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338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38화
4월.
김래빈의 팬은 아주 오랜만에 영화관에 찾아왔다.
‘내가 돌았지!’
졸업이 코앞인데 중간고사 기간에 온갖 시사회 이벤트를 다 때려 넣어서 기어코 당첨돼 오다니, 미친 짓이라고 대학생 자신도 생각했다.
그것도 확실하지도 않은 찌라시 기사 때문에 말이다.
이번 라임스톤 영화에 KPOP 아이돌이 카메오로 나온다는 소문.
그리고 하필 그 영화는 을 만든 ‘폐허공장’의 게임 시리즈 세계관을 따온, 바로 그 국뽕 저격 영화였다.
당연히 엮일 만한 그룹 후보도 화끈하게 물망에 올랐는데 또 하필 1순위가 그녀의 아이돌이었다.
모든 정황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콜라보했던 그룹 쓰지 않았겠냐 상식적으로
-헐 ㅌㅅㅌ인가?
-나 너무 기대됨 뭐야 무슨 일임
표면적으로는 긍정과 불안이 뒤섞인 기대가 주류였다.
물론 해당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미국 노리더니 초심 박살 남’ 같은 소리를 하며 게임 회사를 깠다.
‘KPOP 아이돌 끼얹기’가 사실이라면, 선 넘는 국뽕 마케팅을 위해 게임 세계관을 싸구려처럼 팔아치운 것 아니냐는 게 중론이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물밑 아이돌 팬 커뮤니티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나오고 있었다.
-셤별 국내 대상 받자마자 천조국 보내버리기ㅋ 너무 개잡티원다워서 할말 잃어버렸자나
-쎄하다
-이제 한국은 잡은 고기야 응 번역 떡밥 보면서 살어ㅋㅋ
-아이돌 카메오ㅋㅋㅋㅋ야 벌써 손발 없어짐 미쳤나
참고로 김래빈의 팬도 이쪽이었다.
‘설마 독립 레이블도 미국 보내려는 떡밥이었냐?!’
안 그래도 ‘회사가 독립 레이블을 줄 리가 없는데’ 하는 의심이 쌓여 있던 팬들은 일찌감치 소속사를 공격할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그러면서도 대외적으로는 테스타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쉬쉬하고 잡는 것까지.
‘비활동기에 이렇게 심란하게 만드는 거 소속사 돌았냐고 진짜.’
그러나 이 뜨거운 반응에도 T1 Stars에서는 아무런 공식 입장도 내어놓지 않았다.
평소라면 금시초문이든 언론플레이든 미친 듯이 했을 이 회사가 조용한 것은 도리어 팬들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의심스러워진 것이다.
‘언플로도 못 써먹을 만큼 퀄리티가 쓰레기인 거 아니야…?’
‘무슨 개쓰레기 같은 딜로 애들 묶어서 팔아먹은 거 아니겠지?’
‘왜 카메오 출연 잠깐 가지고 이렇게 뜸을 들여? 설마 뭐 더 있어?’
하필 테스타가 투어 중이라 다른 컨텐츠로 환기도 힘들었다.
W라이브에서 댓글로 도배하듯 물어봐도 굳이 대답하지 않는 것까지 합쳐지니, 사실상 테스타가 출연했으며 비밀 유지 중이라는 게 정론이 되었다.
그리고 불안은 고조되었다.
‘나오지 마, 차라리 나오지 마!’
혈안이 돼서 시사회 추첨을 있는 대로 다 찾아내면서도 대학생이 했던 생각이 저거였다.
그러나 시간은 착실히 흘렀고.
어제, 해당 영화의 1일 차 시사회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모든 게 뒤집혔다.
-미친
-라임스톤은 언제나 옮다
-아 그냥 보고 오세요
-ㅋㅋㅋ국뽕 억까 새끼들 사서 걱정하지 말라고 아~~
영화는 평론가 별점 평균 4개의 준수한 수작이었다. 게임 세계관도 매력적으로 잘 살려내는 것에 성공해, 국뽕 위튜버들에게 좋은 재료를 제공했다.
게다가 테스타의 출연은….
-나 진짜 개놀람 우리 애들이 그
그녀는 여기까지만 보고 로그아웃했다.
‘미친 새끼가 어디서 스포를 검색되게 올려!’
어떤 영향도 미리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오늘 이 시사회에 올 때까지 다신 SNS에 접속하지 않았다.
심지어 테스타의 공식 SNS도 확인하지 않았다.
