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olution is also a business RAW novel - Chapter (402)
외전 -2-
– 안녕하십니까 청취자 여러분. 9시 뉴스의 캐스터 알렉상드르 뒤마입니다.
오늘은 저 멀리 동방에서 일어난 커다란 뉴스가 이곳 프랑스까지 전해졌는데요. 과연 어떤 일인지, 특별 초청에 응해주신 안드레 로베스피에르 파리 정경대학 교수님과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남한(南漢) 초대 대통령 임칙서(林則徐)가 어제 오후 6시경 노환으로 사망했습니다. 외교부 장관은 유감 성명을 냈으며 현지 대사관은 남한에 체류 중인 국민들에게 여행유의 경보를 내렸습니다.
제가 보기엔 여행유의까지 내릴 만큼 중차대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교수님께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아무래도 얼마 전 홍경래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죽었을 적에 비춰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전 대한민국과 남한 공화국의 상황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 아, 그런가요?
– 예. 옛 대한민국, 그러니까 조선은 애초에 단순 봉건주의 정부가 권력을 쥔 국가였지만 남한 공화국은 청나라 만주족이라는 이민족 아래에 한족이 깔려있던 유사 식민지 아닙니까.
그런 식민지에서 독립해 임칙서 전 대통령의 카리스마로 인해 세워진 국가가 바로 남한인데.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국가를 만든 그런 인물이 부재해진 지금, 이제 식민지에서 벗어나 세워진 지 30년 남짓한 남한 공화국 내부가 어떻게 흔들릴지 미지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예방 차원으로 우리 당국이 접근했다고 생각합니다.
– 그 말씀은··· 남한 공화국 내부에서 혼란이 일어날 거란 말씀이십니까?
– 가능성이지요. 혹여 그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그런.
– 예를 좀 들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청취자분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게끔-
– 아··· 알겠습니다. 그,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 교수님, 사사롭게는 제 아버지 되시는 분이 생전 말씀하시길 본래 신생 공화국의 위협은 개인의 영달과 출세를 위해 혁명을 이용하는 군인들이라고 하셨습니다.
– 허, 그 말씀은 남한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 남한 공화국은 안 그래도 숭무(崇武) 분위기가 짙은 국가 아닙니까. 당장 작고한 임칙서 대통령만 하더라도, 청나라에 대항해 한족의 무장 독립 혁명을 일으킨 군인 출신이고 그 밑에 또한 독립 전쟁에서 활약한 숱한 전쟁영웅이 있잖습니까.
물론 그 원로 대부분은 이제 죽었습니다만, 양자강 이북으로 쫓아낸 청나라를 경계하는 그들의 비호 아래 커나간 군부는 정부 대비 상당히 비대해졌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 하지만 군의 정치적 중립성, 더 나아가 민주정 수호에 깊이 공감하는 보나파르트 주의자의 수 또한 상당하지 않을까요?
–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고(故)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상원수처럼 민주정 수호를 위해 나서는 보나파르트 주의자 또한 존재하겠지요. 하지만 빛이 강하면 그만큼 어둠도 짙어진다는, 그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결국 중국 대륙에 직접 가보지 않는 한 이곳 파리에서 얼마나 왈가왈부하던 정확한 예측을 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 그렇군요. 그러면 교수님께선 앞으로 우리 프랑스가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일단은 안보 이슈가 될 가능성이 있으니, 동맹국인 코레, 그러니까 대한민국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며-
“···밀. 에밀! 듣고 있나?”
“그럼요.”
편집장은 잠시 에밀 졸라를 쳐다보다가 이내 손을 뻗어 라디오 볼륨을 줄였다.
“어떻게 생각하냐? 특파원이란 새끼들이 남들보다 반나절 늦는데.”
“으음.”
편집장이 담배를 꼬나물고 이어 말했다.
“어디는 벌써 어디 교수까지 데리고 특집 방송을 찍으시는데, 우리 사회부는 이제 초고를 쓰고 있다고! 이게 말이 되냐?”
언론사 아셰트.
누가 뭐래도 프랑스, 더 나아가 전세계 1위를 자랑하는 민족 정론지!
···는 당연히 초거대기업 이삭의 자회사인 >포브스>고, 사실 아셰트는 그냥저냥 먹고 사는 중소기업에 불과하다.
