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247
제 247 화
해우는 양쪽에서 수시로 저를 공격하는 두 아이 때문에 진땀을 흘렸다.
괴물과 신물이 나타나 당황하는 것도 잠시, 다시 냉정함을 되찾고 싸움을 계속해 나가는 모습에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대규모의 생명들과 싸우는 건 처음일 게 뻔한데도 하민의 움직임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했다. 릴페 두 마리를 상시 소환해 둔 채, 상황에 따라 알맞은 괴물을 소환했다 보냈다를 반복했다.
‘누가 이하진 동생 아니랄까 봐…….’
빠른 상황 판단. 적절한 늄의 분배. 거기다 능수능란하게 륜을 엄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덕에 륜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해우를 노릴 수 있었다.
해우의 입장에선 참으로 곤란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아군이 늘었음에도 좀처럼 쉬지 못했으니 말이다.
아니, 어떻게 보면 오히려 밀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륜은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은 채, 매섭게 몰아붙였고, 신물과 괴물들을 교묘하게 방패 삼아 움직였다. 졸지에 아군이 적을 숨겨주는 거대한 숲이 돼버렸다.
가장 최악인 건 좀처럼 그의 기척을 잡을 수 없단 것이었다. 이쪽으로 도가 튼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그의 은신은 완벽했다. 문제는 그러면서도 제 목을 노리는 살기는 또렷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방향을 잡을 수 없는 살기라니…….
태어난 이래 처음 겪는 아이러니한 감각에 해우가 입술을 비틀었다.
하민이도 그렇고 륜도 그렇고, 이 정도로 상대하기 어려운 애들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말이지…… 우리 애들 재능 하난 뛰어나다니까.”
분함과 동시에 순수한 감탄이 절로 튀어나왔다.
그보다 이제 어떻게 한담…….
일행이 각각의 역할이 있듯 내부의 적도 당연히 도맡는 일이 하나씩 있었다. 그리고 해우에겐 그것 말고도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어떤 의미론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한 일이.
아…… 일 났네. 얘들한테 잡히는 바람에 일이 밀려 버렸어.
일단 일이 꼬였으니 다단이든 진유든 이즈네든 누군가에게 연락을 해야 했는데, 통신을 할 만한 틈이 없었다. 거기다 묘하게 많은 신물과 괴물들의 수도 신경 쓰였다.
덴 케이와 다른 교수들을 찾지 못했을 때엔 역으로 그들을 끌어내기 위해 클레이즈를 쑥대밭으로 만들기로 미리 계획하긴 했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녀석들을 한 번에 풀기로 한 적은 없었다.
아무리 관리하며 일정 교감을 쌓았다곤 하지만, 녀석들은 계약으로 맺어진 애들이 아니었기에 진유의 부탁보단 자유의지가 좀 더 강했다. 제가 적인 줄 알고 공격하는 단순한 녀석들만 봐도 이를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일을 진행할 때도 불편하고, 다시 돌려보낼 때도 해야 할 일이 배로 늘어나는데, 왜 진유는 이렇게 많은 애들을 한꺼번에 소환한 걸까.
혹시 그 또한 다른 걸 노리고 있는 걸까.
‘……다단이고 진유고 속을 알 수 없단 게 짜증 난다니까…….’
원하는 게 각각 따로 있는 이해 집단만큼 와해되기 쉬운 건 없는데.
그리 생각하며 아랫입술을 질겅이던 해우는 제 코앞으로 검이 쑥 들어오는 것에 퍼뜩 놀라며 몸을 굴렸다.
“딴생각하시는 건가요?”
마치 그럴 정신이 있냐고 타박하는 듯한 어투에 해우가 이를 갈았다.
“생각할 틈조차 안 주는 거냐?”
“어쩐지 무시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그러네요.”
라는 녀석치곤 입가에 비웃음이 걸려 있다.
1클래스 문제아 집단 중, 제일 순박하고 어리숙한 녀석으로 봤는데 크나큰 착각이었다.
무서운 녀석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네가 이렇게 내 발목을 잡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해우가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성물을 소환하며 륜을 위협했지만, 그는 조금의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해우만 노렸다.
