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108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08화
아직 무대는 어두웠다.
불빛없는 무대에서, 마치 둔탁한 기계가 움직이는 것 같은 오묘하고 묵직한 베이스 소리가 울렸다.
DOON DOON DOON DOON
DOON DOON DOON DOON
이미 스트리밍을 하느라 많이 들은 팬들이 대다수였지만, 현장에서 듣는 박력이 또 달랐다.
생각보다 빠른 템포에 긴장감이 조성되었다.
그리고 그 위로, 일렉 사운드가 꽂혔다.
Dvvvviiiiii-!
바로 트레일러에서 등장했던 그 천둥 같은 리프 멜로디였다.
그리고 마치 천둥에 놀란 것처럼, 무대 위로 벼락같이 조명이 들어왔다.
노란 끼 없이 창백한 조명 아래로 SF 게임에 등장하는 뒷골목 같은 무대 세트가 드러났다. 다만, 군데군데 책상과 칠판 같은 학교 소품들이 버려지듯 배치되었다.
테스타는 뒤로 돌아 각자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
차유진이 천천히, 고개를 꺾으며 앞으로 돌았다.
-Do not trust it
There no justice
Oooohh….
나직한 싱잉 랩이 끝나는 순간, 내리치는 리프 멜로디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뭄바톤이 전개되었다.
리듬감이 넘치지만, 흥겹진 않을 정도의 아슬한 수위에서 때 이른 첫 댄스 브레이크가 들어갔다.
차유진을 중심으로 하는, 살짝 기계적인 느낌이 나는 군무였다.
그리고 차유진이 대형의 뒤로 사라지는 순간, 노래가 시작되었다.
-돌이켜봐도 알 수가 없어
Umm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Target Target Target
GOT IT
달려가는 대로 잡아채는 대로
트레일러 곡과 전혀 다른 보컬 멜로디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번 서브곡, ‘Better Me’는 트레일러의 곡에서 반주를 샘플링만 해온 듯한 구성이던 것이다.
하지만 이쪽이 훨씬 아이돌이 낼 것 같은 트렌디한 댄스곡이었다.
덕분에 무대 위의 테스타는 거의 날아다니고 있었다.
숨을 쉴 틈은 있는지 궁금해지는 구성이었다.
-선명한 이 느낌
(지워지질 않아 잊혀지질 않아)
지금도 난 알아
(I got that CODE)
프리코러스에 접어드는 순간, 김래빈과 큰세진의 보컬이 교차하며 퍼졌다.
둘은 서로를 잡아채려는 듯한 다소 과격한 페어안무를 선보인 뒤 갈라졌다.
그리고 두 번째 프리코러스 파트.
박문대가 나오며, 갑자기 트레일러의 일렉 사운드가 돌아왔다.
그리고 트레일러와 유사한 가사까지 흘러나왔다.
-I will never die
Like I did before
I’m gonna keep ME
Alive-!
고음이 깨끗하게 올라갔다.
트레일러와 보컬 멜로디는 완전히 달랐으나, 그 난이도만큼은 반박의 여지 없이 확실했다.
그리고 박문대는 이 고음을 다른 멤버와 엮이고 쳐내며 나오는 동적인 안무와 함께 쭉 불렀다.
그것도 약간 처연한 분위기로.
‘와…….’
김래빈의 팬은 응원도 잊고 마치 경연 프로그램을 보는 것처럼 감탄했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무대에 집중했다.
드디어 후렴에서 김래빈이 나온 것이다!
김래빈은 노려보는 것 같은 눈초리로 살짝 우울하게 후렴을 불렀다.
-BUT,
It’s just confusing
언제부터였는지
I’m just confused
Umm
어디까지 가는지
후렴은 다시 뭄바톤으로 돌아와서 흐르는 듯 낮은 목소리의 보컬과 쨍한 비트로 성기게 엮였다.
그리고 류청우가 나와서 다음 후렴 소절을 이어받았다.
-Could be confusing
무엇을 원하는지
May be confused
Umm
어떻게 하는 건지
방황하는 것 같은 가사와 분위기였으나, 어딘지 의미심장하고 추상적이었다.
여기에 무대와 안무, 그리고 의상까지 어우러진 덕분에 무대는 현실이 아닌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에서 겪는 방황처럼 보였다.
덕분에 정신 산만할 수 있는 네온사인과 장치들은 도리어 강렬한 곡의 중심부에 있는 살짝 우울한 맛을 살렸다.
