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62
061
이틀 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제9구역을 시작으로 한 효과는 차례차례 그 영역을 넓혀나갔고, 지크는 그 루트를 그대로 따라가며 폐쇄된 구역으로 가 아이템을 주웠다.
그렇게 총 열세 개의 구역 중 아홉 개가 폐쇄되고 8구역, 12구역, 그리고 아직 오픈되지 않은 13구역만 세 개만 남았을 때.
[알림 : 인벤토리가 가득 찼습니다!]아이템을 줍던 지크의 인벤토리 용량이 기어코 꽉 차고 말았다.
“아.”
지크가 입맛을 다셨다.
“좋은 놈들만 고르고 골랐는데….”
줍다 보니 싼 아이템은 버리고, 비싼 것들만을 담았음에도 더는 아이템을 주울 길이 없었다.
“진짜 비싼 거 아니면 대충 지나가자.”
다 줍지 못하는 게 아쉬웠지만, 인벤토리 용량에 한계가 있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인벤토리 용량을 넓혀둘 걸 그랬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지크의 눈이 희망으로 빛났다.
만약 이 섬을 무사히 빠져나간다면.
아이템들을 내다 파는 데 성공한다면.
빚?
이제 안녕!
심지어, 내년에 내야 할 종합 소득세를 다 내고도 2~3억쯤은 남을 것 같았다.
‘이 돈이면 태희 학원에 과외에 대학교 등록금까지 다 해결이야. 엄마 보약도 좀 지어드리고. 괜찮은 전셋집도 마련할 수 있어.’
지방은 서울에 비해 집값이 저렴했으므로, 2~3억이면 꽤 괜찮은 빌라-그래 봤자 아파트는 아니었지만-에 전세를 살 수가 있었다.
지크가 행복 회로를 팽팽 돌리고 있는 사이.
[알림 : 님께서 사망하셨습니다!] [알림 : 님께서 사망하셨습니다!] [알림 : 님께서 사망하셨습니다!]참가자들의 사망 소식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다 주운 것 같으니까.’
지크가 반쯤 부서진 철마에 올라타며 혼잣말했다.
내구도가 30퍼센트밖에 남지 않은 이 철마는, 폐쇄된 구역 어딘가를 돌다가 우연히 줍게 된 이동 수단이었다.
‘남은 게 8구역이랑 12구역. 아직 13구역은 오픈 안 됐고. 여기 있다가 먼저 폐쇄되는 구역으로 가면 되겠어.’
지크는 안내 방송을 통해 얻은 정보를 떠올리며 앞으로의 동선을 계획해 보았다.
때마침 현재 위치가 제8구역과의 경계선이었기에, 지크는 철마를 타던 걸 멈추고 일단 대기하기로 했다.
그런데.
“으아아아아아아악!!”
어디선가 비명이 들려왔다.
***
‘비명? 8구역에서 들려오는 소리인 건가?’
지크는 조심스레 제8구역과의 경계선으로 다가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보았다.
약 100미터 전방에 한 모험가가 여러 명의 적들에게 둘러싸인 채 구타를 당하고 있었다.
‘뭐야. 저럴 거면 그냥 죽이든가.’
그 광경을 본 지크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럴 만했다.
비명을 지른, 아니 지금도 비명을 고래고래 질러대는 모험가들을 향한 핍박은 단순한 구타를 넘어 린치에 가까웠다.
“버러지 같은 놈.”
“딱 대, 새꺄.”
“더러운 빵즈.”
“코딱지만 한 나라 출신 주제에. 우리 대륙인들이 만만해 보이냐?”
지크가 처음 만났던 무리와 비슷하게 머리에 붉은 두건을 뒤집어쓰고 있는 그 무리는, 얼굴로 보나 하는 말로 보나 중국인 게이머 그룹이 분명했다.
‘하여간.’
그 광경을 본 지크가 혀를 찼다.
‘쟤들은 심심하면 우르르 몰려다니더라.’
중국인들의 종특이라면 종특이랄까?
하기야, 각 나라 사람들의 성향은 게임 속에서도 훤히 드러나기 마련이니 별로 신기할 건 없었다.
문제는 쓰러져 있는 청년에 대한 중국인 그룹의 행동이 눈살을 절로 찌푸려지게 할 만큼 악랄했다는 것.
“손톱도 마저 다 뽑아버려!”
“머리도 밀어, 머리도!”
“히히!”
“템 가진 거 모조리 내놔라. 알겠냐? 이 빵즈야?”
