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62
제 62 화
제3교시 쉬는 시간 [그 교수들의 이야기_ver.2]
한유림 쟁탈전 2라운드인 교수 쟁탈전이 끝난 다음 날. 클레이즈 교내 봉사 동아리장인 재우는 두 꿇어앉은 채 단죄의 시간을 기다렸다.
그는 커다란 덩치가 무색할 만큼 어두운 낯빛으로 떨고 있었다.
꿇은 두 무릎 밑으로 장판의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지만, 비라도 내리는지 온몸에 한기가 돌았다.
아, 젠장 젠장!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유림을 잡으러 가고 싶었지만 어째서인지 그녀의 영입이 금지되었고, 또 이상할 정도로 저기압인 형 때문에 쉽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더욱이 지금 그는 큰 죄(?)를 저질러 이곳에 있는 상태였다.
바로 어제, 이상할 정도로 단박에 한유림 쟁탈전을 금지한 교수들과 학생회의 행동에 재우는 그 사실을 따지러 학생회실에 갔었다. 그러다 미야와 약간의 마찰이 있었고, 학생회실을 살짝(?) 손봐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이후에도 건물 보수 공사를 빌미로 공원의 분수를 화려하게 부숴 버리기까지 했다.
그 결과, 그는 이곳에서 단죄를 기다리고 있었다.
쿵쿵쿵.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혹시 심장이 제 귓바퀴 옆에 있는 게 아닐까’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재우는 마른침을 삼키며 굳게 닫힌 문을 바라봤다. 그때 그 시선에 응하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활짝 열렸다.
단정하게 흘러내린 머리와 새하얀 와이셔츠가 유난히도 정갈해 보이는 청년. 약간 앳된 얼굴과 마른 체형이 유약해 보였지만 그 안에 자리한 것이 지독할 정도의 강단과 탄탄한 근육이라는 것을 재우는 알고 있었다.
재우가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레 입을 벌렸다.
“……형.”
어찌나 긴장했는지 목소리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재우의 형이자 7형의 교수인 해우는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석 씨 집안의 셋째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신발을 벗고 들어가 장롱을 뒤지기 시작했다.
“형!!”
재우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학교 건물을 빵빵 부수며 제멋대로 사는 재우에게 있어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그의 큰형인 해우였다.
해우의 부모님은 제법 연세가 있었다. 해우가 늦둥이였으니 그 동생들의 경우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 덕에 해우는 일찍 철이 들었고, 어린 나이서부터 제 동생들을
돌보며 살아왔다. 물론 쉽진 않았다. 나이 차도 별로 안 나는 형의 말을 잘 들을 만큼 착한 동생들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돌아가며 속을 박박 긁는 동생들에게 해우가 할 수 있는 훈육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석재우.”
“네, 넵!”
저도 모르게 존대가 튀어나왔다. 그러나 형제는 그 사실을 딱히 인지하지 못했다.
해우는 장롱에서 굵직한 나무 몽둥이를 꺼내 들었다. 그를 존경하는 제자라면 믿지 못할 만큼 험상궂은 미소를 띠며 말이다.
“이 형님이 말이다,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뭐지?”
“개기는 거, 개기는 거, 개기는 겁니다!”
“그럼 클레이즈에서 나한테 개기는 게 무슨 행동일까?”
“형님 말을 씹는 거, 무시하는 거요!”
“그래. 근데 네가 바로 어제 학생회실을 쳐부쉈다며? 거기다 학교 기물까지 파손해? 네 녀석 때문에 내가 얼마나 많은 돈을 갖다 버렸는지 알아?”
“그건 학교의…….”
“무궁한 발전은 내가 챙긴다. 이 썩을 놈아!”
마치 운동 전 몸을 풀듯 해우가 가볍게 몸을 움직였다. 그는 손에 쥔 방망이를 놓지 않은 채 싱긋 웃어 보였다. 남들이 보기엔 한눈에 반할 만큼 화사한 미소였지만, 재우는 저 안에 숨겨진 참된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둘째 형이 가출을 하고 잡혀 들어왔을 때 형이 지었던 미소. 막내가 따돌림을 당했을 때 그 주모자들을 바라보며 지었던 미소. 그리고 자신이 개길 때마다 지었던 미소.
바로 구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부웅!!
휘잉!
몽둥이가 살벌한 소리를 내며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끔찍한 소리에 재우가 짧은 비명을 지으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으악!!”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간 몽둥이에 해우가 미간을 구겼다.
“어쭈, 피했어?”
