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343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43화
골드 2, 권희승.
이놈이 속한 그룹인 ‘스페이서’의 활동은 대강이라도 추적하고 있다.
당연하다. 같은 소속사의 같은 계열 후발주자라면 이변이 일어나진 않는지 항상 확인해야지.
게다가 어쨌든 미래를 약간이라도 아는 놈 아닌가. 무슨 이득을 보고 있을지 모른다.
물론 그건 이놈을 눈여겨보는 주목적은 아니지만.
‘써먹을 손패여서 그런 거지.’
나는 몇 달 전, 첫 번째 연말 시상식을 준비하는 놈을 회사에서 만났던 것을 떠올렸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정확히는 놈의 상태창을.
시기상 상태이상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을 타이밍이었건만, 놈에겐 아직도 상태이상이 떠 있었다.
다만 내용이 달랐다.
[!상태이상 : 메이크 잇 워크]-아이돌이면 역시 팀워크가 답인가?
: 기간 내로 팀이 공동 작업물을 발매하지 못할 시, ‘실패’.
기존의 것 대신 새로운 상태이상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채서담 형님이 알아서 그만두신 후로 팀 분위기가 진짜 좋아졌거든요! 이대로면 저희 다 사이좋게 쭉 가면 미션 성공…. ……? 이미 성공했다구요?
-으에에엑! 또 있다고요? 저 또 뭐 해야 해요? 뭐지??
즉, 놈은 이미 첫 번째 상태이상을 클리어했는데, 두 번째가 튀어나온 것이다.
아무래도 11개월은 1년에 가깝다고 시스템이 판단했나 보다. 이놈이 두 번째 상태이상을 받은 걸 보면.
‘…조건이 가혹해진 건가?’
이건 확실하지 않으니 젖혀두고.
어쨌든 새로운 시스템 이용자를 찾을 필요 없이 한 놈이 계속 가지고 있는 건 나에겐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품이 덜 드니까.
‘여기서 ‘공동 작업물’이야 셀프 프로듀싱을 의미하는 걸 테지.’
이거야 같은 소속사니 내가 좀 관여하면 1년 내 클리어도 무리 없을 테니 딱 관리하기 좋았다. 덕분에 가끔 컨택하며 동향을 잘 살폈다고 생각한다.
…눈앞의 VTIC 리더 새끼가 음원 파일을 내밀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뜻이다.
“왜 그러지? 확인해야죠.”
“…….”
개만 아니었어도 저 주둥아리를 그냥 두지 않았을 테지만, 일단 넘어가고.
나는 다시 골드 2가 출연한 라디오의 음원 파일을 내려다보았다.
‘이 라디오 프로그램.’
‘미래의 한낮 라디오’라면 나도 기억난다. 꽤 전통 있는 프로그램으로 우리가 신인일 적에도 나간 적이 있다.
‘미래’라는 예명의 방송인이 진행하는데, 말장난 삼아 10년 뒤 상황을 짐작해서 하는 미래 콩트가 유명했지.
-김래빈이 저한테 곡 100개 줬어요!
-차유진, 아무리 10년이란 세월이 지났더라도 동일 인물에게 100곡이나 주는 건 힘든….
-200개 줬어요!
-못 줘!
-애들… 아니, 30살 아저씨들 진정하세요.
나는 김래빈과 차유진이 했던 환장스러운 개판 콩트를 잠깐 떠올렸다가 지웠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의심스러운 눈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쳐다보았다.
‘이놈도 설마….’
나는 음량을 최대한 작게 해서 파일을 재생했다.
진행자의 목소리부터 들렸다.
[…특별한 친분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우리 권희승 씨가 VTIC의 청려 님, 테스타의 박문대 님과의 우정이 여전하다는 소문이 자자해요.]망할.
[최근엔 10주년 우정 여행을 다녀왔다고요? 어떻게 친해지셨나요?] [네… 저희가 다 미래를 알아서 친해졌어요.] [네?] […! 그 미래 라디오를 알아서~ 우리 진행자 미래 님을 알아서, 그 공통 친분으로요!] [아하~ 10년 전 희승 씨께서 우리 라디오 첫 출연이 굉장히 인상 깊으셨나 봐요.] [그, 그렇죠! 하하하!]“…….”
