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858
외전 208화. 일원만화(一元萬化) (8)
후방으로 날아가면서도 이천상의 사고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보다 훨씬 빨랐다.
‘익숙하다.’
금강마권에 적중당한 무형의 갑옷.
그 마기는 분명 폭혈마공의 그것이었지만, 마기가 운용되는 원리는 폭혈의 그것이 아니었다.
폭혈마공 역시 초일류의 마공이었지만, 저 무형의 갑옷을 둘러치는 미지의 무공은 폭혈마공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인 공부였다. 직감적으로, 그리고 기공의 흐름을 살펴보며 도출한 답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분명.’
파바박!
허공에서 회전하며 몸을 바로 세운 그가 안정적으로 대지에 발을 디뎠다.
‘무명무공이다.’
만압금마장, 지옥도, 혈풍오식(血風五式), 뇌도일식(雷刀一息) 그리고 칠보군림과 같은 선상에 놓인 무공이다.
이천상의 눈이 조용히 빛났다.
‘그렇다는 건 저 여자도?’
화아아악!
자연스레 검을 비껴 든 채 걸어오는 여인의 몸에서 더 강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놀라운 마기였다. 마기의 밀도도 대단했지만, 마인 본연이 뿜는 위세가 지금껏 봐 왔던 적들과 차원이 달랐다.
딱 꼬집어 설명할 수 없는 느낌. 재능이든 타고난 천품이든, 저 여인은 남들에게 없는 무언가를 갖고 있었다. 지닌 무력만 보면 백소담은커녕 서필에도 비할 수 없지만, 생사결을 벌일 때만큼은 그들보다 더 위험할 것 같았다.
‘초절정고수는 아니다. 하지만 내공의 양과 질이 나보다 높다.’
여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이천상 맞지?”
이천상의 입이 절로 열렸다.
“확신 없이 덤볐다면 너의 지능과 성품이 무공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게 증명된다.”
“말을 이상하게 꼬아서 하네. 이천상이라는 놈이 분명 맞는 것 같은데.”
여인이 어깨에 검을 턱 하니 걸쳤다.
자유분방함이 절로 묻어나는 자세다. 하지만 뿜어져 나오는 위세는 전혀 줄지 않았다.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쏟아 내는 압박감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엄청나게 대단한 놈이라고 들었어. 외전의 계륵 같은 부대 소속으로 내전에 들어와 오만 활개를 다 친다고 들었다.”
틀리지 않은 말이군.
이천상은 자세를 풀지 않았다. 눈앞의 여인은 붕산마녀 최정보다도 더 위험한 상대였다. 이룬 경지가 아니라 사람 자체가 그래 보였다.
“십대마왕들도 감탄을 금치 못하는 천재 중의 천재라고 들었는데, 뭐가 이렇게 어설픈 거지? 약한 건 아닌데…… 고평가를 받을 만한 놈은 아닌데?”
“너는 누구지?”
“알 거 없어. 들어도 모르는 이름일걸.”
이천상은 기시감을 느꼈다.
홍산이 십이지신에 소속되어 있을 적, 무턱대고 자신을 찾아와 살수를 날렸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물론 위험도에 있어서는 천양지차였지만.
가만히 여인을 살피던 이천상이 툭 뱉었다.
“어느 마왕 휘하에 있는지도 말 안 해 주겠군.”
여인이 움찔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하긴, 당연한가? 너도 백골신마한테 받았을 테니까.”
딱히 그런 의미로 물은 것은 아니었다. 한밤중에 자신을 노리는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마왕 휘하에서 활동하는 마인일 확률이 높았으니까.
이천상이 천천히 어깨를 돌렸다.
“그래서 나를 공격한 이유는?”
“이유? 그런 답답하고 너절한 단어 같은 건 잘 모르는데?”
씨익 웃으며 대답하는 그 모습이 광포한 야수를 연상케 했다.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살진 못하겠군.”
“딱히 오래 살 생각 같은 건 없었어. 그래도 너보다는 오래 살 것 같긴 해.”
여인의 눈이 한 번 더 찬연한 빛을 발했다.
“고작 그 정도 실력이라면!”
쾅!
땅을 박찬 여인이 곧바로 검을 휘둘렀다.
한 점을 찌르는 자격(刺擊)이었다. 폭혈검기를 두르고 있음에도 찌르고 들어가는 검신은 한 점 흔들림이 없었다. 그 난폭한 힘을 완벽하게 제어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이천상의 좌수가 벼락처럼 움직였다.
