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Genius Dem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26
130화
토즈스
힌드산의 등장은 실로 심상치 않았다.
힌드산이 새끼손가락 한마디만도 못한 크기로 보일 때부터 새빨갛게 변한 땅은, 마치 여기서부터가 산의 영역임을 알리는 표징인 듯했다.
“여긴 왜 땅이 빨갛게 변한 건가요?”
평소 호기심이 많은 켄트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힌드산의 영향입니다.”
“힌드산이요?”
“힌드산은 예로부터 붉은 오크에게 영산으로 통하는 곳이었습니다.”
“네.”
“덕분에 힌드산에는 더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 수련하는 사람들로 늘 붐볐습니다. 그들은 수양을 위해 끊임없이 투기를 일으켰고-.”
“투기로 사용된 생명력 중 일부가 산에 남아 이런 식으로 땅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한 거로군.”
가온이 전령의 말을 이었다.
전령은 남은 설명을 하려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럼 실력자들이 자리 잡기 시작한 건 힌드산이 붉게 물든 이후가 되겠고.”
“그것도 맞습니다. 토즈스 님보다 훨씬 이전의 조상님 때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 붉은 식물들은 다 뭐죠? 생긴 모양을 보면 다 같은 식물 같아 보이진 않아서요.”
켄트가 물었다.
대답은 가온의 입에서 나왔다.
“땅에 깃든 생명력이 식물들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이군.”
“예. 덧대자면 붉게 변한 식물은 자생력이 크게 늘고 크기도 커졌습니다.”
“알곡이나 과실이 영그는 규모도 늘어났을 테고.”
“그렇습니다.”
‘이 땅을 차지한 마을은 다른 땅을 가진 자들보다 훨씬 더 강대하겠군.’
이는 비단 수확량의 문제가 아니었다.
붉은 땅과 붉은 땅이 아닌 곳에 위치한 두 마을의 수확량이 동일하다고 가정해보면 그 사실이 너무나도 쉽게 드러난다.
같은 소출을 만들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동력은 붉은 땅이 훨씬 더 작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 절약된 시간을 가지고 붉은 오크는 무얼 할까.
두말할 것도 없이 경지의 성장에 힘쓸 것이다.
그렇기에 힘의 차이는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아하, 그렇구나.”
켄트는 가온처럼 내면에 얽힌 사정까지는 알아내지 못한 듯했지만, 그것만으로도 궁금증이 풀렸다는 듯 크게 고개를 주억였다.
“그럼 이제 힌드산도 눈에 보이기 시작했겠다, 곧 도착할 수 있겠네요?”
“아닙니다.”
전령은 다소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 속도라면, 힌드산은 앞으로 열흘은 더 가야 도착할 수 있습니다.”
“엑?! 열흘이요? 그렇게나 많이 걸린다고요?”
켄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힌드산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고 거대한 산입니다.”
그 말은 곧 먼 거리에서도 훤히 보일 만큼 지나치게 큰 산이라는 걸 뜻했다.
“뭐, 가보면 알게 되겠지.”
가온은 덤덤하게 말하곤 가만히 걸음을 옮겼다.
과연, 전령의 말대로였다.
새끼손가락 한마디만도 못했던 힌드산은 하루를 꼬박 걸어도 겨우 두 마디 정도까지만 커졌을 뿐이었다.
다음 날이 되고, 또 그다음 날이 되어도 쭉 뻗은 손바닥으로도 충분히 감출 수 있을 만한 크기에 불과했으니까.
오염지대의 숲을 기약 없이 헤맬 땐 이보다 더 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당연히 힌드산으로 가는 정도의 시간은 그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탁 트인 곳에서 목적지를 눈으로 확인하며 가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그렇다고 이동속도를 올리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헉, 헉. 좀 쉬었다 가지.”
“네, 부바레 님.”
식스테일 토벌전 같은 대규모 회전을 치러도 끄떡없던 그가 단지 걷는 것만으로도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부바레는 일행이 걸음을 멈추자마자 그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고는 연신 가쁜 숨을 쉬었다.
“후우- 후우-.”
“많이 힘드십니까.”
“좀 큼, 크흠, 지치는군.”
부바레는 잘 돌아오지 않는 호흡으로 대답했다.
켄트가 눈치껏 그에게 회복주문을 걸었다.
