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213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13화
세트장에 조성된 무대는 미국 공원에 있을 법한, 개방된 원형 계단 노천극장 스타일을 따 온 것이었다.
한마디로 조그만 게 360도 뻥 뚫려 있어서 관객이 사방으로 코앞에 있다는 뜻이다.
‘신선한 경험이긴 하겠군.’
관객으로 초청된 주민들이 하나둘 찾아와 검문을 거치는 동안, 나는 대기실에 카메라를 끼고 앉아서 봉투를 받았다.
반짝이가 요란한 게 미국 감성이었다.
인공지능 MC의 영어 설명과 함께 귀에 낀 인이어에서 통역이 나왔다.
[이 봉투 안에 든 것은 참가자들이 고른, 자신의 시그니처 곡입니다!] [우리의 KPOP 멘토는 이 세 곡을 한 시간 안에 전부 익힐 예정입니다.] [어떻게 되는지 볼까요?]볼 것도 없다.
이미 사전에 어떤 곡들이 후보인지 할 건지 제작진이 다 알려줬거든.
‘물론 이 세 곡으로 추려서는 아니지만.’
한 열몇 곡을 주고, 이 안에서 나올 거라고 언질 준 정도다. 팝송이라 아예 모르는 곡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아마 참가자들의 달리기든 싸움이든 해서 그중 이 세 곡을 선정한 것일 테고.
음, 방송에서 참가자가 ‘내가 원했던 건 이 빌어먹을 곡이 아니라구요!’ 같은 말을 외치는 게 벌써 보이는 것 같은데.
[긴장되시나요?] [뭐, 약간은요.]뻔한 질문에 뻔한 답을 돌려주고, 나는 봉투를 뜯었다.
“음.”
뭐, 딱 예상대로였다.
‘한 시간도 필요 없겠는데.’
비행기 여독이나 풀고 있도록 하자.
* * *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세트장.
선물로 챙긴 와인이나 화장품 봉투(전부 T1의 협찬이었다)를 한 손에 든 채, 팔짱 낀 주민들은 큰 기대는 없이 무대를 기다렸다.
이름 있는 쇼도 아니고 넷플러스 제작 외에는 아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노래를 부른다던데요.] [차라리 마술쇼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부녀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무대 뒤에서는 참가자들이 이 관객들의 웅성거림을 듣는 것을 찍는 카메라 역시 돌아가고 있었다.
이번 ‘인트로 스테이지’에서 셀럽이 되기 위한 자신의 장기로 ‘노래’를 고른 것은 총 8명.
그리고 관객들에게는 버튼 하나가 주어졌다.
[관객들이 버튼을 누르면, 그 자리에 순간적으로 불이 반짝입니다!] [그들은 ‘좋다’고 느끼면 버튼을 누를 겁니다.] [그리고… 경고! 그들은 나오는 모두가 참가자라고 생각하며, 우리의 비밀스러운 케이팝 멘토의 존재를 모릅니다!] [자, 그럼 우리의 ‘케이팝’ 캠프 참가자분들, 무대 위로 오르시겠습니다!]관객들은 무대 위로 아홉 명의 사람들이 리프트를 타고 등장하는 것에 반사적 환호를 보냈다.
[와!]참가자들 역시 반사적으로 손을 흔들 거나 방방 뛰었다. 신난 그 모습들이 방송에서 어떤 종류의 거만함이나 철없음으로 편집될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그 구석에는 큰 후드를 뒤집어쓴 동양인 청년도 있었다.
다만 요란한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별 움직임이 없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박문대다.
[자, 첫 곡은… 오! 필 가르시아의 ‘Drive it’ 입니다! 달려볼까요!?]R&B와 팝을 솜씨 좋게 섞어 듣기 좋은 몇 년 전 유행가였다. 그리고 이 나라 남성들의 오디션 프로그램 단골 곡이기도 했다.
[오~]관객들은 통상적인 느낌의 선곡에 적당히 예의 바른 수준의 반응을 보냈다.
다만 다음 규칙을 설명하자, 그 감탄에 진심이 섞이기 시작했다.
[무대 위 참가자들은 무작위로 지목당할 때마다 노래를 부를 겁니다.] [좋으면 버튼을 사정없이 눌러주세요! 많은 불이 오래 들어올수록, 해당 참가자의 노래를 더 길게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불이 별로 없다면… 음, 다음!]기계 목소리가 내는 능청스러운 말에 관객석에서 웃음이 쏟아졌다.
[하하하!]반응 좋으면 그만큼 노래를 더 부를 수 있고, 반응이 나쁘면 끝.
눈에 딱 띄어서 쉽고, 잔인할 만큼 자극적이라 재밌는 규칙이었다!