성물이 그를 할퀴며 어깻죽지에 긴 상처가 남고 피가 튀었음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고 정확히 급소만을 파고드는 그의 집착에 식은땀이 절로 흘러나왔다.
“이거 아무래도 쉽게 끝나진 않겠어.”
어쩔 수 없다는 투의 말과 함께 륜 주변에 네 개의 소환진이 만들어졌다.
머리 위에 하나, 그리고 에워싸듯 생긴 세 개의 진 안에서 검은 그림자가 솟구쳐 나왔다.
그것은 마치 뾰족한 가시나무처럼 길게 가지를 치며 륜을 포박했다.
형태를 알 수 없는 성물의 공격에 륜이 당황하는 잠시, 하민이 그를 부르며 소리쳤다.
“륜. 엎드려!”
그리고 륜이 잽싸게 몸을 낮춘 순간, 바로 발 옆에 소환진 하나가 그려지더니 릴페가 고개를 내밀었다.
릴페는 검은 그림자를 발로 짓누른 채, 물어뜯었다. 검은색 덩어리가 뜯겨 나가며 마치 칠판을 긁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가 귀를 찔렀다.
하민의 주변을 지키고 있는 하나와 좀 전 소환한 성물을 상대하는 놈 하나, 거기에 이어 또 하나.
총 세 마리의 릴페가 해우의 성물을 괴롭히고 있었다.
두 마리가 끝이 아니었다니. 하진이가 알면 기절하겠네.
성물을 이대로 뒀다간 잡아먹힐 걸 직감한 해우는 잽싸게 검은 성물을 거둬들인 뒤, 대신 하민이 주변에 소환진을 하나 그렸다.
륜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데, 가장 큰 주축이 되는 게 하민이라면, 그의 움직임부터 막으면 된다.
조금 다치긴 하겠지만, 이렇게 시간을 버리는 것보단 낫겠지.
륜의 검을 쳐낸 해우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소환진 속에서 엄청난 양의 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
당연히 성물이나 무언가가 튀어나올 거라 생각한 하민은 예상치 못한 공격에 그만 뒤로 휩쓸리고 말았다. 하민의 옆에 있던 릴페도 마찬가지였다.
땅을 몇 바퀴나 구르고 나서야 뒤로 밀리는 것을 멈출 수 있게 된 하민이 크게 기침을 토해내며 숨을 골랐다.
“콜록, 콜록.”
폭우라도 내린 것처럼 주변 땅이 질퍽하게 젖어 있었고, 중간중간 물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나무와 풀이 잔뜩 꺾여 있을 만큼 엄청난 위력이었다.
심지어 그 충격에, 륜의 근처에 있던 릴페 한 마리만 빼고 다른 괴물들의 소환이 모두 풀려 버리고 말았다.
하민은 물에 젖은 얼굴을 닦으며 앞을 바라봤다.
하늘빛의 불투명한 몸을 가진 말과 비슷한 성물이 보였다.
마치 물을 가둬놓은 것처럼 빛에 일렁이는 몸과 땅까지 길게 흘러내린 꼬리, 비닐을 겹겹이 붙인 것만 같은 단단한 뿔.
릴페도 잡을 수 없는 상급 성물 위즈의 등장에 하민이 인상을 찌푸렸다. 거기다 위즈는 보통 성물과 다른 자연계 속성을 다룰 수 있었다.
어지간한 마법은 다 쓸 수 있는 고등 성물인 것이다.
본디 이런 성물은 같이 마법을 쓸 수 있는 신물이나 괴물로 상대해 줘야 하는 게 맞지만, 애석하게도 하민이의 괴물 중에 그런 녀석은 없었다.
아니, 한 마리 있긴 했지만, 걔는 지금의 늄으로 소환할 수 없었다. 거기다 아까 등을 부딪칠 때, 어디를 잘못 다쳤는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 큰일 났네…….”
릴페가 낮게 짖으며 하민의 앞을 가로막았다.
해우는 하민을 잠깐 보더니 다시 시선을 륜에게로 돌렸다.
“하민이한테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괜찮습니다.”
