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olution is also a business RAW novel - Chapter (401)
외전 -1-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무슨 뜻이오?”
“그걸로 끝인가 해서 말입니다.”
수수하지만 품격있게 장식한 응접실, 성인 티를 벗을락 말락 하는 젊은 기자는 이어 물었다.
“모두가 잘 먹고 잘살았다, 이야기 끝! 모두 잘 시간입니다-”
“기자 양반. 원래 이야기는 종막쯤 가면 다 단물 빠지는 법이야.”
발단-위기-전개-절정-결말.
다 나왔는데 거기서 더 뭘 말해달라는 거야?
더 말해봤자 유관장, 조조, 손권 관짝 들어가고 제갈공명 죽고 난 뒤의 삼국지만큼 재미없다고.
게다가 난 이제 퇴물 아닌가. 퇴물.
나 같은 퇴물 말고 저 뭐냐, 지금 통령인 아돌프 티에르(Louis Adolphe Thiers) 같은 사람을 취재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듣자 하니 프랑스인들이 환장하는 여자 문제가 어마어마하더만. 찍기만 하면 달달하게 한 몫 땡길 수 있겠네.
나는 마뜩잖게 날 바라보는 기자 친구를 내버려 두고 담배를 물며-
– 뚝.
뭐야, 내 귀여운 장초가?
나는 단두대로 커팅한 것처럼 반으로 분질러진 내 소중한 장초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옆에 선 채 담배 대가리를 쥐고 있는 내 주치의에게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이냐?”
“회장님, 제가 금연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또 담배를 무시다니요.”
“담배가 왜?! 담배가 왜 해로운지 알기나 하냐?”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최근 연구 결과로는 흡연자와 폐 질환 환자가 유의미한 상관 관계가 있다고 하더군요.”
“아 그래? 자네처럼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면 위생적으로 안 좋다는 연구 결과는 없던가?”
비아냥거리든 말든 주치의는 줄줄 제 하고픈 말을 퉤퉤 뱉어냈다.
“담배가 해가 없다고 회장님께서 진실로 생각하셨다면 장남이신 부회장님께는 왜 그렇게 피지 말라고 난리를 치셨습니까?”
“이, 이, 빌어먹을. 내가 미쳤지. 의대 수석이라고 뽑아오는 게 아니었는데.”
“꼬우면 내치십시오.”
“그건 안될 말이지. 따박따박 엿 같은 소리 하는 자네랑 다르게, 다른 놈들은 어떻게 알랑방귀 뀔 생각만 하거든.”
“그거 다행이군요. 무병장수하시길 바랍니다.”
“무우우병장수? 내 나이가 아흔이야 아흔! 아흔이면 죽어도 돼!”
“뭐, 회장님 개인의 의견이 그렇다 한들 5천만 공화국 시민에게 물어본다면 안 된다고 할 겁니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지요?”
“너!!!! 나가!!!!”
“담뱃갑하고 라이터 주시면 기꺼이 나가겠습니다.”
젊은 주치의는 기어코 늙은 회장의 품에서 소중한 담배를 강탈한 뒤 – 그럼 즐거운 인터뷰 되십시오. -라는 말까지 남기고 표표히 응접실에서 나갔다.
침통하다. 죽을 때가 얼마 안 남은 것도 서러운데 인생에 얼마 없는 낙까지 뺏다니!
나는 반쯤 넋 나간 표정으로 있다가, 이내 일어나 창문을 드르륵-하고 열더니 예의 젊은 기자를 바라보았다.
“거, 뭐냐.”
“예?”
“담배 있소?”
“아, 예. 있습니다만.”
“실례가 아니면 한 개비만 빌립시다.”
“예에…”
찰칵-하고 오일 라이터 특유의 기름 냄새가 올라오길 잠시, 나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공짜 담배를 즐기며 웃었다.
오… 니코틴 정말 최고야.
“젠장, 이 세상에 있는 담배회사란 담배회사는 다 인수할 수 있는 돈이 있는데. 정작 담배 한 개비 피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하하하…”
기자가 멋쩍게 웃었고, 나는 다 태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껐다.
