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137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37화
VTIC에게 벌칙 분량을 도난당했다.
“자~ 두 분, 스테이지 위로 올라와 주시면 됩니다!”
“어우, 아깝네요!”
“좀 억울합니다~”
날 아웃시키는 대신 자진해서 금 밟고 벌칙에 들어간 VTIC 한 놈과 다른 놈은 별 특출날 것 없는 리액션과 함께 물풍선을 맞았다.
앨범 초동 180만 장 파는 놈들 아니었으면 3초 컷으로 지나갔을 만한 특색 없는 꼴을 보니, 큰세진 말대로 예능에 별 열정은 없어 보인다.
‘…분량 따려고 일부러 탈락한 건 아니라는 뜻인데.’
그럼 아까 그 뿌듯한 얼굴이 진심으로 ‘신인 아이돌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란 말인가?
‘차라리 진짜 실수였는데 민망해서 그랬다는 쪽이 설득력이 있지 않나.’
큰세진과 눈이 마주쳤다. 그림 같이 웃으며 손가락으로 자신을 슬쩍 가리켰다.
빡치지만 별수 없고 다음에는 본인이 적극적으로 벌칙 받기를 시도해보겠다는 뜻인 것 같다.
“자 이번 팀전은~ 쌍화차 찾기!”
하지만 다음 팀전에서도 이 기묘하고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계속되었다.
“달걀노른자가 없는! 쌍화차를 제일 처음 고르는 분의 팀이 패배합니다~ 자, 음악에 맞춰서 댄스와 함께 골라봅시다!”
한마디로 의자 뺏기와 복불복을 합친 애매한 90년대 바이브 게임이었다.
‘이건 완전 운인데.’
이번 건 패스하기로 생각하고 차라리 고민도 하지 않고 골랐다. 이러다 걸리면 더 웃길 테니까.
물론 확률상 그놈의 노른자는 들어 있을 가능성이 훨씬 컸다.
“아, 문대 씨~ 통과!”
그리고 그대로 이루어졌다. 내가 고른 쌍화차에는 노른자가 들어 있었다.
그러자 VTIC 놈들이 박수를 치며 선동을 시작했다.
“오오~ 대단해!!”
“와, 이걸 어떻게 이렇게 바로 맞히지?”
“…….”
왜 이러냐고 새끼들아.
대충 대답해서 넘기긴 했는데, 이건 대놓고 웃긴 것도 아니고 순 애매하고 부자연스러운 훈훈함일 게 뻔했다.
결국 보다 못한 MC가 이걸 꼬집어서 웃기려는 중이다.
“아니, 두 분 아까부터 문대 씨한테만 너무 리액션이 좋은데요?”
“아 형님 뭘 모르시네~ 잘나가는 사람들끼리 친한 거잖아요~!”
“그런 거야~?”
VTIC 놈들은 손을 내저었다.
“아뇨 아뇨~ 아니 그냥, 잘하는 친구잖아요!”
“고민도 안 하고 맞히는 게 신기해서 그랬죠.”
차라리 살리지 그냥저냥 부정해버리니 또 그림이 애매했다. 예능 못하는 놈들은 맞는 것 같다.
그런데 그걸로 왜 나한테 트롤짓을 한단 말이냐.
‘엿 먹이는 건가?’
혹시 몰라 살펴봤지만, 딱히 도발하려는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미치겠네.’
그리고 이번 벌칙은 말랑달콤 멤버가 가져갔다.
“잘 보세요! ……노른자 아니죠? 통조림 황도죠?!”
“으아악!!”
벌칙은 고삼차였다. 도플갱어로 벌칙을 함께 수행한 영린은 표정도 안 변하고 원샷해 스탭들의 반응까지 이끌어냈다.
‘부러운데.’
나도 차라리 고삼차 마시고 뿜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이러다 계속 벌칙 한번 못 받고 리액션 병풍 겸 VTIC 분량 곁다리로 끝나겠다.
‘차라리 활약을 해야 하나.’
노선을 돌릴까 고민하던 찰나에, 잠시 촬영이 멈췄다.
“컷! 갈고 가겠습니다~”
“저희 마이크 잠시 체크할게요.”
“넵!”
