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136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36화
예능.
어느 정도 활동이 궤도에 오르고 성적이 나오는 아이돌이라면 잡기 마련인 스케줄이다.
근래 아이돌 자체의 대중성이 많이 줄어서 웬만큼 성적이 나와도 예능 잡기 까다롭다는 말도 있지만, 일단 테스타는 여기 해당하지 않는다.
작년 예능 버즈량 1위 출신이니까.
대충 연예계 관심 좀 있는 사람이다 싶으면, 차라리 테스타를 몰라도 최상위권 참가자인 멤버들 얼굴이나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작년 활동으로 성적도 확실히 증명했겠다, 이번 컴백에도 예능 오퍼가 꽤 많이 들어온 걸로 알고 있다.
덕분에 내가 원하던 적당한 예능 스케줄을 잘 잡았다.
“긴장되나~?”
“어느 정도는.”
큰세진이 씩 웃었다.
“야, 나도 그래!”
자기도 긴장된다고 하는 것치고는 눈이 아주 야망에 타오르는데.
‘그럴 만도 하지.’
지금 촬영장으로 향하는 테스타 멤버는 나랑 큰세진, 둘뿐이다.
이 예능이 그룹 전체가 참가할 만한 포맷은 아니었기 때문에, 여러 상의를 거쳐서 오퍼가 내려왔고 이 둘이 당첨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멤버 개인으로 예능을 잡는 경우는 거의 처음이었다. 그리고 큰세진 저놈은 절대 개인을 어필할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유닛 무대가 성공해서 오히려 더 불이 붙었나.’
뭐, 어쨌든 나쁜 일은 아니었다.
“말 안 해도 알지? 도착하면 인사 잘하고~”
“넵!”
“예.”
매니저의 말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 대로,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일단 출연진에게 인사부터 돌렸다.
“안녕하십니까!”
겨우 2년 차니 예상 가능한 일이겠지만, 우리보다 후배는 없었다.
하지만 무시하는 사람도 없었다.
“오~ 테스타!”
인지도와 성적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역시 뜨는 게 답이군.’
그래도 큰세진이 순식간에 배우 셋과 번호를 교환한 건 그야말로 진기명기였다.
그리고, 한 대기실에서 제법 반가운 얼굴도 발견했다.
“헉! 선배님~”
“아, 반갑네요. 두 사람.”
에서 대표를 맡았던 여자 아이돌, 영린이었다.
“소식 잘 듣고 있습니다. 이렇게 만나니 좋네요. 다른 분들도 같이 봤으면 좋았을 텐데.”
영린은 몇 가지 덕담을 하고는 농담처럼 덧붙였다.
“올해 솔로 앨범 낼 건데, 활동은 겹치지 말죠.”
…갑자기 데뷔 초 VTIC과 동발한 악몽이 떠오르는군.
“하하! 에이, 저희가 무서워서 미뤄야죠, 선배님~”
“앨범이 많이 기대됩니다.”
“고마워요.”
영린은 미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옆에 음… 예상 못 한 사람이 있었다.
초면이었지만, 인사를 마치자마자 나를 보며 반색했다.
“문대 씨 맞죠? 와, 이렇게 보네! 오늘 촬영 잘해봐요~”
바로… 말랑달콤 멤버였다.
내가 첫 등수 평가에서 춘 , 그리고 첫 팀전에 할로윈 컨셉으로 바꿨던 의 원곡자인, 여자 아이돌 말랑달콤 말이다.
그리고 지금 만난 건… 흠, 말랑달콤 중에서 유일하게 잘나가는 배우로 활동 중인 그 멤버다.
어쨌든 연차로 따지면 대선배라는 뜻이니, 나는 고개를 꾸벅거렸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잠깐.’
그러고 보니, 지금 다들 내가 말랑달콤 팬이라고 알고 있지 않나.
‘설마 이 사람도 내가 본인 팬이라고 생각하나?’
아니나 다를까, 말랑달콤 멤버는 싱글벙글 웃으며 물었다.
“저기, 혹시 저희 멤버들 중에 누구 팬이었어요? 저희끼리 살짝 내기를 해가지고.”