“그래. 기자 양반, 어떤 얘길 듣고 싶소?”
“해, 해주시는 겁니까?”
젊어서 그런가 얼굴에 감정이 다 드러나는구만.
“담뱃값은 해야지. 내가 젊은이 돈 떼먹을 만큼 구두쇠는 아니오. 다만 아까 얘기한 것처럼 재미는 별로 없을 수도 있소. 판매 부수도 잘 안 나올지 몰라.”
“하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세상 사람 중 각하, 아니, 회장님 얘길 궁금해 않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내친김에 편하게 말씀하셔도 전 괜찮습니다.”
“하하, 배려가 좋군. 알겠네.”
기자가 원고지와 함께 손에 쥔 펜을 딸깍 눌러 받아적을 준비를 마친 걸 확인하고, 나 또한 운을 띄울 준비를 했다.
벌써 근 50년 전 아닌가. 아흔 살이 된 뇌는 옛날만큼 쌩쌩 돌지 못했다.
“유럽에서의 전쟁은 그걸로 끝났지만, 세상일이란 게 그때까지만 해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딱 끝나는 게 아니었네.”
“그렇습니까?”
“그렇고말고. 지금이야 전화니 전보니 라디오니 있지만 그땐 그런 게 없었으니까. 유럽에서야 전쟁의 총성이 멎었지만, 아메리카에선 아니었지.
결국 종전선언 후 30일이 지나서야 아메리카에서 전쟁이 끝난 거야. 사실 미합중국 입장에서는 이득인데,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몬트리올까지 진격해 결국 캐나다 땅을 다 받아냈으니.”
오래된 기억을 끌어올리니 비록 빛바랜 필름이지만 나름 삐걱삐걱거리며 머릿속 영사기가 돌아간다.
“당시 누벨 프랑스 도지사가 지금은 앵발리드에 묻힌 사람인데-”
“뒤무리에 도지사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 사람을 아나?”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으로 누벨 오를레앙을 들린 적 있습니다. 거기 도청 앞에 커다란 동상이 있었던 게 기억나네요.”
“···혹시 세금으로?”
기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누벨 프랑스 도민들이 옛날에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지었다고 하더군요. 워낙에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봉사하신 분이고, 또 일개 시, 군(데파르트망)만 했던 누벨 오를레앙이 그분 이후에 도(레지옹)급으로 성장했으니까요.”
기자는 장지갑을 꺼내, 앳된 얼굴의 고등학교 동창들끼리 찍은 사진을 내밀었다.
싱글벙글 웃는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커다란 동상 밑에서 찍은 사진 한가운데엔, 그 동상이 누구를 본 딴것인지 양각으로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샤를-프랑수아 뒤무리에(1739-1823).대프랑스 공화국, 누벨 프랑스의 제1대 도지사
전(前) 낭시 지역방위대 사령관
전(前) 툴루즈 지역방위대 사령관
방어의 사자.
그리고
가장 위험한 시절, 가장 양심적이었던 자]
양심? 양심… 양심…
뭐지 시발. 앞은 그렇다 쳐도 양심이 뭐가 어쩌고저째? 내가 나이를 너무 많이 처먹어서 눈이 이상해진 건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국립학술원에서 ‘양심’이라는 단어의 뜻을 다른 걸로 대체했나? 수박이 몽미가 되고 막 이런?
“거, 기자 친구. 내가 눈이 좀··· 침침해서 그런데. 내가 똑바로 읽은 게 맞나?”
“예. 회장님께서도, 아니지. 회장님이시야말로 당사자 아니십니까? 제가 알기론 대혁명 시절에 왕당파 측 군인이었던 뒤무리에 도지사가 오를레앙의 친위 쿠데타를 폭로해 국민의회를 지키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천국으로 가실 때까지 도지사로 힘껏 일하셨고요.”
아. 그게 세간에는 그렇게 발표됐었지 참.
내가 세세히 총괄하던 실무에서 손을 떼고 큰 틀에서만 적당히 가지를 친 게 칠십이었으니, 아메리카에 발을 디딘 지도 어언 30년이 되어간다.