짧은 정비 겸 휴식 시간이었다.
“나 화장실.”
“어.”
큰세진이 MC를 따라 슬쩍 자리를 떴고, 나는 일부러 음료를 마시며 타이밍을 기다렸다.
그러자 상대가 먼저 움직였다.
“안녕하세요, 후배님~”
“아까 우리 너무 급하게 와서 인사도 제대로 못 했죠?”
VTIC 놈들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통성명도 해본 적 없는 놈들이지만 정색할 수는 없는 게 또 사회생활이다.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선배님들.”
“아~ 선배님 어색하네요. 그냥 형으로 해요, 형으로!”
“맞아. 우리 너무 늙은 것처럼 부르지 마요.”
8년 차가 양심 없는 소리를 한다는 감상보다도 먼저 든 느낌이 있었다.
‘음?’
이놈들… 왜 이렇게 어색하지.
‘등에서 식은땀 흘리고 있을 것 같은데.’
나름대로 호탕하고 살갑게 말을 걸려 한 것 같지만 한계가 보인다.
원래 이런 걸 해오던 놈들… 그러니까 큰세진이나 류청우 같은, 사람 휘어잡는 게 익숙한 부류의 느낌이 아니었다.
사교적인 연장자 역할이 안 익숙한 것 같은데.
‘뭐지.’
일단 대답은 제대로 해줘 보자.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대선배님이신데 제가 함부로 부르긴…….”
“무슨 대선배에요~ 으악!”
“그냥 편하게 하라니까요!”
“…….”
와 이놈들 애쓰네.
아까 벌칙 막타 도난당했을 때보다도 당혹스럽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러자 그걸 대충 암묵적 동의라고 생각했는지 두 놈이 시시덕거리며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흠, 예능 많이 어렵죠?”
“예? 예….”
너희만 없으면 난이도가 두 단계는 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둘은 뿌듯한 얼굴이었다.
“어, 촬영하면서 너무 무리하지 말고…… 힘들면 SOS 보내요. 도와줄게.”
“…??”
“아 부담은 가지지 말고! 나중에 후배 생기면 또 잘해줘요. 우린 신경 쓰지 말고요.”
그리고 이 두 놈은 서로 ‘오~ 말 좀 하는데?’ 하는 표정을 주고받고 있다.
기가 막히는군.
“…….”
나는 두통을 참으며 대놓고 물어봤다.
“……그럼 아까, 금 밟으신 건.”
“아하하! 아니~ 그렇게 티가 났나?”
“아냐, 이 후배님이 감이 좋은 것 같아.”
“그렇지? 아무튼 막… 너무 신경 쓰지 마요. 그냥 어쩌다 보니까~”
…이제 확실히 알겠다.
‘이놈들, 완전히 호의로 한 짓이야.’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게다가 도와주겠답시고 떠올린 발상이 1차원적이다.
예능 경험이 별로 없다는 걸 감안해도 썩 머리 굴릴 줄 아는 부류는 아닌 것 같았다.
‘한 5년 안에 보증이나 사업 사기로 한탕 털릴 것 같은데.’
아무리 VTIC이 순조롭게 큰 놈들이라지만, 이 불지옥 K팝 사회에서 8년 버틴 것 치고는 영 맹탕이었다.
‘…설마 청려가 갈아 끼운 놈들인가.’
사고 안 칠 놈들, 다루기 쉬운 놈들 찾다 보면 저 꼴 날 수도 있겠구나 싶다.
어쨌든 별다른 복잡한 생각은 없어 보이는 놈들이니 적당히 쳐내면 되겠군.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도 제가 해볼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려고요. 아까처럼 배려 안 해주셔도 괜찮습니다.”
“어?”
약간 당황한 놈들이 잠시 고민하다가 머쓱한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으음, 사실 거, 청려 형한테 이야기를 좀 들었는데.”
“……??”
이건 또 무슨 소리냐.
‘쓸데없는 말을 한 건 아니겠지.’
정수리가 서늘해지려던 찰나에, 앞의 놈이 빙긋 웃었다.
“아니, 문대 씨 진짜 열심히 하고 좋은 후배니까 잘해줘라, 뭐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
“맞아! 그런데 그 형이 진짜 그런 말 안 하는 사람이거든요.”
