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Genius Demon Hunter RAW novel - Chapter 25
25화
결전(1)
“좋아. 자잘한 문제는 얼추 원만하게 합의를 마쳤으니 이제 놈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지.”
“준비?”
“그래, 준비.”
레이나의 반문에 가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놈은 4레벨인데다 마수들까지 대동하고 있어. 그에 반해 너흰 3레벨밖에 되질 않아.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역량의 열세를 메우기 위해선 당연히 준비를 해야지.”
“준비라.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여유롭게 그딴 걸 할 시간이 있을까.”
“없으면 내가 말을 꺼냈겠어?”
가온은 가시 돋친 아베르의 말을 태연하게 받았다.
“허겁지겁 도망만 치던 너희야 모르겠지만, 놈은 마수를 펼쳐 포위망을 만든 다음에 자리를 비웠어.”
“소모한 마수의 머릿수를 다시 채워오겠단 건가.”
“아마 그렇겠지.”
가온의 긍정에 레이나와 아베르의 얼굴이 더욱 침통해졌다.
“우리가 뭘 하면 되지?”
하지만 적어도 레이나는 감정의 수습이 빨랐다.
“당연히 아티팩트를 찾아야지. 그것만 찾아도 우리의 전력이 더 강해질 거란 뜻이니까. 어떤 아티팩트인지는 알고 있겠지?”
“알아낸 바에 의하면 화염마법의 위력과 효율이 증가하고, 소지한 것만으로도 마나 회복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리고?”
“4레벨 마법 주문이 한 가지 각인되어 있다.”
“4레벨? 무조건 아티팩트부터 찾아야겠네.”
가온이 눈에 이채를 띠며 중얼거렸다.
아베르가 입꼬리를 비쭉 들어 올렸다.
“아티팩트가 그렇게 쉽게 찾아지는 물건인 줄 아나.”
“당연히 아니겠지.”
“그런데 왜 잡화상 매대에 진열된 물건 하나 집듯 집어오라고 말하는 거처럼 느껴지지? 뭐가 그렇게 당연해?”
“당연한 걸 당연하다고 말하는 게 뭐.”
“……뭐?”
“자꾸 잊는 것 같아 말하는데 이거 내 일 아니야. 너희 일이라고. 너희 목숨이 달린 일이라고.”
“너라고 무사할 거 같아?”
“당연히.”
아베르가 코웃음 쳤다.
가온도 뒤따라 코웃음 쳤다.
“안내자 없이는 오염지댈 움직일 생각도 못 하는 너희와 난 달라.”
안 되겠다 싶으면 도망가겠단 소리였다.
“그게 어디 그리 쉽나.”
“너무 쉽지. 내가 오염지대를 얼마나 헤집고 다녔을 거 같아? 여기 빠져나가는 거? 나한텐 찬물 꿀떡 마시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야.”
“……퍽이나.”
아베르는 반사적으로 말대꾸를 했다. 그러나 그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곳으로 오기까지 가온은 그 누구보다 훌륭한 안내자였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살고 싶으면 아티팩트부터 찾아내. 알겠어?”
“그러지.”
물러나 있던 레이나가 나서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아티팩트만 찾아서 내뺄 생각은 아니겠지?”
“뭐?”
아베르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가온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렇게 피 냄새 풍기는 혹을 달고 얼마나 도망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그럴 생각이라면 얼마든지 그러라고. 나야 뱅뱅 헤매는 너흴 졸졸 쫓아다니다가 다 죽은 뒤에 아티팩트만 회수하면 그뿐이니까.”
몸만 빼내기도 다급했던 탓에 식량과 의료품, 생존장비가 든 배낭은 버려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단단히 채비해도 흑마법사의 추적을 피해 오염지대를 벗어나는 게 힘들 판에 사경을 헤매는 쟈올까지 챙겨야 한다.
게다가 말마따나 자신들이 도망쳐도 가온은 얼마든지 뒤쫓아올 수 있는 역량이 있었다.
아베르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가온과의 대화에서 자꾸만 주도권을 잃고 있음에 짜증이 인 탓이다.
가온을 향한 짜증이 아니라, 스스로를 향한 짜증이었다.
대화를 나누면 나룰수록 똑똑하고 현명하다고 자평한 두뇌가 퇴색되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게 아베르가 머뭇거리는 사이 레이나가 대화를 진행시켜 나갔다.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뭐 그렇다고 치자고.”
레이나는 하던 말을 잠시 멈췄다 다시 이어갔다.