-Take me and get that might
멜로디컬한 후렴구가 끝나자마자, 툭 쏘는 것 같은 차유진의 랩과 함께하는 2절 안무는 더 강렬하고 복잡해졌다.
-아득한 이 느낌
(지워버리는 잊으려 하는)
그래도 난 알아
(I got that CODE)
마치 터질 지점을 향해 끝없이 오르는 것처럼, 반주에 구성 요소가 계속 추가되고 비트는 점점 더 강렬해졌다.
그리고 브릿지를 지나 후렴이 터져 나올 순간.
곡은 드랍되는 대신, 모든 반주를 없앴다. 그리고 그 강렬한 리프 멜로디만 홀로 돌아왔다.
Dvvvviiiiii-!
그리고 비트도 없는 상황에서, 오로지 리프 멜로디와 겨루며 마지막 후렴이 터져 나왔다.
-BUT,
It’s NOT confusing!
내가 누군지
I’m NOT confused
Oh!
찾아낼 BETTER ME
류청우의 보컬을 받은 박문대는 마지막 초고음까지 찍어 음을 잡아냈다.
AR이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의 성량이었다.
‘헐!’
관객들이 내적 환호를 질렀다.
음원 들을 때는 리프 멜로디랑 목소리, 두 가지가 모두 쨍하다 보니 몇 번 들으면 피로해졌는데, 무대로 보니 엄청나게 극적이었다.
게다가 직후 다시 시작되는 뭄바톤이 귀에 척 달라붙었다.
-BETTER ME
방긋 웃은 큰세진이 마지막 댄스 브레이크에서 센터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첫 댄스 브레이크의 반주가 변주되었다.
갈등이 해소된 듯, 좀 더 가볍고 경쾌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다만 안무는 발을 움직이는 구간이 늘어 엄청나게 화려해졌기 때문에, 난이도와 볼거리 면에서는 오히려 더 인상적이었다.
-BETTER ME
곡이 끝날 때가 되어서 야 변주 훅으로 튀어나온 타이틀을 다시 한번 부르며, 곡이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내적 함성은 곧바로 외부로 튀어나왔다.
“와아아아아악!!!”
“어어어!!”
“어떡해!!”
누가 봐도 퍼포먼스용이라고 외치는 것 같은 서브곡 무대는 보는 재미와 듣는 재미를 모두 챙기는 훌륭한 구성이었다.
더 좋은 점은, 반복 녹화할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몇 번 더 이 무대를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테스타는 워낙 쉴 구성 없는 곡에 숨이 차는지, 비틀거리며 숨을 헐떡이다가 감사 인사를 하며 손을 흔들었다.
너무 더운지 테크웨어 소품을 슬쩍 들어서 부채질을 하는 멤버도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류청우가 스탭에게 말을 걸었다.
“후욱… 후, 다음 테이크…… 네? 이대로요?”
테스타의 표정이 밝아졌다.
“와, 우리 한 번에 됐대요!”
청천벽력 같은 선고였다.
‘안 돼!!’
심지어 장비 점검 때문에 리허설도 미리 끝낸 상태라, 팬들이 볼 수 있던 건 그 무대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당연히 번복은 없었다. 테스타는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는 헛수작을 부렸다.
“감독님, 저희 이거 목소리 잘못 낸 것 같지 않나요?”
“카메라 못 봤어요!”
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덕분에 그들은 미안해하며 애교나 춤을 선보이고는 사라졌다.
“…….”
그리하여 팬들은 입장한 지 20분 만에 다시 녹화장을 나오게 되었다.
그들 손에 쥐어진 것은 테스타가 준비했다는 어느 맛집의 크림빵과 아메리카노뿐이었다.
‘…김래빈!! 박문대!! 누가 그렇게 잘하래!!’
김래빈의 팬은 자신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는 채 크림빵을 뜯었다.
맛있어서 더 열받았다.
* * *
그날 저녁, 테스타의 서브곡과 타이틀곡 무대 모두가 드디어 첫 방송을 탔다.
본부장이 날아간 데다가 최근 사건이 많았기 때문인지, 회사는 일단 활동 중에 잘 시간은 줬다.
덕분에 당일 자정에 숙소에서 첫 무대 반응을 살펴볼 수 있었다.
위튜브 등지에서는 당연히 타이틀 조회수가 많았으나, SNS나 커뮤니티로 들어가니 서브곡에 대한 반응도 거의 비등했다.