그… 있잖나? 사장 아들은 고오오급차 타고 다니는데 사장은 항상 회사에 돈 없다고 투덜대는.
2류의 끝자락, 이제 곧 3류로 떨어질락 말락하는 이 시점에, 아마 사장실에선 다음 같은 말이 오고 갔으리라.
“에밀 이 친구 물건이구만!”
“제가 뭐랬습니까? 저 친구 똘똘하다니까요!”
“여윽시 편집장이 보는 눈이 있구만!”
“아닙니다! 사장님이 제 충언을 신뢰해주신 덕이지요!”
“키히히힛!”
“크하하하!”
그러니 편집장이 이렇게 눈이 돌아간 것도 절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에밀.”
“예, 편집장님.”
“자네 손에 우리 회사의 명운이 걸렸어.”
“그렇습니까?”
“그래! 젠장, >르 프티 주르날(Le Petie Journal)> 그놈까지 어디서 뒷배를 얻어왔는지 우릴 쩐으로 때리고 있다고! 사회란도 뒤처졌는데 이대로면 그나마 있는 소설란도 망해!”
편집장은 인상을 구기며 프랑스인답게 손을 부르르 떨었다.
“>르 프티 주르날>이 쥘 베른(Jules Verne), 그 몽상가한테 원고료로 10년에 20만 유로로 전속계약을 했다! 자기네 소설란에 집필해주면 1년에 2만 유로씩 주겠다는 거야!”
“이야 제 연봉의 10배를 받아 가네요.”
“그래! 이러다간 우리 독자들을 그놈들한테 다 뺏기고 말 거라고!”
“그러면 저희도 그 뭐냐… 빅토르 위고나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같은 사람을 소설란에 고용해서 맞불을 놓으면 되는 거 아닐까요?”
“돈은 뭐 자네 월급에서 까고?”
이건 뭐 하자는 거지. 독자는 뺏기고 싶지 않은데 잘나가는 작가 고용하기는 싫다니.
“완전 도둑놈 심보 아닙니까?”
“흐흐, 그래서 자네 상사라는 이들은 이 늙은이 얘기로 지면을 채우려고 하는 거군?”
아까 있었던 일을 얘기하자 눈앞의 노인은 껄껄 웃으며 미사여구 없는 말로 폐부를 팍팍 찍어댔고, 에밀은 멋쩍게 제 구렛나루를 팬 끄트머리로 몇 번 긁은 뒤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예에. 뭐. 그런 셈이지요.”
“솔직해서 좋구만. 그래. 오늘은 무슨 얘기를 해줘야 그 편집장이 헤벌레 웃겠나?”
뭐가 좋을까. 어떤 오프 더 레코드를 써야 대중이 >아셰트>라는 이름이 적힌 잡지며 신문을 팍팍 사갈까.
요 며칠 새 중국 얘기라던 지, 극동 얘기가 많이 오고 가는 걸 보면 국제 이슈가 꽤 시선 끌기가 될 것 같았다.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국제연합 창설 초기 있었던 일을 좀-”
“뭐? 국, 국제 연합?”
“예, 아무래도 대중이 알지 못하는 오프 더 레코드 같은 게 있지 않을까 해서-”
기욤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그러더니.
“국제, 국제연합! 켁, 캬학! 갸아아악!!!”
“회, 회장님!!”
방금 전까지 평화로웠던 노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피가 쏠려 새빨개지고, 문이 벌컥 열린 뒤 주치의인 클레망소가 뛰어 들어와 진정제를 놓았다.
“너무 민감한 질문은 삼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 그게 국제연합이라는 단어를 들으시더니 저렇게-”
“쯧!”
클레망소의 얼굴이 팍 구겼다.
“회장님 앞에서 ‘국제연합’이란 건 ‘못하겠는데요’, ‘모르겠는데요’와 함께 절대 말해선 안 되는 금언 중 하나란 말이오!”
“예, 예?”
그에엑-하면서 부들부들거리던 노인이 다시 차츰 정신을 차리고 클레망소에게 손을 내저었다,
“됐다. 난 괜찮아.”
“회장님, 오늘은 그만하시지요.”
“괜찮다니까. 너무 오랜만에 들은 말이라 잠깐 놀랐을 뿐이다.”
