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337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37화
테스타의 기존 영화 카메오 출연 내용을 다시 보자.
-주인공이 대규모 전투를 주도할 때, 한 조연을 백업해 주고 사라지는 역할.
‘오마주나 패러디를 등장시키기 딱 적절한 구성이긴 하군.’
대충 시나리오 장면을 보니 우리뿐만 아니라 게임 캐릭터를 지나가듯 꽤 많이 등장시킬 것 같다.
‘추측하자면 아마 영화 중후반부 클라이맥스 직전.’
그런데 우리만 갑자기 기성 연기자도 아니며 CG도 아닌 채로 게임 캐릭터랍시고 툭 튀어나오면 어떻게 되겠는가.
잘해도 떨떠름한 본전.
조금만 어설프면 숙연해진다.
‘더 나가면 인터넷 조롱감이 되는 거고.’
감독이나 현장에서 안 좋아할 만도 하군. 이건 분명 제작사 쪽에서 기업 대 기업으로서 한 선택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 앞에 앉아 있는 프로듀서는 딱 제작사와 제작진 사이에 위치한 실무진 대가리.
권한은 있지만, 어쩌면 현장에 공감도 할 수 있는 위치다.
그런데 심지어 지금 우리 쪽에서 명분을 당겨온 상태다. 저 사람은 들을 준비가 되었다.
‘선아현이 분위기를 잘 조성해 줬어.’
이제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괜찮아 보이는 의견이면 수용하겠지.
그래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선 당근.
“저희도 촬영장의 스케줄을 침해할 생각은 없습니다. 애초에 투어 일정 때문에 불가능하기도 하고요.”
우리도 바빠 새끼야.
통역이 전달되자 프로듀서가 꽤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말을 계속했다.
“그러니 테스타가 나왔다는 걸 알아볼 정도로만 간단히 추가 진행하면 어떨까요. 저희 계약은 이행되어야 하니까요.”
통역가가 프로듀서의 말을 전달했다.
“최대한 유사한 장면을 확인해서 스케줄을 확보하도록 진행해 보자고 하시네요.”
우리도 숙인다고 생각하니 냉큼 물었군.
그럴 줄 알았지만, 그대론 안 되겠는데.
나는 내심 웃었다.
그 X 같은 코스프레 느낌으로 전투 씬에 출연할 수는 없지.
다른 이미지로 나올 것이다.
“그렇게 어렵게 맞추면 서로 불편하니까, 좀 더 편하게 하셔도 괜찮습니다.”
유도한다.
나는 비행기에서 시나리오 요약본을 보며 눈여겨 뒀던 장면들을 쭉 떠올렸다.
그리고 그중 하나를 집어냈다.
“차라리 이 씬 같은 건 어떠세요?”
촬영장에서 이리저리 다니며 눈칫밥 먹던 우리 쪽 스태프에게, 호텔에 귀가하자마자 쭉 물어봤기 때문이다.
내가 찍어둔 장면 중에 혹시 스태프가 언급하는 걸 들은 것 없는지.
그리고 하나를 건졌다.
-아, 이거….
-말하던가요.
-네. 음, 얼마 후에 이 배우가 이 세트를 쓴다고 했던 것 같은데요?
그게 바로 이 씬이다.
스케줄 상 딱 맞는 최종안.
나는 프로듀서한테 요약본의 해당 페이지를 내밀었다.
“가수는 가수 역할을 하는 게 더 재밌잖아요. 저희는 가수니까 대형 전투 장면은 어색해 보일 수도 있고요.”
촬영 스케줄에 거의 지장을 주지 않도록 치고 빠질 수 있으며 동시에 우리가 이미지로 써먹을 만한 컷.
이걸로 간다.
“딱히 해주실 건 없고, 말 한마디랑 백그라운드 삽입이면 끝이라 편하게 쓰실 것 같아서.”
프로듀서는 통역의 말을 들었다. 나는 살짝 주변을 돌아보았다.
호텔에서 진작 합의된 사항이었기 때문에 다들 특별한 동요는 없었다.
다만 프로듀서와 더 가까운 쪽에 앉아 있던 차유진이 익살스럽게 살짝 눈썹을 들어 올렸다.