“많은 정보를 수집했고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찾아내는 건 별개의 문제다. 찾는 데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 그건 내가 번다. 그러니 너희는 일단 아티팩트부터 찾아.”
“시간을 벌겠다고?”
“그래.”
레이나가 가만히 가온을 바라보았다.
가온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막아보다 영 힘에 부치면, 그대로 도망갈 거니까 그리 알아.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오는 게 좋을 거야.”
“노력해 보지.”
***
“흐흐흐.”
4레벨 흑마법사, 샤키아는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
“운이 좋군, 운이 좋아.”
지급받은 오베이 오브를 활용해보기 위해 이곳으로 오자마자 이런 수확을 거두게 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오베이 오브 Obey orb.
마기가 압축된 마석을 가공하고 술식을 새겨 넣어 만든 전략무기로, 마수를 다룰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이 있었다.
무릇 마수란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맹수와도 같은 존재.
지배종이 발휘하는 강력한 지휘가 아니라면 결코 통제할 수 없었다.
설령 그것이 같은 마기를 활용하는 마왕군일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 개발된 오베이 오브를 사용한다면, 지배종만이 발휘할 수 있었던 지배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어떤 특별한 코스트도 없이!
물론, 단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음. 지워진 각인이 벌써 열 칸인가. 남은 각인이……스물이군.”
오베이 오브를 살피던 샤키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벌써 삼 할이나 성능이 저하된 것이었으니 말이다.
오베이 오브는 서른 번의 각인을 모두 사용하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소모성 아티팩트였다.
게다가 개발 초기의 물건이라서 그런지 한 번에 모든 출력을 기대할 수 없었다.
각인해 움직일 수 있는 마수의 수는 스물.
그 이상의 수를 각인하는 순간, 오브는 출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망가지게 되는 것이다.
오베이 오브를 사용해 본 샤키아 또한 그 부분이 영 마음에 걸렸다.
“한꺼번에 모든 각인을 활용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마법사 놈들을 상대했던 때에도 10마리라는 큰 피해는 없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의 발로였다.
“뭐, 그래도 나쁘지 않아. 놈들을 잡아가서 인정받을 수 있는 성과면 새로운 오베이 오브를 지급받을 수 있을 테니까.”
샤키아는 페인풀 스피어로 꿰뚫어버린 고블린 마법사를 떠올리며 클클, 웃음을 터트렸다.
만약 오베이 오브 없이 놈들과 맞닥뜨리게 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분명한 건 이렇듯 일이 쉽게 풀리지 않았을 거란 거다.
“밀리고 밀려서 어쩔 수 없이 오게 된 변방에서 이런 성과라니. 그러고 보면 사람 인생 정말 모르는 거야. 크큭.”
이는 기존엔 존재하지 않던 오베이 오브의 보급이 일시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많은 흑마법사들이 오베이 오브에 마수를 각인시키고자 마수들의 서식지로 몰려들었다.
각인 횟수가 한정적이다 보니 희소성 있는 마수, 보다 강한 마수에 대한 쟁탈전이 심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건 당연한 결과였다.
결국 샤키아는 자리싸움에 밀리고 밀려 최전방에 가까운 곳으로 오게 된 거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다소 불만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지만, 결국 그 일이 전화위복이 되어 돌아오게 됐으니 기쁨 또한 배로 느낄 수밖에.
“흥흥.”
샤키아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마수를 끌어모았다.
도시에서 나온 사람들에겐 흉포함을 가감 없이 드러내던 마수들이었지만, 흑마법사에겐 아니었다.
위대한 마왕님 아래 같은 마기를 다루는 족속들이라 그런지, 아무런 경계 없이 곁을 내주곤 했다.
때문에 샤키아는 어떤 번거로운 과정도 없이 마수들을 휘하로 들일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놈들은 무조건 다 각인한다.’
원래라면 한정된 횟수를 소모하는 일이니만큼 꼼꼼히 질을 따져가며 기회를 사용했을 터이나, 지금은 질보단 속도가 중요한 상황이었다.
고작 10마리로 성긴 포위망을 형성해둔 게 전부였으니까.
‘치명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는 동료를 떼어놓고 도망갈 순 없을 테니까.’
물론 그렇다고 마냥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질이 아닌 빠르게 수를 채우는 방법을 택했을 뿐이다.
“그래도 나쁘지 않아.”
모든 횟수를 사용해 각인을 마친 샤키아의 표정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럼 사냥을 떠나볼까아.”
