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Of Witches RAW novel - Chapter (1046)
EP.1052 #250_임신(4)
#1046
1.
제머나이 저택의 응접실.
엘로아, 샤론, 쌍둥이, 르뤼에가 모여있다.
아멜리아의 호출에 응해 모인 다섯 연인은 갑작스러운 부름에 적잖이 당황한 상태였다.
아멜리아가 예전처럼 앞뒤 꽉 막힌 무소통의 마녀는 아니다.
그러나 무언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이런 모임을 요청한 적은 없었다.
“무슨 일일까요?”
“나도 잘 모르겠네. 이런 일은 처음이거늘….”
샤론과 엘로아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한편, 쌍둥이는 저들만의 추론을 열심히 이어가고 있었다.
“모르시겠어요? 이거 딱 그거잖아요.”
“본처 선언이요.”
합리적인 추론이다.
다시 말하지만 아멜리아는 이 연인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부르면 빼진 않았지만 직접 나서 소집한 적은 없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이런 타이밍.
혼자서 조수님의 아기를 가지게 된 타이밍에 이런 액션을 취한다는 건 의도가 명백하다.
다른 선의의 경쟁자들에게 압도적인 자신의 위치를 각인시키려는 것.
즉.
“이제는 부교수님이 하늘에 서겠다는 거죠.”
“아멜리아 양이 그런 성격은 아닐 것 같네만….”
“아니에요! 공작님이 잘 모르셔서 그래요!”
“부교수님이 얼마나 피도 눈물도 없는 성격이신데요. 과제 채점을 한 번이라도 받아봤으면 부교수님의 본성을 알 수밖에 없어요.”
개인적으로 쌓인 게 은근 있는 쌍둥이인데다가 어쩐지 모를 박탈감, 거기에 부러움까지 더해지자 자연 뾰족한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
그때 아멜리아가 들어왔다.
흑색비방을 펼치던 쌍둥이의 입도 합죽이가 되어 빤히 아멜리아를 바라보았다.
특유의 포커페이스는 어디 가는 게 아닌지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도리가 없다.
“…부교수님은 무슨 생각 하시는지 모르겠어.”
“금발 머리에겐 표정이 없도다.”
“아멜리아 양, 왔나요?”
“네.”
오직 샤론만이 그녀가 조금 쭈뼛쭈뼛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손목을 잡아 이끌었다.
아멜리아는 주위를 잠시 둘러보고는 할 말을 속으로 정리했다.
만약 이전까지 그녀였다면 자신의 고민에 갇혀 주위를 둘러보지 못했을 것이다.
꽤 오랜 시간동안 아멜리아는 나쁜 의미로 자기중심적이었으니 말이다.
실제로 어제까지만 해도 쌍둥이가 터덜터덜 퇴실했던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곰곰이 되짚어 본 결과 그 이유를 도출했다.
“모두 아시겠지만, 제가 시우의 아이를 갖게 되었어요.”
“몸에는 이상이 없는 겐가?”
“지금 조사 중이래요. 하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낳을 생각이에요.”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
어쩌면 출산이 또 다른 형태의 변칙 계승이라면.
뱃속의 아기가 아멜리아의 낙인을 물려받는 것이 마녀의 출산이라면 아멜리아는 떠난다.
스승님이 그러했듯, 스승님의 스승님이 그러했듯 말이다.
“하지만 다 잘될 거에요. 그런 칙칙한 말을 하려고 이 자리에 온 것도 아니고요.”
미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던 쌍둥이와 샤론은 눈이 동그래졌다.
너무 큰 뉴스에 정신이 팔려 중요한 문제를 놓치고 있던 것이다.
“시우의 아기를 가졌다고 해서 혼자 특별한 대접을 받을 생각도, 그의 마음을 독차지하겠다는 야욕도 없어요.”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한 아멜리아는 솔직하게 본심을 털어놓았다.
“저는 많이 부족한 사람이에요.”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있었다.
독선과 아집을 의지와 신념이라 착각했고, 타인과 거리를 두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법이라고 알았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인정하지 못해 악연을 이어갔으며, 정작 함께하게 된 시간에도 진솔한 마음을 전하지 못했다.
“아직 모르는 것도 너무 많고 서툰 면도 많아요.”
그렇기에 이렇듯 스스로의 약점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도 낯설고 부끄럽다.
괜히 몹쓸 짓을 하는 것 같고 해서는 안 되는 경솔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이제 알고 있다.