이건 정답이 하나뿐이다.
“……당연히, 올팬이었죠.”
“에이, 내 팬은 아니었구나? 잘 빠져나가네, 문대 씨!”
말랑달콤 멤버는 호탕하게 웃으며 자기 허벅지를 쳤다.
‘무슨 사촌 동생 대하듯 하는군.’
아무래도 내가…… 하도 팝콘을 춰댄 탓에 일방적인 친분이 생겨 버린 모양이다.
“물론 농담이고요! 문대 씨 덕분에 우리끼리 오랜만에 진짜 재밌었어요~ 고마워요. 오늘 촬영 때 잘 해봐요!”
“…감사합니다.”
이러다 말랑달콤 사인 CD도 하나 받아 갈 것 같다.
아무튼, 출연진 중에 인연 있는 사람들이 보이는 건 호재긴 했다.
‘이리저리 편집 스토리 빼기 좋지.’
아예 서로 모르는 출연진보다는 묶어서 설명할 부분이 있는 점이 분량 받기도 좋지 않나.
저 둘과는 워낙 연차가 많이 차이 나서 쓸데없이 올드한 공중파식 사랑의 작대기 편집이 들어갈 확률도 낮았다.
‘그래도 같은 성별인 편이 편하긴 한데.’
아쉽지만 나머지 출연진 중에서 특별히 활동이 겹치거나 아는 인선이 보이진 않았다.
……라고 이때까진 생각했지.
그러나 어지간히 스케줄이 바쁜지, 촬영 직전에야 간신히 도착한 놈들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VTIC 멤버 둘이다.
‘X발.’
저 새끼들이 여기서 왜 나오냐.
단체 출연하면 이 예능이 포맷을 바꿔서라도 단독 특집을 편성할 급의 놈들이, 활동기도 아닌데 왜 튀어나왔냔 말이다.
그 순간, 마이크를 다 착용하고 온 큰세진이 내 등을 찌르면서 숙덕거렸다.
“이야, 레티 일 잘하네.”
“레티?”
LeTi 엔터테인먼트. VTIC과 말랑달콤의 소속사였다.
큰세진이 힐끗 눈짓했다. 본인이 번호를 땄던 배우들 쪽이었다.
“저기 배우 그룹, 말랑달콤… 수현 선배님 첫 주연 영화 팀이었어.”
“……!”
“같은 소속사잖아. VTIC 끼워주는 걸로 단체 출연 합의 봤겠지.”
……영화 홍보 차 출연진이 단체로 나왔던 거였나.
덕분에 휴식기인 VTIC 둘이 친히 나와준 모양이다.
보유한 회사 주식도 있으니 같은 회사 소속 연예인 홍보에도 마음이 너그러워질 만도 했고.
큰세진이 슬쩍 웃었다.
“그래도 문대는 좋지?”
“뭐가.”
“문대의 사회생활을 담당하는 선배님은 안 보이네~”
“…….”
아무래도 내가 청려를 불편해한다는 건 애 진작에 눈치챈 모양이다.
뭐, 그냥 ‘생각보다 꼰대 새끼였나보다’ 정도로 추측하는 것 같긴 했다만.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건 별로 안 중요하고.”
“오, 그래?”
그렇다.
청려가 당장 이 사람 많은 촬영장에서 다짜고짜 내 머리통에 오함마를 후려갈기진 않을 것 아닌가.
그냥… 미친놈 만나서 좀 짜증 나고 피곤한 정도일 것이다.
‘그놈이 있든 없든 상관없지.’
문제는… VTIC이 나왔다는 것 자체다. 같은 남자 아이돌 포지션인데 급 차이가 나니까.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분량이 걱정돼서.”
“어?”
큰세진이 웃음을 터트렸다.
“야, 문대가 예능 분량도 다 걱정하네! 근데 너무 걱정 마~”
“……?”
큰세진이 더 목소리를 낮춰서 속삭였다.
“저 두 선배님, 예능에서 말을 잘 안 해.”
“……!!”
“아마 된다는 사람 급하게 보내줬나 봐. 음, 적당히 때우고 가시지 않을까?”
