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74
173. 만들어진 신화 (2)
“실장님, 여기 요구하신 성영재 자서전입니다.”
“고맙습니다. 절판된 거라 구하기 어려웠을 텐데.”
사흘 후, 여전히 성영재는 대선 출마에 관한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었고, 언론에서는 계속해서 성영재의 출마에 관한 문제를 떠들며 모든 이슈를 성영재가 독점한 상황이었다.
정현석 캠프에서는 공식적으로 성영재에 대해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으며, 후보 또한 평소와 같은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아닙니다. 어렵지 않았어요. 헌책방에 널려 있더라고요.”
직원의 말에 지훈은 미소로 대답을 하고는 자신의 앞에 놓인 성영재의 자서전을 바라보았다.
책 표지에서부터 샐러리맨 신화라는 것을 강조해놨는데, 사원에서부터 사장까지 올라간 것은 확실히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샐러리맨 신화라··· 그 신화가 어떤 것인지 한번 볼까.’
본격적인 검증 기획단이 출범하기 전 성영재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한 지훈은 자서전을 읽어내려갔다.
어느 자서전이나 그렇듯 성영재 또한 자서전 내내 자신의 실패보다는 성공담 위주로 적어 뒀는데, 동양중공업에 입사 이후부터 자신이 사장이 되기까지의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한참, 자서전을 읽어내려가던 지훈은 무언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는지 책의 내용을 따로 메모하기 시작했다.
“박도균 보좌관님.”
지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메모지를 들고 박도균의 자리로 다가갔다.
“잠시 저 좀 보시죠.”
지훈의 말에 두 사람은 사무실 중앙에 있는 회의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박도균이 자리에 앉자 지훈은 따로 정리해둔 메모를 박도균에게 건넸고, 박도균이 메모의 내용을 확인하자 입을 열기 시작했다.
“동양중공업이 건설 쪽에 가지고 있는 특허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특허요?”
“네. 성영재 사장의 자서전을 읽어봤는데 자신이 성공한 원인을 얘기하면서 개발한 특허가 있다고 하는데······ 이걸로 관급 공사를 싹쓸이하면서 동양중공업의 규모가 커진 것 같더라고요.”
“맞아요. 동양중공업이 업계 20위권 밖에서 놀다가 갑자기 커진 게 관급 공사를 싹쓸이 수주를 했거든요.”
건설신문 기자 출신인 박도균은 동양중공업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다는 듯 지훈을 향해 말해왔다.
“관급 공사 중에서도 지방자치단체에서 수주하는 공사들을 2~3년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을 겁니다. 공사 규모도 점점 키워나갔고요.”
“제가 그쪽 전문가는 아니지만, 제가 본 바로는 이례적인 것 같은데··· 그런 일이 흔합니까?”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 당시에도 동양중공업에 관해 얘기가 많이 나왔어요. 그래서 감사원에서 감사도 나갔는데 따로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났고.”
박도균의 말에 지훈은 자신이 잘못 짚었나 싶어 고민하고 있을 때 박도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훈을 향해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런데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요. 관급 공사에서 특허를 요구하는 일은 적은데?”
“성영재 자서전에는 본이 직접 개발한 특허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회사에서도 승진이 빨랐고, 이 특허를 회사에 양도함으로써 사장 자리까지 올라갔다고··· 하는데요.”
“좀 냄새가 나네요. 동양중공업은 특수공사를 하던 업체가 아니라 빌딩 위주로 올리던 건설사였는데······ 터널을 뚫는 것도 아니고 도서관 짓고, 시청 건물 짓는데 특허가 필요할 리가 없습니다.”
“그 특허를 한번 조사해볼 수 있겠습니까? 괜찮으시다면 수주받은 공사들도 한번 조사해보셨으면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이 일은 제가 한번 파보도록 하겠습니다.”
“언제까지 될까요?”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니 다음 주까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침 회의 이후에 따로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기는요. 오랜만에 저한테 맞는 일을 만난 것 같아 즐겁습니다.”
박도균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지훈은 자리로 돌아와 자신 또한 동양중공업이 수주한 관급 공사들을 조사해나가기 시작했다.
**
“이틀 연속 상한가를 찍고 주가가 안정되는 느낌입니다. 애초 예상했던 것보다 주가가 많이 올랐습니다.”
서울에 위치한 성영재의 개인 사무실, 개인 비서의 보고를 받은 성영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정리할 시점 같지? 자네 생각은 어때?”
“저도 정리할 시점 같아 보입니다. 목표치보다 더 많은 금액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처분 작업을 시작하기 좋은 타이밍인 것 같습니다.”
“그래, 회수 진행하도록 하고 시장에 영향 안줄 정도로 조용히 판매 진행하라고 해. 그리고 판매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공시해달라고 회사에 얘기하고, 자네가 직접 챙겨.”
“알겠습니다.”
성영재에게 보고를 마친 비서가 사무실 밖으로 나가자 성영재는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전화를 들고 익숙한 번호를 찾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슬슬 출마 선언을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선자금은 전부 마련하셨습니까?
“하하, 그렇습니다. 대표님께서 해주신 조언대로 하니 주가가 오르더군요.”
-어디 주가만 올랐겠습니까? 매일 성 사장님의 지지율도 오르고 있습니다.
“아이고, 어디 저 혼자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게 다 김 대표님의 조언대로 하니 만들어진 상황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성 사장님께서 그렇게 알아주신다면 저는 그것만으로도 만족입니다.
상대의 대답이 마음에 든 것인지 성영재는 싱글벙글 웃는 표정으로 수화기 너머의 상대에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이제 준비가 끝났으니 뭘 하면 되겠습니까?”