[자, 그럼 1번부터… 시작!]심호흡하거나 애써 긴장하지 않은 척 마이크를 돌리는 참가자들 사이로 음악이 울렸다.
그리고 1번 참가자가 눈을 끔벅이며 마이크를 들었다.
떨리는 목소리가 제법 그럴싸한 음을 만들어냈다.
-거침없이 차를 몰아~ 난 큰 엔진과 광나는 헤드라이트를 가, 가졌어~
[오….]적당히 버튼을 눌러주던 사람들은 참가자가 말을 더듬자마자 버튼 누르는 것을 멈칫했다.
[자, 다음!]불이 약해지는 순간, 거침없이 인공지능이 5번을 지목했다.
-난 착실한 남자는 아니지만, 야성적이지. 그게 내 매력이야….
그런 식으로 곡이 쓱쓱 사람을 타고 돌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한 소절도 겨우 소화했고, 조금 더 간 사람들은 두세 소절을 소화할 뿐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난데없이 들이닥치는 인공지능의 지명에, 눈앞에 시각 자료로 ‘실수하면 끝’인 게 눈에 보이니 도리어 안 하던 실수도 하게 되는 것이다.
-내 눈이 보, 보이… 젠장!
[다-음!]한마디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참가자는 이제 분위기를 탄 관객들에게 야유까지 받았다.
관객들이 익숙함에 더 무자비해지던 순간.
[7번!]구석에 멍하니 서 있던 7번에게 처음으로 전광판 콜이 들어왔다.
[…….]번쩍, 순서 불이 켜진 조명을 슬쩍 보던 후드 쓴 동양인 청년은 바로 입을 열고 마이크를 들었다.
그리고 들어가야 할 곳에 정확히 노래가 시작되었다.
원래 자신의 파트였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런 광경이 나를 살게 해
오늘도 도시의 빛을
달려, 달려,
별과 빛 사이로
[오!!]듣기 좋은 목소리가 단단하게 스피커를 울렸다.
혼자 다른 질의 장비를 쓰는 것 같은, 선명한 톤과 성량의 차이.
타다닥! 탁! 타라라라락!
순식간에 관객석에서 버튼을 연타하는 소리와 함께 온갖 색의 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곡이 쭉쭉 뻗어나갔다.
-달려, 달려,
별과 빛 사이로
오늘 밤.
후렴의 고음에서도 목소리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아니, 도리어 곡의 맛이 확 드러나는 멜로디컬한 파트가 도드라졌다.
[이야!]버튼 연타는 줄어들지 않았다. 계속 불이 반짝이며, 7번의 질주는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 간주에 들어간다는 점이었다.
노래가 끊기면, 어쩔 수 없이 불이 줄어들 것이다. 그럼 자연스럽게 다음 사람에게 넘어가야 하는 순간이다.
[으음!]전광판에서 가사가 사라지자 상황을 빠르게 알아챈 관객 몇 명은 아쉬워하기까지 할 그때였다.
-DDU DDU DDururu
DDU DDU DDU
[…!]7번은 간주에 허밍을 넣기 시작했다.
그냥 콧노래가 아니라, 거의 콘서트 애드립 수준의 어마어마한 음역대와 테크닉으로.
[와우!!]그 묘기 같은 솜씨에 다시 버튼에 연타가 들어오며, 7번의 수명이 또 한 번 연장되었다.
파바파바박! 파바박!
불빛이 사방에서 번뜩였다.
이쯤 되니, 다른 참가자 중에는 입을 벌리고 7번이 하는 짓을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박문대는 그 묘기를 계속하지 않았다.
대신 2절에 들어가기 한두 소절 전에 애드립을 멈추고, 정중히 마이크를 내렸다.
[그렇다면야, 다음!]인공지능 MC의 낭랑한 외침에 관객들은 아쉬워했으나, 이유가 있었다.
‘이 타이밍에서 한 번 민다.’
7번, 박문대는 이 룰의 맹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극에 익숙해진다.’
계속 잘 부르는 것보다, 전 소절보다 잘 부르는 게 중요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쭉 부르면, 클라이맥스를 지나서 사람들의 반응은 시들해질 수밖에 없다.
직전에 들은 클라이맥스 파트보단 더 좋아지진 않았으니, 굳이 버튼을 누르지 않는 경우가 속출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음이든, 애드립이든, 변주를 주고 새 자극과 놀랄 요소를 계속 줘야 했다.
앞서 괜찮게 부르던 사람들도 두세 소절을 넘기지 못했던 이유기도 했다.
그래서 박문대는 곡 템포가 다시 조절되는 2절 도입을 패스한 것이다.
