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ditional Healer became a surgeon RAW novel - Chapter 425
(5)
생각해 보니 형수가 조카들을 데리고 내려올 거라면 김민호 원장이 사전에 자신에게 언질을 줬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언질을 받은 기억이 없었다.
경환은 소리 나지 않게 잰걸음으로 원장실 가까이 다가가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자 안에서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왜 계속 전화를 받지 않은 거야?
—환자 진료 중이라 방해받고 싶지 않아 받지 않았어.
—뭐!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아! 이런저런 말 길게 하고 싶지 않으니, 용건만 간단히 말할게. 당신이 생활비를 주지 않아 나도 더 이상 수영이와 수진이를 키울 수 없으니, 앞으로 잘난 당신이 애들 키워.
—알았어. 그러면 내가 키울게.
—어떻게든 돈을 잘 벌어 보겠다는 소리는 안 하고 아주 기다렸다는 듯이 키운다는 소릴 하네. 애들 키우는 게 어디 쉬운 줄 알아? 좋아, 주차장 차에 애들 자고 있으니까, 지금부터 당신이 깨워서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씻기고 어린이집 보내는 것까지 다 해.
—알았어. 아 참, 애들 짐 다 가져왔지?
—애들 속옷부터 시작해 유치원 영어책과 장난감까지 전부 자동차 짐칸에 있어.
—그러면 오늘부터 내가 애들 키울 테니 당신은 이만 가봐. 아 참, 이혼 서류는 준비해 왔어?
—아침에 당신하고 통화하고 나서 곧바로 애들 데리고 내려왔는데 서류 뗄 시간이 어디 있어? 서류는 내가 차차 알아서 뗄 테니까 오늘부터 애들이나 잘 키워.
—이혼 서류에 도장은 언제든지 찍어 줄 테니까 서울 올라가기 전에 가져와.
—내일 당장 이혼 서류 떼 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
—후우! 그러면 이제 사랑스러운 딸들 보러 가야겠다.
원장실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경환은 김민호가 밖으로 나올 것 같자 서둘러 뒤로 물러나 딴청을 부렸다.
‘형수님 목소리엔 날이 잔뜩 서 있는데 형님은 이혼한단 소릴 남의 일 이야기 하듯 아주 느긋하게 하네?’
딸칵.
잠시 후 김민호 원장이 문을 열고 나오자 뒤를 이어 서수지도 콧김을 씩씩거리며 나왔다.
“어떻게 매정하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정말 이혼하고 싶어? 나 안 잡아?”
“마음 떠난 사람을 왜 잡아?”
“하아! 어처구니가 없네. 당신 정말 나 없이 애들 키울 수 있겠어?”
“어떻게든 키울 테니 걱정하지 마.”
“미, 미친! 아주 제정신이 아니구나! 환자 치료하면서 어떻게 애들 키우려고?”
“보시다시피 한의원에 환자가 거의 없어서 애들 키우는 데 충분히 시간을 쓸 수가 있어.”
“환자 없는 게 자랑이다. 아주 큰 자랑이야!”
“자랑은 아니지만 어쨌든 딸들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지.”
콰앙.
김민호가 나가자 뒤따라 나간 서수지가 한의원 문을 부서질 듯 닫고 사라졌다.
경환은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가다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 * *
두근 두근 두근…….
‘하아! 아직 빙의가 완전하지 않아서 그런가? 이놈의 심장이 갑자기 주체가 되질 않네!’
김민호는 차에 잠들어 있는 딸들을 본 후부터 감정이 요동치는 것을 느끼며 속으로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 이민호의 몸에 빙의됐을 때도 한동안은 몸의 주인이 가지고 있던 타인에 대한 감정들에 영향을 받았었다.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는 부인을 봤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딸들은 마치 내 친딸을 본 듯하구나!’
빙의된 영혼이 몸에 적응하는 기간이 끝나면 이런 감정들에 흔들리지 않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당신, 나랑 이야기 좀 더해!”
그때 뒤따라온 부인 서수지가 뾰족한 목소릴 내자 김민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지금껏 그녀가 큰소리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이 사랑하는 딸들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그게 어느 순간부터 하나의 무기가 돼 있었다.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해!”
“뭐, 뭐라고?”
“애들 자는 거 안 보여? 지금, 이 순간은 저 천사 같은 얼굴이 눈물로 얼룩지는 걸 보고 싶지 않으니까 잠시라도 그 입 좀 닥쳐 줬으면 좋겠어.”
