔들은…….”
“쓸모가 없네. 마치 누군가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덧씌워 놓은 것 같아. 여기서 뭔가를 얻는 것은 불가능할 테지.”
남궁천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오황의 일인으로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기는 하나, 그 또한 남들 모르게 고민거리 하나정도는 가지고 있다.
벽에 가로막힌 채 그것을 뚫지 못하는 것.
벌써 십여 년이 넘게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였으니, 답답한 마음은 오죽할까?
하여 무신의 비동을 찾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그 역시 기쁨을 금치 못하였는데, 막상 찾아와 보니 전혀 쓸모가 없다.
그의 입에서 자그마한 한숨이 터졌다.
* * *
쪼르르-
두 사람이 우두커니 서 있다.
장원의 뒤편.
그 자그마한 언덕에 권무진과 장삼태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인지, 혹은 무엇을 하기 위해 이곳에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표정들이 하나같이 비상하여 마치 큰일이라도 겪을 것 같다.
“이런 곳으로 부른 것을 보면 분명 큰일이겠지?”
장삼태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이곳으로 부른 것은 다름 아닌 단우현이다. 지금까지 두 사람을 동시에 부른 적이 없으니만큼 뭔가 중요한 것을 듣거나 배우거나 하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그러지 않을까 싶군.”
“흐흐, 분명 군자도에서 우리 활약을 보고 계셨던 거야. 그래서 더 좋은 무공을 가르쳐 주시려고…….”
“꼴값을 떠네.”
“뭐야?”
권무진은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장삼태와 같은 기대감을 그 또한 가지고 있다. 그만큼 그들은 군자도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 주었으니까.
그러나 장삼태의 앞인지라 차마 웃지를 못하고 표정 관리를 해야 하니만큼, 기쁨을 억누르느라 상당히 힘이 든다.
그의 입가가 보이지 않게 씰룩거렸다.
“아니면 무신 비동에서 무언가를 얻고 우리에게 주려는 걸지도!”
“하하…… 크흠! 그럴 리가 없지 않나. 주군께선 그곳에 들어간 적이 없으시다.”
“헹! 다름 아닌 우리 장주님이라고! 무림맹이나 마교놈들 모르게 들어가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일걸?”
권무진은 차마 반박을 하지 못했다.
하긴, 단우현 정도라면 능히 해낼 법했다.
그때였다.
저벅저벅-
누군가 두 사람이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재빠르게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니, 단우현이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한 손에는 상당히 비쌀 것 같은 소홍주 한 병이 들려 있었으며, 다른 한 손에는 커다란 천에 무언가를 감싸 들고 있었다.
단우현이 우두커니 멈춰 서고 두 사람을 바라봤다.
“왔느냐?”
“예! 주군!”
“헤헤, 기다렸습니다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해야 할 일이 조금 있어서 말이다.”
여전히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말투에는 두 사람에 대한 신뢰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또한 그 눈빛을 받고 있자니 절로 마음이 떨려 왔다.
정말로 무언가를 보여 주거나 주려는 것 같다.
하긴, 그만큼 단우현을 위해 일을 했으면 하나 받을 법 하지.
그때, 단우현이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바닥에 던졌다.
“이게 무엇입니까?”
“열어 보거라.”
드디어 왔다!
장삼태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건 틀림없이 무언가 있다. 여는 순간 눈이 돌아갈 만큼 대단한 것이 분명할 거다.
이 인간, 낮잠 잔다면서 분명 비동을 털었을 거다.
히죽히죽-
연이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권무진과 함께 그 천을 걷어 냈다.
이내 두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 치켜떠졌다.
“이…… 이게 무엇입니까?”
당황하며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다름 아닌 권무진이었다. 그는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지그시 살펴보며 담담하기 짝이 없는 단우현의 얼굴을 주시했다.
한데, 이 사람은 조금도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로 고개를 갸웃했다.
“삽, 삽을 모르느냐?”
“……아, 압니다만. 이걸 왜 저희들에게……?”
뭔가 엄청난 것이라 생각을 했던 것과는 다르게 고작해야 삽이다. 땅을 파기 위해 만들어 진 도구라는 소리다.
이것이 비동에서 나온 전설의 삽인가?
무신이 이 삽을 들고 무언가를 했단 말인가?
권무진과 장삼태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헝클어졌다.
그러나 두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은 단우현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파라.”
“예?”
“땅을 파라고.”
“……지, 진심입니까요?”
“그럼 거짓말일까?”
장삼태는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저 말투 저 행동을 보고 있자니 정말로 한 치 거짓이 없다.
진심으로 땅을 파라는 거다.
이것도 일종에 수련인가?
장삼태와 권무진이 서로를 바라봤다. 그러나 자리를 박차고 나갈 용기가 없는 두 사람은 그저 조용히 삽을 들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략 반 시진 정도 시간이 흘렀다.