-노선을 정해야겠지요.
“노선이요?”
-그렇습니다. 기존의 새 인물들이 바람을 일으키고 대선에 나왔다가 실패한 원인을 아십니까?
수화기 너머 상대의 물음에 성영재는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 듯 한참을 고민하다 입을 떼기 시작했다.
“그게 노선과 상관이 있습니까?”
-하하하, 답을 내리지 못하셨나 보군요?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제삼지대 후보가 실패하는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보수와 진보,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이득을 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노선을 정하지 않으면 내 편도 생기지 않습니다.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만······. 그렇게 되면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당장은 떨어지겠지요. 다만, 노선을 정하고 그 진영에 속한 지지자들을 빼 오면 될 일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상대의 말에 성영재는 당장 떨어질 지지율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지만, 지금까지 상대의 말을 들어 손해를 보았던 일이 없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치에 대해서는 김 대표님의 판단을 믿고, 따르겠습니다.”
-하하, 답변 한번 시원하십니다. 좋습니다. 출마 선언 시기도 좋아요. 추석 전에 출마 선언을 하실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그 전에 회사도 정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출마 선언 회견장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
「성영재 동양중공업 사장 대선 출마 선언하나? 회사에 사표 제출.」
「동양중공업 측, 성 사장이 사표를 제출했다는 것 말고는 따로 확인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어.」
「성영재 주변으로 보이는 옛 보수당 인물들··· 보수재건 꿈꾸나.」
“시기가 온 것 같지?”
“네. 성영재가 전면에 나설 느낌입니다.”
다음 날, 지훈은 정현석의 호출을 받아 정현석의 사무실에서 독대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 아침 신문들을 살피던 정현석은 테이블 위로 신문을 던지고는 지훈을 바라보았다.
“옛 보수당 인물들이라고 한 것은 저쪽에서 장난질 치는 거 같은 느낌이 드는데.”
정현석의 말에 지훈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 또한 대표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대안당 인물들이 모이는 것이 뻔해 보이는데, 대안당은 실패한 정당이다 보니 우리 당 출신임을 강조하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는 건 노선을 정하겠다는 거고.”
“네. 보수 후보를 표방할 것 같습니다.”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고민에 빠진듯한 모습이었다.
“걱정되십니까?”
상념을 깨는 지훈의 목소리에 정현석은 씩 웃으며 지훈을 바라보았다.
“넌 아냐?”
“네. 저는 걱정 되지 않습니다.”
“새끼, 너무 단호해서 놀리는 건지 아닌지 알 수가 없네.”
정현석은 피식 웃으며 지훈을 향해 농담을 던졌다.
“우리 지지자들을 좀 더 믿으시지요.”
“…”
“아마 대표님께서는 대안당이 또다시 보수색채가 얕다며 대표님을 공격해오는 것을 걱정하고 계실 겁니다. 맞습니까?”
“그래. 그 인간들이 나를 상대로 늘 했던 게 그거니까.”
“이제는 통하지 않는 프레임입니다. 대표님은 보수당의 후보로 선택받으셨으니까요. 좀 더 자신감을 가지시고 우리 지지자들을 믿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자신이 듣고 싶었던 얘기를 해주는 지훈이 고마운 것인지 정현석은 씩 웃으며 지훈을 바라보았다.
“그래, 성영재 검증은 어떻게 되고 있어?”
“검증 기획단에서 열심히 조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도 따로 알아보고 있는 것이 있고요.”
“뭐 냄새나는 게 있어?”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만, 동양중공업이 그저 그런 중소 건설사에서 업계 탑이 되고, 조선사를 인수하는 과정이 좀 매끄럽지 않습니다.”
“그래?”
“네. 따로 조사해본 바로는 3년간 거의 모든 지자체에서 발주한 공사 중 대부분을 싹쓸이했다는 게 의심스러워 따로 조사하고 있습니다.”
“관급 공사라는 게 포인트네.”
“그렇습니다. 모든 건설사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3년간 관의 공사를 싹쓸이했다는 것은······.”
“구린내가 심하게 나지.”
“네. 좀 더 파보고 확실하게 그림이 나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너 인마 실장직 앉혀줬더니 찾아오지도 않고, 매일 와서 인사해 알았어?”
“알겠습니다.”
정현석의 농담에 지훈은 웃으며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는 정현석의 방에서 빠져나왔다.
**
다음 날, 지훈은 아침 회의를 마치고 캠프 건물 내에 따로 마련된 회의실로 들어가 박도균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말씀하신 성영재의 특허 건을 조사해봤습니다. 확실히 김 실장님이 짚은 게 맞는 거 같습니다.”
“그래요?”
“네. 그 바닥에서는 꽤 유명하더라고요. 20년 전 일이라 지금 와서는 알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는데, 대부분 폐업했지만 한두 회사는 여전히 남아 있더군요.”
지훈은 박도균의 얘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당시 동양중공업과 수주 경쟁을 하던 한 업체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먼저 성영재가 자서전에서 써놓은 특허부터 얘기하자면······.”
한참 박도균의 설명을 듣던 지훈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해갔는데, 이내 박도균의 설명이 끝나자 씩 웃으며 박도균을 바라보았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요. 실장님이 힌트를 던져주신 것을 조사한 것밖에 없습니다. 이대로 발표하실 겁니까?”
“아닙니다. 상대에서 반박해올 지점까지 생각하고 조사한 후에 하나하나씩 풀어가도록 하죠.”
지훈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박도균을 바라보았다.
“자, 그럼 성영재의 샐러리맨 신화를 깨러 가볼까요.”
지훈이 그렇게 말하고 앞장서서 걷자, 박도균은 지훈의 뒤를 따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