“형! 잠깐만!! 이건 아니야! 내 나이가 몇인데 이런 몽둥이로 맞아?! 나도 이제 다 컸어!”
“뭐?”
“나도 내가 잘못한 거 알아. 하지만 매번 매를 맞는 건 아니잖아. 거기다 형 손바닥도 다친다고.”
물론 이미 죽을 만큼 패본 경험이 있기에 자신의 손이 뭔 짓을 해도 멀쩡할 것을 잘 알고 있는 해우였지만 나름 재우의 말도 일리가 있었기에 손을 내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칠 수도 있겠다.”
그는 약간 아쉽다는-재우의 입장에선 끔찍한-표정을 지으며 몽둥이를 다시 장롱에 가져다 놓았다.
그런 해우의 행동에 재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분위기라면 무난하게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무런 피해 없이 말이다.
“그래 형, 손 다쳐. 나 그거 슬퍼서 못 봐. 거기다 나도 이제 다 컸어. 형이 몽둥이로 때리지 않아도 다 알아들을 수 있다고.”
“그래도 혼날 건 혼나야지.”
“그래, 알아. 내가 잘못했어. 형이 혼내는 것도 이해해. 하지만 꼭 몽둥이로 맞는 게 아니어도 되잖아.”
하하하. 재우가 척 봐도 어색해 보이는 웃음을 흘렸다.
그 태도가 심히 미심쩍은 해우였으나 일단 넘기기로 했다. 거기다 그의 말대로 이미 성인이 된 녀석을 몽둥이로 때릴 필요는 없었다.
“음, 그래. 하긴 너도 나이가 있는데 몽둥이로 맞는 건 좀 쪽팔리지.”
“그, 그치. 그니까 형…….”
“좋았어.”
라면서 해우가 다시 가볍게 몸을 풀었다.
재우는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가벼운 설교로 끝날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뭐하는 거여?
“형?”
“그래, 재우야. 몽둥이는 좀 그렇다. 너도 크고 나도 컸는데.”
“그…… 그치?”
“그래. 그니까 가볍게.”
해우는 정말 가볍게 손을 움직였다. 그러나 뒤에 들려오는 뚜두둑거리는 뼈 소리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 절대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주먹으로 몇 대 맞자.”
“에에? 으아아아아아아?!”
“걱정 마. 간만에 추억을 즐겨보자고.”
추억은 무슨 개뿔의 추억이야?!
목구멍 안으로 삼켜진 항의의 소리. 그리고 점점 다가오는 해우의 그림자.
이윽고 재우의 비명이 건물을 울렸다.
* * *
하진의 연구실에 모인 히야스와 리리아는 한숨을 내쉬며 차를 마셨다. 하필이면 한유림을 진유에게 빼앗기다니.
“젠장, 거기서 덴 케이가 나올 게 뭐야?!”
“시끄러워. 애초에 검 뚱땡이 네가 오지만 않았어도 동아리 건은 무난하게 넘어갔어.”
“웃겨?! 너야말로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네가 거기서 따지지만 않았어도 내가 했거든?!”
서로 잘났네 못났네를 따지며 싸우는 두 사람의 모습에 하진이 미간을 팍 구기며 그들을 노려봤다. 그리고 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둘 다 언제까지 내 방에 눌러앉아 있을 거지?”
언제부터인지 동기들의 아지트가 되어버린 하진의 연구실.
자신이 허락하지 않았음에도 태연하게 들어와 하민이에게 주려고 사다 놓은 최고급 차를 마시는 그 모습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하진의 타박에 리리아가 어색하게 웃으며 뺨을 긁적였다.
“하하하. 미안미안, 하지만 어떡해. 여기가 우리 아지트인걸?”
“그니까 왜 여기가 우리 아지트냐고.”
“아잉~ 사소한 건 따지는 게 아니야.”
“풉-!”
툭.
리리아의 콧소리 섞인 애교에 하진이 마시던 차를 뿜었고, 히야스가 들고 있던 컵을 떨어뜨렸다.
두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걸 본 듯한 얼굴로 말했다.
“미쳤군.”
“미친.”
그리고 그들의 반응에 리리아가 살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닥쳐. 둘 다 죽기 싫으면.”
“…….”
피부가 따끔할 정도의 살기에 두 남정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차를 마시는 소리만이 들리는 조용한 방. 그 속에서 침묵을 즐기던 리리아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이중인격자는?”
“동생 패러 갔어.”
바로 튀어나오는 하진의 말에 리리아와 히야스의 시선이 그에게로 옮겨졌다.