아마 >대전쟁> 시절 참전용사들, 그리고 처음 누벨 프랑스에 정착했던 이들이 늙어가면서 추억과 향수에 뒤무리에의 동상을 세운 걸까.
– 이보게, 통령…?
– 통령은 무슨. 임기 끝난 지 1년 됐습니다. 그리고 뭡니까 또.
– 그, 내가 이제 나이를 많이 먹지 않았나. 심지어 전쟁터도 나갔고! 슬슬 실무에선 손 좀 떼고-
– 음… 이번에 미시시피강 쪽에서 사금이 난다던데 관심 있으십니까?
– 금? 얼마나- 아, 아니지!! 돈은 이제 됐네. 벌 만큼 벌었어!! 그러니까 이제 날 좀 은퇴시켜주면 안 되겠나?
– 흐으음.
– ‘흐으음’은 무슨 흐으음? 대혁명 시절도 아니고 내가 통령한테 무슨 해가 된다고 그러나? 응?
– 좋습니다.
– 정말?! 정말이지!!??
– 딱 임기 한 번만 더 하시죠.
– 뭐?! 네놈, 아니, 너, 아니, 통령! 늙은이 골수를 빨아먹는 것도 정도껏 하시오!
– 한 마디만 더 토 달면 제 비서실 캐비넷 열겠습니다. 장군 재산을 우리 회사 회계사들이 맡아서 한몫 말아준 거 아시지요?
– ···딱 한 번만 더 하면 되는 거지?
– 그럼요. 제가 언제 약속 안 지킨 적 있습니까.
– 사장님. 사장님.
– 끙, 왜? 무슨 일 있나? 이 오밤중에.
– 뒤무리에 도지사가 쓰러졌다고 합니다.
– ···뭐?
– 위중하다는 연락이 마지막이었으니, 시차를 고려하면 아마 지금쯤이면···.
– 더 말하지 않아도 되네. 무슨 말인지 알겠으니. ···행정부는?
– 국가 차원에서 성명을 준비 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 되도록, 국장으로 치러달라고 전해주게. 그리고 그 사람 늦둥이 아들 있지? 그 친구한테 회사 명의, 아니지. 내가 직접 친서를 쓰지.
– 알겠습니다.
머릿속 영사기에서 옛 얼굴이 나타나다 사라졌다.
거, 똑같이 나이 먹은 지금 보니깐 좀 잔인했었네.
난 임기 한 번은 더 버틸 줄 알았지. 미안하게 됐수다.
“-님? 회장님?”
“아, 미안하네. 늙으면 감상이 많아져서 말이야. 그럼 원론으로 돌아가자고.”
기자가 다시 펜을 들었고, 나는 오래전 보고, 듣고, 경험했던 바를 내가 기억하는 대로 말해주었다.
살벌했던 전투로 난장판이 되었던 빈의 수리가 끝나고, 마지막 남아있던 프랑스군 공병대가 철수함으로써 더 이상 전쟁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는 빈에 오스트리아 공화국 총리 마르크스의 초대를 받아 시민에게 처음으로 개방된 궁정극장을 관람한 일 같은 거 말이다.
*
1818년 1월.
종전선언 +210일.
“융커 놈들이 정신 못 차릴 때 당장 토지개혁을 시작해야 합니다.”
“무식한 융커들의 유일한 대화 수단인 군대가 박살 났으니 지금 단매에 몰아쳐야 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프로이센 토지의 7할을 차지한 지주 귀족이자 군사 귀족인 융커들.
이들을 근본부터 박살 내지 않는다면 이제 막 시금석 위에 올라간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프랑스 통령의 명에 따라 파리 방첩사령부에서 챙겨놓은 ‘명단’이 프로이센 특무 경찰의 호주머니로 쏘옥-하고 빨려 들어가고.
초대 총리로 뽑힌 요한 볼프강 괴테의 주도 아래 프로이센은 경찰력을 총동원.
“융커의 땅을 농민의 손으로(Boden Redform)!”
“케에에엑!!”
“싹 다 조져버려!”
“한스! 뮐러! 모두 총을 들어라! 저 베를린에서 온 역도 놈들을 몰아내야 한다!”