아마 순간적으로 진행자의 이름과 라임을 맞춰보는, 프로그램 띄우기용 콩트를 하려다가 무심코 말한 것 같았다.
그리고 말해놓고서 본인이 ‘헉, 그러고 보니 이거 맞는 말이네?’ 하고 움찔 굳은 거지.
‘이 긴장감 없는 새끼가….’
이 새끼가 초반 인터뷰에서 ‘친분 있는 선배님’으로 우리 둘을 찍었을 때 조졌어야 했나.
나는 한숨을 참았다.
‘…큰일은 아니다.’
미친 듯이 바쁜 신인 스케줄 속에서 잠도 거의 못 잔 상태라면 흔히 나올 법한 실수다.
아마 권희승의 팬들도 첫 라디오인데 쓰잘 것 없이 타 그룹 친분이나 물어봤다고 욕이나 퍼붓고 묻었겠지.
다만 청려가 나에게 굳이 이걸 알려준 이유는 알겠군.
나는 스마트폰을 쥐었다.
‘경고인가.’
좋게 보면 충고.
다른 새끼들과 비밀을 공유할 때의 위험성에 대해서 말이다.
“이건 관리가 필요한 것 같아서. 내가 할 수도 있지만… 후배님이 그걸 썩 좋아할 것 같지도 않고.”
놈이 빙긋 웃었다.
“우리가 동업 중인 게 그리 주의력 있는 부류는 아닌 것 같다, 음… 그 정도는 알려주면 좋을 것 같아서요. 어때요?”
“…….”
“원래 사람 관리가 가장 어렵잖아요.”
저건 비단 골드 2만 의미하는 게 아니다.
내가 내 옆에 있는 놈에게 비밀을 떠들어 둔 것도 포함한 거겠지.
“박문대.”
마침 큰세진이 입을 열었다. 놈은 돌아가는 꼴을 나름대로 짐작한 건지, 굳은 얼굴로 작게 중얼거렸다.
“얘… 권희승도 관계자야?”
“음?”
그러나 반응은 내가 아니라 다른 놈이 먼저 했다.
청려 말이다.
놈은 약간 의아하단 얼굴로 나와 큰세진을 번갈아 보더니, 곧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모르는구나. 미안해요.”
“…….”
“내 이야기도 했다고 해서 다 이야기한 줄 알았지. 여기까지였나.”
그리고 약간 감탄한 표정으로 면상을 돌린다.
“선 잘 지키네요. 후배님.”
이 새끼가 진짜.
나는 쌍욕을 참으며 침착하게 대꾸했다.
“그렇게 내 행동이 선 넘어서 망할까 봐 근심 걱정이 들었으면 진작 말하지 그랬냐.”
내가 큰세진에게 이 지랄 맞은 비현실적인 상황을 설명한 게 불만인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러나 청려는 고개를 옆으로 숙일 뿐이다.
“음…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요.”
오해?
“후배님. 나는 이런 일로 손해를 보지 않아요.”
“…!”
“이런 구설수에 휘말릴 때 쓸 좋은 해명이 한두 가지도 아니고.”
청려가 빙긋 웃었다.
“어떤 단어와 표현이 통하는지 다 검증해서요. 이제 와서 남의 말실수로 타격받기도 힘들어요.”
“…….”
“내가 이런 걸 한 번도 안 경험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을 텐데. 머리 좋잖아요.”
나는 놈을 쳐다보았다.
“너도 다른 사람에게 말한 적이 있다고.”
“당연하죠. 혹시 쓸 만할까 했거든요. 그런데 해보니 효용이 부족해서 안 하는 거예요.”
청려는 잠깐 회상에 잠겼는지 허공을 쳐다보았으나, 곧 초점을 회복했다.