예능에 별 뜻 없는 멤버라 큰 의욕이 없을 것이란 뜻이었다.
솔직히, 약간 감탄했다.
‘이 새끼 머리 진짜 잘 돌아가네.’
정보 모아놓고 생각하는 게 난놈은 진짜 난놈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열심히 해봐야겠네.”
“열심히 해봐야지.”
우리는 드물게 쓸데없는 주먹인사를 했다.
마이크가 켜지고, 촬영은 곧 시작되었다.
* * *
“감각적인 토요일! 주말 밤의 즐거움, 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와아아아!!”
, 국민 MC가 진행하는 본격 버라이어티 예능이었다.
이름에서 짐작 가능한 대로 연차가 아주 지긋하신 프로그램이었는데, 2000년대 후반에 종영했다가 복고열풍으로 몇 년 전 부활했다.
공중파에서 토요일 오후 8시 50분에 시작하는, 시청률 잘 나오는 프로그램.
한마디로 극한의 대중성을 갖춘 예능이다.
쓸데없이 게스트 가정사가 튀어나올 일이 없고, 딱 몇 장면 캐릭터 재밌고 임팩트 있게 보여줄 수 있는.
내가 찾던 요소는 다 갖췄다.
다만…… 나 자신을 놓는 과정은 필요했다.
컨셉이 항마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두둠칫 두두둠칫!
당장 지금 MC가 80년대 스타일 DJ 부스에서 단발머리를 흔들면서 디제잉 중이다.
굉장히 심취한 것 같다. 프로의식이 대단했다.
“오늘의 파티 컨셉? !”
사전에 공지 받은 말이 나왔다.
“오로지~ 한 쌍의 똑같은 파뤼피플, 완전 붕어빵만 입장 가능한 오늘의 스테이지! 우리 파뤼피플들 지금~ 등장해 주세요!”
덕분에 큰세진과 옷이랑 머리 모양을 맞췄다.
……참고로 이 컨셉을 의식했는지, 회사에서 생각한 이 예능 출연 멤버 조합 중 하나가 ‘큰세진-배세진’ 페어였다.
물론 배세진의 적극적인 기겁 덕에 논의하기도 전에 무산되었지만.
“우리 차례.”
“어.”
슬슬 나와 큰세진이 세트장에 등장할 차례였다.
[이번에 입장할 파뤼피플은~ 오우~ 어리다! 잘생겼다!]우리는 그대로 스테이지에 올라가서, MC의 어마어마한 소개 멘트와 함께 준비한 춤을 출 예정이었다.
MC가… 출연자가 춤을 추는 내내 옛날에 밈으로 유행했던 오글거리는 예능 자막을 입으로 재현했기 때문이다.
[춤추는 마법! 솟구치는 주식! 테스타의 빛나는 두 별이 지상으로 내려왔다!]마이크를 통해 회장에 울리는 저 소리를 참지 못한 출연진이 무너지는 게 웃긴 포인트인 것 같다.
근데 큰세진이나 나나 썩 재밌게 무너질 것 같지 않았다. 류청우, 선아현 둘이 나왔으면 모를까.
그래서 역으로 해주기로 했다.
나와 큰세진은 춤을 추면서 슬금슬금 DJ 부스를 둘러쌌다.
“…?!”
MC가 약간 당황했다.
“와, 최고의 국민 MC!”
“진행이 뭔지 보여주겠다! 내가 바로 진행이다!”
“부스도 가둘 수 없는 존재감! 전국을 울리는 빛!”
“토요일 저녁을 쥐고 흔든다. 이것이 거인의 멘트!”
“감동과 웃음을 동시에 잡는 건 오로지 DJ석의 그분뿐!”
[아니…!]MC가 대신 무너졌다.
처음에는 정말 당황한 것 같은데, 이건 좀 장단 맞춰준 것 같았다.
‘다행이다.’
더 심한 멘트를 입으로 내지 않아도 괜찮아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옆에서 큰세진이 실실 웃으며 남은 멘트를 모조리 털어냈다.
“대한민국의 예능사는 최호수 전과 후로 나뉜다. 그가 바로 예능의 기준!”