쿠르릉!
투명한 내공이 구결에 따라 수많은 혈도를 거쳐 가며 강력한 장력을 뿜었다.
파아악!
뻗어 내는 검을 곧장 회수한 여인이 팽이처럼 움직이며 만압금마장을 회피했다. 회전하면서 여인의 몸 주변으로 펑펑! 소리가 들렸는데, 무형의 압력으로 여인을 옭아매던 이천상의 만압금마장을 깨부수는 소리였다.
바로 그때, 이천상이 길고 유연한 일보를 밟았다.
번쩍!
여인의 눈이 흔들렸다.
어느새 이천상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이게 무슨 보법이지?’
조금 전, 느닷없이 허공에 나타나 공격했기 때문에 충분히 경계하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도 이천상의 움직임을 읽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후방이나 측면도 아니고 정면에서 나타났다. 기습의 묘를 포기하고 움직인 것이다.
이천상의 주먹이 여인의 복부를, 여인의 팔꿈치가 이천상의 얼굴을 노렸다.
퍼벅!
미세하게 이천상의 공격이 더 빨리 적중했다. 옆으로 돌아간 이천상의 얼굴이 부서지지 않은 이유였다.
눈앞이 번쩍이는 충격이었지만, 피해의 정도는 예측 범위 안이었다.
팔꿈치에 강타당한 방향 그대로 회전한 이천상의 수도(手刀)에 살벌한 기운이 치솟았다.
폭혈마검을 구사하려던 여인은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감각을 느꼈다.
악랄하고 치명적인 침투경을 두른 진검과 맨손 수도가 부딪치려 한다. 당연히 맨손으로 진검을 부술 수는 없으며 심지어 내공의 양과 질에서도 자신이 앞선다.
부딪쳐 잘라 낼 수 있다. 머리는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야수와도 같은 직감은 절대로 저 수도와 마주치지 말라고 외치고 있었다.
콰쾅!
허공에서 검기를 터트려 밀어 내는 압력을 형성한 그녀가 재빨리 후방으로 물러났다.
이천상 역시 느닷없이 밀려오는 압력에 자세가 무너졌다.
자세가 무너졌어도 그의 수도는 기존에 펼치려 했던 투로 그대로를 따랐다.
휘이이이잉!
여인의 눈이 번쩍 뜨였다.
사선으로 내리치는 수도 앞으로 불그스름한 광풍(狂風)이 밀어닥치는 것 같았다.
‘이런!’
이것은 ‘그’ 무공이다. 폭혈마검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여인이 미친 듯이 물러나며 왼손 검지를 뻗었다.
퍼퍼퍼펑!
손가락에서 뻗어 나온 날카로운 지풍(指風)이 수도가 불러낸 광풍의 맥점 네 곳을 관통했다. 단숨에 여인의 상체를 휩쓸어야 할 바람이 맥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천상은 여인의 빠른 판단력과 파훼 능력에 놀랐다.
실제로 싸워 보니 실전 경험이 별로 없는 자가 분명했다. 한데도 반응은 백전을 치른 고수처럼 날래고 빨랐다. 특히 혈풍오식(血風五式)의 일식을 무마한 저 지법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그리고 상대에게 놀란 것과 별개로, 이천상은 여인이 쏟아 낸 네 번의 지풍이 어떤 구결을 토대로 뿜어져 나왔는지 분석했다.
퍼퍼퍼펑!
지풍으로 이천상의 공격을 없애 버린 여인이 곧장 돌격하여 폭혈마검과 그 기괴한 지풍을 난사했다.
이천상은 정신없이 물러났다.
어지간해선 북천마혜보로 회피했고, 도저히 피하지 못하겠다 싶은 순간에 칠보군림을 썼다. 본디 칠보군림은 회피만을 목적으로 쓸 만한 무공이 아니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여인이 버럭 외쳤다.
“도망치기만 할 거냐!”
저 한마디가 여인에게 실전 경험이 거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천상은 침착하게 여인의 공격을 피했고, 여인은 점점 더 과격한 공격으로 이천상을 몰아붙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놈 뭐지?’
여인의 얼굴은 한껏 굳어져 있었다.
‘점점 수월하게 피하고 있잖아?’
폭혈마검도, 이 마선지(魔仙指)도 저리 쉽게 피할 만한 무공이 아니었다.
