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ditional Healer became a surgeon RAW novel - Chapter 426
(6)
딸랑.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오전 치료를 받고 갔던 오팔만 할아버지가 다른 할아버지 한 분과 함께 들어왔다.
“어? 할아버지 아까 치료받으셨잖아요? 혹시 어깨가 아닌 다른 데가 아프신 거예요?”
카운터에 앉아 있던 경환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오팔만 할아버지가 자신이 데려온 다른 할아버지를 가리켰다.
“여긴 내 사촌 동생 상필인데 읍내 한의원에서 한 달째 치료받고 있다는데 여전히 오른 다릴 절뚝거리는 것 같아서 내가 끌고 왔어.”
“아, 그래요. 할아버지는 우리 한의원엔 처음 오신 것 같은데요. 여기 접수증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그리고 전화번호를 적어 주세요.”
“여기 처음 온 거 아닌데.”
“처음이 아니시라고요? 그러면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오상필.”
“오상필 할아버지께서…… 아! 오 년 전에 오셨네요.”
경환은 컴퓨터로 환자의 진료 기록을 조회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오 년 전이면 자신과 김민호 원장이 근무하기 전이었다.
“육지로 가는 다리가 생긴 후부터는 읍내 병원으로 다녀서 여길 오지 않았어.”
“아! 그래요.”
“팔만이 형님에게 들으니, 대학병원에서 수술도 할 수 없는 어깨를 여기서 이틀 침 맞고 거의 나았다면서?”
“아직 나으려면 한참 남았지만, 많이 좋아지긴 하셨죠.”
“팔만이 형님의 말을 듣고 어쩌면 읍내 한의원보다 여기가 침을 더 잘 놓겠다 싶은 마음이 들어서 한번 와 봤어.”
“하하, 그러시군요. 지금은 원장님께 손님이 오셔서 요 앞 커피숍에 가셨는데 잠깐만 앉아 계세요. 바로 콜 할게요.”
“알았어.”
경환은 김민호에게 전화를 걸어 환자가 왔음을 알렸다.
대략 5분 정도가 지나자, 김민호가 들어왔다.
그가 환자들에게 인사하고 찜질을 지시하자 경환은 시킨 일을 마친 후 원장실로 들어갔다.
“원장님…… 아니, 형님.”
한의원에선 항상 원장님이라 부르지만, 이런 사적인 이야기를 할 때는 형님이라 부르기도 한다.
“왜?”
“도대체 형수님과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아까 형수님이 제게 전화해서 형님에게 여자 생겼냐고 묻던데요.”
“에휴! 그게 이야기하자면 좀 길어.”
“얼핏 들으니 이혼 이야기도 오가던데, 혹시 정말 이혼하려는 겁니까?”
“내가 생활비를 안 보내 주니까 와이프가 화가 나서 한 말인데…… 아직 확실한 건 아니야.”
“생활비를 안 보냈어요? 아! 그래서 형수님이 애들 데리고 내려온 거군요.”
“응, 뭐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해 줄게. 일단은 나도 제대로 정리가 안 됐으니까. 아주 머리가 복잡해.”
“아! 알겠습니다.”
김민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침구실로 향하자, 경환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뒤를 따랐다.
“형님 근데 정말 다른 여자는 없는 거죠?”
“내가 다른 여자 만날 돈이 어디 있겠느냐? 가뜩이나 와이프에게 돈을 못 보내 이 사달이 난 판국에.”
“하긴, 그렇긴 하네요.”
* * *
“육지에 있는 읍내 한의원에 한 달 정도 다니셨다면서요?”
김민호 원장의 물음에 오상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한 달 전쯤에 자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걷기 힘들어지더라고 그래서 읍내에서 제일 잘한다는 한의원을 다녔는데 어떻게 된 게 지금까지 차도가 없어.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 볼 참이었는데 팔만이 형님이 여기서 어깨를 고쳤다는 말을 듣고 와 본 거여.”
김민호는 오상필 환자를 바른 자세로 눕게 한 후 한 쪽 무릎을 굽히게 만든 다음 엉덩관절을 돌려 가동 범위를 살펴보고 골반과 요추의 상태도 살폈다.
“침을 주로 허리와 다리 쪽으로 맞으셨죠. 이곳과 이곳 그리고 이 라인으로요?”
김민호가 손가락으로 짚은 곳은 승부나 위중 같은 좌골신경통 환자에게 놓는 침 자리들이었다.
“응, 주로 그쪽에 맞았지. 같은 한의사라 침 맞은 부위를 바로 알아내는구먼.”
