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109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09화
류청우는 애매한 얼굴로 되물었다.
“…말을 타고 활을… 쏜다구요?”
“그래!”
“우와~”
“말 좋아요!”
“…혹시 청우 때문에 섭외된 건가요?”
배세진의 질문에 매니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거 그 뭐냐… 종방한 아이돌 올림픽 비슷하게 KBC에서 만든 거라 그런 포맷이야. 아마 웬만한 아이돌들 다 나올걸?”
“아하~”
안 나가면 음방 출연에 지장이 있을 거란 뜻이군. 잘 알겠다.
“어, 근데 명절 다 지나갔는데 지금 해요?”
“뭐, 방송사 내부 사정이 있었나 봐.”
“으음~”
대부분의 멤버는 납득했지만, 류청우는 여전히 오묘한 표정이었다.
“형. 문제 있어요?”
“응? 음… 좀 걱정이 되네.”
아, 후유증 때문인가.
통증이 없어도 그냥 상황 자체가 꺼림칙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런 사람 우르르 불러서 육체노동 시키는 예능은 언제나 부상 위험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매니저가 애매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음…… 그게 말이다.”
“…?”
“청우는… 출전 금지야.”
“……!!”
“게임이 안 될 거라고 방송 쪽에서 거절했어. 대신 시범만 한번 보여달라네.”
“허억.”
믿을 수 없이 상식적인 판단에 멤버들이 경악했다. 은근히 믿는 구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하지만 류청우의 표정을 나아지지 않았다.
“차라리 제가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형, 저희 이거 안 나갈 순 없는 거죠?”
“…으음, KBC에 계속 출연하려면 아무래도 힘들겠지? 왜?”
류청우가 고개를 저었다.
“너무 위험해서요. 말을 타는 것도 힘든데, 그 위에서 활까지 쏘는 건 더 위험하죠. 훈련 기간은 얼마나 확보됐어요?”
“……가서 배울 거라고 하던데…….”
“…….”
“…잠시만.”
매니저는 우리를 일단 차에 태운 뒤, 주차장에서 회사와 꽤 긴 통화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곤 꽤 밝은 얼굴로 다시 차에 탔다.
“아, 걱정 마 얘들아. 준비 다 잘됐대.”
“오…….”
“그래도 KBC 공영방송이잖아. 무리한 일이나 위험한 일 안 시킨다니까 해보자!”
저렇게까지 호언장담하는 것을 보니 뭘 듣긴 한 모양이다. 구체적으로 설명 안 해주는 걸 보니 리액션이 필요한 것 같고.
‘승마 국가대표라도 불렀나.’
설마 후유증으로 국대 은퇴한 아이돌 앞에 현직 국대를 데려오는 X신 짓거리를 훈훈함으로 포장하지는 않겠지.
하도 Tnet의 어마어마한 방송국 놈들을 만나다 보니 내 쪽에서 사서 각을 재고 있다.
“그리고 다른 종목도 다양하게 한다더라, 청우는 거기서 활약하면 될 것 같다!”
“음, 알겠습니다…….”
류청우는 여전히 찝찝하다는 얼굴이었지만, 결국 수긍했다.
그리고 촬영 당일, 엄청난 꼴을 보게 된다.
* * *
촬영지는 무려 대관령이었다.
더 재밌는 건 여기까지 상상도 못 한 복장을 하고 갔다는 것이다.
“화랑이요?”
“그래. 이 프로그램 컨셉이 신라 화랑끼리 경합하는 거래!”
“와…….”
아이돌 올림픽하고 차별화하려고 조상님까지 동원했을 줄은 몰랐다.
덕분에 서울에서 화랑 복장 챙겨서 메이크업과 헤어까지 받고 대관령으로 실려 갔다.
-머리 망가지니까 너무 팍 기대면 안 돼요!
목 부러지는 줄 알았다.
그리고 도착한 촬영지.
분홍색 회전목마가 돌아가고 있었다.
“……??”
“저기?”
“여러분이 탈 말입니다!”
“…!!”
멍한 표정이 된 멤버들의 얼굴을 카메라가 열심히 따갔다.
그리고 잠시 뒤, 활이 보급되었다.
알록달록한 장난감 활이었다.
이 사극 복장에 그 활을 들고 있는 모습이 언밸런스의 극치였다.
“…….”
“…조상님 화내시는 거 아니냐?”
그러게.
어쨌든, 덕분에 촬영은 KBC의 약속대로 안전하게 진행되었다.
화랑 의상을 정성껏 차려입은 아이돌들이 블링블링 빛나는 회전목마에 타서 장난감 활로 동물 캐릭터 인형을 맞히는 건 정말 희한한 삼중 복합 개그였다.
‘대체 왜 대관령까지 사람을 불렀냐.’
그냥 아무 테마파크에서나 해도 상관없지 않은가.