타인에게 의지하는 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는 건 그 어떤 자성마법보다 든든하다는 것을.
“만약 이 아이를 제가 품에 안을 수 있다 해도 혼자서는 좋은 어머니가 될 수는 없겠죠. 여러분이 도움을 주셨으면 해요.”
아멜리아는 고개를 숙였다.
“부탁해요.”
그 모습을 본 르뤼에가 흡족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흠흠,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것. 성장은 거기부터이니라. 원래 공동 육아는 마녀 세계에 흔한 법이다. 짐의 스승 역시 도로시의 도움을 받았느니라. 짐 역시 아기에게 훌륭한 롤모델이 되어 줄 것이니라.”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 여차하면 전투태세에 돌입할 쌍둥이도 오도도 달려와 아멜리아의 고개를 세웠다.
“부교수님, 고개를 드세요.”
“아무 일도 없을 거에요. 괜찮아요.”
은연 중 아멜리아를 무서워하고 견제하던 쌍둥이지만 그녀가 사라지는 걸 원하진 않는다.
그냥 지금처럼 계속 무서운 부교수님으로 남아주는 게 더 좋다.
“늦어서 미안하네. 정말 축하하네 아멜리아 양.”
엘로아와 샤론도 합류해 아멜리아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이후 오손도손 펼쳐진 술자리.
아멜리아는 술 대신 물잔을 든 가운데 질문 공세에 시달렸다.
“언제 하신 건가요?”
“혹시 그때 어떤 식으로 하셨는지 말씀해주시면 안 돼요? 거기에 비법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비, 비법이요?”
“네! 체위나 시간 같은 거요.”
“오데트! 그런 질문은 하면 못써!”
“샤론 언니! 저희 다 터놓고 얘기하는 거 아니었어요? 어차피 술도 마셨잖아요!”
“호오, 특정 행위를 통한 주술적 실현이라니. 분홍머리 썩 그럴듯하지 않으냐?”
“그렇구나.”
게으른 여우처럼 소파에 드러누운 르뤼에도 히죽거리며 아멜리아를 놀려댔다.
엘로아 역시 평소의 준엄함을 조금 내려놓고 놀림에 동조했고 말이다.
아멜리아도 당연히 시기를 계산해봤다.
그날 아멜리아는 향수 가게에서 일하고 있었고, 갑자기 들이닥친 시우가 아멜리아를 제압해 야릇한 상황극을 했었지.
“…정말 듣고 싶으신가요?”
눈치는 없지만 묘하게 분위기에 잘 휩쓸리는 아멜리아는 곧이어 이실직고하고 말았다.
어차피 앞으로 많은 도움을 받아갈 처지에서 새삼 쑥스럽다고 비밀을 만들고 싶진 않았던 것.
더군다나 여기 모인 사람들은 남도 아니고 모두 시우의 연인이 아닌가?
“그날은 상황극 대본#109- ‘직장으로 난입한 관리인’편이었는데요….”
“……?”
샤론을 제외한 모두가 뜬금없이 등장한 ‘상황극 대본’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
NG를 직감한 샤론 감독은 연신 고개를 저었지만, 불행하게도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숙인 아멜리아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언제 손님이 들어올지 모르는 가게 매대에서 했어요.”
“맙소사.”
“아니, 그, 그, 그 말쿠트 갤러리에 그 조향점에서 하신 건가요?”
“…네.”
거긴 진짜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이 아닌가?
아무리 커튼을 치고 문을 잠가도 통유리로 되어있는 조향점 매대면 고작 얇은 커튼 한 장이 유일한 가림막이 되었던 셈이다.
르뤼에 쌍둥이는 아멜리아의 과감한 플레이를 엿본 적이 있고, 샤론은 직접 동참한 적도 있다.
그러나 엘로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조용한 인상이던 아멜리아가 그렇게까지 과격한 행보를 보일 것이라고는 미처 상상불가였던 까닭이다.
“큼큼, 아멜리아 양 그 대본이라는 게 뭔가?”
“아…. 마침 짐가방에 있어요. 잠시만요.”
하지만 부끄러운 질문에 솔직하게 답해준 아멜리아를 배려해 엘로아는 슬쩍 주제를 바꾸려 들었고….
그것은 악수였다.
“저기, 아멜리아 양?”
“네?”
“굳이 안 보여주셔도 되는데….”
“아, 괜찮아요. 샤론 양.”
