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73
172. 만들어진 신화 (1)
2017년 9월.
“성영재 사장님 유럽 순방 일주일 새 9억 불 규모의 대형 선박 수주 싹쓸이를 하고 돌아오셨습니다.”
인천공항 귀국장, 일개 회사의 사장이 귀국하는 모습치고는 평소와 달라도 너무 다른 광경이 연출 되고 있었다.
성영재의 뒤편에는 [대한민국의 쾌거! 동양중공업 조선업 분야 9억 불 수주!]라는 현수막을 든 사람이 서 있었고, 그의 목에는 꽃목걸이가 걸려있었고, 주변에는 정치인, 교수를 비롯한 사회적으로 명성이 있는 인물들이 서 있었다.
“어려웠습니다. 꽤 많은 경쟁사가 있었지만, 우리의 기술력을 높게 사준 것 같습니다.”
“중국 조선사들의 덤핑에 가까운 저가 수주 공세를 이겨내고 돌아오셨는데요. 특히 중국과 기술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다는 VLCC(초대형 원유운반선) 부분에서 모두 중국 조선업계에 승리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자신의 공적을 쏙쏙 짚어오는 기자의 질문에 성영재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우리가 쌓아온 신뢰가 이번 승리의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단 한 번도 납품기일을 어긴 적이 없는 우리 특유의 성실함과 뛰어난 기본 설계력을 갖춘 기술력의 승리입니다.”
“그간 중국 조선업 시장에 밀려 우리나라 조선업계가 아주 힘든 시기를 보냈었는데요. 이번 승리로 인해 우리 조선업 시장에 봄이 올 것이라는 평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힘을 합친다면 못할 것이 없다는 걸 다시 한번 세계에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동양중공업의 승리는 한 기업의 승리를 떠나 대한민국의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성영재는 그렇게 말하며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려 큰소리로 외쳤다.
“대한민국 만세!”
성영재의 외침에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 또한 성영재를 따라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때아닌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성영재 사장님, 이번 대선에 출마하실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사실입니까?”
한참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기자가 성영재를 향해 큰소리로 질문을 했고, 성영재는 갑자기 표정을 굳히고는 정면에서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경제불황의 어두운 그림자가 우리나라를 뒤덮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경제는 활력을 잃고 실업자 수는 늘어가며 사회는 부정과 불의로 얼룩져가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는 건 대선에 출마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무너져가는 나라를 위해 한 몸 불사를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며칠간 고민 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결정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확실하게 대선에 출마를······.”
기자는 계속해서 질문하려고 했으나 순간 기자의 앞을 성영재의 경호원들이 막아섰고, 성영재는 확실한 답을 하지 않은 채 자신을 마중 나온 사람들과 함께 출국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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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억 弗 수주 신화, 성영재 동양중공업 사장 사실상 대선 출마 선언.」
「성영재 사장 “나라를 위해 한 몸 불사를 준비가 되어있다.” 대선 출마 선언?」
「확실한 대선 출마 선언하지 않은 성영재 사장. 속내는 지지세력 모으기?」
「동양중공업 관련주 연일 상한가. 개미들 너도나도 성영재 테마주에 탑승······.」
“오늘 자 지지율 조사 나왔습니다.”
아침 일찍 캠프 사무실로 출근한 지훈은 직원이 건네준 오늘 자 정기 지지율 조사표를 받아보고 있었다.
‘정현석 40%, 유명성 34%, 성영재 10%, 김미숙 5%, 모름, 응답 없음 11%··· 지난주보다 5% 하락했어.’
정현석의 지지율은 지난주보다 5% 하락한 모습이었는데 별다른 이슈가 없음에도 정현석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는 것은 그만큼 누군가 정현석의 지지율을 뺏어갔다는 뜻이었다.
‘성영재······ 성영재······.’
지훈은 지지율 조사표를 보다 말고 고민에 빠졌는데, 아무래도 성영재의 부상(浮上)이 신경 쓰인다기보다는 성영재의 속내가 알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사민당 김미숙마저 제쳤습니다.”