반 장 정도의 깊이를 묵묵히 파고 있던 장삼태가, 단우현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이, 이 정도면 됩니까?”
“더 깊게 더 넓게 파라. 일 장은 넘었으면 좋겠군.”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장삼태는 아연실색했다.
고작해야 반 장을 파는 데 걸린 반 시진이 걸렸다.
워낙 땅이 딱딱하고, 돌마저 곳곳에 박혀 있는 탓에 파는 게 꽤 힘들었다.
‘이런 제기랄! 지가 하든가!’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한마디였다.
그렇게 또다시 반 시진이 흐르자, 두 사람은 흥건하게 땀에 전 채 깊게 파인 그곳을 기어 나왔다.
올라가는 것도 상당히 힘이 들어 어느새 온몸은 흙투성이다.
“헥…… 헥…… 다…… 다 되었습니다.”
“괜찮군.”
“그것…… 참, 가, 감사합니다.”
파르르 입꼬리를 떨며 장삼태는 주먹을 쥐었다. 강하지만 않았다면 한 대 쥐어박았을 것이다.
그만큼 오늘 일은 충격적이다.
그때, 단우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삼태야.”
“또 왜?!”
순간 헉! 하며 헛바람을 들이켰다. 느닷없이 부르는 말에 속으로 내뱉는다는 말이 겉으로 나와 버렸다. 기겁하며 쳐다보는 권무진의 시선이 보였다.
빠각!
“아이코야!”
“내뱉기 전에 생각부터 하거라.”
“헤…… 헤헤…… 무…… 물론입죠. 그, 그래서 무슨 일입니까요?”
“저기 수풀에 숨겨진 것을 조심히 가져오거라.”
‘도대체 수풀에 뭐가 있다는 말이야?’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단우현의 말이니 무언가 있기는 할 터였다.
장삼태가 그곳으로 천천히 다가가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무언가 있는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손을 뻗거라.”
그 말에 장삼태는 슥 하며 손을 뻗었다.
동시에 무언가가 만져지는 것을 느꼈다.
깜짝 놀란 그가 크게 눈을 떴으나, 이내 이것이 진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침착하게 마음을 유지했다.
천천히 그것을 끄집어내자.
“헉?!”
세 구의 유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의 유해인지 모르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은 군자도에 다녀왔고, 그곳에는 필시 삼천이라 불리는 세 구의 시신이 존재하는 곳이었으니까.
어이없는 시선으로 단우현을 바라보자, 그가 질끈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묻어라.”
어느새 만들어진 봉분을 바라보며 단우현은 그 앞에 주저앉았다. 어느 누구도 어떤 질문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단우현의 행동만을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그만큼 분위기가 진중했다.
만들어진 봉분 위에 단우현이 술을 뿌렸다.
“가장 좋아했던 술이지.”
이 세 사람이 가장 좋아했던 술이 바로 소홍주다. 천 년 전, 그때와는 맛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옛 생각을 하기에는 충분할 정도다.
“이렇게 술을 따라 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단우현은 자조적인 미소를 입에 걸었다. 죽으면 자신이 먼저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돌아보니 이들이 먼저 가고 자신은 아직 남아 있다.
정말이지 세상이란 참으로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쪼르르-!
자신의 잔에 한 잔을 따르고 세 잔을 하나씩 따라 봉분 위에 부었다. 단우현 또한 한 잔을 먹으며 그렇게 묵묵히 봉분 앞을 떠나지 않았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장삼태와 권무진은 묘한 감각을 느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단우현은 마치 손을 뻗으면 사라질 것 같은 그러한 느낌이다.
더군다나 내뱉는 말투 또한.
‘마치 삼천을 알고 있는 듯이…….’
권무진과 장삼태는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찌 현세의 인간이 천 년 전 사람을 알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의문은 도무지 풀리지 않았다.
하나 입을 열어 질문을 하지 않고 지켜봤다.
단우현의 모습이 그만큼 외롭고 쓸쓸해 보인 탓이다.
그때, 장삼태가 앞으로 나섰다.
“저도 한 잔 따라 드려도 되겠습니까?”
“하하, 그래 보거라.”
왠지 모르게 이렇게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오늘따라 유난히 단우현의 등이 외로워 보였으니까.
장삼태는 세 잔을 따라 채우고 그것을 봉분에 부었다.
동시에 소홍주를 들고 그 또한 한 잔을 마시는 순간.
퍽!
“푸후웁!”
입에 있던 소홍주가 튀어나왔다.
단우현의 손이 그의 복부를 가볍게 후려친 것이다.
이내 싸늘한 눈빛이 쏘아져 왔다.
“누가 마시라 했더냐?”
‘니미!’
장삼태는 울상을 지었다.
비싼 소홍주를 마실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