“···알겠습니다. 대신 이번엔 제가 밖이 아니라 옆에 있겠습니다.”
“그러지.”
노인은 물 한잔으로 마음을 완전히 진정시킨 뒤, 천천히 운을 띄웠다.
***
1819년 6월.
종전선언 +770일.
똑똑똑.
– 각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니오.”
– 예, 들어가겠습니다.
빌어먹을.
어차피 듣지도 않을 거면 물어보지도 말라고!
“4/4분기 재무부 회계 보고서입니다.”
“며칠 전에 검토 다 끝냈잖습니까.”
“그, 네덜란드 쪽에서 무역 수지를 가지고 이의를 제기하는 바람에 다시 한번-”
“나 안 해.”
이 씨불쟝 새끼들. 전쟁통에 돈 거하게 땡겼으면 됐지 뭘 또 챙겨달래?
“하지만 각하. 네덜란드인들이 프랑스에서 수입해 가는 공산품 양이 상당합니다.”
“누가 칼 들고 기계 만들지 말라고 협박이라도 했어? 왜 지랄이야 지랄은?”
“그야… 각하께서 >국제연합>을 만드셨잖습니까. 제1가치가 상생과 협력이라고-”
“젠장. ···10분만. 10분만 있다가 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달칵-하고 문 닫히는 소리.
나는 눈두덩이를 뻑뻑 비비며 뻐억뻐억하고 울었다.
도대체 왜 내가 아직도 이렇게 뺑이를 쳐야 하는가.
전쟁도 끝났고, 경제도 살렸고, 사람도 살렸잖아! 그러면 이제 한가롭게 지중해성 기후가 펼쳐진 백사장 위에서 고오급 와인 한 잔과 함께 물놀이를 즐겨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 애 볼따구가 말랑말랑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고, 순진무구한 얼굴로 배시시 웃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대로면 곧 초등학교 입학에 조금만 더 있으면 사춘기.
그렇게 되면 퇴근한 다음에 사과 좀 깎아서 오랜만에 얘기나 하려고 방문을 여는 순간 ‘아! 아빠 나가라고!’ 같은 소릴 들을지 모른다. 아 너무 무섭다!
흠.
결심했다.
때려치워야지
나는 펜을 꺼내 룰루랄라 사각사각 탬플릿을 써나갔다.
***
“사직서?”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통령?”
“말 그대로 사직섭니다.”
“말장난이오? 별로 재미없는데.”
내무부장관, 시에예스는 내가 건넨 종이를 아무렇게나 던져놓으며 말했다.
“아니 제 혼이 담긴 사직서를 그렇게 막 대하면 어떡합니까?”
“혼? 혼이라? ···이보게 로베스피에르.”
“예.”
시에예스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종이를 집어 법무부 장관, 로베스피에르에게 건넸다.
“이 사직서, 사유가 뭘로 보이나?”
“흠, 귀찮아서 더 못해먹겠음?”
“두 분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제가 ‘과로와 병으로 인한 일신상의 어려움으로···’라고 했지 언제 더 못해먹겠음이라고-”
“그게 그 말 아닌가.”
어, 음.
“이봐, 우리가 보통 사이인가? 이런 위장은 그만하고 그냥 원하는 걸 말하게.”
“그러니까 사직하고 싶다니까요.”
시에예스는 로베스피에르와 눈빛을 교환한 뒤, 의자를 내 앞으로 당겨 앉았다.
그르륵-탁! 하고 의자 끄시는 소리가 났다.
“통령 봉급이 마음에 안 드나? 로베스피에르,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확실히 통령이 지금 재능기부를 하고 있는 느낌이긴 합니다.”
“아니 봉급이고 나발이고 그만하겠다고요.”
“통령, 혹시 갱년기가 벌써 왔나?”
“확실히 통령도 이제 중년 줄에 들어선 지 한참 되긴 했지요.”
“곧 60줄인 당신들한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
“좋아! 내가 졌네! 국민의회에서 2주간 통령에게 휴가를 주는 긴급법안을 통과시키지. 그러니까 가족이랑 기차 타고 오랜만에 고향이나 가서 숨 좀 돌리고 오게!”