이에 부바레가 켄트에게 눈인사했다.
그의 상태가 한결 좋아졌기 때문이다.
“고맙네.”
“아니에요. 언제라도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켄트는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힌드산이 보이기 시작한 날부터 오늘까지 딱 절반 왔습니다. 절반만 더 가면 됩니다.”
“아직 절반밖에 못 온 건가. 미안하네. 나 때문에 이런 데서 시간을 허비하는구만.”
“그런 말 마십시오.”
“그래, 미안하네. 그래도 힌드산은 가야지. 종족의 영산이라는데……아무렴.”
부바레의 말을 들은 가온이 흠칫했다.
그의 말이 꽤 의미심장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마치 꼭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말이다.
“부바레 님, 설마…….”
“음? 왜 그러나?”
“……아닙니다.”
“실없기는. 흘흘흘.”
부바레가 웃었다.
하지만 특유의 웃음소리에는 그 어떤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더 이상 현기 가득하던 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는 듯했다.
가온은 튀어나오려는 자신의 생각을 꾹 집어삼켜야만 했다.
‘정말……죽을 자리를 찾고 계신 겁니까.’
그 말이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러면 부바레가 완전히 삶의 의지를 놓아버릴까 봐.
그렇다고 차마 빈말로라도 생존자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말할 수도 없었다.
붉은 오크라는 종족의 특성을 모르지 않기에 생존자가 남아있을 가능성이 한없이 낮다는 걸 아는 것이다.
가온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힌드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새끼손가락 손톱만 하던 힌드산은 고개를 끝없이 추켜들어도 끝을 볼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세……상에.”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힌드산 역시 점점 커졌다.
켄트는 그 모습을 보며, 충분히 놀랐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얼마나 오만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힌드산은 얼마나 높은지 중턱부터 만년설이 보였고, 꼭대기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다.
“여기 꼭대기에 토즈스 님이 기거하고 계신단 말이죠?”
켄트가 물었다.
“예.”
“그분을 만나 뵈려면 산을……올라가야겠죠?”
켄트는 잠시 말을 머뭇거렸다.
부바레를 의식한 말이었다.
그가 이곳까지 오며 점점 힘에 부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쉬어가는 주기는 갈수록 짧아졌고, 휴식 시간 자체는 계속해서 길어졌다.
지금도 부바레는 얕은 숨을 가쁘게 쉬어대고 있을 지경.
이런 인원을 데리고 산을 오른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문제였다.
그를 업고 오르는 것도 문제였다.
이렇게 높은 산은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기후가 급격하게 변하기 마련이었고, 그건 부바레에게 가혹했으니 말이다.
“그건 아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네?”
전령은 의아해하는 켄트를 두고 산비탈 쪽을 바라보았다.
“아, 마침 저기 오네요.”
그가 가리킨 곳에는 붉은 나무 사이를 달려 내려오는 붉은 오크들이 있었다.
그들은 2인 1조가 되어 무언가를 지고 있었다.
가온 일행 앞에 멈춰선 그들은 그 무언가를 바닥에 내려놓고 인사를 해왔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붉은 오크는 가온 일행을 보면서도 동요하지 않고 인사했다.
인간과 초록 피부의 오크를 본 붉은 오크의 반응은 지금까지 늘 한결같았던 터라 아무 특징 없는 그 인사가 오히려 더 특색있게 느껴졌다.
“여기서부터는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이곳에 오르시죠.”
그들은 자신들이 가져온 물건을 향해 손짓하며 말했다.
그건 바로 손가마였다.
“토즈스 님이 있는 곳 앞까지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은 감사한 일이지만, 부바레 님께서 산의 환경 변화를 버티기 힘드실 겁니다.”
가온이 나서 말했다.
하지만 산에서 내려온 붉은 오크들은 그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태연하게 대답했다.
“네. 토즈스 님께선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안전하고 빠르게 모실 수 있도록 이 가마를 준비해주셨습니다.”
이미 알고 계신다는 말에 가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어떻게?’
붉은 오크가 그런 가온의 생각을 짐작이라도 했다는 듯 말했다.
“토즈스 님께서는 로아 대평야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모르는 게 없으신 분이십니다.”
이는 그간 가온 일행을 관찰하며, 한발 앞서 토즈스에게 보고를 하던 자들이 있었다는 뜻이었다.
