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Genius Demon Hunter RAW novel - Chapter 281
281화
환수
“…….”
“…….”
침묵이 찾아왔다.
말에 담긴 의미가 너무 무거워 사람들을 짓누르는 것이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요?”
토머슨이 물었다.
시작은 가온과 레이나 두 사람의 대화였지만, 이제는 모두가 그 대화를 경청하고 있었는데.
가온의 상황분석이 원정대원들에게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멸족했다고 여겨지던 엘프들이 대수림에 있다는 걸 알아냈을 때도 그렇고.
대수림에 들어오고 나서 세계수와 엘프가 마왕군으로부터 위협받고 있다는 걸 알아냈을 때 역시 그랬다.
그만큼 작은 단서를 조합해 깜깜한 이곳 상황을 알아내는 가온의 추론은 매우 날카로웠다.
그런 덕분에 베이스캠프에 머물고 있던 원정대원들은 가온이 현 시국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가온의 입에서 이런 무거운 이야기가 나올 줄은 차마 몰랐지만.
“불가능할 건 뭐지?”
“세계수가 마왕군에게 동조할 리가 없지 않나.”
“마왕군이 이 세상을 망쳐버렸으니까?”
“그렇소.”
“생명을 담보로 협박한다면?”
“그런다고 세계수가 쉽게 굴복할 거라곤 생각이 들지 않는구려.”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데 나는.”
가온은 토머슨의 말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세계수가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도 모르면서 섣불리 예단하는 건 금물 아닌가?”
“하날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하지 않소. 대침공이 일어나기 전, 엘프들을 불러들여 생존을 도모한 걸 보면 세계수의 성격이 이타적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소?”
“글쎄. 마왕군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엘프들을 불러들였을 수도 있지. 자신을 신성시하는 걸 이용해서 말이야.”
이타적일 거라는 토머슨과 보신주의자일 수도 있다는 가온.
세계수에 대한 두 사람의 의견은 완전히 상반된 것이었지만, 두 의견 모두 일리가 있었다.
근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주장은 팽팽했다.
이래선 결론이 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팽팽함은 금방 한곳으로 기울었다.
가온에겐 다른 의견도 있었기 때문이다.
“뭐, 사실 세계수의 성격이 어떤지는 크게 상관없어.”
“왜지?”
“마왕군에게 그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니까.”
토머슨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마왕군에게 세계수의 협력의 유무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아. 왜냐하면-”
“왜냐하면?”
“남의 힘을 강탈해서 그들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수단이 이미 준비되어 있으니까.”
“그게 정말……아, 설마?!”
토머슨의 눈이 커다래졌다.
가온의 말에 무언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가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파가 다르다곤 하지만, 노블 소속이니 충분히 예상가는 바가 있겠지.”
토머슨이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마지막 황제의……혈능을…….”
* * *
황도 아빌리어스를 빠져나올 당시, 로열은 그곳에서 추출된 마지막 황제의 혈능을 가지고 왔다.
당시는 매우 급박한 상황이었기에 마지막 황제의 혈능에 대해서는 다들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도시에 와서도 그 부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차피 혈능이라는 것도 오직 로열만 다룰 수 있는 힘이었던 데다가, 마지막 황제의 혈능은 오염된 상태였기 때문에 바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로열은 이 오염된 혈능을 활용할 방도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궁리를 할 수밖에 없는 입장.
이따금 로열과 교류를 해왔던 가온은 오염된 혈능에 관한 정보들도 제법 알고 있는 편이었다.
그런 덕분에 가온이 주목할 수 있었던 정보가 있었다.
“로열이 말하길 아빌리어스에서 가져온 혈능은 마지막 황제가 억류되었던 기간에 비해 그리 많은 양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하더군.”
물론 이제 막 혈능을 개화한 로열과 비교했을 땐 그 양이 적다고 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로열보다 훨씬 더 높은 경지에 있었던 마지막 황제가 억류된 내내 만들어낸 것이라고 보기엔 부족함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때 마왕군에게 혈능이 남아있다는 걸 알아차렸지. 하지만 혈능으로 무얼 하려는 것인지 알 방법은 없었어.”
