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342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42화
주소를 알려준 적도 없고 사전에 약속을 잡은 적도 없는 놈이 다짜고짜 숙소 문 앞에 서 있다.
초인종도 안 눌렀으면서 뜬금없이 부재중 전화는 더럽게 많이 건 상태.
그런데 그 새끼가 이미 주옥같은 미친 짓 전적이 있는 놈이라면?
‘X발.’
나는 체인 사이로 보이는 청려의 표정을 다시 확인했다.
여전히 놀랍도록 표정 없는 얼굴이다.
“왜 왔냐.”
“일부러 찾아온 건 아니에요. 숙소 돌아가는 길에 들러봤어요.”
“주소를 알려준 적은 없을 텐데.”
“지난번에 이야기했잖아요.”
그런 적 없다.
“몇 층에 사는지 알려줬잖아요.”
“…….”
그래, 전에 새벽에 개 데리고 있는 놈을 만났을 때 ‘류건우’의 정보 언급 전에 분위기를 풀기 위해 지나가듯 말하긴 했다.
그리고 내가 어느 라인쯤에 사는지 안다면 당연히 어디 사는지 알 수 있겠다만….
‘그건 정보 수집해서 끼워 맞춘 거잖아 새끼야.’
어디 재시작같이 비빌 구석 남아 있는 놈이나 거침없이 가질 법한 버릇이다.
이 새끼가 이 정도 사회적 판단도 못 할 정도로 맛이 가진 않았을 텐데.
그러나 청려의 말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전해줄 소식이 있어서.”
“무슨….”
그리고 예상치 못한 답이 나왔다.
“콩이가 아파요.”
“……!”
뭐?
“지금 병원에 맡기고 돌아오는 길이에요.”
나는 그제야 이 새끼의 괴상한 태도가 무엇인지 맞게 해석해냈다.
놈은… 경황이 없던 것이다.
‘…X발.’
나는 다른 의미로 한숨을 참았다.
“잠깐.”
달칵.
나는 체인을 풀고 다시 문을 열어 밖으로 나왔다. 어차피 이 층에는 우리 숙소뿐이니 상관없겠지.
“…어디가 아픈데.”
“급성 신부전.”
청려의 눈이 살짝 뒤틀렸다.
“그 직전까지 갔죠. 일하는 사람이… 포도를 가져와서는 제대로 안 치워서.”
“…….”
“이건 또 처음 겪는 일이네요.”
그 ‘일하는 사람’ 뒤통수에 오함마를 갈겼다고 해도 믿을 만큼 평온한 목소리다.
나는 미간을 눌렀다.
“사과는 받았냐.”
“그게 중요한가요? 입 좀 움직인다고 대신 아픈 것도 아닐 텐데.”
평생 써도 못 벌 돈 벌어놓은 놈다운 가치 판단이었다.
‘개 챙기느라 일단 튀어나왔다 이거군.’
그리고 조치를 끝마치고 나니… 돌아오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나 보지.
‘이거 알려주려고 그렇게 전화를 한 거였나.’
나는 부재중 전화의 이유를 짐작했다. 그리고 청려는 조용히 말을 계속했다.
“그래서 한동안은 콩이 근황 사진이 없을 테니, 설명해 줄까 하고.”
“…….”
“후배님, 콩이 좋아하잖아요.”
나 원 참.
“문자로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아.”
설마 지금 깨달았냐?
그러나 놈은 얼른 말을 틀었다.
“음… 바로 얼굴 보고 할 수 있으니까요?”
“전화로 말할 수도 있었고.”
“그건 예고용이었죠. 말없이 찾아오면 실례니까. 숙소에 다른 사람도 있을 테니 조심하는 게 맞잖아요.”
“……내가 숙소에 있을 건 어떻게 짐작했는데.”
“없으면 돌아가면 되는데 짐작할 필요가 있나.”
굉장히 합리적인 것처럼 개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제정신이 아닌 건 맞군.
나는 눈을 문질렀다.
아무래도 이 새끼 더럽게 초조해서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은데, 본인이 그런 상태인 걸 전혀 모르는 모양이었다.
“…네 개는 멀쩡할 거야.”
청려가 고개를 옆으로 숙인다.
“그래요? 어떻게 확신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전문 병원에 맡겼을 거 아니냐? 거기서 보호자를 바로 돌아가게 해줄 정도면 괜찮은 거겠지. 너한테도 아마 경과를 설명했을 텐데.”
“…….”
놈은 꽤 오래 허공을 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긴 했죠.”
“…….”
“빨리 조치해서 신장이 크게 상하진 않았나 봐요. 수액도 잘 맞았고. 가능성은 낮지만, 혹시라도 콩이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면 연락주겠다고 했죠.”
“그래.”
“어차피 내일부터 스케줄이 있어서 내가 케어해 줄 수도 없는 상황이고.”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판단했는데 왜.”
“글쎄요. 역시 살다 보면 예상할 수 없는 우연한 사고가 참 자주 일어나는구나 싶어서?”