그 꼴을 구경하던 큰세진이 킬킬 웃더니 기지개를 켰다.
“그래도 여기까지 팬분들은 안 불렀네. 그거 진짜 서로 고생이라던데.”
“아아.”
기억난다. 스케줄 안 맞아서 찍으러 가본 적은 없는데, 그것도 찍어다 팔던 놈들 꽤 있었다.
“문대문대, 러뷰어 소식 업로드용으로 사진이나 쟁여두자.”
“그럴까.”
흠. 이건 꽤 괜찮은 제안이다.
“오~ 적극적인데? 사실 문대도 화랑 복장이 마음에 들었던 거구나~ 자기가 좀 멋있게 느껴지는 느낌? 그런 건가?”
이건 짜증이 좀 난다.
“나, 나도…….”
“사진 찍으십니까?”
“저 머리 볼래요!”
끼어드는 놈들까지 포함해서 단체컷을 몇 장 찍고 있자니, 주변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다른 아이돌 팀이다.
‘음악방송 복도랑 똑같군.’
여긴 대놓고 다 같이 대기하다 보니 더 사적 친목을 쌓기 좋은 방향이었다. 심지어 팬석도 없으니까.
다만 이놈들은 썩 다른 그룹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심지어 큰세진까지도 그랬다. 아마 여기 참가한 아이돌 중에 테스타랑 지표가 비슷한 수준도 없으니 깔끔히 손 턴 것 같았다. 인사만 싹싹하게 하고 이후로는 쳐다도 안 본다.
‘진정한 성적충이라고 해야 하나.’
나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니다만… 이 새끼는 진짜 대단한 난놈이다.
뭐, 덕분에 말 거는 사람이 없는 건 편하긴 했다.
그렇게 평화로운 대기시간을 보내고 난 뒤.
“이번 조는~ 아 유명하죠, 국민 주식! 테스타 화랑들입니다!”
공영방송에서 타 케이블의 극한 자본주의 캐치프라이즈를 써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 차례가 호명되었다.
형평성 때문에 제외된 류청우와 5명 정원상 자진해서 빠진 배세진은 대기로 남았다. 다음 종목에 참가하겠지.
“잘하고 와. 조심하고.”
“……네.”
저 회전목마를 보고도 조심하라는 말이 나오냐는 생각이 들었으나 류청우의 사연 빔을 맞고 사라졌다.
“갑시다~”
그리고 회전목마에 올랐다.
안전띠를 착용하고, 문제 발생 시 신호를 주면 회전목마를 중지시킬 수 있다는 설명 뒤에 회전목마가 돌기 시작했다.
-따랑땅땅따라라랑 차르르~ 땅따라랑~
깜찍한 오르골 소리가 울리며 회전목마가 오르락내리락 돌기 시작했다. 자괴감이 든다.
그리고 여기서 룰 하나가 더 추가된다.
“자 테스타 화랑 여러분~ 활 쏘려면 뭘 해야 하죠?”
“퀴즈!”
“정답을 맞혀야 합니다!”
그렇다. 활을 무한으로 쏠 수 있는 게 아니라, 문제를 맞히면 10초간 쏠 수 있다.
그래서 가장 짧은 시간 내에 다섯 개를 맞히는 그룹이 우승하는 구조였다.
“그렇죠, 문무를 모두 갖춘 화랑의 낭도로서 여러분은 정답과 표적, 타이밍까지 모두 맞혀야 합니다~”
“타이밍은 맞히는 게 아니라 맞추는…….”
“하하하! 문제 주세요!!”
큰세진의 말에 MC를 맡은 탤런트가 바로 손을 들고 외쳤다.
“자 첫 번째 문제, 인물 맞히기입니다! 가장 유명한 화랑 출신 중 한 명으로, 신라의 삼국 통일을 이끈 장군입니다.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이 이끄는 군대를 물리친 이 장수의 이름은?”
“……??”
갑자기 문제 난이도가 왜 이래.
특별히 어렵다는 건 아니지만, 직전 그룹에게는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의 지명을 말해보라는 수준의 문제만 냈었다.
‘케이블 출신이라고 엿 먹어보라는 건가…?’
KBC가 얼간이도 아니고 그건 아니겠지. 그냥 운 문제일 것이다.
그 와중에 환장하게도 차유진이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는 게 문제다.
“황산벌은 어떤 벌…….”
“정답! 김유신 장군님!”
“아, 박문대 화랑~ 정답입니다!”
다행히 ‘황산벌’에서 오디오가 물리게 만들었다.
‘살았다.’
한숨을 쉬며 활을 들었다.
“자, 지금부터 10초! 시작합니다!”
“어어어??”
그리고 농담처럼 회전목마가 빨라졌다. 거북이처럼 움직이던 목마는 갑자기 단체 사이클 타는 헬스장처럼 폭주하기 시작했다.