샤론의 만류에도 싱긋 웃으며 답하는 아멜리아.
필경 샤론이 말리는 이유를 ‘그런 중요한 정보를 공개해도 괜찮으냐?’로 해석한 웃음이다.
아니요, 안 괜찮아요….
라고 샤론이 말하기도 전에 두툼한 종이 뭉치가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흠흠, 이게 바로 대본이에요.”
아멜리아는 에고가 듬뿍 담긴 역작을 최초 공개하는 장인처럼 자신만만함과 자부심이 듬뿍 묻어나오는 콧김을 뿜었다.
돌이킬 수 없는 재앙에 이마를 짚고 신음하는 샤론.
관심을 보이는 엘로아와 세쌍둥이를 상대로 아멜리아는 꿋꿋이 자신의 대본을 PR해 나갔다.
“상황극이라는 건 사실 어려운 경우가 많잖아요.”
“그렇죠?”
“그렇네.”
세쌍둥이도 엘로아도 해봤다.
특히 엘로아는 종종 사제역전 플레이를 즐기곤 했다.
“상황극이라는 건 예기치 못한 변수를 맞닥뜨렸을 때 삐걱대는 경우가 많아요. 몰입도 힘든 경우가 많고요. 이런 건 전부 로드맵이 없기 때문이에요.”
-촤르륵
아멜리아는 카지노 딜러처럼 능숙하게 대본을 펼쳐 보였다.
꽤 명필인 아멜리아여서 성서 필사본만큼 정교한 글씨지만 정작 내용은 천박 그 자체.
“원래는 간략한 상황적 설정 정도였는데, 시우가 좋아하는 대사나 상황을 분석해서 발전시켰어요. 꼭 해야 하는 대사나 타이밍 같은 걸 설정한 거죠.”
“어… 음, 그렇군.”
매 페이지마다 연구한 흔적이 역력하다.
노력파 배우의 쪽대본처럼 밑줄이나 첨삭이 적혀 있고, 어떤 감정선을 살려야 하는지까지 첨삭되어 있었다.
“중요한 건 피드백이에요. 이렇게 정교하게 대본을 짜둔다면 시우의 반응이나 애드립, 그리고 반응을 세세하게 파악해서 다음 대본을 작성할 때 활용할 수 있어요.”
머리를 감싸 안고 티 나지 않게 귀를 막은 샤론을 제외하고 네 쌍의 눈동자가 정신없이 흔들린다.
탈선한 열차가 절벽으로 내달리는 모습을 보는 듯한 눈초리였다.
“자, 예를 들자면 시우가 좋아하는 포인트는 ‘강한 척하지만 결국 굴복해버리는 모습’ 이거든요. 이런 부분을 대사에 응용한다면…. 아, 여기 마침 좋은 예시가 있어요!”
“부, 부교수 님.”
“자, 여기 무릎을 꿇고 그… 입으로 해주는 씬이거든요. 그때 날카로운 눈빛으로 위를 올려보는 거죠. 대사로는 ‘이딴 짓 죽어도 하기 싫어요’라고 할 수도 있고요. 참고로 침소리를 흘려주는 편을 좋아해요.”
“…….”
실로 남사스러운 고백이다.
쌍둥이도 ‘이 정도면 충분해요!’라고 말하고 싶었고, 어지간한 대소사는 얼렁뚱땅 넘기는 르뤼에조차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부끄러운 듯하지만 뭔가 도움이 되었다는 뿌듯한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가는 아멜리아 앞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 순수함과 다른 의미의 순진무구함.
아멜리아에겐 감히 멈춰세우기 미안해지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는 것이다.
서로를 힐끗힐끗 바라보며 ‘네가 말려줘’ ‘난 못해! 너가 해!’처럼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을 때 희망찬 눈빛으로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 자리를 유일하게 수습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
“아멜리아 양.”
“네.”
과연 그 바람이 닿은 것인지 엘로아는 신나게 설명하던 아멜리아의 말 중간에 슬쩍 끼어들었다.
네 사람을 침을 꿀꺽 삼켰다.
타인을 품는 부드러움과 꺾이지 않는 강직함을 모두 지닌 티페레트 공작님이라면 필경 이 사태를 진정시켜 줄 터.
“…내게도 비법을 공유해 줄 수 있겠나?”
“물론이죠! 제가 직접 써드릴게요.”
아멜리아는 오늘도 방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