“…….”
댄스 스테이지는 그렇게 끝났다.
정신 차린 MC는 몇 번 웃음을 참고서, 주옥같은 엔딩 멘트를 남겼다.
“등장하자마자 스테이지를 접수! 이것이 바로 예능이다! 열정, 패기, 러브 앤 피스!”
“감사합니다!”
나와 큰세진은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후.’
일단… 이 파트에서 내가 노렸던 건 다 했다. 제작진까지 웃고 있는 걸 보니 임팩트도 괜찮았고.
그러나 출연진용 의자에 앉자마자 번뇌가 몰려왔다.
출연 전 방송 예습할 때도 각오는 했다만, 어떻게 예능이 이렇게까지 사람의 항마력을 시험할 수 있는지 신기했다.
‘이런 포맷을 그리워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시청률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리액션이나 하자.’
나는 마지막으로 스테이지에 올라간 VTIC 놈들에게 열심히 박수를 보냈다.
큰세진 말대로 예능에 별 뜻은 없는지, 크게 준비해온 것은 없는 것 같았다.
“하늘이 내린 잘생김!”
그렇게 출연진 12명이 다 등장하고 나자, 본격적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사실, 오늘 이 파티를 연 것은… 가짜를 찾아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니 너무 붕어빵이라 이상하지 않았어요?? 한 명은 도플갱어야! 가짜라고!”
…이런 컨셉으로, 함께 출연한 사람이 갈라져서 6:6 팀전을 하는 것까지가 들은 내용이었다.
“팀을 패배하게 만든 결정적인 인물! 그 사람은… 벌칙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첫 게임에서 벌칙자가 선정되는 순간, 진짜 속셈이 드러났다.
“어? 같이 입장하신 우리 주호 씨는 왜 안 나오세요?”
“네, 네?!”
“같은 몸이니 벌칙도 같이 받아야죠~ 도플갱어잖아요! 그래서, !”
“……!!”
그렇다.
벌칙자가 나오면, 상대팀에 있는 그 사람의 도플갱어도 함께 벌칙을 받는 것이다.
“아니, 세상에!”
“그럼 저쪽에 나는 노리면 안 되겠네?”
“아니, 팀 승리가 중요하죠! 벌칙 까짓거 그냥 받읍시다~”
놀랍게도 아무한테도 고지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출연진들은 진짜 놀랐다.
수군거리는 그 틈에서, 나는 큰세진과 눈이 마주쳤다.
‘벌칙 한번 받자.’
‘오케이.’
벌칙 같은 위기 상황에서의 리액션이 캐릭터 뽑기 좋았다. 이건 무조건 챙겨 먹어야 했다.
“이번 팀전의 벌칙은…… 물풍선 폭탄입니다!”
“허억!”
흠, 저 정도면 수위도 괜찮을 것 같고.
하지만 기회가 왔을 때, 방해가 들어왔다.
이번 팀전인 미러볼 피구전에서 일대일로 남은 상황이었다.
라인업은 나와 VTIC 멤버였다.
그리고 마침 상대편의 혼자 남은 VTIC 멤버가 공을 잡았다.
‘이런 건 맨 마지막에 탈락하는 사람이 벌칙이다.’
이 프로그램 특성상 억울해하는 모습을 웃기게 뽑으려고 백프로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아 마지막까지 남았으면서 못 이겼으니까 패배의 원인 맞잖아요~’ 같은 소리 하겠지. 전적도 많았고.
‘여기서 맞으면 되겠군.’
나는 공을 맞을 준비를 했다.
“됐다!”
“저기 때려요!!”
그런데 상대편의 VTIC 멤버가 미친 짓을 시작했다.
애매한 눈으로 나를 보더니, 공을 던지는 척하다가 금을 밟아 탈락해 버린 것이다.
“……??”
“아차차! 실수를 해버렸네!”
‘뭐야.’
저 새끼 뭐 하는 짓이냐.
심지어 눈이 마주치자 찡긋거리며 신호를 보냈다.
무슨 발표에서 신입생을 커버쳐 준 고학번 선배 같은 면상이다.
‘대체 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