김민호의 목소리에 진심 어린 노기가 담겨 있자 지금껏 화내던 서수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 당신 지금 나한테 화내는 거야? 지금 누가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하는데…… 허어!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내가 무엇 때문에…….”
흠칫!
서수지는 말을 하다가 남편의 표정에서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어떤 섬뜩함을 느끼고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뭐, 뭐야? 뭐, 뭘 잘했다고 그, 그런 무서운 표정을 짓는 거야?”
“당신은 저 천사들의 얼굴을 매일 보니 지금, 이 순간이 대수롭지 않겠지만 나에게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야. 그러니 제발 좀 닥쳐.”
서수지는 자신의 심경이 고양이 앞의 쥐처럼 갑자기 위축되자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남자가 이렇게나 거칠었던가?
“아, 알았어. 지금은 당신의 감정이 매우 격해져 있는 것 같으니까 조금 흥분을 가라앉힌 후 이야기를 하자.”
“애들 깨면 부를 테니까 차 키 주고 저쪽 맞은편 커피숍에 가 있어.”
“아, 알았어.”
부인이 상당히 혼란스러운 얼굴로 사라지자, 김민호는 세상 편안한 얼굴로 자는 딸들의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후우! 내가 저 여자와 이혼하면 이 애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공포를 느낄 텐데…… 어떻게 할지 혼란스럽네.’
나이가 어린 아이일수록 부모가 이혼했을 때 받는 정신적 충격이 크기 마련이다. 여섯 살 아이라면 아마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을 것이다.
부인에겐 당장이라도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어 줄 것처럼 말했지만 딸들을 보니 그러긴 힘들 것 같았다.
김민호는 손에 들린 차 키를 주머니에 넣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유유히 흘러가는 하얀 구름.
‘저 구름은 순리대로 흘러가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순리인가?’
아무리 고민해 봐도 순리의 첫 단추는 완강한 부인의 마음을 꺾는 거였다.
* * *
하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서지수의 입에서 연신 한숨이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돈 못 버는 남편은 자신 앞에서 기침 소리도 크게 못 내는 소심한 남자였다. 그런데 그랬던 남편이 오늘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전화로는 큰소리쳤어도 막상 내가 딸들 데리고 내려온 걸 보면 잘못했다고 빌 줄 알았는데…… 정말 이혼할 생각인가?”
애들 교육이 중요해서 서울살이를 선택했지만, 이혼까지 하고 애들을 서울에서 키우는 것이 과연 현명한 선택일까?
만약 이혼한다면, 자신이 혼자 돈 벌면서 애들을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혼은 답이 아니었다.
“애들을 맡겨 놓고 서울로 올라간다고 하면 당황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고.”
자신이 서울살이를 선택한 몇 년 동안 남편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변해 있는 것일까?
“그나저나 무슨 자신감으로 이혼하자는 소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거지? 혹시 여자라도 생겼나?”
자신에겐 돈 못 버는 무능한 남편이지만 시골 여자들의 눈에 한의사는 매력적인 직업일 수 있었다.
다리 건너 읍내에 한의원만 차려도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네! 여자가 생겼네. 그래 여자가 생겼으니, 나에게 그런 태도를 보이는 거야!”
의구심이 점점 확신으로 바뀌자, 속에서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서지수는 핸드폰을 꺼내 경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형수님.
“도련님, 내가 노파심이길 빌며 물어보는데 솔직하게 대답해 주세요. 혹시 그이에게 여자 생겼어요?”
—네? 아니요. 형님에게 무슨 여자가 생겨요?
“지금 우리 이혼할 위기에요. 그러니 솔직하게 말해 줘요. 어떤 년이 들러붙은 거예요?”
—형수님, 뭔가 크게 오해하신 것 같은데요. 형님에게 여자는 오직 형수님뿐입니다.
“여자가 오직 나뿐이라는 사람이 이혼을 아무렇지 않게 하자고 하겠어요? 도대체 어떤 년이 그이에게 꼬리를 친 거예요?”
—형수님, 정말 형님에게 다른 여자는 없습니다. 제가 하루 종일 붙어 있는데 형님에게 여자가 생겼다면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하아! 도련님 그렇게 안 봤는데…… 도련님도 같은 남자라고 남자 편을 드는군요. 알았어요.”
—형수님, 정말 형님에게 여자는 없습니다. 저도 지금 사태의 심각성을 아는데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거짓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는 두고 봐야 알겠죠. 그러면 이만 끊을게요.”