“어. 친한 사람도 진짜 거의 없고… 후배님이랑 친해져서 신기했지.”
안 친하다.
“좀 사람이 삭막해 보일 순 있긴 한데… 그래도 재현, 아니, 청려 형이 생각보다 되게 사람 괜찮잖아요.”
“맞아. 그 형 막 유기견 센터에 자기 정산받은 거 절반씩 기부하고 그런다?”
“헐, 절반이나 했어?”
“어 나 그 형 은행 어플 쓰는 거 보다 기겁했잖아.”
“무슨 산신령처럼 살더니 진짜 동물은 좋아하네.”
둘은 말하다가 자기들끼리 대화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자 머쓱하게 다시 빠져나왔다.
“아니, 왜 이야기가 이리로 갔냐? 아무튼, 이것도 인연인데 오늘 촬영 때 힘든 일 있으면 말해라~ 뭐 그런 거죠.”
“혹시 지금 힘든 건 없고?”
“…….”
갑자기 말도 안 되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정신이 혼미했다.
나는 내 내면에 주먹을 갈겼다.
‘알 게 뭐야 X발. 정신이나 차리자.’
청려가 뭐 유기견들의 수호자든 말든 자기 알아서 할 일이고.
중요한 건 지금 내 목표. 현재 촬영이다.
나는 어휘를 골라 입을 열었다.
“사실…….”
내가 적당히 처한 상황을 설명한 뒤, 사실 벌칙을 노렸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알려주자 두 사람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헉! 그랬어요??”
“야 미안하다!”
“이제 벌칙 막 몰아볼까?”
“올 벌칙으로 해줘?”
“……괜찮습니다.”
나는 대신 가벼운 부탁을 했고, VTIC 멤버들은 흔쾌히 승낙했다.
“헤이 문대~”
그 직후, 화장실에 갔던 큰세진이 돌아왔다.
“뭐 좋은 얘기 했어?”
“그럭저럭. 넌?”
“야, 화장실 갔다 왔는데 무슨 좋은 이야기까지야 있겠어~?”
대답하면서 실실 웃는 걸 보니 뭘 한 건 올린 모양인데 입은 일단 딴소리를 한다.
아니나 다를까, 곧 전리품이 튀어나왔다.
“그냥… 어쩌다 보니 동선이 겹쳐가지고, 최호수 MC님이랑 대화 좀 했지. 번호도 교환하고.”
역시.
“대화가 알찼나 보네.”
“뭐, 우리의 예능 방향성 이야기를 좀 했달까?”
큰세진이 씩 웃었다.
“우리 둘은 절대 벌칙 안 받을 거라고 말했거든.”
“……!”
“그러니까 어떻게든 벌칙 줘서 리액션 뽑으려고 할걸.”
훌륭했다.
* * *
후반부 촬영은 몇몇 출연진들의 협조 하에 잘 끝났다.
‘계획 이상으로 잘 나온 것 같군.’
이제 편집의 문제인데, 솔직히 큰 걱정은 안 든다.
내가 PD라도 이건 안 자를 것 같아서 말이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 오늘 굉장히 좋았어요!”
어쨌든, 도착했을 때처럼 꾸벅꾸벅 인사를 박은 뒤에야 촬영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음 스케줄로 가는 차 안.
촬영이 잘 끝나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 반갑지 않은 연락이 불쑥 찾아왔다.
[VTIC 청려 선배님 : 오늘 촬영에서 애들 만났다면서요.] [VTIC 청려 선배님 : 어때요. 도움이 됐을 것 같은데^^]“……후.”
VTIC 놈들 만났을 때 왠지 이럴 것 같긴 했다.
어처구니없지만, 또 이렇게 보면 문자 내용 자체는 그럭저럭 정상이었다.
‘만나면 미친놈이라 문제지.’
나는 눈두덩이를 몇 번 누른 후에, 답장을 보냈다.
[예. 선배님들께서 도움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그리고 의외로 시간이 좀 흐른 후에 답장이 왔다.
[VTIC 청려 선배님 :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요. 혹시 후배님도 더 좋은 팀원들과 다시 활동해 보고 싶지 않으세요?]‘X발.’