“재우를?”
“재우 녀석은 왜?”
“어제 학생회실이랑 광장 분수를 부숴놨거든.”
“우아, 그거 재우가 한 거였어? 너무 잘 부숴놔서 칭찬해 주려 했는데.”
“걱정 마. 네가 안 해도 이미 그 잘난 형이 열심히 칭찬해 주고 있으니까.”
가볍게 쿡쿡거리는 하진의 모습에 리리아는 재우를 혼내는 해우의 모습을 생각했다. 그러나 어쩐지 그 모습이 쉽게 상상되지 않았다. 다른 걸 다 떠나 부드럽고 유한 인상의 해우가 제 덩치의 배나 되는 동생을 두드려 팬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해우가 진짜 패긴 패? 오히려 재우한테 맞을 거 같은데……. 그러고 보니 이상하게 그 집 형제들은 해우한테 약하단 말이야. 둘째도 그랬잖아.”
“네가 못 봐서 그래.”
“어떤데?”
“죽지 않을 정도로 패. 그게 다야.”
묘한 침묵이 다시금 방 안에 퍼졌다.
설마 그 해우가 그토록 예뻐하는 동생들을 팬다고?
리리아가 설마- 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건 히야스도 동감했는지 어이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피식거렸다.
그러나 하진의 표정은 생각보다 진지했다.
“성물을 다루는 교감자들은 천부적으로 늄을 타고나지.”
“갑자기 뭔 소리야? 그건 다 알고 있는 내용이잖아.”
“그래. 성물은 신물이나 다른 소환수와는 달라. 자신보다 강한 사람에게만 복종하지. 그리고 늄이 그 자체인 성물에게 있어 힘의 척도는 늄의 크기고.”
“요점은?”
“해우는 그리 큰 늄을 타고나지 못했어.”
그건 리리아와 히야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함께 학창 시절을 보내왔고 해우와 팀을 맺어 시험을 치렀던 적도 종종 있었으니 말이다. 동기 여섯 중, 늄의 크기만 봤을 때 가장 작은 것도 해우였다.
“근데 그런 녀석이 테브람을 소환하고 있어. 자신보다 제곱은 되는 늄을 가진 테브람을.”
“와, 그건 생각 못 해봤네. 당연하다는 듯 소환해서 의심조차 안 해봤어.”
히야스가 흥미롭다는 듯 안경을 고쳐 썼다.
하진이 타고난 천재라면 해우는 노력형 천재였다. 동기들보다 떨어지는 재능과 적은 늄의 양이 주는 간극을 오직 노력 하나만으로 좁혔으니 말이다. 그랬기에 이 부분에 대해서도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따지고 보니 이상했다. 하진의 말대로 성물에게 있어서 교감자란 자신의 주인이자 왕이었다. 그런 그들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자신보다 늄이 작은 해우를 주인으로 삼는다는 것이 가능할까?
히야스가 한창 그 사실에 대해 생각할 때, 하진이 입을 열었다.
“10대 후반 때 말이야. 해우가 갑자기 동생들을 부탁한 적이 있었어. 그리고 한 달 동안 돌아오지 않았지.”
“녀석이 동생을 맡겨?”
“이건 또 의외네.”
“그리고 두 달 후에 피를 철철 흘리며 돌아왔어. 테브람을 비롯한 녀석의 아이들을 끌고 말이지.”
리리아와 히야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하진의 이야기를 들을 뿐이었다.
“그러다 얼마 안 있어 녀석이 성물들을 교육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됐어.”
“……어떻든?”
“패더군.”
“……엥?”
“……뭐?”
“패고 있었어, 아주 환상적으로.”
…….
히야스는 머릿속으로 그 거대하고 흉측한 테브람을 패는 해우를 생각해 봤다.
설마…….
아무리 좋게 봐도 농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그때 하진의 뒷말이 들렸다.
“웃긴 건 테브람이 울면서 빌더군.”
“…….”
“…….”
“그래서 물어봤지. 대체 성물들을 어떻게 끌고 왔냐고. 그러더니 녀석이 그러더라.”
“뭐라고?”
“‘개 잡듯이 패면 돼’라고.”
미묘한 침묵이 다시금 방 안에 일렁였다.
하진은 다 마신 찻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게 녀석의 교육 철학이야.”
“…….”
“…….”
히야스와 리리아는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매일 으르렁거리는 둘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같은 생각을 동시에 떠올렸다.
‘석재우, 이 불쌍한 새끼.’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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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