빠져버린 마지막 퍼즐 조각.
토머슨은 가온의 그 조각이 이곳에서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메워졌음을 깨달았다.
“자, 잠깐! 혈능이 무슨 힘을 가졌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놈들이 혈능을 가지고 세계수를 타락시키려고 한다는 거잖아?”
그 순간,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원정대원들이 소리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로열의 각성은 도시에서도 꽤 이슈가 되었던 바, 혈능에 대해서도 제법 알려져 있었다.
“아마도? 내 생각일 뿐이지만.”
가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이렇게 말을 꺼낸다는 것 자체가 그럴 확률이 높다는 뜻이잖아!”
“맞아. 가온 넌 머릿속에서 정리가 끝나서 확실하다 여겨지는 것들만 입 밖으로 내뱉잖아.”
원정대원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토머슨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하며 물었다.
“어쩔 생각이지?”
이에 가온은 한쪽 눈을 살짝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으로선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건 좀……차라리 당장이라도 엘프들에게 가서 그 사실을 알려야 하는 거 아니야?”
“글쎄. 엘프들이 우리의 말을 들으려 할까?”
“……아.”
다급하게 말했던 원정대원은 가온의 말에 차분하게 변했다.
철천지원수 대하듯 원정대를 쫓아낸 엘프들이다.
그들이 신성시하는 세계수를 타락시키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도 과연 원정대를 가만히 둘까?
아닐 것이다.
정말로 그땐 사생결단을 내려고 들지도 몰랐다.
“그럼 정말 이대로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거야?”
“달리 뾰족한 수가 없어.”
적어도 지금은.
가온은 뒷말을 삼키며 말을 마쳤다.
“아……….”
“아깝네. 저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그러게.”
원정대원들은 아쉽게 됐다는 듯 입맛을 쩝 다셨다.
“어쩔 수 없지.”
원정대원들은 그걸 끝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더 할 수 있는 게 없음을 알았으니 하던 일에 집중하기 위함이었다.
“다시 환수나 찾으러 가야겠어.”
“그게 나을 거 같지?”
“아직 환수와 계약했다는 사람은 없지?”
“아무도.”
“으으!”
원정대원이 별안간 이를 악물고 부르르 떨었다.
“우글우글 모여서 우릴 바라보는 것도 그렇고, 친근하게 다가와선 꼬리를 살랑대긴 엄청 살랑대면서! 대체! 왜!”
다른 이들도 그의 급작스러운 행동에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대체 환수와 계약하는 방법은 뭐야!”
“그걸 알았으면 누구든 벌써 계약을 했겠지.”
그들 모두도 겪고 있는 어려움이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이곳엔 많은 환수들이 있었다.
대수림 중앙으로 모여든 모든 환수들이 이곳에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처음 그 장면을 본 원정대원들의 얼굴이 밝아진 건 당연했다.
아무라도 붙잡아 금방이라도 계약에 성공할 수 있을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와 호기심을 드러내고 친근하게 구는 행동이 계약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없었다.
“아무래도 별도의 계약조건이 있는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계약이 힘들 리가 없어.”
“대체 뭘까……그 계약 조건이라는 게.”
가온은 머리를 쥐어뜯는 원정대원들을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와는 관련 없는 고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순전히 가온의 생각일 뿐이었다.
* * *
‘여기가 어디지?’
눈을 뜬 가온은 느슨하게 풀어두었던 긴장을 바짝 조였다.
또 근육에 힘을 주고 언제든 반응할 수 있도록 무게중심을 살짝 낮추었다.
‘주변 환경이……완전히 바뀌었어.’
능히 그리 반응할 만했다.
아주 잠시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주변 환경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셈이었으니까.