김민호는 오상필 환자가 놀란 듯 고개를 끄덕이자 표나지 않게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보통 다리 저림의 원인이 좌골신경통인 경우가 많기에 그에 맞춰 침을 놓은 것 같은데, 자신이 살펴본 바로는 오른쪽 발 근육이 이완되어 편평족이 된 것이었다.
“오상필 환자분 평상시에 술 많이 드시죠?”
“술? 뭐 많이는 아니고 평상시 반주로 소주 한 병 정도 마시지.”
“반주로 마신다는 것은 하루 한 병 정도 드신다는 거예요?”
“아침에는 안 마시고 점심과 저녁에 한 병씩 두 병 정도, 뭐 기분 좋으면 더 마시기도 하고.”
“오늘부터 술 금지하셔야 병이 나을 수 있겠는데요.”
“읍내 한의원에서도 그 말을 했는데, 어떻게 평생 마셔 온 술을 갑자기 끊을 수 있겠어.”
“지금 환자분 발 저림 증상은 편평족이라는 병인데 오랜 음주로 인해 신장과 간이 안 좋아지면서 다리의 근육이 이완된 병이에요. 지금은 오른쪽 다리에만 힘이 없어 절뚝거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두 다리 그리고 결국엔 온몸에 힘이 없어질 거예요.”
“뭐, 뭐! 내가 그렇게나 무서운 병에 걸린 거여?”
“네. 그러니 당장 술 끊으시고 침 맞으면서 탕약도 드셔야 해요.”
“무슨 겁을 이리도 많이 주는 거여. 그냥 팔만이 형님에게 한 것처럼 내게도 침이나 한 대 놔 줘.”
“편평족은 침 한 방 놓는다고 치료할 수 있는 병이 아니에요. 술부터 끊지 않으면 치료를 시작할 수 없는 병입니다.”
“어차피 이번 주말에 큰아들 차 타고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갈 거니까 오늘은 그냥 침이나 놔 줘.”
“서울의 큰 병원 가셔도 결국 술은 끊어야 합니다.”
“알았어, 술을 최대한 줄여 볼 테니까 어서 침 놔 달라니까.”
“에휴! 알겠습니다.”
김민호는 환자가 더 이상 자기 말을 듣지 않을 것을 알기에 짧은 한숨을 내쉬며 침을 들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환자이긴 하지만 그래도 허투루 침을 놓지는 않았다.
* * *
‘이 인간이 이렇게 깨끗하게 해 놓고 살 리가 없는데?’
두 딸과 함께 집에 들어선 서수지는 깔끔하게 정돈된 거실과 설거지가 돼 있는 싱크대 그리고 안방까지 확인한 후 이를 지그시 물었다.
지금껏 자신이 시골집에 왔을 때 이렇게 깨끗했던 적은 없었다.
항상 싱크대에는 설거지 거리가 쌓여 있었고 침대엔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옷과 정리되지 않은 이불이 널브러져 있었다.
‘역시 여자가 있는 것이 분명해!’
“엄마, 배고파요.”
“나도요.”
그때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된 딸들이 배고픔을 호소했다.
“그, 그래. 엄마가 계란밥 해 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
“네.”
서수지는 냉장고를 열어 계란을 꺼내려고 했다.
멈칫.
하지만 냉장고에 계란은 없었다.
냉장고에 있는 것은 플라스틱 반찬통에 담긴 김치와 멸치뿐이었다.
‘만약 여자가 있다면 냉장고가 이렇게 비었을 리가 없는데…… 여자를 집 안까지는 아직 안 들인 건가?’
밥통을 열어 보니 다행히 밥은 있었다.
서수지는 밖으로 나가 계란을 사 와 딸들에게 계란밥을 해 준 후 방과 거실을 자세히 살펴봤다.
집이 깨끗하긴 하지만 살림의 흔적이 없는 것으로 봐선 아직은 여자를 집안으로 들이진 않은 것 같았다.
‘하긴 경환 도련님도 몰랐으니, 섬 밖에서 만나는 걸 수도 있겠군!’
만약 섬 안에서 만났다면 소문이 났을 거고 그 소문이 경환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을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바람피운 증거를 찾으려고 했는데, 집 안은 아무리 뒤져 봐도 증거가 될 만한 게 없네.’
서수지는 결국 집 안에서 증거 찾는 것은 포기하고 서울에서 가져온 짐들을 정리했다.
“어! 아빠다! 아빠…….”
한창 그러고 있는데 김민호가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걸 본 두 딸이 환호하며 아빠에게 달려갔다.
“아이고, 우리 공주님들! 뭐 하고 있었어?”
“영어책 읽고 있었어요.”
“영어책? 아! 엄마가 영어책 읽고 있으라고 시켰어?”
“아니요. 원래 이 시간에는 영어책 읽어요.”