뭔가 들은 것 같았다.
‘오.’
차유진은 씩 웃었다. 대충 무슨 말이 오가는지 알겠군.
얼마 뒤.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하시네요.”
사실상 오케이 사인이었다.
‘그렇지.’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사흘 뒤 오후, 카메오 촬영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 * *
늦겨울 오전.
할리우드의 촬영장이 늘 그렇듯이, 근무자들은 자신들이 할 일을 정확히 알고 있다.
비록 그들을 기다리는 것이 박봉, 홀대, 하기 싫은 일의 연속일 뿐이라도 다를 건 없었다. 오로지 생계를 위한 것이었다면 로스쿨을 갔지 여기 있지는 않을 테니까.
제작팀의 발이나 다름없는 어시스턴트도 마찬가지였다. PA 중 막내인 그녀는 촬영장의 커피를 체크하다가 겨우 브리핑을 들었다.
“추가 인원이 있다고요?”
짧은 카메오 출연이라지만, 이렇게 당일에 갑작스럽게 추가되는 건 거의 생기지 않는 일이었다.
대체 그 ‘예외’가 누군지 묻는 그녀에게 팀원을 짧게 대답했다.
“KPOP 스타.”
“아.”
며칠 전에 마음대로 자리를 이탈했던 외국인들이었다.
본인들 나라에서는 얼마나 대단한 인지도를 가졌는지 모르나, KPOP이 뭔지 아는 그녀도 모르는 밴드였다.
‘VTIC? 내가 아는 KPOP 보이밴드 이름은 딱 그 하나뿐이지만.’
KPOP에 미쳐 있는 자신의 여동생을 떠올린 그녀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으나, 곧 폈다.
“확실히 조안이 무례하긴 했죠.”
당시 촬영 때 조연출과 제작팀 절반이 취한 태도가 너무하긴 했으니까.
무명 배우에게 할 법한 짓이었다. 무명이라고 그런 짓을 해도 괜찮냐는 다른 논의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탈이라니 배짱도 좋지.”
팀원의 말은 반어법이었다.
그것도 참지 못해 트레일러를 이탈할 정도라면, 할리우드에서 성공하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거친 하루겠어.’
그녀는 하루 만에 촬영장을 박차고 나간 이 밴드가 자신의 오늘을 얼마나 엉망으로 만들지를 짧게 가늠하다가, 결국 한숨을 쉬었다.
“촬영 연장인가요?”
“30분.”
“어… 스티브가 누구 하나 안 죽이길 기도해야겠네요.”
“짧게 끝나길 기도해야지.”
잡담은 금방 끝났다. 그녀는 호출을 받아 다시 현장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이번 감독이 CG를 최대한 자제해 세트 비용에 덕지덕지 바른 덕에 세트와 효과는 극히 현실적이었다.
초록 쫄쫄이만 입고 연기하는 경우도 잦은 이 영화 시리즈에선 드물게 연기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그래도… 여기서 대체 뭘 찍겠다는 거지?’
이 씬은 우주 정거장에 처음 나온 주인공이 술집에 들어갔다가 조력자를 만나는, 세계관의 거대한 범주를 보여주는 초반부였다.
어디에도 괴상한 옷을 입은 KPOP 스타들이 낄 자리는 없었다.
‘뭐, 조연출인 조안은 알겠지.’
자신은 촬영 현장의 자질구레한 일이나 관리할 직책이었으니까. 그녀는 한숨을 참고 책상을 옮겼다.
그리고 의자 몇 개를 쌓아 들려던 순간이었다.
그녀의 발이 비틀렸다.
“어어.”
바닥을 잘못 디딘 것이다.
‘맙소사!’
어시스턴트는 순간 눈을 감았으나, 의자와 함께 바닥으로 무너지진 않았다.
대신 누군가가 그녀가 들고 있던 의자를 쑥 빼앗아갔다.
“당신 괜찮아요?”
“…! 아, 아… 네.”
“맙소사, 뭘 이렇게 많이 짊어졌어요? 나한텐 저기 노는 사람들도 보이는데요.”
활기차고 여유로운 목소리였다.
‘누구지?’