—형수님,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여자가 생겼다면 가장 먼저 형수님에게 전화했을…….
틱.
서지수는 더 듣지 않고 종료 버튼을 누른 후 미지근하게 식어 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도련님의 태도로 봐선 여자가 생긴 것 같지는 않은데…… 아니야, 도련님의 우유부단한 성격이라면 얼마든지 그 인간을 위해 거짓말을 할 수 있어.”
그리고 어쩌면 경환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남편이 그의 눈을 피해 다른 여자를 만날 수도 있었다.
으득.
절로 이가 악물어졌다.
‘여자가 생겼다면…… 누구 좋으라고? 내가 순순히 물러나면 바보지!’
자신이 딸들을 키우고 있으니, 시골에서 혼자 있는 남편이 바람 피울 여유도 생긴 거란 생각이 들었다.
‘혼자 딸들을 키우다 보면 바람은커녕 내 생각이 간절해질걸, 그리고 설사 다른 여자가 남편에게 붙었다고 해도 애 둘이 있다면 고개를 흔들고 떠날 거야.’
여자의 입장에서 단순히 유부남과 바람을 피우는 것과 유부남에게 딸린 애 둘을 키워 주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딸들을 남편에게 두고 떠나 있으면 결국 불륜 관계에 있는 여자도 못 버티고 떠날 거고 남편도 자신에게 싹싹 빌 거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그때는 아무리 빌어도 용서해 주지 않을 거야.’
그렇게 되면 이혼의 귀책 사유가 있는 남편에게 양육비 받으며 서울에서 딸들을 키울 수 있으리라.
딸랑.
한참 망상에 젖어 있는데 남편이 커피숍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래 기다렸지?”
“애들은?”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공기 통하게 창문만 살짝 열어 놓고 왔어.”
“당신 혹시 나 없는 동안 다른 여자 생긴 거야?”
“여자라니? 무슨 소리야?”
“내가 없어도 애들 키워 줄 다른 여자가 있으니까 이렇게 당당하게 이혼하자고 한 거 아니야?”
“날 기다리는 동안 혼자 소설 쓰고 있었구먼!”
“아무리 생각해도 여자가 생기지 않고서는 나에게 이럴 수 없어!”
“여자 안 생겼다니까? 경환이 월급 주고 당신에게 생활비 보내고 나면 통장이 마이너스인데 어떻게 여자를 만나겠어?”
“돈 없어도 여자는 꼬실 수 있지! 이번 달 생활비 안 보낸 게 돈을 못 벌어서가 아니라 다른 여자에게 다 쓰고 없어서 아니야?”
“아주 소설을 야무지게 쓰고 있었네! 여자 만날 돈이 있었으면 마이너스 통장부터 메꿨겠다.”
“그렇게 아닌 척 시치미 떼도 소용없어. 어떤 년인지 모르겠지만 나 없이 그년하고 애들 잘 키워 봐!”
“여자 없다니까.”
“여자가 있든 없든 난 애들 깨면 집에다 짐 내려놓고 서울 올라갈 거야.”
“잘 가. 잡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가기 전에 이혼 서류에 도장 받아서 가고.”
“이혼 서류는 때 되면 내가 알아서 도장 찍어 달라고 가져올 테니까 보채지 마!”
“아까는 내일이라도 당장 이혼 서류를 가져올 것처럼 말하더니 이제는 그렇지 않을 것처럼 말하네.”
“이혼이 서류에 도장만 찍으면 끝나는 일이야? 재산분할은? 위자료 청구는? 최소한 이혼 전문 변호사 만나서 자문은 받아야지.”
“내 재산이 마이너스인데 분할할 재산이 어디 있어? 당연히 위자료 줄 돈도 없지.”
“그건 당신 생각이고, 이혼 전문 변호사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걸. 미래의 당신 수입에 대해 얼마든지 압류도 걸 수 있을 거야.”
“에휴! 머리 아프니까 압류를 하든 소송을 걸든 당신 마음대로 해.”
김민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서수지는 표독스런 눈으로 노려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중에 애들이 엄마 찾으면 이혼할 거란 소리는 당장 하지 말고 일단은 적당히 둘러대 줬으면 좋겠어.”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그럼 갈게.”
서수지가 냉기를 풀풀 풍기며 나가자 김민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가정사가 복잡한 몸에 빙의가 된 거지?’
외과 의사가 된 화타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