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 9 Master Inspection Technique RAW novel - chapter 125
연이은 행운이 거듭되어서 이뤄낸 쾌거였다.
‘그러면 혹시…’
불과 몇 시간 전에 품었던 뜬금없는 희망이 구체적인 형태로 머릿속으
로 그려졌다. 이제 구체적이 된 희망이 과연 정말로 가능한지만 확인하고
그대로 실행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제발. 나무야 도와줘라. 우리 종족이 너희를 얼마나 아껴왔는지 알지?
이제 네가 우리를 좀 도와줘라.’
이젠 마차의 바닥이 된 나무에게까지 속으로 간절히 부탁을 하며 휴이
는 떨리는 손으로 구멍 근처의 바닥들을 톡톡 두드려보았다. 그러자 나무
부스러기 같은 게 부스스하고 조금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야호. 역시 로이덴님이 저희를 버리지 않을 줄 알았어요. 고마워요. 마
을에 돌아가면 매일같이 로이덴님께 기도하러 갈게요. 그러니 끝까지 보살
펴 주세요. 그리고 나무 너도 고마워.’
사막 속에서 하루 종일 물 한 모금 없이 고생하다가 시원한 오아시스를
발견하면 이럴까? 휴이는 정말로 마음껏 환호성을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러진 못하고 이렇게 마음속으로만 외치며 로이덴에
게 기도 아닌 기도를 했다.
“유리나. 어서 일어나. 어서.”
혹여나 밖에서 들을까봐 귓가에 속삭이는 휴이의 음성에 유리나가 눈을
떴다.
“무슨 일이야?”
잠에서 덜 깬 목소리였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휴이의 눈이 생기로 가
득 찬 것을 보니 유리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혹시.”
조심스런 목소리에 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방법이 생겼어. 그러니까 어서 일어나. 쉿.”
무심코 소리를 지르려던 유리나의 입을 휴이가 재빠르게 막으며 검지
하나를 자신의 입술 위에 대며 말한다.
“소리 내는 거 금물이다. 알았지? 자 이리로 와.”
유리나는 조용히 휴이가 이끄는 곳으로 다가가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
았다. 그곳엔 처음 휴이와 발견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큰 구멍이 있었다.
혼자서 나머지 구멍까지 다 만든 뒤에서야 휴이가 유리나를 부른 것이
다. 식은 땀을 나는 일이었지만 워낙 나무가 많이 썩어 있고 마차가 울퉁불
퉁한 길을 달리느라 시끄러운 소음이 많이 나서 휴이는 혼자서 이 일을
해낼 수 있었다. 그는 뿌듯하게 넓은 구멍을 한 번 보고 다시 유리나를 보
았다.
“마차가 달리고 있으니까 조심히 내려. 나도 곧 뒤따라 내려갈게. 어서.
한 시라고 빨리 도망가지 않으면 영원히 인간들의 노예가 될 거야. 서둘
러.”
“알았어. 그럼 나 먼저 내려가 볼게.”
조금 겁이 났지만 이 길 밖에 없었기에 유리나는 금방 결심을 하고 고
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구멍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만 더 내려가면 돼. 하나, 둘, 셋.’
그렇게 유리나는 마음속으로 셋을 세며 바닥과 충돌했을 때 받을 충격
에 대비하고 밑으로 뛰어내렸다. 그런 그녀의 뒤로 휴이가 주저 없이 뛰어
내렸고 이렇게 엘프 남매는 일단 노예 상인들에게서 탈출 하는 것을 성공
했다.
“일거리가 생겼다.”
메케한 담배 연기를 내 뿜으며 한 중년인이 앞에 있는 둘을 보며 말했
다. 회갈색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번득이는 것이 예사로운 중년인 같진 않
다.
예사롭지 않기는 그 앞에 있는 두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한쪽 볼에 긴
칼 자국이 있는 자나 팔에 그을린 흔적이 있는 자나. 상처만 봐도 평범한
삶을 살아온 자들은 아닌 듯싶다.
“이번엔 어디 노예입니까?”
볼에 칼자국이 난 남자가 물었다. 녹이 슨 쇠사슬에서 나는 소음 같은
목소리였다.
“훌리드 공작가로 막 팔린 남자 엘프 아이 하나와 여자 엘프 아이 하나
가 이송되는 도중에 도망쳤다는군. 어제 저녁까지는 봤다니까 아마 오늘
새벽에 도망을 친 모양이다. 팔찌는 벗지 못한 것 같다니 잡는데 그리 어
렵진 않을 거다. 가는데 시간도 있으니 내일 모레까지 잡아와라.”