‘딱 제로 베이스로 보고 평가해 준다 내가.’
댓글 알바가 영화 평점을 조작하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팬들이 첫날 여론 잡으려 드는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다.
그녀는 그렇게 경각심을 가지고 생각을 정리했다.
‘확실한 건 정말 테스타가 출연하는 것뿐이라고!’
대학생은 냉철한 정신으로 영화관에 앉았다.
“야 나 팝콘.”
“닥쳐.”
데려올 사람이 없어서 데려온 동생에게 면박을 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상통로 안내가 끝나고 로고가 뜬다.
라임스톤 특유의 영어 문장.
그리고 타이틀.
[코스믹 거너]전형적인 그쪽 영화명이었다. 시사회답게 여기저기서 짧은 환호가 울렸다.
하지만 이후 진행된 웅장한 내용은… 영상미만 죽여줬을 뿐 그녀에겐 그냥 그랬다.
SF에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뭔 소린지도 모르겠고 게임도 크게 관심이 없다.
‘이럴 줄 알았다.’
대학생은 심드렁히 캐러멜 팝콘이나 씹었다.
‘테스타 언제 나와.’
하지만 확실히 영화로서 보는 재미는 있었다.
지구가 망한 배경을 설명할 때의 그 비꼬는 듯한 블랙 유머나, 멋진 장면 전환, 친절한 스토리라인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하자면, SF나 히어로에 대해 관심 없고 잘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 볼 만한 영화다.
‘괜찮네.’
익숙한 라임스톤의 맛이 느껴졌다. 그녀는 순간 긴장을 풀고 영화를 멍하니 보았다.
테스타는 보통 할리우드 카메오들이 그렇듯이, 중반부 이후에나 나오겠구나 짐작하면서 말이다.
그때쯤, 화면에서는 주인공이 얼결에 도착한 우주 정거장의 퇴폐적이고 화려한 네온사인을 보고 있었다.
[와우, 볼 만하잖아?]-(진심으로 말하는데, 이건 잘못된 망상이었다.)
주인공의 말과 교차하는 회상 독백에 극장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사이 영화의 주인공은 정거장의 술 모양 간판을 보고 슬그머니 술집에 들어갔다.
강렬하고 의미심장한 밴드의 공연이 부분 클로즈업되고, 그것을 BGM 삼아서 주인공은 테이블을 잡고 앉는다.
그리고 등장한 조력자 역할의 조연과 주고받는 만담 같은 대화.
[지구에서 왔어? 거긴 어때?] [뭐, 이런 술집용 노래가 시끄러운 건 똑같지.]그 순간 백그라운드에 있던 괴상망측한 밴드에게서 거친 슬랭식 영어가 터져 나왔다.
멀리서 밴드 멤버가 주인공을 노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시선을 거두는 것이 흐릿하게 묘사되었다. 다시 한번 관객들의 웃음이 터졌다.
주인공이 꿍얼거렸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10대들이 노려보긴.] [어허, 조심해! 초짜 친구, 그쪽 행성 상식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지.]그리고 주인공의 맞은편에 앉은, 작은 외계인 조연이 목소리를 낮추고 소개한다.
이제부터 주인공이 마주칠 세상을.
[이 정거장과 계약한 행성 가짓수만 1,200이 넘는다고!]화려하고 장활한 외계의 컷들이 편집되어 관객에게 훅훅 밀려온다.
‘오.’
그 효과가 영화관을 꽉 채웠다. 대학생은 짧게 감탄했다.
그 와중에도 조연의 목소리는 서술을 계속했다.
이 우주 정거장을 이용하는 각종 행성민들의 특이한 내력과 보물, 알력 관계, 그리고 무력 집단에 대해서.
꽤 많은 것들이 지구의 상식과 상반됐다.
위험성까지도 말이다.
[작은 녀석들은 보호법 덕분에 포스 슈터 숨기고 다니는 놈들이 태반이야. 저거 보여?] [너같이?] [그래, 나같이.]돌아온 술집의 화면. 조연은 히히 웃으며 품에 있는 포스 슈터를 보여줬다가 숨긴다. 주인공은 유심히 그것을 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친놈들처럼 다니는 미친놈들을 조심해야 해.] [미친놈들?] [아, 딱 보면 눈에 띄게 하고 다니는 녀석들 있잖아!]조연의 말을 끝으로, 화면이 다시 한번 돌아간다.
술집의 작은 공연 장소 위, 아까 주인공에게 말 한마디 했던 ‘10대’ 밴드에게로.