그녀는 순간 의아하면서도 주저앉은 몸부터 일으켰다.
그리고 놀랐다.
“각자 맡은 일이 있으니……!”
“뭐, 그건 맞겠네요.”
고개를 들자, 열 명이 넘는 사람이 앞에 서 있던 것이다. 전부 동양인에, 대부분 남성.
그리고 그녀의 짐을 들어준 남자, 훤칠한 소년이 씩 웃었다.
“제 일은 카메오고요. 반가워요. 테스타입니다.”
“안녕하세요!”
뒤에서 같이 인사하는 또래의 소년들은 제법 정중했다. 다들 피부와 생김새가 좋았으나, 몇몇은 그녀의 눈엔 지나치게 예쁘장했다.
‘그래도 태도가 좋네.’
몇 분 전 가졌던 우려는 농담처럼 사라졌다.
“안녕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녀는 ‘영어를 잘하시네요’ 따위의 말을 불쑥 떠올렸다가 삼키고 정상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그것을 눈치라도 챈 듯이, 뒤에 있던 분홍빛 머리의 소년이 묘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이 녀석은 여기 출신입니다. 캘리포니아.”
“아, 그래요.”
그러고 보니, 누가 들어도 이 주의 억양이라 고개를 들었을 때 더 놀란 것이다.
그녀는 새삼 자신을 도운 소년을 살폈다.
몸집이 좋고 여유롭고, 잘나가는 사람 특유의 기세가 있다.
“당신은 유진이라고 부르면 돼요.”
“음, 그렇군요.”
“오늘은 트레일러에서 그 맛있는 샌드위치를 먹지 않아도 괜찮겠죠?”
저 말투… 확실히 캘리포니아 출신이 맞았다. 부정적인 말도 일단 긍정적으로 흐려 말하기. 그녀는 일단 힘겹게 웃었다.
“그럴지도요. 일단 바로 조안… 조연출님께 안내해 드릴게요.”
“고마워요!”
이들을 바로 조연출에게 넘기기 위해 발걸음을 옮길 때, 그녀는 뒤에서 외국어를 들었다.
[이야, 유진이가 너무 말을 잘하는데?] [알아요!]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밝은 말투였다. 그리 기분이 나쁘진 않은 모양이다.
‘카메오 분량이라도 늘려준 건가?’
확실한 건 조연출의 태도도 변했다는 것이다. 조안은 갑자기 과하게 정중한 태도로 이들을 대하기 시작했다.
‘대체 뭐야?’
어쨌든, 그들은 오늘 촬영하는 주연 배우들이 오기 전에 빠르게 세트를 선점했다.
그녀도 빠르게 움직였다.
우선 간식과 음료.
“다 끝나고 어디로 가져다드리면 될까요?”
그들의 스태프 대신 분홍빛 머리 소년이 힐긋 자신을 돌아보더니, 짧게 대답하며 손을 올렸다.
올려?
“감사합니다. 저 위요.”
“…?”
그녀는 손을 따라 시선을 올렸다.
소년은 딱딱한 말투로 이어서 말했다.
“우리는 공연할 거예요.”
맙소사.
손이 가리키는 곳은… 술집의 한구석, 완성도를 위해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술집의 소형 스테이지.
저들은 이 씬에서 백그라운드로 비치는 공연 엑스트라 역할로 온 것이다!
터무니없이 소박했다.
‘이걸… 이걸 왜 하는 거지?’
아무리 분장을 했다지만, 이 정신 나간 세트 분위기가 과연 저들과 어울릴지도 문제였다.
그 와중에도 촬영 준비는 착실히 진행되어, 소년들은 카메라 테스트를 거쳐 정말로 술집 뒷무대에 섰다.
‘어차피 소리는 후시 처리할 테니 적당히 시늉만 하면 될 텐데.’
그들은 마이크를 조절하고, 심지어 하나는 실제로 키보드에 앉기까지 했다. 괴상한 우주 악기의 쓰임새를 묻는 소년도 있었다.
그리고 별 기대 없이 조용한 현장에서 실제로 촬영이 시작된 순간.
우웅-
술집 세트가 어두워지고, 미러볼과 야광 불빛이 번뜩이는 가운데.