“어린 녀석들이 가만히 팔려나가면 될 것을. 금방 잡힐 텐데 괜히 헛고
생을 하는군요.”
붉은 검 집에 들어있는 검을 가만히 뺏다 집어넣으며 볼에 칼자국이 있
는 자가 또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에 옆에 있던 마법사가 로브 속으로 화
상 입은 한쪽 팔을 가리며 씩 웃는다.
“뭐 그런 녀석들이 있는 덕에 우리도 계속 밥을 벌어먹고 있으니 나쁠
거 없잖아?”
“루드 말이 맞다. 엘프와 드워프 녀석들이 꽁꽁 숨어버려서 새로운 녀석
들을 찾기도 힘든 마당에 그렇게 도망이라도 치는 녀석들 덕에 밥 안 굶
는 줄 알거라. 이번 녀석들은 꼬마 녀석들이라 호기심에 인간 세상으로 내
려와서 쉽게 잡은 모양이지만, 그런 놈들이 어디 일년에 하나라도 나오나?
어서 그 꼬마들이나 잡아와라.”
중년인의 재차 이어진 명령이 떨어지자 의자에 앉아있던 둘이 일어났다.
“다녀오지요.”
“알겠습니다.”
둘이 나가고 얼마 뒤, 중년인이 혼자 있는 방안으로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왔다. 한쪽 발에 쪽지가 묶여있는 그들만의 전서구용 새였다.
중년인은 주저없이 비둘기의 다리에서 쪽지를 뺐다.
한줄 밖에 없는 간단한 메모였지만 그것을 본 중년인의 입술이 잔뜩 위
로 말려 올라갔다.
“이번 달은 오랜만에 정말 괜찮군. 크흐흐흐.”
화르륵.
담뱃불에 쪽지가 순식간에 불타오르는 소리와 함께 방안에는 그렇게 중
년인의 낮고 음울한 웃음소리가 울렸다.
열사의 땅과 이누스 숲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베룻의 소도시, 르키엔
의 거리에 못 보던 두 아이가 나타났다.
어디서 구했는지 거적 데기 같은 회색 모포로 머리와 몸을 칭칭 감은
아이들은 두 쌍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만 내놓고 앉아서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멍하게 보고 있었다.
모포 사이로 보이는 연보라색 머리카락과 그보다 더 진한 보라색 눈동
자가 똑같은 것이 어딜 봐도 남매인 게 분명한 아이들이었다. 반 정도 밖
에 보이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그것만 보아도 사람들은 아이들이 천사같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두 아이들 모두가 얼굴색이 창백하다. 무슨 병에 걸렸는지 가끔
씩 몸도 부들부들 떠는 것이 여간 불쌍한 게 아니다.
하지만 낯선 아이들이기에 그들을 선뜻 자신의 집에 데려가려는 사람들
은 없었다. 대신 보다 못한 몇몇이 그들에게 동전 몇 개를 쥐어주고 갈
뿐이다.
“쯧쯧. 어린 것들이 불쌍하구나. 못 먹어서 병까지 걸렸는데 이렇게 나
와 있다니. 적은 돈이지만 이걸로 빵이라도 먹어라.”
또 한명의 사람이 그래도 좀 씩씩해 보이는 남자 아이에게 돈을 쥐어주
었다. 그런데 아이들 중 누구도 고맙다는 말을 하는 이가 없었다. 오늘 내
내 본 바로는 돈을 좋아하는 것 같진 않았어도 이렇게 사람들이 주고 가
면 고맙다는 인사라도 했는데, 지금은 어찌 된 영문인지 아이들 모두가 남
자가 아닌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남자가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 가보니 엘프 둘과 드워프 둘이 후드를 쓴
한 남자와 함께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엘프와 드워프들을 보고 신기해서 그러는 모양이구나. 아무튼 좋아하는
것 같으니 나쁠 건 없겠지. 그럼 난 이만 가마.”
여전히 아이들은 홀린 듯이 엘프와 드워프들을 보고 있었지만 남자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마디 하고 떠났다.
“일어날 수 있어? 저들이면 우릴 도와 줄 지도 몰라.”
“아프지만 괜찮아. 갈 수 있을 거야.”
남자가 있었던 것을 알기나 하는지, 남자가 사라지자 아이들은 그렇게
서로 대화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을 것 같은데도 서로를 부축하며 일어난 둘의
눈이 유난히도 반짝거린다. 휴이와 유리나는 그렇게 엘프들과 드워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