가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우회적이긴 했지만, 그간 감시를 당하고 있었다는 말을 들은 이상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으므로.
이에 붉은 오크가 손사래를 쳤다.
“행여 누군가가 여러분들의 움직임을 미행하는 자가 있었다고 오해하지는 말아주십시오. 토즈스 님께서는 말 그대로 세상을 굽어볼 수 있는 분이시니까요.”
“세상을 굽어본다고?”
“예. 그분은 그런 분이십니다.”
가온은 하려던 말을 삼갔다.
토즈스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가 극히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섣불리 평가하기보단 유보하기로 한 것이다.
“……부바레 님, 타시죠.”
해서 가온은 더 말하지 않고 부바레에게 가마에 앉을 것을 권했다.
나머지도 인원수에 맞춰 가지고 온 가마에 앉았다.
“그럼 산을 오르겠습니다.”
붉은 오크들은 그 말과 함께 가마를 들었다.
당연히 앞뒤로 출렁거렸어야 할 가마에서는 어떠한 흔들림도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에 가마는 탑승자의 상태를 확인하며 천천히 이동했다.
그러다 점점 속도를 붙이더니, 어느새 좌우의 풍경이 휙휙 시야를 스쳐 뒤로 사라질 정도로 빨라졌다.
그러면서도 가마는 평온했으며, 급변하는 기압에 귀가 먹먹해 오지도 않았다.
가온이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투기를 쓰며 가마를 이동시키느라 만들어진 이적이라고 여겼던 자신의 추측이, 틀렸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가마가 마도구였군.’
단, 마나가 아닌 투기로 작동하는 마도구 말이다.
만일 가마에 사용되는 기운이 마나였다면, 이 가마 또한 가온이 발동하자마자 터졌던 발광석과 다르지 않은 결과를 얻게 됐을 것이다.
‘물론 구조가 단순하고 출력이 강하지 않은 발광석처럼 곧바로 고장나지는 않을 테지만.’
로아 대평야로 들어오고 난 이후로 가온의 머리는 단 한 순간도 쉰 적이 없었다.
끊임없이 무엇을 관찰했고, 그에 대해 고찰해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디닷의 묘한 반응에서도 다시 한번 느낀 바지만, 같이 마왕군을 적대한다고 해서 그게 붉은 오크들과 자신들이 한 편임을 뜻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당장이야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마음이 틀어지면 언제라도 돌변할 위험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처음 본 사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 마음을 고쳐먹기에도 그게 부담스럽지도 않을 테고 말이다.
그러니 가온이 계속해서 주변을 탐색하고 그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만일의 사태를 위한 대비 차원에서 하는 행동이었다.
어쩌면 이곳이 적진 한복판으로 변모할 수도 있으니.
하지만 그와 별개로 투기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마도구는 사용할 수조차 없는 몸으로도 가마는 잘동했으므로.
“와! 구름 안으로 들어왔어요! 앞이 온통 구름이에요, 가온!”
그 사이, 그들을 태운 가마는 산 정상을 가리는 구름으로 들어와 있었다.
켄트는 경험하지 못했던 색다른 체험에 들뜬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때.
화아악!
시야를 가리던 흰 구름이 뒤로 밀려나며, 막힌 전경이 드러났다.
“세상에.”
로아 대평야로 넘어온 순간부터 웬만해선 입을 열지 않던 레이나도 그 풍경에는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예상했던 풍경은 만년설이 가득하고 눈보라가 치는 삭막한 모습.
하지만 눈앞의 광경은 예상을 완전히 뒤집는, 마치 도원향이라고 평해도 결코 이상하지 않을 풍경의 연속이었다.
사과, 배, 복숭아 등 각종 과실수가 곳곳에 영글어 탐스러운 빛깔을 뽐냈고, 다양한 동물들이 그 아래를 노닐며 평화의 안식을 리고 있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적당한 햇살이 눈을 간질이고, 선선한 바람이 땀을 식히는 곳.
그곳에 붉은 오크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아주 조그만, 한 존재가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토즈스 님을 뵙습니다!”
가마를 진 붉은 오크들의 우렁찬 소리.
붉은 오크의 작은 거인, 토즈스였다.
다크 판타지의 천재 마수사냥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