“그러니까 이건 내가 아니라 후배님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에요. 말했잖아요. 사과의 의미로 하는 말이라고.”
X발.
나는 미간을 눌렀다.
제일 열받는 건… 저게 진심 같다는 점이군.
“그러냐. 그럼 들어라. 일단 골드 2는… 한번 날 잡고 관리할 거고.”
나는 눈치껏 입을 다물고 대화를 듣던 큰세진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쪽은 네가 걱정할 필요 없어. 어디서 떠들어댈 녀석도 아니고.”
“…당연하지.”
큰세진이 주먹을 내밀었다.
‘이걸 꼭 이 상황에서 해야 하냐.’
그래도 여기서 호응 안 하면 그게 더 웃기겠지. 나는 주먹을 마주쳐 줬다.
그러나 청려의 면상은 심드렁했다.
“네. 뭐… 후배님 말을 믿겠다고 했겠죠. 보통 그래요.”
뭐?
“하지만 여기서도 오해가 좀 생긴 것 같은데… ‘믿는다’는 게 ‘이해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
청려는 남의 말을 옮기는 것처럼 거침없이 중얼거렸다.
“우린 친하니까, 오래 알고 지냈으니까, 같은 그룹이니까… 다양한 이유를 붙여서 ‘믿는다’고 말하고 싶어 해요. 그럴 만하죠. 안 믿으면 멤버가 정신병자라는 건데, 그건 믿기 싫잖아요.”
“…….”
“그런데 그걸로 끝이에요. 그 후엔 썩 협조적이지 않아서 뭐… 이쪽은 폐기했어요. 도리어 귀찮아져서.”
놈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같은 경험을 하지 않는 이상,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에 공감할 수 있을 리가요. 그러니 후배님도 너무 큰 기대를 하진 말아요.”
“…….”
‘이래서였나’.
이놈이 그렇게 오래 같이 지내온 본인 멤버들에게도 인간적 연대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구는 건 여기서 기인한 것도 있나 보군.
‘거의… 다른 종을 대하는 것 같은데.’
약간 섬뜩하기까지 한 판단이다. 심지어 큰세진이 앞에 있는데도 저 말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음.”
나는 팔짱을 끼고 입을 열려 했다.
그때였다.
한발 먼저 옆에서 빤질빤질한 목소리가 들렸다.
“근데 선배님, 저는 굉장히~ 문대에게 협조적인데요.”
“…!”
큰세진이다. 이놈은 또 왜 이래.
“아하, 그래요?”
“그럼요. 에이~ 사람이 어떻게 다 똑같은 경험만 하고 커요? 저흰 친구잖아요. 친구끼리 서로 같은 점, 다른 점 있어서 좋은 거죠~”
“그렇게 말하는구나.”
“네. 별로 공감 못 하셔도 어쩔 수 없죠, 뭐! 사람마다 사정이 다른데요. 정말 괜찮습니다~”
‘넌 친구가 없어서 모를 수도 있지’를 이렇게까지 돌려서 맥일 수 있다니 놀랍다.
문제는 그 대상이 맛 간 예전 기억을 되새김질하던 청려라는 건데.
‘눈 뒤집히는 건 아니겠지.’
나는 청려가 표정 없이 큰세진을 바라보는 것을 확인했다.
“…….”
“…….”
아니, 너도 괜히 실실 웃으면서 같이 노려보지 말아라, 좀.
나는 한숨을 참으며 상황을 정리했다.
“그래. 뭐… 각자 생각이 있겠지. 아무튼 라디오 파일은 잘 들었고, 개는… 잘 쾌차하길 바란다.”
“그래요. 이야깃거리 생기면 언제든 연락해요. 후배님.”
“네~”
큰세진이 천연덕스럽게도 대신 대답한다. 무슨 산적 두목 오른팔이냐?
‘분위기 죽여주는군.’
그 순간, 타이밍 좋게도 현관문이 열렸다.
띠링.
솔직히 거의 반가웠다.
그리고 이 행동의 수행자는… 약간 긴장한 기색의 선아현이다.