뭐만 하면 무조건 뒈지고 다시 시작하라는 쪽으로 가냐고.
VTIC 놈들의 헛소리가 뇌리에서 울렸다.
-재현, 아니, 청려 형 생각보다 되게 사람 괜찮잖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을 리가 있냐.
괜찮은 사람 다 얼어죽는 소리하고 있다.
하지만 VTIC 놈들이 거짓말을 한 것 같지도 않았다. 즉, 예시로 든 사례 자체는… 진실 같단 거지.
‘…딱 한 번만 해본다.’
나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한번 상대가 정상이라고 가정한 뒤 답장을 시도했다.
[안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말을 계속 듣는 것 자체가 굉장히 스트레스입니다. 전 미션 생각만으로도 거의 한계입니다.] [굉장히 힘드니 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그리고 한참 동안 답장은 오지 않았다.
‘…지뢰 밟았나.’
하지만 혹시 야산 생매장이 초읽기 상태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절대 나 혼자는 안 죽는다.
‘이 새끼도 사회적 사망 상태로 만들어줘야 하는데.’
나는 목 베개에 기댄 채로, 예전에 떠올렸던 안을 다듬기 시작했다.
약간… 마음을 안정시키는 반복 노동같은 짓이다.
“흠.”
그러다 또 불쑥, 답장이 돌아왔다.
[VTIC 청려 선배님 : 알았어요.]“……!”
몇십 초가 흘렀다.
그 후에야 다음 문자가 도착했다.
[VTIC 청려 선배님 : 미안해요.]“…….”
문자는 그걸로 끝났다.
“…후.”
나는 스마트폰을 끄고, 도로 눈을 감았다.
사람이라는 게 참 알 수 없는 놈들이었다.
* * *
박문대가 차 안에서 생각에 잠겼을 때, 인터넷에서는 슬슬 기사가 뜨고 있었다.
[최호수의 , 특급 라인업이 온다… VTIC부터 테스타까지] [테스타의 예능 나들이? 촬영, “많이 기대해 주세요!”]-헐 브이틱 테스타
-이번엔 동발 아니고 예능 출연이라 너무 다행
└ㅋㅋㅋㅋ그러게
-청려랑 박문대 일친에서 진짜 웃겼는데… 또 보고 싶다 그 둘 나왔으려나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테스타 중 누가 출연하는 것인지도 공개되었다.
-문대랑 큰세넹
-아 문대다 개조아ㅠㅠ
-토요 파티라니 드디어 엄마한테 테스타 영업할 날이 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축하해
-왠 이세진; 차유진이 나와야 맞는 거 아닌가
└예능 멤이라 그런 듯?
└예능 멤 같은 소리하네 그건 본인이 알아서 뚫어야지 6위가 예능 먼저 나오는 거 웃긴 일 맞잖아 자기 분수를 모르는 건데 인지도나 화제성 생각하면 당연히 1, 2위부터 나와야하는 거 아니야?
└예능 하나에 목숨 걸 기세
└누가 보면 우리가 꽂은 줄 알겠음
-문대 화이팅!ㅎㅎㅎ
그리고 이 반응을 다 살펴본 뒤 가슴을 쓸어내린 사람도 있었다.
‘문대한테는 거의 욕이 없네!’
대학원생은 안도하며 보던 페이지를 빠져나갔다. 위튜브 영어 댓글의 파도에 침몰당한 뒤, 인터넷을 찾아보게 된 박문대의 팬이었다.
최근 문대를 좋게 봐주는 분위기가 확실해서 마음이 들떴다.
홈마인 친구는 영 불안해하는 눈치였으나, 그녀로서는 썩 이해가 되진 않았다.
‘다들 문대 착하고 귀여운 거 알아주면 좋지 않나?’
문대가 악플을 볼까 봐 걱정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선녀나 다름없었다.
‘예능 기대된다!’
대학원생은 웃으며 침대에서 발을 구르다가, 치밀어오르는 덕심을 참지 못하고 위튜브에 접속했다.
그리고 아직도 인기 동영상 순위에 떠 있는 한 썸네일을 클릭했다.
‘한 번만 더 보고 자야지.’
바로 테스타의 이번 신곡 뮤직비디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