지훈이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꽤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박도균이 지훈의 곁으로 다가왔다.
“확실하게 대선 출마 선언을 하지 않은 것이 주요 포인트 같습니다. 거기다가 중국에 빼앗겼던 조선업 시장을 찾아오며 애국 마케팅을 한 것도 주요했다고 보이고요.”
박도균의 말에 지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도균을 바라보았고, 박도균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문제는 우리 후보와 지지층이 상당히 겹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성영재 쪽에서도 우리 당 출신 원로들과 접촉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문 들었습니다. 전 대통령 쪽 계파들이 그리로 모인다고요?”
“네. 대안당으로 합류했던 정치 낭인들이 성영재 쪽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박도균과 말을 주고받던 지훈은 고민이라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그간 정현석은 경제 학계 인물들을 캠프로 영입하며 경제 정책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외부 활동과 메시지에도 경제 문제를 대두시키고 있었다.
성영재는 직접 샐러리맨에서 한 기업의 사장까지 올라간 신화를 쓴 인물이었는데, 아무래도 기업체를 경영하던 사람이다 보니 경제 전문가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보수색채의 인물들을 주변으로 영입하며 정현석의 지지율을 야금야금 빼앗아가고 있었다.
“출마 선언도 하지 않은 후보치고는 이례적으로 지지율 상승 폭이 빠릅니다. 지난주 첫 조사에서 6%, 이번 주 10% 하루빨리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박 보좌관님, 일단 우리는 우리가 하던 일을 차질 없이 진행하도록 합시다.”
지훈은 심각했던 표정을 지우고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가 박도균을 향해 그렇게 입을 열었다.
“실장님······.”
“박 보좌관님, 직원들이 불안해합니다. 40%가 넘는 지지율을 가진 후보를 보좌하면서 겨우 10%의 지지율이 나온 후보를 상대로 불안해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불안이 전염되어 업무에 차질이 가지 않도록 신경 써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박도균이 그렇게 말을 하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자 지훈은 책상 위의 서류를 챙겨 사무실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 실장, 같이 가요.”
지훈이 사무실에서 나오자 동시에 맞은편 사무실에서 나온 2 실장 김진우는 지훈을 향해 알은 채를 해왔다.
“1실은 분위기 어때요?”
“직원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단속했습니다.”
“잘했어요. 캠프 내에 소문이 도나 보더라고.”
“소문이요?”
“중진들이 성영재 쪽이랑 단일화를 준비한다는 소문.”
김진우의 말에 지훈의 이맛살은 잔뜩 찌푸려져 갔다.
“몰랐다는 표정이네?”
“네. 처음 듣습니다.”
“우리 팀 직원들이 나한테 말해주더라고,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어. 후보 입에서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는데 그런 소문이 어디서 도는 건지 원··· 직원들 입단속부터 해야겠어.”
김진우의 말에 지훈은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생각에 빠졌다. 성영재의 속 시원한 행보가 없다 보니 캠프 내에서는 온갖 소문이 돌고 있었다.
캠프 내에서 이런 식의 좋지 않은 소문들이 돌아다닌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추측이 나오다 보면 불안이 전염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는 김진우가 직원들의 입단속을 시킨 것은 좋은 결정이었다.
두 사람이 얼마 걷지 않아 임건식의 사무실 앞에 섰는데 두 사람이 방문을 열기도 전에 방문이 열리며 임건식이 나왔다.
“어! 마침 두 사람이 왔구만, 방에 전화해보니 방금 나갔다고 하더라고. 두 사람 다 나랑 같이 가지.”
“네? 어디를······.”
“후보 호출이야.”
두 사람은 임건식의 뒤를 따라 한층 아래에 있는 후보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임 본부장, 오셨습니까?”
후보 사무실로 들어서자 후보 비서실장인 김규섭이 세 사람을 맞아 주었고, 김규섭의 뒤로는 오랜만에 보는 김용일이 서 있었다.