“저, 저기… 캠프, 회의 시작 시간이 벌써 지나서.”
“…!”
“아, 미안해요. 일하는 중이었구나.”
청려는 웃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들어가 볼게요.”
“그래.”
“네, 네!”
드디어 파장 분위기군. 얼른 들어가라.
그러나 청려는 바로 몸을 트는 대신, 약간 머뭇거리다가 말을 덧붙였다.
“콩이가 돌아오면 연락할게요.”
“…그래.”
나는 마스크를 쓰는 놈에게 고개를 까닥했다.
그래도 저놈의 개는 멀쩡하길 바라면서.
청려는 그대로 등을 돌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졌다.
“들어가자.”
“으응.”
우리도 드디어 현관 안으로 도로 들어갔다.
그리고 큰세진은 앞장서서 거실로 가는 선아현을 확인하더니, 그쪽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숙덕였다.
“와, 대선배님 말 진짜 짜증 나게 한다. 어우, 문대문대. 어떻게 지금까지 참았어?”
“…….”
순간 ‘그렇지!’ 하고 외칠 뻔했다는 게 스스로 쪽팔리군.
“그냥저냥.”
“으음~ 그래. 박문대 반말도 막 쓰던데 스트레스 해소는 좀 됐겠어?”
“…….”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 그랬군.
나는 킬킬 웃으며 내 등을 때리는 놈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 아까 대화 내내 이놈이 궁금했을 부분부터.
“권희승 관련 이야기는….”
“아~ 알지, 남의 사정이라 말 못 한 거잖아. 내가 그 정도는 딱 들으면 알지~”
맥락상 권희승이 내 다음 타자라는 걸 이미 다 이해했는지, 큰세진은 거기선 특별히 불만이 없어 보였다.
“근데 이미 알았으니까 희승이 입단속은 내가 시킬까? 내가 또 이런 건 잘하지~”
“일단 좀 보고.”
안 끌어들이려고 했는데 이제 아주 시스템 파괴 목표까지 술술 불게 생겼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놈을 달고 거실로 복귀했다.
“그 자식 갔어?”
“네. 들어갔어요.”
큰세진이 너스레를 떨었다.
“으~ 너무 문대한테 친한 척하더라고요~”
거짓말 한번 천연덕스럽게 하는군.
“…! 그걸 그냥 뒀어?”
“아니, 지금까지 제가 말싸움하다 온 거거든요?”
“…그래. 그럼 다음엔 내가…….”
“형이 하면 진짜 싸우니까 안 돼요.”
“야!”
나는 동명이인 둘이 편하게 싸우도록 두고 내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러자 먼저 그 옆에 앉아있던 선아현이 입을 열었다.
“무, 문대야. 혹시, 무슨 일 있었어…? 이야기가, 생각보다 길어진 것 같아서….”
“…음.”
나는 짧게 갈등했으나, 곧 뼈대는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별건 아니고, 의견 차이 때문에 말이 좀 길어졌어.”
“아….”
선아현은 머뭇거렸으나, 다시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 무슨 의견이었는지….”
“…….”
“아, 아냐. 미안…!”
미안할 일이 아닌데 사과부터 하는 버릇은 여전하군. 나는 한숨을 참았다.
‘…이걸로 두 번째인가.’
선아현이 내 이야기를 말해달라고 한 게 말이다.
딱 집어서 비밀 없냐고 물어본 건 아니다만 영 찝찝하긴 하다. 큰세진은 들었다는 걸 이놈이 다 짐작한 것 같아서 말이지.
나는 ‘미안할 필요 전혀 없고 좀 개인적인 사정이었다’라고 말하는 대신 입을 닥쳤다. 왠지 저 말은 역효과가 날 것 같았거든.
‘당장 선아현 표정이 나쁜 것도 아니니 상황을 좀 더 지켜볼까.’
그렇게 상황이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날 저녁.
캠프에 참여하는 선아현의 태도가 갑자기 바뀌었다.
나쁜 쪽으로? 아니다.
지금껏 없던 만큼 적극적인 태도로.