단호하게 떨어지는 대답에 해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꽤나 냉정하네.”
“친구의 뒤통수를 친 교수님만 할까요.”
울컥함에 이를 빠드득 가는 해우를 보며 륜이 검을 고쳐 잡았다.
다시금 그가 공격을 시작했다.
정말 하민은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는 그 모습에 해우의 속이 여러 의미로 부글부글 끓었다. 하민이 좀 다치면 륜이 알아서 그를 데리고 도망칠 줄 알았는데, 그러기는커녕 나 몰라라 상태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어쨌든 이 자리를 빨리 떠야 했기에, 해우는 위즈 하나만을 남긴 채 모든 성물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륜이 제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길 기다릴 때였다.
쿵- 쿵-
소리에서부터 육중함이 느껴지는 거대한 발소리가 들렸다.
풀과 나무를 무너뜨리며 점점 이쪽으로 가까워지는 소리에 해우가 마른침을 삼켰다.
손끝이 저릿할 만큼의 위압감.
시선이 자연스레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아갔다.
순간 그가 눈을 크게 홉뜨고 말았다.
피에 물든 것 같은 붉은 광안을 가진 영장류의 괴물이 하민의 뒤에 서 있었다.
트롭텍스. 동쪽 숲에서 잡아 온 식인 괴물.
클레이즈에서 기르고 있는 녀석 중 위험군에 속하는 녀석이었다.
설마 진유가 이것까지 바깥에 내놨을 줄이야……!
트롭텍스는 눈동자를 떼구루루 굴려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내 곧 시선을 하민에게로 내렸다.
섬뜩한 감각이 척추를 타고 올랐다.
괴물과 계약을 하고, 특히 땅의 괴물들과 상성이 좋은 하민이 제 뒤에 무엇이 있는지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못 움직이는 건 좀 전에 당한 부상이 심했던 것일까. 그는 조금의 미동도 하지 못한 채, 아픈 배를 끌어안고 있을 뿐이었다.
해우의 고개가 빠르게 륜한테로 돌아갔다. 그 순간 다시금 날카로운 검이 제 목을 노리고 짧게 베어 들어왔다.
검날이 스치며 가는 상처가 목에 남았다.
화끈한 통증에 해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분명 륜 또한 트롭텍스가 온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민의 뒤에 있단 것도. 그럼에도 저를 노리다니.
정말 신경도 안 쓰는 걸까? 자신에게 복수하는 게 하민이보다 중요한 걸까?
제 표정에서 생각이 드러난 걸까. 해우의 혼란을 조롱하듯 륜이 작게 입을 열었다.
“교수님께 도망칠 기회를 드릴 순 없으니까요.”
아아- 그래. 사실 지금 이 순간은 해우에게 있어 도망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민은 발이 묶였고, 륜과 릴페는 위즈를 제압 못 하니까.
성물로 찍어 누른 뒤, 그대로 달아나면 됐다.
륜도 그걸 알았겠지, 그래서 이리 행동한 걸 테고. 어떤 의미로 그의 행동은 목적을 달성하기에 가장 적합하고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륜의 공격, 점점 복잡해지는 머리, 그에 반응하듯 덩달아 혼란스러워하는 위즈, 위즈에 정신이 팔려 제 주인은 새까맣게 까먹은 릴페, 꼼짝도 못 하는 하민이.
그리고 트롭텍스가 뚝뚝 침을 흘리며 하민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 해우의 혼란은 깔끔하게 끝나고 말았다.
“젠장!”
그가 하민의 머리 위에 거대한 소환진을 그렸다. 대량의 늄이 응집되며 소환진에서 불꽃이 타올랐다.
륜의 검이 어깨에 박힌 것과 테브람이 나온 건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날 것 특유의 울음과 함께 강력한 늄의 기운이 주변을 뒤흔들었고, 화염이 치솟으며 트롭텍스를 덮쳤다.
이 순간만큼은 륜도 그 위압감에 눌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테브람은 긴 울음소릴 내며 트롭텍스의 머리와 양어깨를 잡았다. 날카로운 발톱이 사슬처럼 두꺼운 털을 끊고 살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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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