김용일은 지훈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지훈 또한 작게 고개를 숙여 김용일에게 인사를 전했다.
“후보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들어가시지요.”
김규섭의 안내를 받아 세 사람은 정현석의 사무실로 들어갔고, 한참 아침 보고 자료들을 살피던 정현석은 인기척이 들리자 안경을 벗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 사람의 손을 맞잡으며 반겨주었다.
“임 의원, 김 의원, 그리고 김지훈 실장 어서 와요.”
캠프의 일로 자주 보지 못했던 지훈을 만나는 것이 반가운 듯 정현석은 웃으며 지훈의 손을 맞잡았다.
“자, 다들 자리에 좀 앉읍시다. 요즘 돌아가는 상황이 답답해서 임 본부장 외에 두 실장의 의견도 듣고 싶어서 오늘 이렇게 불렀습니다.”
정현석의 말에 모두 자리에 앉았고, 정현석은 모두를 둘러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성영재 어떻게 봐야겠습니까?”
정현석은 지난밤 속앓이를 좀 한 것인지 재빠르게 본론부터 꺼내왔다.
“출마 선언하지 않겠습니까?”
임건식이 정현석을 보면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최근 대안당에서 탈당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창당 준비를 한다는 소문까지 들려오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겁니다. 다 소문이라는 거. 어제 제가 들은 소문을 말해볼까요? 임 의원이 말한 창당 소문부터 시작해서 진보당 쪽과 단일화 협상을 한다는 소문에 우리 당 중진들이 저와 성영재의 단일화를 준비한다는 소문까지······.”
정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모두를 바라보았다.
“물론 후보인 내가 소문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여 좋을 것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성영재가 만들어내는 바람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여러분들도 알고 있을 겁니다.”
정현석의 말에 임건식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저희 팀에 맡기시고 후보께서는 평소와 활동을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김지훈 실장?”
임건식이 자신을 부르자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후보께서 불안해하실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영재는 모든 부분에서 후보님보다 뒤떨어지는 후보입니다.”
지훈은 확신을 가진 표정으로 정현석을 바라보며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첫째, 검증이 되지 않았습니다. 후보께서는 국회의원, 당 대표, 대선 후보 등극 과정에서 상대 후보로부터 철저한 검증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털고 갈 것은 다 털고 왔습니다. 반면 성영재는 어떠한 검증도 받지 않았습니다. 샐러리맨 신화라는 이면에 어떤 것이 숨어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지훈의 말에 임건식과 김진우는 고개를 끄덕였고, 정현석은 지훈을 바라보며 지훈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둘째, 조직입니다. 정치에 익숙하지 않은 성영재 측에서는 대안당 탈당파를 끌어안으려고 하고 있는데 그것이 그들의 약점이 될 것입니다. 이제 9월입니다. 아직 대선까지는 4개월여 남은 시점에서 급하게 만들어진 조직은 안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할 겁니다.”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정현석의 존재입니다. 후보께서는 기존의 정치인과 분명 다른 길을 걸어오신 분입니다. 기존 정치에 물들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부각한다면, 성영재가 일으킨 바람이 잦아들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훈의 확신에 찬 말에 정현석은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임건식을 바라보았다.
“좋아. 이 기회에 나도 내 생각을 말하자면 성영재와 단일화는 없습니다. 나는 무조건 완주할 생각이니 캠프 전체에 그렇게 알려주세요. 임 본부장 생각은 어때요?”
“당연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성영재에 대해서는 김지훈 실장 말에 공감합니다. 검증도 되지 않은 후보 때문에 우리가 흔들려야 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우리 본부에서 공명선거팀, 법조팀을 합류시켜서 검증 TF를 만들겠습니다.”
“여러분의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됩니다. 여러분들을 믿고, 저는 제 갈 길을 가도록 하겠습니다.”
정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고민을 털어버린 표정으로 지훈을 바라보았고, 지훈은 그런 정현석을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