“…음.”
놈의 눈이 어두웠다.
개 이야기이길 바란다. 설마 포도 흘린 놈에게 사고가 나게 해주겠다는 건 아니겠지.
‘사실 어느 쪽이어도 썩 좋은 징조는 아닌데.’
아무래도 저놈 인생에서 그 개가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클 것이다.
이 새끼가 이렇게 멘탈 나간 건 VTIC 메인보컬이 나가리된 이후 처음 아닌가.
‘…비슷한 상황이긴 하군.’
통제 불가능한 요인 때문에 삶에서 중요한 무언가가 망가질 것 같을 때 말이다.
이거… 자칫하면 리셋증후군 재발하는 건 아니겠지.
이러다 골드 2 죽이고 경과 좀 보자는 말이라도 튀어나와도 안 어색할 것 같…….
‘그건 안 되지.’
나는 짧게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이 새끼도 삶의 중심에 뭘 두든 좀 마음 편히 살 필요가 있다.
“어떻게 살아도 사고는 일어나지. 누구든 그걸 다 대비하는 건 불가능해.”
“…….”
“그러니까 일어난 사고에 잘 대처하는 게 중요한 거겠지. 그런 면에서, 넌 오늘 꽤 잘한 것 같은데.”
“…!”
“네가 빠르게 조치해서 개가 많이 아프지 않았잖아. 그 덕분에 다시 건강해진다니 다행이고.”
나는 다시 한번, 짧게 결론을 내렸다.
“잘한 거야.”
“…….”
청려는 잠깐 멍하니 서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요.”
“그러니까 너희 개가….”
“맞아요. 콩이가 후유증 없이 잘 회복되면 문제는 없죠.”
여전히 말은 안 통하는군. 그럴 줄 알았다.
그래도 한결 여유가 돌아온 건지, 말투가 진정되었다. 그리고 표정도 평소다운 상태로 돌아왔다.
“퇴원하면 한번 보러와요.”
“봐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놈은 그제야 면상에 웃음기가 돌아왔다.
‘됐군.’
왜 날 죽이려고 한 새끼를 사후 케어까지 하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만, 정신 차려보니 무급으로 노동 중이다.
그것도 다른 노동을 해야 하는 시간에 말이다.
‘작곡 캠프 휴식 시간이….’
나는 그제야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다가, 부재중 전화와 마지막 통화의 시간 텀이 꽤 차이가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의 30분인데.’
청려는 생각보다 이 현관문밖에 오래 서 있던 모양이다.
‘저놈 기준으로 비합리적인 수준의 시간 낭비다.’
왜 그 개를 데려왔는지 자세한 사정을 아는 게 나뿐이라 답답해서 그런 것 같은데 말이지.
나는 좀 갈등하다가 입을 열었다.
“너희 그룹 사람들은 알고 있냐.”
청려는 순순히 입을 열었다.
“아니요. 지금은 숙소에 없어서. 다 회사에 보내놨거든요. 그 일 때문에.”
“…?”
그 일?
“아.”
청려가 고개를 옆으로 숙였다.
“후배님, 오늘 인터넷 안 봤구나.”
“…….”
“그래요. 전화를 일부러 안 받은 게 아니라면 그게 맞겠네요. 스마트폰을 안 쓰고 있죠? 앨범 준비 중, 아니면 휴식인가.”
이 새낀 왜 자꾸 남 상태를 추리하려고 드냐.
“무슨 일이 터졌는데.”
설마 또 사회면인가.
VTIC의 남은 놈 중에 그럴 싹수로 보이는 놈은 없었다만, 그럴 것 같은 놈만 일치는 건 아니더라고.
하지만 청려는 심드렁했다.
“일이 터진 건 아니고, 올 일이 왔다고 해야 하나.”
“올 일?”
“음? 다들 입대해야죠.”
“…!!”
뜬금없이 뇌리에 벼락이 내리쳤다.
벌써 날짜가… 아니, 우리야 좋다만, 너희 아직 아닐 텐데.
“아직 기한 남지 않았나? 너희 무슨 훈장 받아서 입대 연기했다고 들었는데.”
“음… 기간 맞춰서 하기로 이미 이야기가 끝나서.”
청려가 희미하게 웃으며 벽에 기댔다.
“그룹 수명을 더 늘리려면 그게 가장 좋다고 합의를 봐서요.”
“…아.”
설마.
“동시 입대. 동시 제대.”
“…….”
설마가 사람 잡았다.
그룹 전원이 같은 타이밍에 입대해서 제대한다는 희대의 단체 행동.
제일 빠르게 완전체로 복귀가 가능하긴 하지만, 그 사이사이 개인 활동을 아예 틀어막는 극약처방.
그 짓을 진짜 하는 놈들이 있을 줄이야.
“그래서 말했잖아요. 올해 대상은 좀 쉬울 거라고.”
“…….”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이해가 된다.
“그럼 너도 가는 거겠고.”