“응 너나 많이 하셔요.”
“나라에서 융커 나리들 땅을 빼앗아 우리한테 준다는데?”
농민들의 방관으로 기껏해야 하인 몇과 함께 부질없는 저항을 계획하던 융커들은 순식간에 시큼한 경찰서 지하 구치감으로 끌려갔다.
“좋아! 썩은 내 나는 융커 놈들을 치웠으니 이제 탄탄대로야!”
“프랑스처럼 몰수한 토지를 대상으로 채권을 발행합시다. 인민들에게 20년 만기로 유상 분배하면 경제를 살릴 수 있어요!”
바로 옆에 프랑스, 그리고 기욤 드 툴롱이라는 완벽한 예가 있는데도 따라 하지 않을 수 있겠나.
남ㆍ북독일은 전쟁의 참상에서 서서히 회복했다.
1818년 3월.
종전선언 +300일.
“그러니까! 댐을 지어야 한다고!”
“피폐해진 민생부터 일단 챙겨야 합니다!”
“···둘 다 내가 생각하기엔 일리가 있소만, 고문의 생각은 어떻소?”
스페인 공화국 임시 총리, 프란시스코 고야가 묻자, 프랑스 공화국 재정고문단 고문 네이선 로스차일드가 입을 열었다.
“제가 감히 말씀드리자면, 지금 제일 시급한 건 일자리입니다.”
“이미 토지 분배로 자영농들이 숨풍숨풍 솟아났소만.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뜻이오?”
“농산물이야 물론 사람 사는데 필요한 필수재입니다. 하지만 프랑스, 러시아 같은 농업 대국이 있는 한 스페인의 생산량으로는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가져가기 어렵지요.”
“그렇다기엔 지금 장부는 흑자이오만?”
“그건 지금 브리튼 섬이 작년 농사를 짓지 못한 탓에 온 유럽의 식량을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각하.
올해 수확철이 끝나고, 내년 이맘때쯤이면 올해처럼 장부에 흑자가 나오긴 어려울 겁니다.”
“그럼 어찌하면 좋겠소?”
“파리에 있는 통령 각하께선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켜 임금 노동자를 양성하고 기초 산업에 필요한 체급을 갖추는 게 좋다는 의견이셨습니다.”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도를 펼치고 손을 탁탁 짚어나갔다.
“무르시아와 안달루시아. 이 두 동네만 보더라도 스페인은 굉장히 물이 귀하지요.”
“그렇소. 보나파르트 사령관도 그 점을 노려 영국군의 수원지를 끊어버렸었지.”
“마드리드, 톨레도, 사라고사, 바야돌리드. 이 도시들을 지나는 주요 담수원에 관개시설을 확장하고 댐을 건설하시죠.”
“하지만 관개시설, 댐은 모두 농사에 도움 되는 일 아닙니까? 아까는 농사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자고 하셨잖습니까.”
“물은 농사에만 들어가는 게 아닙니다. 공장 돌리는 일에도 물이 들어가지요.”
스페인 공화정부의 대다수는 경제에 문외한인 공무원, 군인 혹은 예술가와 문인들.
은행가나 사업가들 중에서도 공화주의자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대부분은 비합리적인 제도가 사라진 지금, 갓 태동한 시장이라는 정글에서 더 많은 파이를 가져가기 위해 밤낮도 잊은 채 과로 중.
“우선은 토건업부터 시작합시다. 그다음에 토건업을 토대로 차차 공업화를 시도하면-”
따라서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최대한 이들에게 친절히 풀어 설명했다.
마드리드의 정부 청사는 오늘도 밝게 거리를 밝혔다.
*
– 똑똑똑.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주치의가 들어왔다.
“회장님. 이제 슬슬 끝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더 심력을 쏟으시면 건강에 해로울 수 있습니다.”
“허, 시간이 벌써? 겨우 전쟁 이후 잠깐을 다뤘는데 벌써 해가 다 떨어졌군.”
“그, 회장님. 중간에 프로이센 얘기는-”
“···아 방첩사 그건… 뭐, 기밀이긴 한데 요즘 같은 세상엔 뭐 딱히 상관없지 않나 해서 그냥 얘기했소.”