-Black hole
노래를 부르는 용도가 아닌 마이크로부터 풍부한 소리가 울린다.
“…!”
기가 막힌 음색이 화음을 이루며 레이저나 별빛처럼 반주가 쏟아졌다.
그러나 우아하진 않았다. 마구잡이로 그린 크레파스 같은 질감의 소리가 튀었다.
키치한 스페이스 오페라에 어울리는 빠른 비트의 중독적인 곡.
그리고 좁은 무대 위에서 상당히 반항적인 태도로 노래를 부르는 밴드.
-Let me swallow it
그 모든 게 SF적 뒷골목의 면모를 충실히 뽐내는 괴상망측한 술집의 분위기에 말도 안 되게 잘 녹아들었다.
순간을 잡아채는 재능.
“…….”
그녀는, 왜 저 소년이 굳이 출생 주를 떠나 먼 나라까지 간 건지 심정적으로 납득하게 되었다.
‘저런 팀을 거부하긴 힘들지.’
그들은 애초에 팀으로 구성되지 않았으며 서바이벌 생존자로 묶은 임시 그룹일 뿐이라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기함할 생각이었다.
어쨌든, 단 2분으로 편곡된 OST 퍼포먼스는 그녀뿐만 아니라 꽤 많은 근무자를 멍하게 만들었다.
고조되는 파트와 클라이맥스에서는 저도 모르게 구경하다 살짝 몸을 흔드는 스태프까지 생길 정도였다.
툭.
“감사합니다.”
끝나고 인사를 하는 이들의 여유까지 자체적인 위상을 더했다. 정말 인기 있는 연예인다운 자세였다.
‘…예상외로 굉장히 좋았어.’
게다가 그들은 끝까지 카메라를 없는 것처럼 보지 않았다. 영화를 위해 능숙하게 준비된 자세였다.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어차피 다 편집될 텐데…!’
영화에서 이 공연을 살릴 확률은 전무했다. 너무나 뜬금없고 외부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건 기껏해야 비하인드로 공개될 후보로서 찍은 것이다!
그녀는 어쩐지 그 사실이 더없이 부당하게 느껴졌다.
저들이 왜 이걸 카메오 씬으로 고른 건지 알겠지만, 이 분야에 대해 잘 몰라서 실수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휴.”
다만 헛된 걱정이었다.
정작 당사자들은 애초에 그런 기대는 하고 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노린 것은 단순히 이 공연이 멋지게 보여 영화에 실리는 게 아니었다.
그다음에 찍을 것과의 연계성이었다.
“으음.”
“공연은 더 안 찍겠죠?”
“분위기를 보니 그럴 것 같네.”
마이크에서 떨어진 박문대는 다음 컷을 위해 대기하는 멤버들의 사이에서, 배세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형, 이제 천재 아역 배우 출신의 연기력을 보여주세요.”
“화이팅!”
“부담을 가지실 필요는 없으나 저희의 깊은 믿음과 신뢰는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대사가 한 줄인데 무슨 놈의 카메라 장악력 같은 소리야’ 따위의 반응을 하던 지난날이 무색하게, 배세진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오오!”
‘몰입했군.’
박문대는 배세진의 상태를 판단했다.
스태프가 주는 물을 거절한 채, 배세진은 단지 차분한 눈으로 가운 의상을 고쳐 입었다.
그리고 얼마 뒤, 배우들이 합류한 뒤 진행한 ‘진짜’ 카메오 촬영.
“…!”
막내 어시스턴트는 KPOP 밴드가 대체 왜 이걸 고른 것인지 현장에서 완전히 이해하게 된다.
동시에 혼란에 휩싸인다.
‘저 사람은… 왜 보이밴드를 하는 거지?’
* * *
그로부터 2개월 후.
이 영화의 가편집 내부 블라인드 시사회가 첫선을 보였고, 테스타의 편집 분량은 이 시사회의 피드백에도 줄어들지 않았다.
다만 소문이 퍼져, 국내에서도 추측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
[“한국 게임의 세계관” 라임스톤 신작 영화… KPOP 아이돌 출연하나]잘 마른 장작에 성냥이 떨어지기 직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