“확실히 통령이 숨 돌린 것도, 고향에 안 간 지도 한참 되긴 했지요. 지중해에서 며칠 피서를 즐기고 오면 다시 멀쩡해질 겁니다.”
“집어치워!”
“이봐 기욤이. 이건 말도 안 되는 횡포야! 지금 이 시국에 통령이 자릴 비우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나!?”
“시국은 무슨 시국. 이미 시급한 건 싹 다 결재해놓지 않았습니까? 최소 내년까진 예산안에 빵꾸 하나 없습니다. 허수아비를 세워놔도 다음 통령 선거 때까진 돌아가요!”
“안돼. 못 해줘. 돌아가.”
“제가요!? 이걸요!? 왜요!?”
“빌어먹을! 이제 좀 포기해! 자넨 1년 반 뒤까지 거기서 못 내려와!”
“이건 행정부 탄압이야!”
“그러지 말고 임기 다 채우고 내려오세요!”
“자꾸 이러면 기자회견을 열어서 이 인권유린의 실태를 낱낱이 폭로할 겁니다!”
“하! 고명하신 우리 파리 시민들은 다들 푸하핫거리면서 자네가 농담도 잘한다고 생각할걸? 차기 대선 준비하나?”
고집으로는 이 프랑스에서 따라올 자 없는 세 사람답게, 마라톤 회의는 밤을 쫄딱 지새우며 이어졌다.
그러나 예순을 바라보며 기력이 슬슬 떨어지기 시작하는 두 사람은, 아직 머리에서 색소가 빠지지 않은 파릇파릇한 40대를 막을 수 없었다.
“당신들은날존중해야한다나는지금까지뼈가가루가되도록일하고그런데돈은돈대로별로주지도않고휴가도못쓰게하고나도사람이야사람이번엔당신들을믿었단말이야나는꿈이있습니다이나라의누구든지정당한노동법에의해사표를쓸권리를얻는그런꿈이-”
“제기랄, 그래! 자네 맘대로 해!”
팟-하고 성냥이 켜지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시에예스는 파이프에 불을 붙이며 구시렁댔다.
“누군 대선 한번 나가보겠다고 있는 거 없는 거 다 끌어다 쓰는데, 누군 빗자루로 마당 쓰는 것 마냥 귀찮게 여기는군.”
“정 그렇게 아니꼬우시면 시에예스 의장님이 다음 대선 나가시면 되겠네요.”
“내가? 미쳤다고 왜?”
그는 파이프 담배를 쭉 빨아들였다.
“통령 임기 끝나면 정치 은퇴해야 하잖나.”
“전 임시 재무총감까지 세면 세 번이나 하는데요.”
“그건 자네니까 되는 거고. 자네 말고 그게 될 거 같나? 난 더 오래 정치하고 싶네. 로베스피에르 자넨 어떤가?”
“저도 마찬가집니다.”
“젠장, 이제 다음 선거까지 한 1년은 띵가띵가 놀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통령이란 사람이 때려치겠다니, 빈자리를 채울 사람 찾는데만 몇 개월 걸리겠구만.”
“경제학 교수인 장 바티스트 세이 그 사람이 참 진국이던데-”
그렇게 극적인 협상 타결 이후. 하하호호 모두가 웃으며 대계를 짠 며칠 뒤.
“기욤 드 툴롱 통령이 자리에서 내려온다고요?”
“거짓말이야!”
“그러면 우리 오스트리아 경제는 이제 누가 훈수 둬줍니까?”
“반대! 절대 반대! 우리 네덜란드는 절대 반대합니다!”
“그, 여러분. 조금 진정하시고-”
“베를린을 제외한 프로이센은 지금도 황량합니다! 함부르크 항구는 아직 수리조차 끝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전 세계 경제 회복을 진두지휘할 사람이 지금 내려온다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혹시 내부에서 정치 싸움에 밀린 건 아닐까요?”
“쿠데타인가!? 쿠데타인가!?”
“아니야! 그냥 내려오는 거라고!”
온 세상이 소란스러운 가운데.
“이곳이 불란서인가? 평안도와는 아예 별세상이구만.”
“대청국 복건 안찰사 임칙서요. 흉악무도한 영길리를 대청국을 도와 부수어 깬 불란서국의 공을 상찬하고자 왔소.”
두 동양인이 파리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