나아가 움직임에 있어선 여전히 자신이 더 빨랐다. 종합적인 경지도 자신이 한 수, 아니 두 수는 더 위에 있음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팔꿈치로 얼굴을 강타한 것을 제외하면 어떤 공격도 적중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놈의 움직임에 여유가 생기고 있었다.
‘익숙해지고 있다고?’
여인은 믿을 수 없었다.
두 수 차이가 나는 무사끼리의 접전에서, 하수가 고수의 무공에 익숙해진다고 더 잘 피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눈에 익을 수는 있지만 힘과 속도에는 차이가 없다. 회피 자체가 능숙해질 순 있더라도, 이렇게 한 방도 안 맞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쾅!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일보를 밟은 여인이 폭혈마검의 혈해파랑(血海波浪)을 펼쳤다.
순간 이천상은 피처럼 붉은 파도가 몰아치는 환상을 보았다. 시뻘건 검기 다발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쏟아지는데, 어떤 식으로도 회피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여인 역시 이천상이 절대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 일격으로 죽이진 못하더라도 상당한 내외상을 입힐 수 있을 것이며, 자연스레 기량이 떨어진 상대를 손쉽게 조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녀는 정말이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 그녀의 믿음은 일곱 줄기의 지풍으로 인해 산산조각이 났다.
퍼퍼퍼퍼퍼퍼펑!
마치 빛살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시뻘건 검기의 파도는 일곱 개의 광선(光線)으로 인해 완전히 힘을 잃고 사라져 버렸다.
“……!!”
여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사라진 파도 뒤.
차가운 눈으로 여인을 노려보던 이천상이 검지와 중지를 뻗었다.
여인은 순간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섬뜩함에 좌측으로 몸을 날렸다.
퍼펑!
섬뜩한 폭음과 함께 그녀가 서 있던 땅에 구멍 두 개가 뚫렸다.
“마선지!”
믿을 수 없다는 듯 이천상을 보던 여인은, 다시 한번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타타타탕!
검지로 겨누어 뾰족하게 쏘아 내는 지풍이 아니었다.
엄지를 지지대 삼아 중지를 퉁겨 내는 탄지공(彈指功)이 날아온다. 네 발의 탄지공은 손가락의 탄력으로 인해 이전의 마선지보다 두 배는 더 빠른 속도를 자아냈다.
여인은 피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그 직감이 드는 순간, 그녀의 몸 앞에 반투명한 흑색 방벽이 올라왔다.
퍼퍼퍼펑!
여인의 몸이 살짝 흔들렸다.
‘마황갑(魔皇鉀)으로 막았는데도……!’
마선지를 저런 식으로 구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전에 저놈이 어떻게 마선지를 알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마선지는 ‘그들’ 사이에서도 자신만이 알고 있는 무공이 아니었나?
이천상의 양손이 벼락처럼 움직였다.
타타타타타탕!
쏘아지는 탄지공을 마황갑으로 튕겨 낸 그녀는 순식간에 탄지공의 특성을 읽어 냈다.
마선지의 구결에 중지와 엄지를 이용한 탄력으로 관통력을 올린다. 단순히 동작만 다르게 하는 게 아니라, 손가락 하나에 담기는 내공을 분배하여 탄성을 살려야 했다.
여인의 왼손 중지가 엄지를 스치고 퉁겨졌다.
퍽!
이천상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 탄지공 지풍이 뒤에 있던 나무를 그대로 관통했다.
이천상의 탄지공을 보자마자 즉석 운용 원리를 깨닫고 똑같이 구사한 것이다. 대단한 재능이었다.
여인이 씨익 웃었다.
“어디 받아 봐!”
검을 놓고 양손 중지를 튕기니, 순식간에 열 발의 탄지공이 허공을 갈랐다.
그때였다.
퍼버버버벅!
나무와 땅을 관통하는 탄지공.
여인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이천상이 허공에서 나타난 것이다.
“너무 뻔해!”
그녀가 이천상에게 마선탄지공(魔仙彈指功)을 날렸다.
펑!
여인의 눈에 경악이 떠올랐다.
이천상의 몸 전방으로 뾰족한 돌기 수십 개가 박힌 반투명한 흑색 방패가 생겨났다.
“마황갑?!”
이천상의 수도가 혈풍오식의 구결을 따라 움직였다.
콰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