“그래, 그러면 아빠가 영어책 읽어 줄까?”
“네, 좋아요.”
“어디 보자 이거 읽어 줄까?”
“네.”
“그러면 읽을게. Fossils tell of long ago. for Jason…….”
김민호가 영어책을 읽기 시작하자 딸들의 눈이 반짝였고 서수지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Once upon a time a huge fish was…….”
‘저 인간의 영어 발음이 저렇게나 좋았던가? 애들 가르치는 원어민 선생님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서수지는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딸들의 표정을 살폈다.
평상시 자신이 영어책을 읽어 주면 발음이 원어민 선생님과 너무 다르다며 툴툴대던 딸들인데 지금은 귀를 쫑긋 세워 듣고 있었다.
‘저 인간이 지난달에 딸들에게 영어책을 읽어 주다 발음 지적당하더니, 그것 때문에 따로 공부라도 한 건가?’
서수지는 자신이 들어도 남편의 발음이 너무 좋아 보이자 제법 어려운 영어책을 꺼내 들었다.
“여보, 그 책 다 읽어 주고 나서 이 책도 읽어 줘. 요즘 애들이 이거 읽어 주는 걸 제일 좋아해. 책갈피 끼워 놓은 곳부터 읽어 주면 될 거야.”
“아, 그래. 알았어.”
“Great start 이 부분부터 읽어 주면 되지?”
“응.”
“Great start! said Terry. Action…….”
잠시 후 남편이 조금 전보다 더 유창하게 영어책을 읽어 주기 시작하자 서수지는 또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기 영어 발음 엄청나게 좋아진 것 같은데 애들 때문에 따로 공부라도 한 거야?”
피식.
순간 김민호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이민호로 살 때 스미스 교수와 유창하게 영어로 대화했던 자신이었다. 이미 영어나 중국어는 원어민 못지않게 할 수 있었다.
아빠가 웃자 옆에 있던 딸들도 엄마의 말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아빠가 영어책 읽어 줬을 때는 발음이 너무 구려서 알아듣기 힘들었는데, 오늘은 제임스 티쳐보다 더 좋은 것 같아요.”
“구, 구리다고? 요 녀석들, 아빠가 예쁜 말만 쓰라고 했잖아. 더군다나 아빠에게 구리다니, 그런 말은 쓰는 게 아니야.”
“구린 걸 구리다고 한 건데요. 그러면 뭐라고 해요?”
“또 구리다고 한다.”
“아빠도 구리다고 하잖아요?”
“아빠는 너희에게 가르치기 위해 쓴 말이고.”
“그러면 뭐라고 해요?”
“구리다 대신 서툴거나 미숙하다, 라고 해야지.”
“그러면 저번에 아빠 발음이 서툴거나 미숙했다고 해야 하나요?”
“응? 그것도 듣기 별로 좋지는 않네. 아무튼 아빠에게 구리다는 표현은 안 쓰는 게 좋아.”
“알았어요. 앞으로는 서툴거나 미숙하다고 할게요.”
“그, 그런 말도 될 수 있으면 안 쓰는 게 좋아. 기왕이면 예쁘고 아름다운 말을 쓰라고.”
“의사 표현하는데 어떻게 예쁘고 아름다운 말만 쓸 수가 있어요?”
김민호는 또박또박 말대꾸하는 딸들을 보며 약간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틀린 말이 아니다 보니 더 이상 뭐라고 하기도 애매했다.
“그래서 아빠가 기왕이면 이라고 했잖아. 기왕이면!”
“아, 알았어요.”
“여보, 왜 애들에게 화를 내고 그래요?”
“화를 내는 게 아니라 가르치는 거야.”
“기왕 가르칠 거면 인상 쓰지 말고 좋게 타일러야죠.”
“끄으음, 아, 알았어. 앞으론 좋게 타이를게. 그나저나 당신은 언제 서울 올라갈 거야? 보아하니 짐 정리도 다 된 것 같은데?”
“내가 야간 운전은 잘 못 하는 거 알잖아.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아침에 올라갈 거야.”
“그래. 알았어.”
“아참, 아까 냉장고를 봤는데 찬거리가 없데. 나가서 장 봐 올 테니까 애들 보고 있어.”
“알았어.”
서수지는 지갑을 들고 나가며 남편이 딸들에게 영어책을 이어서 읽어 주는 소릴 들었다.
“Eventually I found him down……,”
‘영어 발음이 저 정도이면 굳이 원어민 영어 유치원에 안 보내도 될 것 같은데…… 어머!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영어가 교육의 끝이 아니잖아. 애들은 무조건 서울에서 키워야 해!’
순간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외과 의사가 된 화타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