나는 댓글이 오백 개가 넘은 글 하나를 클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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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타 이번 서브곡]: (SNS 영상 링크)
방금 뮤직밤에 나왔는데 솔직히 타이틀보다 무대 반응 더 좋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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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진짜 퍼포용이네
-빡세다
-개잘하네;
-음원은 타이틀이 훨씬 윈데 이건 왜 서브곡으로 골랐는지 알 것 같다 진짜 무대하고 봐야 훨씬 좋다ㅋㅋ
-이거 라이브임?
└ㅇㅇ완전 라이브야
-거의 립싱크나 다름없네ㅋㅋㅋ 박문대 파트 AR 티 엄청 난다 아주사 때도 그러더니
└ㅋㅋㅋㅋㅋㅋㅋ(MR제거 영상 링크)
-무대는 진짜 잘하는데 가사 대체 뭔 소리임?
└우리도 모름 근데 작사에 김래빈 있더라 조금 있으면 W라이브로 와서 구구절절 이야기할 거야 시간 나면 보러와줘
└ㅋㅋㅋㅋㅋㅋ요약본 올려줘
대체로 좋다는 의견이 많았다. 간혹 일단 던지고 보자는 식의 어그로도 있지만, 그거야 맨날 출몰하는 놈들이고.
물론 그 댓글들 사이에서 예상했던 이야기도 발견했다.
-와 박문대는 금발만 하면 리즈 오네ㅋㅋㅋ
-백금발 진짜 박문대야? 헐 내 머릿속의 박문대는 아주사 제발회 사진에 멈춰 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난 거임
-문대 진짜 잘생겼다
-아니 박문대 진짜 머리 금발로 자랄 것처럼 찰떡이네 무슨 일이야
-나 시험 때문에 아주사 못 봤는데 백금발이 1위야? 저 얼굴에 노래 저렇게 하니까 너무 당연히 1등 했을 것 같다;;
└방송물을 정수기 채로 입에 쏟아부은 놈입니다 속지 마세요
대충 이런 느낌이었다.
‘찍은 보람이 있군.’
물론 의구심을 가지는 반응도 쑥쑥 튀어나왔으나, 거기서 더 발전하지 못했다.
선수 쳐서 밑밥을 깔아 놨기 때문이다.
-음ㅋㅋ 외모 변화… 할만하않
└샵 바꿨다고 함
└그걸 어떻게 알아?
└컴백 덥라이브 비하인드에 머리하는 장면 나옴
└아하 ㅇㅋ
-샵 바꿨다고 얼굴이 변하면 저도 그 샵 다닐래요
└놀랍게도 무대화장하는 아이돌에게는 흔하게 일어나는 일임..
└ㅋ누가 그래요?
└내가 파는 아이돌이 샵 바꾸고 망해서 앎
└미안;
흠, 역시 괜찮은 변명이 들어가니 적당히 비비고 넘어갔다.
‘회사가 슬슬 샵을 갈아타려고 해서 다행이었지.’
덕분에 무리 없이 외모를 A-로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왜 외모를 찍었느냐 하면…… 최근에 B+이었던 류청우가 A-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워낙 아주사 때 마음고생을 했다 보니, 그 여파가 사라진 것이 지금 드러난 것 같았다. 내가 봐도 안광이 좋아졌더라고.
어쨌든 이 흐름대로라면 나 혼자 B따리로 남아 순간 캡처 비교글 감이 될 것 같아, 타이밍 맞는 지금 투자를 했다.
‘좋은 선택이었고.’
아, 다른 하나는 가창에 찍어서 A+로 만들어줬다.
저 서브곡 마지막 후렴을 계속 연습하다 보니, 언젠가 목이 나갈 것은 예감이 강력하게 들어서 어쩔 수 없었다.
‘조금 아쉽긴 한데.’
사실 가창은 조금만 더 기다리면 자연적으로 올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컴백이 코앞이라 어쩔 수 없었다.
‘남은 포인트 하나는 예정대로 아껴둬야겠군.’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스마트폰을 껐다. 내일도 새벽에 가까운 시간에 스케줄이 시작되다 보니 당장 자야 했다.
‘타이틀곡 반응은 내일 더 살펴보자.’
그리고 다음 날 음악방송을 대기하며 타이틀곡 반응을 살피던 중, 희한한 소식을 들었다.
“너희 다음주에 예능 촬영 잡혔다~”
“오~”
“어디요?”
“새 싫어요.”
의 잔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떨떠름한 반응들 속에서, 매니저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말 타고 활 쏘는 예능이야!!”
“……!”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류청우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