그러면 그렇게까지 멘탈이 깨진 것도 리셋증후군이고 뭐고 그냥 입대 전 심란함도 한몫한….
“음? 아니요.”
야.
“6개월만 간다니까요. 하하, 내년에나 가죠. 다 같이 제대하는 편이 더 강렬한 게 당연하지 않나?”
정말 한결같이 주둥아리로 사람을 잘 긁는 놈이다.
“그러니까 올 연말에 시상식엔 나만 나오게 되겠네요. 그게 오늘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런 상황이죠.”
“그러냐.”
“네.”
어쨌든 청려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좀 가라앉아 보이긴 했으나 특별한 수준은 아니다.
‘난리났겠군.’
나는 인터넷 상황을 짐작해보다가 그만뒀다.
“기분 좋지 않아요? 이기기 힘든 경쟁자가 사라져 주는 건데요.”
“안 가도 이길 수 있어.”
“아, 그래요.”
안 믿는다 이거군. X발.
“넌 기분이 어떤데.”
“글쎄요. 좋진 않죠. 공백기 관리가 까다로워서.”
예상보다도 철저히 업무적인 반응이다.
같이 지내던 놈들이 다 빠진다는데도 이놈은 큰 인간적 감흥이 없어 보였다.
‘흠.’
“좀 신기하긴 하네요. 여기까지 와본 건 처음이니까.”
“…….”
“숙소도 혼자 쓰겠고….”
말하던 놈은 순간, 입을 멈췄다. 그 순간 현관문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띠딕.
문이 열리는 소리다.
“…!”
그리고 상반신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큰세진이다.
“문대문대, 왜 밖에 나갔…,”
아무래도 쉬는 시간이 거의 끝나는데 내가 안 보여서 찾으러 온 모양이다.
하지만 곧 근처에 서 있는 청려를 보고 말을 멈췄다. 망할.
“이세진.”
“잠깐.”
그리고 놈은 순식간에 태세를 전환했다.
“아, 선배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야기 많이 전해 들었습니다. 여긴 어쩐 일로….”
“많이?”
“…….”
큰세진은 잠깐 말을 멈췄으나, 곧 똑같은 말투로 대꾸했다.
“네~ 많이.”
그 와중에 현관문 뒤에서 김래빈이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형, 누가 오셨습니까?”
“음~ 그게,”
“잠시만.”
안 되겠군. 나는 큰세진을 잡고 문 안으로 들어왔다.
쿵.
문이 닫히자마자 큰세진이 얼굴을 굳혔다.
“박문대, 저 사람이 여기 왜 있어.”
“개가 쓰러져서… 아니, 아무튼 우리 관련된 일은 아니고. 그보다 VTIC 군대 간다는데.”
“뭐??”
“헉, VTIC 선배님들께서 벌써 군대를 가십니까?”
“…….”
“맙소사. 그걸 알려주시려 찾아오신 겁니까?”
나는 튀어나온 김래빈을 보고, 일이 생각보다 커지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거실에 모여 있던 놈들이 최소한 김래빈 목소리는 다 들었거든.
“군대??”
“…지금 밖에 그놈이 있다고?”
“오우, 문대 형이 선배 불렀어요?”
“…! 혹시 저희 작업에 도움을 주시기 위해 조언을 받고자 섭외하신…….”
“잠깐.”
나는 일단 대화를 멈췄다. 식은땀이 다 나는군.
“우선 내가 부른 게 아니야.”
“그러면?”
나는 적당히 놈의 사정을 섞어서, ‘개가 사고를 당했는데 지인이 다 바빠서 딱히 이야기할 곳이 없어 찾아왔다’ 정도로 변명했다.
‘…아니, 생각해 보니 변명이 아니라 사실인데.’
얼떨결에 그렇게 됐군.
“우, 강아지 안됐어요….”
“그렇군요.”
내가 청려와 개같이 싸웠다는 정도만 아는 놈들은 그럭저럭 납득하는 얼굴이었다.
배세진은 당장 대문 열고 꺼지라고 외칠 것 같은 얼굴이었지만 류청우가 말리는 중이니 괜찮겠지.
나는 당장 클로징 멘트를 뱉었다.
“일단 보내고 올게.”
“아, 나도 대선배님 배웅해야지~”
“…….”
그래 마음대로 해라.
나는 굳이 큰세진을 떼어내지 않고 다시 현관을 열었다.
청려는 여전히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냥 돌아가지 좀 새끼야.
“다들 집에 있었나 봐요. 음, 곤란했다면 미안한데.”
“됐습니다.”
골치가 다 아프군.
“사과의 의미로 알려줄 걸 생각해 냈거든요.”
“예?”
청려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곧 스마트폰을 열어서 파일 하나를 내 쪽으로 전송했다.
“…?”
“…음원 파일이잖아.”
큰세진이 말이 맞았다. 하지만 곡은 아니었다.
[미래의 한낮 라디오 ? 스페이서 권희승 cut]그것은 골드 2가 출연한 한 라디오 방송 컷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