‘뭐, 참가자에게 기회를 주는 그림도 챙겨야 하니까 겸사겸사.’
멘토인 이상, 참가자에게 괜히 한번 양보하는 그림도 줘야 국내 인터넷에서 ‘나만 싸하냐’는 개소리가 안 나온다.
그리고 박문대는 이미 계산이 끝났다.
‘참가자 숫자를 고려하면… 어차피 끝에서는 한 번은 더 날 주겠군.’
돌아가는 타이밍을 보니, 참가자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자신의 차례가 올 것 같았다.
[안됐군요, 다음!]앞에서 박문대가 하도 잘해둔 탓에 안 그래도 관객들의 평가는 야박해졌고, 기가 눌린 참가자들은 대부분 한 소절로 나가떨어졌으니까.
그리고 박문대의 계획대로, 그는 마지막 후렴구 직전 프리코러스에 다시 지목을 받았다.
벌써 편파적이 된 관객들의 기대와 선제 환호 속에서, 박문대는 첫 소절부터 곡을 틀어쥔 채로 놓지 않았다.
-달려, 달려
경적을 때려 빛을 뭉개
오늘 밤
박문대의 곡 점유 시간은 최종 1분 3초였다.
그렇게 게임조차 되지 않는, 충격적일 정도로 압도적인 첫 번째 ‘인트로 스테이지’가 끝났다.
[승자는… 7번!] [와아아아!!]‘밥값은 했군.’
박문대는 고개를 꾸벅 숙이는 대신 관객 정서에 맞게 손을 흔들며, 피식 웃었다.
무대 옆, 카메라 너머 제작진이 침 흘리는 소리가 벌써 들리고 있었다.
‘잘하면 예고편으로도 쓰려나.’
그리고 그 예측은 맞았다.
* * *
[케이팝? 전 그런 건 안 들어요.] [그걸 음악이라고 하기는… 아니, 오해하지 마요. 난 이 나라 보이밴드들도 음악이라고 생각 안 하니까.] [동생이 완전 미쳐 있는데, 솔직히 걘 제정신 아니에요.]“오, 예고편?”
“맞아요!”
차 안에서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넷플러스를 재생한 차유진이 신나게 화면을 흔들어 멤버들에게 보여줬다.
즉시 멤버들도 짧은 미리보기 동영상에 시선을 집중했다.
뻔하게 ‘찌질이 같은 서브컬쳐 케이팝 관심 없음’ 같은 소리를 하는 참가자들의 인터뷰 컷이 지나고, 진짜 촬영분이 짧게 짧게 지나갔다.
[이번 여름.] [유명세에 목마른 리얼리티 참가자들에게] [케이팝 세례가 쏟아진다!]“와, 자막 봐.”
“번역 잘하셨네.”
[아아아악!!] [이건 대체 무슨 X 같은….]비명을 지르는 참가자들과 웃는 케이팝 아이돌들.
그리고 내가 노래를 부르는 옆모습과 입을 벌린 옆 참가자의 모습이 쓱쓱 지나갔다.
“너 말고도 보컬 두 팀 더 했지?”
“그래.”
아마 내가 첫 번째 무대에, 참가자들 반응이 제일 날 것이라 잘 써먹은 모양이다.
“듣기론 다들 이겼다던데.”
“에이, 당연하지. 다들 포지션 있는 프론데~ 설마 졌겠어?”
싱글벙글 웃으며 저러는 걸 보니, 저놈도 댄스 스테이지에서 상당히 압도적으로 이겼나 보다.
[케이팝 아시나요?] [좋아하시나요?] [해보실래요?] [K-NOW]타이틀이 뜬 직후, 날짜와 함께 ‘1화 곧 공개’가 떴다.
보통 넷플러스에 공개되는 프로그램들은 네댓 화를 묶어서 한 번에 풀던데, 아마 스튜디오와 한 편씩 공개하기로 합의라도 본 모양이다.
“차유진, 공개 시 알림 받기를 반드시 눌러 둬야 잊지 않고 즉시 관람이 가능….”
“나 알아!”
“알면 뭐해, 안 했잖아!”
‘어쨌든, 방영이 멀지 않았군.’
일단 촬영이 성공적으로 끝나서 그런가, 첫 화 반응이 어떨지 제법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걸 볼 때쯤 새로운 이벤트도 있다.
마침 선아현도 날짜를 보고 깨달았는지 외치고 있다.
“아, 이, 이날… 우리 이사 날짜야…!”
“그러게?”
“대형 TV를 상의 끝에 새롭게 주문한 보람이 있을 듯합니다!”
“정말 좋아요!”
바로 이사다.
드디어 새 숙소로 옮기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