차라리 깔끔하게 죽이면 아무 문제없었을 텐데, 중국인 그룹은 한국인 모험가를 고문하고 조롱했다.
심지어 어느 한 중국인 게이머는 가지고 있던 단검으로 한국인 모험가의 머리카락을 자르기까지 했다.
‘내 일 아니니까.’
지크는 그 광경이 무척이나 꼴사납고 역겹다고 생각했지만, 끼어들지 않기로 했다.
이 대회는 어디까지나 개인전.
그리고 지크는 참가자가 아닌 제3자의 입장.
끼어들 명분이 딱히….
“나, 난…!”
린치를 당하던 한국인 모험가가 악을 쓰듯 내뱉었다.
“살아야… 해!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고! 그러니까 덤벼! 덤비라고, 이 개 같은 자식들아!!”
놀랍게도, 그 한국인 청년은 완전히 무력화된 상황에서도 결코 생존을 포기하지 않은 채 중국인 그룹에게 저항하고 있었다.
입만 살았다?
맞는 얘기였다.
하지만 한국인 모험가는 그 정신력만큼은 절대로 굴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습은 마치….
‘내 옛날 모습 같네.’
과거 제네시스 길드를 상대로 항전을 벌이던 지크 자신의 모습같이 느껴졌다.
‘아, 안 되는데….’
지크는 괜한 오지랖을 부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스윽.
어느새 그의 발걸음은 장막을 향해 다가선 뒤였다.
***
휘리릭!
어디선가 철퇴가 날아들었다.
그 철퇴의 이름은 이라고 했다.
쾅, 쾅, 쾅, 쾅, 쾅!
홀연히 날아든 철퇴는 중국인 모험가들의 머리통을 차례차례 강타했다.
털썩, 털썩, 털썩, 털썩, 털썩!
다섯 명의 중국인 모험가가 쓰러졌다.
남은 중국인 모험가는 하나.
“뭐, 뭐야!”
난데없이 벌어진 참극에 마지막 남은 중국인 모험가가 소스라치게 놀라던 찰나.
스르륵!
카모플라쥬 망토를 입은 지크가 마치 귀신처럼 그의 등 뒤에 나타났다.
다음에 벌어질 일이야 뻔했다.
빠악!
골렘의 돌주먹이 마지막 남은 중국인 모험가의 머리통을 깨부쉈다.
그렇게 중국인 모험가의 시체가 여섯.
드랍된 아이템도 여섯.
남은 한국인 모험가가 하나.
지크는 말없이 중국인 모험가들이 드랍한 아이템들을 훑어보았다.
주울 만한 아이템은 없었다.
스윽.
지크가 쓰러져 있는 한국인 모험가를 향해 철퇴를 들어올렸다.
‘괴롭히는 것보다는 이게 낫지.’
깔끔하게 보내주기 위해서였다.
“아, 안 돼…!”
그러자 쓰러져 있던 한국인 청년이 상처 입은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그 한국인 청년은 ‘승구’란 ID를 사용하고 있었다.
[승구]•존재 구분 : 모험가
•레벨 : 81
•클래스 : 골렘 메이커
•칭호 : 현장의 지휘관 / 공사판의 마에스트로 / 유능한 행보관
명색이 인 주제에 골렘들은 어디로 갔는지 찾아볼 수가 없는 승구였다.
“여기서 죽을 순 없어… 절대로… 더, 덤벼…!”
스태미나가 다 떨어져 캐릭터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승구란 이름의 모험가는 철퇴를 든 지크에 대항하려 했다.
캐릭터가 통제 불가능한 지경까지 간 걸레짝이 된 마당에 왜 저렇게까지 투지를 불태우는 것인지….
‘도대체 뭐 땜에 저러는 거지.’
지크는 문득 승구란 모험가의 이유가 궁금해졌다.
허우적허우적!
어떻게든 지크의 공격을 막아보려 애를 쓰는 이유가….
“왜.”
지크가 물었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뭔데.”
“살아야 하니까….”
“그니까 왜.”
“말해줄 이유 없잖아….”
“그럼 죽어.”
지크가 철퇴를 휘두르려 했다.
“으아아악!!”
그러자 승구가 발악에 가까운 몸부림을 보이며 지크의 철퇴를 피하기 위해 허우적거렸다.
“마지막으로 묻는 거다. 왜 살아야 하는데.”
“마, 말하면… 살려줄 건가?”
“혹시 모르지.”