세션을 정리하고 내려가던 그들에게 위압적인 전투복을 차려입은 병사들이 시비를 건다.
뒷모습과 옆모습만 보이는 그들은 70년대 락밴드와 게임 캐릭터를 합쳐둔 듯 전위적인 차림이었으나, 전투복 차림의 녀석들처럼 체구가 거대하진 않다.
금방이라도 병사들에게 밴드가 두들겨 맞거나 도망갈 것 같은 분위기.
[오.]그러나 카메라가 병사의 시점에서 밴드를 정면으로 제대로 비췄을 때.
그 얼굴들은 그저 심드렁했다.
그리고 그건 시사회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몹시 낯익은 얼굴들이기도 했다.
“…!”
“왁!”
테스타!
예상도 못 했던 등장에 관객석에서 감탄과 반응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순간.
[미친놈처럼 하고 다녀도 되니까 그러고 다니는 거야!]조연의 내레이션과 함께, 카메라가 돌아간다.
“…!”
휘익!
괴상한 우주 악기에 의해 과장스러울 만큼 깔끔히 제압당하는 병사들의 모습이 빠르고 격동적으로 지나갔다.
타탁!
밴드의 한 멤버가 마지막 놈을 레이저로 테이블 너머로 날렸다.
그리고 구겨진 자신의 가운을 자연스레 털며, 그 위의 초록 얼룩을 조심스럽지만 치기 어리게 다듬었다.
그 순간적인 한 동작만으로 관객들이 그 흰 가운의 얼룩이 일부러 만든 멋임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고개를 들자, 화장을 한 채 안경 쓴 청년이 무표정으로 고개를 꺾는다.
‘와씨.’
대학생은 깨달았다.
의 ‘박사’를 따라 한 무대 의상이구나!
그리고 한 박자 늦게야 그 인물이 배세진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
배세진은 말 한마디 하지 않았는데도 평소 아이돌 배세진과 전혀 다른 인물로 보였다. 아까 영어로 외칠 때 목소리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심지어 대학생이 테스타를 너무 잘 알고 있던 사람인데도, 아니 그래서 더 낯설었다.
그 짧은 순간에 배세진은 자신이 부여한 캐릭터성을 어필한 것이다.
‘뭐야.’
김래빈의 팬은 전에는 짐짝, 이제는 마스코트처럼 취급하던 깍두기의 전문 분야 재능에 침을 삼켰다.
그리고 다시 전환된 화면구도.
7명의 밴드 멤버들이 쓰러진 병사들을 무시한 채로 유유히 주인공의 테이블을 지나가는 것이 짧게 비쳤다.
배세진은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또 들으러 와.] [그것, 음, 참, 영광….]그러나 주인공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화면에서 사라지더니, 문 열고 나가는 SF 효과음만 남는다.
슈욱!
[…….]그것을 화면 안에서 눈을 크게 뜬 채 지켜보던 주연 둘은 곧 모가지를 숙이고 속삭였다.
[봤지. 이런 동네야.] [……오.]주인공은 눈을 끔벅였다.
영화관이 다시 웃음을 가득 찼다. 출연한 카메오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만 누리는 재미와 반가움이었다.
그리고 김래빈의 팬은 팝콘을 든 채로 짧게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웃음으로 마무리한 그 씬은 누가 봐도 이 세계관의 도입을 주인공과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소개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유머와 반전, 그리고 멋짐.
세 가지 덕목을 모두 갖춘 카메오의 출연.
‘와 X발.’
T1이 이렇게 일을 잘할 리… 아니, 아니다. 이것도 결국 멤버가 잘 받아먹은 덕이다. 그 새끼들 덕이 아니다.
‘배세진….’
유독 하드캐리한 멤버의 이름을 답지 않게 읊조리던 김래빈의 팬은 벼락 맞은 듯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고 보니, 설마 연주하던 곡이?
그리고 술집에서 들은 밴드의 음악이 최종 전투씬에 이어 엔딩 스크롤에서 보컬과 함께 흘러나온 순간, 그녀는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Exploding far away
팝송에도 짝 달라붙는 이 고음.
그리고, 이 돌아버리게 좋은 OST를 뽑은 게 대체 누구겠는가.
‘김래빈! 박문대!’
그녀의 픽은 역시 실패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영화 시사회가 끝나자마자 다시 접속한 인터넷에서는, 벌써 이 짧은 카메오와 OST로 인한 파장이 터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