모든 준비를 마친 샤키아.
마수들을 이끌고 저택 안으로 돌입했다.
일부를 빼 퇴로를 막는 게 일반적이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스물. 각인된 마수 모두를 투입했다.
크게 다친 고블린 마법사 때문에라도 도망갈 생각은 못 할 테니까.
콰당.
저택 문은 마수의 둔중한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오랜 먼지가 사방으로 날렸지만, 시야를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뻥 트인 1층의 너른 홀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샤키아는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탁 트인 공간은 상대적으로 열세일 수밖에 없으니 비교적으로 협소한 공간을 이용해 싸울 속셈인 게 훤히 보였으므로.
그러니 놈들은 보나 마나 2층에 자리 잡고 있으리라.
샤키아는 기꺼이 알고도 속아줄 요량으로 마수들을 앞세워 2층 계단을 밟았다.
계단의 너비는 사람이 선다면 족히 대여섯은 나란히 설만큼 널널했지만, 마수들은 고작 둘 혹은 셋이 다였다.
당연히 길게 늘어선 형국이 될 수밖에 없었다.
후미에 선 샤키아가 계단의 중간쯤에 섰을 무렵, 선두그룹은 2층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그건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았다.
***
퍽!
“캬악!”
사족보행을 하는 탓에 상대적으로 시야각이 낮았던 불꼬리여우가 미간에 화살을 허용했다.
화살에 실린 힘에 절로 고개가 뒤로 젖혀진 불꼬리여우가 짧은 단말마를 남긴 채 풀썩 쓰러졌고,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선두에 섰던 불꼬리여우의 죽음을 본 마수들이 사납게 울부짖으며 살기를 내뿜었다.
“뭐, 뭐야.”
샤키아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말았다.
한 번의 공격으로 목숨을 앗아간 활 솜씨에 놀란 것도 있지만, 그것보단 마수들이 단체로 통제를 벗어나려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에 당황한 것이 더 컸다.
샤키아는 얼른 오베이 오브를 들어 마기를 주입했다.
선두에 섰던 마수들이 2층 복도를 향해 달렸다.
피융- 피융-
화살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린 뒤엔,
“캬악!”
“에오!”
어김없이 마수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빗맞는 화살 하나 없이 명중했지만, 처음 화살처럼 단번에 마수의 목숨을 앗아가는 공격은 없었다.
아직 가온의 활 실력이 그 정도에 이르지는 못했으므로.
첫 공격은 시야의 높이 차이, 격렬하지 않았던 움직임, 시위를 한계까지 미리 당겨두고 기다렸던 점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해 만들어진 결과물이었을 뿐.
“끼약!”
그렇다고 해도 그 실력이 영 맹탕인 건 아니었다.
화살에 눈을 관통당한 마수 하나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 덕분에 뒤따르던 마수들의 전열이 일부 엉켰다.
거기까지 확인한 가온은 활에서 손을 놓고 검을 들었다.
가온은 마수들이 지근거리에 다다르는 순간에도 자리를 이탈하지 않았다.
‘지금!’
타이밍을 잰 가온이 검을 머리 위로 쳐들고 망설임 없이 내려쳤다.
얼핏 그 공격은 유효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마수들도 뻔히 눈이 있는데 면전에서 그리도 정직하게 내려치는 공격을 맞을 리 만무하니 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가온의 공격은 앞선 마수의 머리통을 갈라놓았다.
“크륵?”
가온은 마수의 가죽을 꼬아 만든 얇은 줄을 복도에 설치해두었고, 가온만 보고 달리던 마수는 이를 보지 못하고 걸려 넘어지고 만 것이었다.
줄 색이 검었기에 어둠에 가려진 것도 컸다.
퍽! 퍽!
가온은 머뭇거리지 않고 다시 검을 들어 내리쳤다.
나뒹군 상태에서도 앞발을 휘두르는 마수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힘이 제대로 실린 공격은 아니었기에 위협적이지 않았다.
덕분에 그는 별 힘을 들이지 않고 세 마리의 골통을 부숴놓을 수 있었다.
첫 녀석은 거뜬히 감당했지만, 두 번째 녀석에선 크게 출렁거렸고, 세 번째에 이르러서는 결국 그 하중을 감당하지 못한 함정이 수명을 다하고 끊어졌다.
이를 본 가온은 망설이지 않고 몸을 돌렸다.
다크 판타지의 천재 마수사냥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