까짓것, 살려줄 수도 있었다.
왜?
지크는 이 대회의 참가자가 아니었으니까.
“엄마 수술비….”
승구가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우리 엄마 골수 이식 수술 받아야 하는데… 맞는 골수가 없대. 골수 구하려면 외국에서 돈 주고 사와야 한다고 하더라고….”
“감성팔이 하지 말고.”
지크가 인상을 찌푸렸다.
너무 뻔한 변명이었다.
차라리 이 게임에 정점을 찍고 싶은 꿈이 있다, 라고 말했으면 그냥 믿었을 텐데.
“안 믿을 거면 왜 물어본 거냐, 이 망할 자식아….”
승구가 으르렁거렸다.
“나, 우리 엄마 가지고 장난치는 새끼 아냐… 어떤 아들이 게임에 엄마를 팔아….”
“음.”
“내 SNS랑 톡 ID다….”
지크가 믿지 않자 승구가 자신의 SNS 주소와 모바일 메신저 어플의 ID를 오픈했다.
‘진짠가?’
지크는 승구를 경계하며 그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확인해 보았다.
그 결과.
‘…아.’
지크는 승구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확인할 수가 있었다.
속이는 건 불가능했다.
게임 속 승구의 얼굴과 SNS에 올라온 사진 속 승구의 얼굴이 완전히 똑같았으니까.
– SeungGu1207 : 울 엄마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엄마 나으면 같이 고기 먹으러 가야지.
– SeungGu1207 : 골수 기증자 찾습니다! 혈액형은…. [더보기]
– SeungGu1207 : 엄마 사랑해♥
승구의 SNS에는 그의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 여성과 찍은 사진들과 백혈병 완치를 기원하는 글들로 가득했다.
“우승하면. 엄마 수술비 마련할 수 있으니까. 그게 내 이유다.”
“가.”
“뭐?”
“어차피 곧 죽을 것 같다만.”
지크가 승구로부터 등을 돌렸다.
‘내가 꼭 죽일 필요 있나. 어차피 알아서 죽을 텐데.’
딱히 자비를 베풀었다기보다는, 어머니 수술비 마련해 보겠답시고 저러는 사람을 자기 손으로 죽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큰 게 사실이었고.
띠링!
그때였다.
[알림 : 현 시간부로 제13구역으로의 이동이 가능해집니다!] [알림 : 30분 후 제8구역과 12구역에 효과가 적용될 예정이며, 이후 두 구역은 모두 폐쇄됩니다!]천하제일생존대회의 피날레가 머지않았음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빨리 움직여.”
그 방송을 들은 지크가 승구에게 중급 스태미나 회복 포션 하나를 툭 던져주었다.
“기껏 살려줬는데, 폭격 맞아 죽지 말고.”
“고마워.”
승구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지크를 향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은혜는 언젠간 꼭 갚을게. 꼭.”
“은혜는 무슨.”
지크가 피식 웃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
승구와 헤어진 지크는 이미 폐쇄되어 있던 구역으로 가 제8구역과 12구역이 폐쇄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너 왜 여기 있냐?”
지크는 이미 폐쇄된 구역에서 익히 알던 사람과 만날 수가 있게 되었다.
천우진.
그가 지크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있을까.”
천우진이 되물었다.
“전생에 나라라도 팔아먹은 것 같은 남자가 걱정돼서 있는 건 아니고.”
“누가 나라를 팔아먹어.”
지크가 인상을 구겼다.
“잘만 꿀 빨고 있었는데.”
“그러게. 죽을 줄 알고 걱정돼서 와 봤더니. 혼자 꿀 빨고 있었어. 어우, 단내야.”
천우진이 냄새를 쫓는 시늉을 해보였다.
“근데.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냐? 너도 미리 들어와 있었던 거냐?”
“방금 왔어.”
“어떻게? 여긴 장막이….”
“이까짓 장막쯤. 내겐 아무것도 아냐. 조잡하달까.”
“그걸 말이라고?”
“물론 힘을 좀 쓰긴 했지. 앞으로 한 3개월 동안은 전투 불능이야.”
“그건 뭔 소린데?”
“있어, 그런 게.”
천우진이 알 듯 모를 듯 미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무튼.”
천우진이 화제를 돌렸다.
“보아하니 자멸의 오라는 피한 것 같은데.”
“보다시피.”
“그럼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이 대회, 그냥 니가 우승해라.”
천우진이 지크에게 우승을 권유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