“예에…”
“그나저나 오랜만에 옛날 일을 돌아보니 말할 게 상당하군. 기자 양반, 다음 주 이 시간에 또 만납시다.”
내가 허허하며 말하자 기자의 얼굴이 휘둥그레졌다.
“또 인터뷰해주시는 겁니까?”
“늙은이가 젊은 사람한테 이런 거라도 해줘야지. 어차피 할 것도 없소. 오히려 회고록 집필하려면 작가를 고용해야 하는데, 공짜로 내 말을 옮겨주니 돈 굳은 셈이지!”
나는 품에서 지갑을 꺼내 명함을 한 장 뽑아 내밀었다.
“자, 받게. 앞으로도 꽤 볼 사이지 않나. 이래 보여도 내 명함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상당하다네.”
“감, 감사합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는 듯 얼떨떨한 표정으로 내 명함을 받은 그는 이내 퍼뜩 정신을 차리더니 자기 또한 명함을 아주 공손하게 내밀었다.
“아셰트 출판사 영업기자, 에밀 졸라(Émile Zola)?”
“예 맞습니다.”
“그, 이름이, 에밀 졸라인가?”
“예? 아, 예. 맞습니다만.”
“에밀 졸라, 에밀 졸라…”
사람 이름이 어떻게 에밀 졸라?
아, 이게 그 외국인이 보는 박석길 그런 건가.
“그,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요?”
“아, 아하하. 아무것도 아니네. 그럼 다음 주에 보세.”
“예! 감사했습니다!”
나는 고갤 돌려 주치의 겸 비서에게 말했다.
“조르주, 이 친구 밖으로 안내 좀 해주게. 나는 안에 들어가서 좀 쉬어야겠어.”
“예, 회장님.”
*
“앞으로 일주일에 하루씩 오늘처럼 오셔서 인터뷰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다만 회장님께서 워낙 고령이시니 심한 감정 기복이 있을 법한 질문은 조금 자제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 당연합니다.”
고급스럽게 장식된 길다란 복도를 지나고 한참을 더 간 끝에 현관문에 선 에밀 졸라에게, 회장의 주치의는 약간의 주의사항을 주지시켰다.
“회장님 명함은 어디 가서 보여 주진 말아주십시오. 조금이라도 떡고물을 얻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사람이 얽힐 수도 있으니까요.”
“예에.”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리고, 밖에 나오자 검은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이 자기들끼리 고갤 끄덕이더니 저택 바깥으로 나가는 외부 철문을 열어주었다.
“일단 제가 말해놓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다음에 오실 적 경호원들이 들여보내 주지 않는다면 제 이름을 대시면 됩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회장의 주치의 겸 비서는 나지막하게 에밀 졸라를 향해 말했다.
“조르주 클레망소(Georges Benjamin Clemenceau)입니다.”
“조르주 클레망소. 알겠습니다.”
“그럼 가시는 길 평안하시길.”
에밀 졸라는 답례로 고개를 끄덕인 후, 대로로 나가 택시를 잡았다.
“어서오십쇼, 어디로 갈까요!?”
“파리 8구요. 로베스피에르 대로를 타고 갑시다.”
“예이, 알겠습니다!”
부르릉-하고 엔진이 배기음을 내뿜으며 움직이는 걸 느낀 에밀 졸라는, 아까의 노트를 꺼내 열심히 정리를 해나갔다.
– ···아울러 잉글랜드 연방공화국은 이번 대영제국의 국제 도발에 엄중히 대처하겠다고 의지를 표명했으며, 윌리엄 글래드스턴(William Ewart Gladstone) 현 잉글랜드 연방공화국 대통령 또한-
“기사님?”
“예에, 소리 좀 줄일까요?”
“그래주시면 감사하죠.”
기사가 라디오 소리를 줄이고, 이내 에밀 졸라는 어떤 식으로 원고를 써 편집장에게 넘겨야 할지 끙끙대며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러나 쌩쌩거리며 로베스피에르 대로를 타고 달리는 택시는 무소처럼 나아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