아까 기다리면서도 봤지만 정말 웃기겠다는 열망이 넘쳤다.
“이거 생각보다 너무 빠른데요?!”
“하하하! 자~ 하나!”
그리고 거짓말처럼 차유진은 곧바로 인형 하나를 맞혔다.
“하나!”
나는 한숨을 쉬며 장난감 활을 겨누었다.
그리고 당연히 못 맞혔다. 젠장.
“아, 재밌었다!”
“좋아요!”
큰세진과 차유진이 싱글벙글 웃으며 회전목마에서 내려와서 카메라에 손을 흔들었다.
놀랍게도 2분 7초 만에 끝내서 신기록을 세웠다.
더 놀라운 건 두 번째 문제 정답을 차유진이 맞혔다는 것이다.
-자, 두 번째 문제~ 주소창에서 흔히 보는 WWW는…….
-World Wide Web!!
-…? 정답입니다!
의외의 선방이었다.
참고로 이때는 나도 인형을 맞혔다. 요령 잡는 게 중요하더라.
“고생했어. 잘하던데?”
“잘해요~”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저희가 좀 하죠~”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놈들 옆에서 배세진이 조용히 물었다.
“…재밌었어?”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재밌었겠냐는 뜻이다. 배세진은 말없이 납득했다.
“이, 이번에 우리, 잘한 것 같아.”
“그러게. 우리 앞으로도 한번 제대로 해봅시다~”
“오~”
한번 해보니 몰입했는지 다들 신났다. 이 틈에서 나 혼자 적당히 했다가는 은은한 초심 논란에 휩싸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리액션을 신경 쓰자.’
참고로 다음에 시범으로 나선 류청우는 폭소를 터뜨리며 첫 10초 안에 혼자 다섯 개를 모두 맞히는 미친 묘기를 보여주었다.
대체 우리나라 양궁 국가대표는 어떤 자리인지 가늠도 안 가기 시작했다.
* * *
그리고 시간이 흘러, 왜 넣은 건지 알 수 없는 양털 깎기부터 대형 윷놀이를 지나 마지막 종목까지 왔다.
“다음은~ 색칠 전투입니다!”
“오~”
말은 그럴싸한데, 그냥 페인트볼 서바이벌을 활로 하는 것이다. 서로 물감 쏘다가 안 맞고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사람 팀이 이기는 거 말이다.
이번에는 7명 팀전이라 류청우와 배세진이 끼었다. 운 영역이 크게 작용하는 판이라 이번에는 류청우도 시범으로 빠지지 않았다.
‘딱 떨어져서 편하군.’
다른 팀 보니 섞인 곳도 꽤 많더라고.
“이거 저희는 가만히 있으면 청우 형이 다 쏴서 이기는 그림인가요~?”
“저도 쏴요!”
“…잘 부탁한다.”
자신이 없는지, 드물게도 배세진이 비장한 얼굴로 류청우에게 말했다. 류청우는 당황한 얼굴로 멋쩍게 말했다.
“그냥 재밌게 하자 얘들아, 탈락할 수도 있지.”
“약해요!”
“이기고 싶습니다!”
“화, 화이팅!”
선아현까지 이렇게 나오니 류청우는 결국 기세에 밀렸다.
“하하, 그래. 이기자!”
“와!!”
카메라가 열심히 그 광경을 찍고 있었다.
‘음, 이러고 정말 이겨 버리면 썩 좋은 그림은 아닌데.’
테스타가 여기 출연한 그룹 중에 제일 성적이 좋다 보니, 이 이상 종목에서 이기는 건 피하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이미 윷놀이도 준우승했다.’
여기서 더 가면 다른 절실한 그룹이 분량을 받을 기회를 뺏는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나올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대충하면 대충하는 대로 욕먹으니, 제일 좋은 건 미친 듯이 몰입해서 하는데 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류청우의 말에 감명받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양 주먹을 흔들었다.
‘구르자.’
실질적인 도움은 주지 말고, 그냥 열심히 하는 척만 하자.
이 옷 입고 바닥을 굴러다니면 열심히 했다고 쳐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오 분 뒤, 이 결심대로 정말 바닥을 구르게 되었다.
“문대야 괜찮아?!”
“…예.”
다 탈락하고 류청우와 나만 남았기 때문이다.
물감 맞히는 데 몰입한 다섯 놈들이 자기가 안 맞는 것을 신경 쓰지 않는 덕분에 이런 사태가 도래했다.
졸지에 내가 존버한 꼴이 된 것이다.
그리고 류청우는 하나 남은 팀원을 살리려고 화살이 오면 열심히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지시를 내리고 있다.
본인도 구르고 있어서 대충 얼타다 맞을 수도 없다.
‘와…….’
이제 눈치껏 좀 탈락하자 새끼야.
하지만 류청우는 생각보다 과몰입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