가온은 기감을 곤두세웠지만, 애석하게도 느껴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옆에 있던 레이나를 비롯한 동료들도, 다른 원정대원들도 모두.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수풀과 나무가 어우러진 숲의 풍경은 사라지고. 온통 어둠만이 가득한 공간.
발을 디디고 있는 바닥 역시 마찬가지였다.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보이지가 않았다.
땅과 하늘의 구분이 없고, 왼쪽과 오른쪽의 개념이 모호한 공간 한가운데에 가온이 서 있었다.
가온은 시선을 고정한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몸을 돌리지도 않았다.
자칫하다간 방향조차 잃어버릴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곰곰히 생각해보자…….’
가온은 행동을 멈추고 시간을 거슬러 돌아갔다.
자신이 어째서 이곳에 갇혀버린 것인지를 파악하기 위한 복기였다.
‘별다를 것 없는 하루의 시작이었어. 대원들은 환수와 계약하기 위한 힌트를 찾아 뿔뿔이 흩어졌고, 동료들은 내 주변에 자리를 잡고 앉았지.’
레이나는 엘프들과 만났던 결계의 경계로 지젤을 날려 보냈고.
켄트는 세 가지 성물을 이용해 수련을 시작했으며.
유케는 살아생전 부바레의 성취를 월등히 뛰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바레류 주술이 기록된 주술서에서 여전히 눈을 뗄 줄 몰랐다.
대원들은 모두 떠나고, 동료들은 저마다의 일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고요한 시간이었지. 절로 딴 생각이 들 만큼.’
흠칫.
‘잠깐……딴 생각?’
가온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기 시작했다.
그때 본인이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떠올려보는 것이었다.
‘며칠 동안 제대로 몸을 풀지 못해 몸을 좀 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다만 당장 시행하기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동급 대비 그 누구보다 뛰어난 육체를 가진 덕분에 제대로 몸을 풀었다간 근방의 숲이 완전히 뒤집어져도 결코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출력을 제한하면?
몸이 풀리지 않을 테니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아쉬운 딴에 심상 수련이라도……하려고 했던 거고.’
가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 수 없는 공간으로 빨려 들어온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와라.”
가온은 기수식을 취하며, 화르륵! 생명을 불태워 투기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런 가온의 예상이 맞기라도 했다는 듯.
쒸에엑───!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며 엄청난 속도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핫!”
가온은 짧은 기합과 함께 온몸의 근육을 부풀렸다.
그와 동시에 방패 형태로 펼쳐지는 틸리티.
까가각!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틸리티에 세 가닥의 홈이 길게 생겨났다.
틸리티의 흠집은 순식간에 수복되었다.
‘틸리티를 갈랐다고?’
신의 사념이 깃든 신의 금속이 바로 틸리티였다.
그 어떤 금속보다 단단했고, 그 어떤 물질보다 이능과의 동화율이 뛰어났다.
특히, 생명력과 투기와의 궁합은 다른 이능에 비해 훨씬 더 뛰어났고 말이다.
때문에 웬만해선 틸리티가 망가지는 일은 없었다.
‘웬만해선’ 말이다.
가온은 입술을 이죽이며 투쟁심을 불태웠다.
“재밌네.”
가온의 중얼거림을 들었을까.
휘릭──!
상대가 또 한번 움직였다.
기척을 죽이고 파고드는 측면 공격이었다.
“어딜!”
하지만 가온의 날선 기감은 이를 완벽하게 파악해냈고 처음보다 훨씬 더 많은 투기를 담아 틸리티를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앙─────!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었다.
그 덕분일까.
기분탓인진 모르겠지만, 온통 주변을 물들인 어둠 일부가 충격파와 함께 쓸려나간 것 같았다.
그건 곧 어둠에 몸을 숨기고 있던 존재의 모습이 드러났다는 것과 같았다.
“역시.”
가온은 자신의 추측이 맞았음을 확인하곤 입술을 끌어올렸다.
“무슨 용무로 날 찾아온 거지, 환수?”
그 존재는 바로 환수였다.
다크 판타지의 천재 마수사냥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